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주악의 역사
취주악은 관악기와 타악기의 합주를 말하며 근대적인 격식을 갖추기 이전의 관악기와 타악기의 단순한 합주 형태를 기준으로 그 역사를 더듬어 보면 그 기원은 상당히 옛날로 올라간다. 원시적인 형태로서 간단한 피리 등의 목제 통으로 된 악기는 이미 고대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 시대, 즉 기원전 약 3천 년경부터 있었다고 하며, 타악기는 그 이전부터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피리 종류의 악기가 선율연주에 자유로운 악기로서의 구실을 하게 된 것은 서기 10세기 이후의 일이다. 금관악기의 트럼본이 합주에 쓰인 것은 15세기경부터이다.
일반적으로 관악기의 발달은 현악기보다 늦으며, 관악기가 현악기와 합주를 하게 된 것은 16세기경부터로 이것이 오늘날 관현악의 시초라고 하겠다. 그러나 관악기만의 합주가 그이전에 없었던 것은 아니다. 12세기 경부터 '민스트럴'이라고 하는 이른바 유랑악사들이 여러 도시를 흘러 다니며 피리라든가 그 밖의 간단한 관악기와 북으로 합주를 하고 있었다.
이 유랑악사들이 14세기 경부터는 독일의 여러 도시에 정착하여 하나의 시민 악대를 편성하게 되었다. 물론 악대라고는 하지만 아주 작은 편성으로 플루트와 오보에, 여기에 타악기를 합친 겨우 5-6명 정도였었다. 이 악대는 그 고장의 제전이나 의식 등에 참가하거나 축제나 결혼 등의 모임에서 연주했으며, 그리고 이밖에도 아침 저녁으로 성에 올라가 시간을 알리는 역할도 했다. 군대에서 사용하는 악대는 일반시민들의 밴드보다 훨씬 옛날부터 있었다.
처음에는 행진이나 전투에서 주로 북을 두들기거나 고적대를 사용하다가 후에 나팔 종류를 사용했다. 이러한 군악대는 그 기원을 멀리 로마 시대에서 찾아 볼 수 있으며, 이때에는 어떤 선율적인 악곡을 연주한다기 보다는 신호나팔의 팡파르와 같은 연주였고, 합주로 각 선율이 병행5도의 진행을 하는 정도의 초보적 연주였다.
그런데 유럽 여러 나라의 군악대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준 것은 터기이다. 터키는 11세기경부터 타악기를 중심으로 하는 군악대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편성과 연주 기술 향상에 주력하여 많은 발전을 보고 있었다. 편성은 큰북, 작은북, 트라이앵글, 심벌즈, 벨 등으로 군대의 행진이나 출정 그리고 전투에서 웅장한 행진곡을 연주하여 병사들의 사기를 고무했던 것이다. 이 터키 군악대의 편성과 그 역할은 십자군이 종전 후 유럽로 돌아가 이를 전함으로써 여러 나라에 영향을 주었고, 그 후 15세기에서 18세기에 이른 사이에 여러 차례 터키군이 유럽을 침략한 결과 군악대의 편성과 이들이 연주한 행진곡이 여러 나라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이 터키풍은 비단 군악대에 한한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풍습과 의상에 까지 바람이 일었고, 순수 클래식 음악에도 유행하여 모차르트와 베토벤도 "터키 행진곡"을 작곡하고 있다.
이리하여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에 걸쳐 유럽 여러 나라에서는 근대적인 의미에서의 형태를 갖춘 군악대가 형성되었다. 이때 가장 크게 활약했던 것은 나폴레옹이 정권을 잡고 있던 프랑스의 군악대로서, 독일, 스페인 등의 나라에 영향을 주었다. 당시 가장 이상적인 군악대라고 지목된 프랑스의 친위사단 군악대의 편성을 보면 다음과 같다.
클라리넷 12, 소 클라리넷 9, 플루트 2, 오보에 2, 파곳 2, 호른 2, 트럼펫 2, 트럼본 2, 큰북1, 작은 북 3-6, 심벌즈 2. 이 편성을 보면 대체로 현대의 편성에 가까운 구성을 하고 있다. 한편 영국에서도 군악대의 발전이 활발하여, 18세기 말에는 각 연대마다 군악대를 배치하게 되었다. 그리고 민간 밴드도 각 도시마다 그다지 큰 편성은 아니라도 시민 생활에 밀접한 관계를 갖게 되었다.
따라서 취주악의 작품도 많이 나왔는데 순수 예술 음악에도 관악 합주의 작품을 쓰는 작곡가가 많았다. 헨델도 관악기만의 합주용으로 유명한 "수상 음악", "왕궁의 불꽃놀이" 등을 썼는데 "왕궁의 불꽃놀이"에서 사용한 관악기는 당시로서는 이례적인 많은 악기를 편성하고 있다.
19세기에 와서는 금속공업이 발달하여 악기 제조 기술도 급속도로 향상되었다.
프랑스의 뵘이 플루트를 비롯하여 목관악기의 구조를 크게 개량하여 연주 능력과 음색을 비약적으로 높혀 취주악의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 또한 관악기에는 현악기처럼 같은 음색의 악기에 의한 선율이나 화성의 진행이 자연스럽지 못하고 목관과 금관의 조화가 어려웠다.
이를 벨기에 사람인 아돌프 섹스가 1840년경 여러 가지 섹스 호른족을 만들어 취주악의 효과를 올렸고 1845년에는 색소폰을 발명하여 이에 따라 중음 이 부드러워졌고 취주악의 표현에 폭을 넓혔다.
이리하여 악기의 제작 기술이 향상됨에 따라 악기의 기능이 우수해졌고, 이와 동시에 개인 연주 기술과 합주 기술이 급진적으로 발전하여 19세기, 특히 후반기에 취주악의 황금시대를 이루었다. 돌일을 비롯하여 프랑스, 영국, 스페인 등의 군악대 중에는 우수한 기술을 가진 밴드가 많아 나왔고, 일반 민간 취주악단도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다. 특히 독일의 군악대장을 지낸 "옛친구"의 작곡자 타이케라든가 역시 군악대장을 지낸 "쌍두취의 깃발 아래"의 작곡자 바그너(대 바그너 아님)등은 취주악의 발전에 큰 업적을 남긴 사람들이다.
민간 밴드라고 하면 19세기 후반부터 눈부신 발전상을 보인 미국을 드는데, 군악대와 민간 밴드의 활동이 두드러지며 세계에서 취주악단을 가장 많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발전사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 사람이 "행진곡의 왕" 수자이다. 그는 군악대장으로 활약했으며, 세계적으로 우명한 "수자 밴드"를 80명이 넘는 대편성으로 조직하여 세계순회 공연을 하는 등 취주악의 발전에 큰 공헌을 했다.
위 내용은 세광음악출판사에서 출판한 김형주 지음의 '음악감상법'에서 발췌한 글 입니다.
취주악은 관악기와 타악기의 합주를 말하며 근대적인 격식을 갖추기 이전의 관악기와 타악기의 단순한 합주 형태를 기준으로 그 역사를 더듬어 보면 그 기원은 상당히 옛날로 올라간다. 원시적인 형태로서 간단한 피리 등의 목제 통으로 된 악기는 이미 고대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 시대, 즉 기원전 약 3천 년경부터 있었다고 하며, 타악기는 그 이전부터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피리 종류의 악기가 선율연주에 자유로운 악기로서의 구실을 하게 된 것은 서기 10세기 이후의 일이다. 금관악기의 트럼본이 합주에 쓰인 것은 15세기경부터이다.
일반적으로 관악기의 발달은 현악기보다 늦으며, 관악기가 현악기와 합주를 하게 된 것은 16세기경부터로 이것이 오늘날 관현악의 시초라고 하겠다. 그러나 관악기만의 합주가 그이전에 없었던 것은 아니다. 12세기 경부터 '민스트럴'이라고 하는 이른바 유랑악사들이 여러 도시를 흘러 다니며 피리라든가 그 밖의 간단한 관악기와 북으로 합주를 하고 있었다.
이 유랑악사들이 14세기 경부터는 독일의 여러 도시에 정착하여 하나의 시민 악대를 편성하게 되었다. 물론 악대라고는 하지만 아주 작은 편성으로 플루트와 오보에, 여기에 타악기를 합친 겨우 5-6명 정도였었다. 이 악대는 그 고장의 제전이나 의식 등에 참가하거나 축제나 결혼 등의 모임에서 연주했으며, 그리고 이밖에도 아침 저녁으로 성에 올라가 시간을 알리는 역할도 했다. 군대에서 사용하는 악대는 일반시민들의 밴드보다 훨씬 옛날부터 있었다.
처음에는 행진이나 전투에서 주로 북을 두들기거나 고적대를 사용하다가 후에 나팔 종류를 사용했다. 이러한 군악대는 그 기원을 멀리 로마 시대에서 찾아 볼 수 있으며, 이때에는 어떤 선율적인 악곡을 연주한다기 보다는 신호나팔의 팡파르와 같은 연주였고, 합주로 각 선율이 병행5도의 진행을 하는 정도의 초보적 연주였다.
그런데 유럽 여러 나라의 군악대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준 것은 터기이다. 터키는 11세기경부터 타악기를 중심으로 하는 군악대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편성과 연주 기술 향상에 주력하여 많은 발전을 보고 있었다. 편성은 큰북, 작은북, 트라이앵글, 심벌즈, 벨 등으로 군대의 행진이나 출정 그리고 전투에서 웅장한 행진곡을 연주하여 병사들의 사기를 고무했던 것이다. 이 터키 군악대의 편성과 그 역할은 십자군이 종전 후 유럽로 돌아가 이를 전함으로써 여러 나라에 영향을 주었고, 그 후 15세기에서 18세기에 이른 사이에 여러 차례 터키군이 유럽을 침략한 결과 군악대의 편성과 이들이 연주한 행진곡이 여러 나라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이 터키풍은 비단 군악대에 한한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풍습과 의상에 까지 바람이 일었고, 순수 클래식 음악에도 유행하여 모차르트와 베토벤도 "터키 행진곡"을 작곡하고 있다.
이리하여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에 걸쳐 유럽 여러 나라에서는 근대적인 의미에서의 형태를 갖춘 군악대가 형성되었다. 이때 가장 크게 활약했던 것은 나폴레옹이 정권을 잡고 있던 프랑스의 군악대로서, 독일, 스페인 등의 나라에 영향을 주었다. 당시 가장 이상적인 군악대라고 지목된 프랑스의 친위사단 군악대의 편성을 보면 다음과 같다.
클라리넷 12, 소 클라리넷 9, 플루트 2, 오보에 2, 파곳 2, 호른 2, 트럼펫 2, 트럼본 2, 큰북1, 작은 북 3-6, 심벌즈 2. 이 편성을 보면 대체로 현대의 편성에 가까운 구성을 하고 있다. 한편 영국에서도 군악대의 발전이 활발하여, 18세기 말에는 각 연대마다 군악대를 배치하게 되었다. 그리고 민간 밴드도 각 도시마다 그다지 큰 편성은 아니라도 시민 생활에 밀접한 관계를 갖게 되었다.
따라서 취주악의 작품도 많이 나왔는데 순수 예술 음악에도 관악 합주의 작품을 쓰는 작곡가가 많았다. 헨델도 관악기만의 합주용으로 유명한 "수상 음악", "왕궁의 불꽃놀이" 등을 썼는데 "왕궁의 불꽃놀이"에서 사용한 관악기는 당시로서는 이례적인 많은 악기를 편성하고 있다.
19세기에 와서는 금속공업이 발달하여 악기 제조 기술도 급속도로 향상되었다.
프랑스의 뵘이 플루트를 비롯하여 목관악기의 구조를 크게 개량하여 연주 능력과 음색을 비약적으로 높혀 취주악의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 또한 관악기에는 현악기처럼 같은 음색의 악기에 의한 선율이나 화성의 진행이 자연스럽지 못하고 목관과 금관의 조화가 어려웠다.
이를 벨기에 사람인 아돌프 섹스가 1840년경 여러 가지 섹스 호른족을 만들어 취주악의 효과를 올렸고 1845년에는 색소폰을 발명하여 이에 따라 중음 이 부드러워졌고 취주악의 표현에 폭을 넓혔다.
이리하여 악기의 제작 기술이 향상됨에 따라 악기의 기능이 우수해졌고, 이와 동시에 개인 연주 기술과 합주 기술이 급진적으로 발전하여 19세기, 특히 후반기에 취주악의 황금시대를 이루었다. 돌일을 비롯하여 프랑스, 영국, 스페인 등의 군악대 중에는 우수한 기술을 가진 밴드가 많아 나왔고, 일반 민간 취주악단도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다. 특히 독일의 군악대장을 지낸 "옛친구"의 작곡자 타이케라든가 역시 군악대장을 지낸 "쌍두취의 깃발 아래"의 작곡자 바그너(대 바그너 아님)등은 취주악의 발전에 큰 업적을 남긴 사람들이다.
민간 밴드라고 하면 19세기 후반부터 눈부신 발전상을 보인 미국을 드는데, 군악대와 민간 밴드의 활동이 두드러지며 세계에서 취주악단을 가장 많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발전사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 사람이 "행진곡의 왕" 수자이다. 그는 군악대장으로 활약했으며, 세계적으로 우명한 "수자 밴드"를 80명이 넘는 대편성으로 조직하여 세계순회 공연을 하는 등 취주악의 발전에 큰 공헌을 했다.
위 내용은 세광음악출판사에서 출판한 김형주 지음의 '음악감상법'에서 발췌한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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