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향회 문화 유적지 탐방하다(1)====
언 제 ; 2014년 4월 24일
어 디 ; 전라남도 순천 일원
지난 정기총회때 결정된 모향회 유적지 탐방안에 대하여
매년 행사로 정해져 있으니 좋은곳을 물색하여 시행하기로 결의된바
이번 기회에는 회장 이하 집행부의 탁월한 아이디어로 전라남도 순천 일원을
탐방키로 하고 우리는 즐겁고 유쾌한 마음으로 연세 많으신 분들과 남녀 노소가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기회로 조심스럽게 하루의 시간들을 정말 유용하고 보람되게 보낸것으로
다들 흡족하시는 표정과 하루의 즐거움이 내내 기억될 수 있도록 하자고 다짐도 하고 연세
높으신 군위(병욱씨)어르신의 말씀도 귀담아 잊지않도록 그리고 가족 같은 우리 모제공 후손들이
합심하여 돈독의 모습을 보이자고도 다짐하며 즐겁고 흐믓하고 보람된 하루가 되였었다.
낙안읍성에 대해서
있는곳 ; 전남 순천시 낙안면 남내리
사적 제302호. 축조연대 미상. 둘레 1,384m, 높이 4m, 너비 3∼4m. 현재 성벽과
동 ·서 ·남 문지(門址), 옹성(壅城) 등이 남아 있다. 고려 후기에 왜구가 자주 침입하자,
1397년(태조 6) 절제사(節制使) 김빈길(金??吉)이 흙으로 읍성을 쌓았다. 《세종실록》에는
1424년 9월부터 토축의 읍성을 석축으로 쌓으면서 본래보다 넓혀서 쌓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모향회원을 태운 관광버~스
당시 성 안에는 우물 2개 ·연못 2개가 있었으며, 해자(垓字)는 파지 않았고,
문의 보호시설인 옹성은 그 후에 설치하였다.
연세가 제일 많으신 군위(병욱씨)어르신 덕담하시는 모습도~~~
차안에 분위기도 담아 보고~~~
자천(태연씨)아재께서도 모재공 후손들의 자랑스런 이야기 하시는 모습도~~~
사천후게소에서 잠시 휴식하고~~~
오른쪽부터 배반(최채옥여사)형수,군위(병욱씨)어르신,자천(태연씨)아재, 정자(김정순여사)댁
오른쪽부터 옥산(이진술여사)댁,삼강(정순열여사),정동(전문자여사)댁
낙안읍성 주차장 그늘밑에서 점심을~~~
맛있게 잡수시는 모습도~~
전체도 담아 보고~~~
왼쪽도~~~
재미있는 모습을~~~
젊은층도 육십은 다 넘었는데~~~
순천 낙안읍성 안내 설명을~~~
읍성 들어가는쪽을~~~
낮은 구릉을 포함한 평지에 동서 방향으로 긴 직사각형이며, 체성(體城)의 축조나
적대를 구비한 점에서 조선 전기의 양식이다. 동문에서 남문으로 이어지는 성곽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으며, 옹성은 남 ·서문터에서만 흔적을 볼 수 있다.
읍성에서 나가는 쪽도~~~
성곽은 커다란 자연석으로 쌓고, 돌과 돌 사이에는 작은돌로 쐐기 박음을 했지만
아직도 견고하다. 남문터는 마을 안 골목길에 있는데, 네모진 바위를 3단으로 쌓아올린
성문벽이 길가에 그대로 남아 있다.
성 안에는 1536년(중종 31)에 지은 객사(客舍)가 온전히 남아 있고, 대성전(大成殿) 등
9채나 되는 향교가 보존되어 있다.
장군 임경업(林慶業)이 15세 때 하룻밤에 쌓았다는 전설이 있으나,
《여지승람(輿地勝覽)》에 낙안성에 관한 기록이 있는 것을 보아 임경업 축조설은
믿을 수 없다
입구의 모습을~~~
동문(낙풍루)
성벽도 담아 보고~~~
여러가지 상품들이~~~
낙안민속촌의 역사
낙안은 먼 옛날 삼한시대에는 마한(馬韓)의 54국 중 신분활국(臣墳活國)이었으며,
백제시대에는 분차(分嵯), 분사(分沙), 부사(夫沙)라고도 불리운 파지성(波知城)이었고,
통일신라 경덕왕 16년에는 분령군(分嶺郡)으로 조양(兆陽), 충렬(忠烈), 백주(栢舟),
동원(董原) 4개의 속현(屬縣 현 보성군 고흥군 일대)을 가졌다.
군위(병욱씨)어르신의 모습도~~~
고려시대에는 태조 23년(940년)에 양악(陽岳), 낙안(樂安)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그 뒤 고려 헌종 9년(1018년)에는 나주부(羅州府)에 소속되었고, 고려 명종 2년(1172년)에
감무(監務)를 두었다가 뒤에 다시 지군(知郡)으로 승격되었다.
성곽의 일부도 담아 보고~~~
남문 (쌍청루)
옛 시골마을의 모습이~~
조선시대에는 세조 12년(1466년) 지군(知郡)에서 군수(郡守)로 고쳤으며
중종 10년(1515년) 군내에서 불미한 사건이 발생하여 현령(縣令)으로 격하되었다가
선조 8년(1575년)에 다시 군(郡)으로 승격하였다. 19세기말까지
낙안 군수는 순천진관병마동첨절제사( 順天鎭管兵馬同僉節制使)를 겸했다.
성곽 밖았도 담아 보고~~`
성곽 자체도 담고~~~
성곽에서 아래를 보고~~~
물레방아와 연못에 꽃들도~~~
순종 1년 (융희 2년) 1908년 10월 15일 칙령 제72호로 낙안군이 폐지되면서
순천군 낙안면이 되었고, 1949년 8월 14일 순천읍이 시로 승격되면서 승주군
낙안면이 되었다가 1995년 1월 1일 시군 통합에 의하여 순천시와 승주군이 통합됨으로써
현재의 순천시 낙안면이 되었다.
낙안읍성은 대개의 성곽이 산이나 해안에 축조되었는데 반해, 들 가운데 축조된
야성(野城)으로 외탁(外托)과 내탁(內托)의 양면이 석축으로 쌓여 있는 협축(夾築)으로
이루어졌다는 큰 특징이 있다.
이곳 낙안 평야지에 있는 읍성으로서 연대를 살펴보면 조선 태조 6년(1397년)
왜구가 침입하자 이 고장 출신 양혜공(襄惠公)김빈길 장군이 의병을 일으켜 토
성을 쌓고 왜구를 토벌하였다.
옥사지 건물도~~~
죄인 심문하는 모습도~~~
설명문도~~~
400년된 은행나무도~~~
읍성 안에 노거수로 설명하고~~~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인계 작성시간 14.05.02 낙안읍성에는 몇번 다녀왔는데 성내의 촌락구조가 옛날 우리나라의 초가그대로였어 감명깊게 관광을 한 기역이 난다.
몇해전 모향회 행사때에 같이간 회원 중에 몇분은 선화하였으니 안타갑구나!
성채(고 병업)의 병고에 시달리면서 같이 간것이 눈에 선하구나! -
답댓글 작성자솔밭향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4.04.25 그렇군요~!
나날이 변모하는
모습들이 많드군요
저도 오래전에 국립대구박물관
에서 간적이 있었는데 각 지역마다
관광객 유치를위하여 약간씩 변모하여
구경하는 이로하여금 즐겁게 하나봅니다.
모제공 후손들이라 특히나 군위어르신께서 항시
좋은 이야기와 올바른 가르침이 있고하여 삼체계에도
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