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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어록 & 선시

시불(詩佛)이라 불리는 왕유(王維)의 녹채(鹿砦)

작성자하늘호수|작성시간18.02.04|조회수347 목록 댓글 0



空山不見人
공산불견인

텅 빈 산,
사람은 보이지 않고

但聞人語響
단문인어향

두런거리는 소리만 들릴 뿐,

返景入深林
반경입심림

석양빛이
숲속 깊숙이 들어와

復照靑苔上
부조청태상

다시금
푸른 이끼를 비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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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불(詩佛)이라 불렸던
왕유(王維:699~761)의
녹채(鹿砦)라는 제목의 시이다.

녹채란
나무막대기나 가지를
사슴의 뿔 모양으로 만들어 얽어 둘러쳐
외부의 침입을 막는 울타리 같은 것이다.
녹시(鹿柴)라고도 한다.

왕유는 만년에
남전(藍田)이라는
종남산(終南山) 기슭에
망천(輞川莊)을 지어
이곳에 은거해 살면서
세속을 잊고 지냈다.

이 시는 그때 지은 시이다.

석양이 비치는 산속의 풍경을
담담히 그린 이 시를
격조 높은
유명한 선시(禪詩)에
해당하는 시로 여겨왔다.

왕유는
어머니의 영향에 의해
일찍이 불교에 심취하였다.

그가 호를
유마(維摩)라 했는데
이는 유마힐(維摩詰)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다.


왕유는
시선(詩仙) 이백(李白)과
시성(詩聖) 두보(杜甫)와
더불어
당(唐詩)의 삼대시인(三大詩人)으로,
그를 시불(詩佛)이라 하는 것은

시를 통해
선의 경치를 터득하여
시선일치(詩禪一致)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그의 시는
자연을 노래한
자연시라고 부르기도 한다.

당시(唐詩) 가운데
자연시를 대표하는 시인을
‘왕맹위유(王孟韋柳)’라 하여
왕유,
맹호연(孟浩然:689~740),
위응물(韋應物:734~804),
유종원(柳宗元:773~819)
네 사람을 두고 말한다.

이들 중에서도
왕유가
자연시를 대표하는 중심인물이다.



왕유는 또 시뿐만 아니라
그림, 서예에도 능해
삼절(三絶)이라고 불렀다.

특히 수묵화로 이름을 떨쳐
장안의 건물 벽에 그린
‘장벽산수화’ 창주도(滄州圖)‘
’망천도(輞川圖)‘가 유명하다.

소동파는
왕유의 시와 그림을 두고
’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다.
(詩中有畵 畵中有詩)‘
고 평하였다.

ㅡ지안스님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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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산,
사람은 보이지 않고

두런거리는 소리만 들릴 뿐,

석양빛이
숲속 깊숙이 들어와

다시금
푸른 이끼를 비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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