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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정월 대보름(正月 大보름)

작성자인계|작성시간18.03.01|조회수219 목록 댓글 0

                           정월 대보름(正月 大보름)



 

정월 대보름은 음력 115일로, 우리 민족이 추석이나 설날에 버금가는 즐기고 기뻐하고 신령스러워하는 날이다.

옛사람들은 달이 밝은 날 밤을 좋아했다.

농경사회라 풍년을 바라고 온가족의 건강을 기원하는

내용의 행사들이 많았다.

각 지방마다 차이가 있으나, 우리 고장에서의 풍속과 행사는

대체로 다음과 같다.

< >속에는 나의 어린 시절를 회상하여 적어 보았다.

 

.유 래

정월의 절일(節日)로는 설과 대보름이 있다. 태고적 풍속은 대보름을 설처럼 여기기도 하였다. 조선 후기에 간행된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의하면 대보름에도 섣달 그믐날의 수세하는 풍속과 같이 온 집안에 등불을 켜 놓고 밤을 세운다는 기록이 보인다.

한편 중국에서는 한나라 때부터 대보름을 8대 축일의 하나로 중요하게 여겼던 명절이었다. 또한 일본에서도 대보름을 소정월(小正月)이라 하여 신년의 기점으로 생각하기도 하였다.
이는 대보름날을 신년으로 삼았던 오랜 역법의 잔존으로 보이며,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보건대 대보름의 풍속은 농경을 기본으로 하였던 고대사회로부터 풍농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유래되었다고 하겠다.

                                               二.정월 대보름의 풍속

1.음식

  1).오곡밥 먹기

o유래 : 우리나라에서 농경이 시작된 시기는 신석기문화 중기이다. 청동기문화시대에 들어오면 농경 지역이 크게 확대된다. 농작물 역시 벼, 보리, , , 수수, 콩과 같이 대단히 다양하다. 따라서 곡물을 이용한 음식이 일찍이 있었다. 대보름의 명절식인 오곡밥을 먹는 유래에 대한 기록은 신라시대부터 나타나는데 삼국유사(三國遺事)1 기이(紀異)사금갑(射琴匣) 조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 책에는 오곡밥이라 하지 않고 찰밥으로 나타나 있다. 오곡밥이라는 명칭은 후대에 붙여진 것이다.

대보름날은 쌀, 보리, , 수수, 팥 등의 다섯 가지 이상의 곡물을 섞어 지은 오곡밥을 먹었다. 채소는 무, 오이, 호박, , 가지, 버섯, 고사리 등 말려둔 것을 살마서 먹는다. 그렇게 하면 여름에 더위를 먹지 않고 건강하게 지낸 다고 한다.


                                           오곡밥과 과학적 분석

 

<주부들이 첫새벽에 오곡밥을 지어서 말려둔 산채나 채소로 나물반찬을 만들어 먹었으며 그러나 색깔 있는 김치 등은 먹지 않았고 청어 등의 귀한 생선도 먹었다>

 

 2)귀밝이 술 - <보름날 새벽에 데우지 않은 찬술을 남녀구별 없이 조금씩 마셨.>


 3).부럼 깨물기

정월 보름날 새벽에는 부스럼이 생기지 말라는 의미에서 밤··호두 등 단단한 견과류의 부럼을 먹는다. 이때 부럼(주로 밤의 껍질을 직접 깨물어 먹는다.


                                                <콩이나 밤. 호두 등 견과류를 깨물었다.>

 

2. 대보름날 행사

 1).더위팔기 - 보름날 해뜨기 전에는 다른 사람에게 한해 더위를 판다.

<우리 고장은 없슴>


 2).달맞이 높은 곳에 올라 달을 맞으면서 새해의 풍년을 점치고 행운을 빈다.


가운데 산이 인구마을 사람들이 올라가 달불 피우던 마당지산이다.

셋 마을 중 마당지산이 제일 높으니 뜨는 달고 먼저 본다.


가운데 있는 산이 아래귀미 사람들이 올라가 달불 피우던 곳



              왼편 고깔산 아래에 보이는 산이 월연사람들이 올라가 달불 피우던 노적산.

 

<달 보러가기- 오후가 되면 동내사람들이 떼를 지어 마당지산으로 올라간다.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달뜰 시간이 남으면 그곳에 널려있는 큰 돌을 동편 새들 봇갓쪽으로 굴린다. 굴러가는 모습이 마치 동물이 뛰어 내려가는 모습과 같아서 그것을 보고 즐거워했다. 달이 뜨는 시간이 되면 동쪽 운주산 쪽으로 눈이 빠지도록 응시하다가 달이 얼굴을 내밀며는 달 봤다라고 외친다. 그 소리는 산 아래 우리 마을 까지 들렸다. 그리고 달을 보고 소원을 성취해 달라고 두 손 모아 빌기도 하였다. 근처의 나뭇가지와 솔가지를 꺾어 모아 연기가 많이 나게 달불을 놓기도 하였다. 그래서 마을마다 뒷산에는 연기가 피어올랐다. 연기 나는 순서는 뒷산의 높이가 높을수록 먼저 올랐다. 그래서 인구가 1등이고, 월연, 아릿귀미 순이었다.>

 

3)달집태우기 - 달집을 만들어 달이 떠오를 때에 태우면서 풍년을 빈다.


 

   <우리고장에는 달보던 그자레에서 솔가지를 모아 불을 놓았다.>

 

  4)보리타작놀이 - 보름 전날에 아이들이 집 집 마다 수수깡으로 여러 가지 곡식과 농기구를 만든다. 보리, , 등 지게, 쟁기, 꽹이, 호미 등 이렇게 만든 곡식을 지게에 지어 큰방 윗목에 늘어놓고 풍년을 빌었다.


<수수깡의 껍질을 벗기고, 껍질과 속대를 이용하여 여러 가지 곡식을 만들었다. 만든 곡식을 퇴비장에 꽂어 놓고 달이 뜨기를 기다리다 마당지산에서 달봤다고 외치면 꽂아두었던 곡식을 모아 타작 흉내를 하고 그것을 말로 되는 시늉을 하면서 한 섬, 두 섬하고 풍년을 기원했다.>


 5)지신밟기 - 영남 지방의 대보름 문화로, 농민들이 농악행렬을 이루어 집을 차례로 찾아가는 풍습이다.

<우리고장에서는 없었다.>

 

 6)액막이 연 날리기 - 그해의 액운을 멀리 날려 보낸다는 뜻으로 음력 정월 열나흗 날에 띄워 보내는 연. 연에는 이름, 생년월일 따위와 송액영복(送厄迎福)과 같은 글귀를 쓴다.


<우리고장은 이월 초하룻날 연등 날에 연등할머니에게 빌 때 한지를 걸어둔다 그 종이를 이용해서 연을 만들어 띄웠다.>

 

  7)소 밥주기 - 소에게 밥과 마른채소를 주어 밥을 먼저 먹으면 금년에는 풍년이 든다고 믿었다.


<그날은 짚으로 끓인 소죽을 주지 않고 오곡밥과 나물을 먹이로 주었다. 오곡밥과 나물, 그리고 면화씨를 키에 담아서 같이 주던 기억이 난다>

 

  8)개보름 쇠기 - 보름날에 밥을 주면 개가 여름에 파리가 많이 붙어서 마른다고 하여 주지 않다가 달이 뜨는 저녁에 밥을 줌.


<그날은 개에게 밥을 주지 않고 굶겼다. 밥을 주면 피부병이 걸린다고 했다.>

 

  9)까마귀밥 - 찰밥을 지어 까마귀에 제를 지낸다. 또는, 약밥이나 나물을 까마귀에 던져 줌.


<짚 한줌 분량을 양쪽 끝을 묶고 짚 속에다 오곡밥을 넣어서 담 위나 나뭇가지에 걸러두어 까치나 까마귀가 먹도록 했다. 신라의 전설에 서출지 이야기가 있는데 까마귀의 덕으로 임금의 목숨을 구하여 보은의 뜻으로 오곡밥을 주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10)쥐불놀이 - 대보름 밤에 쥐불을 놓아 벌레를 없앤다.


                                                             <우리고장에는 없었다>

  11)횃불싸움 두 마을이 다리를 사이에 두고 서로 횃불을 들고 싸운다.


                                                             <우리고장에는 없었다>

 

 12)줄다리기, 석전, 고싸움 등의 놀이를 벌이기도 한다.


<겨울이면 동내 마다 아이들이 짚을 모아 줄을 만들어 매고 어화 어화라고 외치며 마을을 돌아다녔다. 그르다 이웃마을과의 줄다리기를 하기도 했다. 우리 인구마을도 월연마을과 자주 줄다리기를 하였는데 그러면 언제나 인구마을이 이겼다. 그 이유는 아이들 수가 많기 때문이다. 때로는 아이들 줄 싸움이 발전하면 어른들의 줄 싸움이 된 일이 있었다. 해방 후에 큰 줄 싸움이 있었는데 인구마을은 동편마을인 귀미, 신방, 충효, 거동 마을사람들을 청병하고, 월연마을은 서편마을 즉 노항, 성곡, 용화마을 사람들을 청병하여 큰 줄다리기를 하였다. 동편의 총대장이 우리 아버지시고, 월연에 사시던 미재적은아버지께서는 서편의 대장이 되시니 결국 형제분이 양편 대장이므로 더욱 흥미로웠다. 시작 신호는 경찰지서 순경의 총소리로 하였다. 승부는 동편이 사람 수가 많으니 이겼다.>


13.윷놀이 - 정월 초하루에서 보름까지 윷이라는 놀이도구를 사용하여 남녀노소 누구나 어울려 즐기면서 노는 놀이. 사희(柶戱) 또는 척사희(擲柶戱)라고도 한다.


<대보름날을 계기로 또래끼리 또는 집안끼리 어느 때는 동내 끼리 윷을 논다.

내가 어릴 때 자호정사에서 귀미와 인구의 큰 윷놀이판이 벌어진 것을 구경했다.>

   <참고문헌>

o 전통문화의 맥 - 경상북도교육위원회 - 1987.8.31

o 네이버 테마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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