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기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요16장21-22절)
성령이 임하시면 처음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구원의 희열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 다음 단계는 내부개혁이 시작이 됩니다. 해산의 수고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던 내가 십자가를 달게 지기 시작합니다. 나를 버리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 피조물만 계산하게 됩니다. 수시로 나를 버리고 그리스도로 바꿉니다. 나중엔 삶의 원리가 됩니다. 내가 십자가를 지고 가다가 십자가가 나를 지고 가기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그 십자가를 지는 법을 배운 자들에겐 하나님의 능력(고전1:18)이기 때문입니다. 요16장은 진리의 성령이 오신 다음에 일어나는 육체의 심판 곧 해산의 수고를 말씀합니다. 일면 성령이 임하시면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와 같이 그리스도와 한 영이 되었음을 깨닫습니다. 이를 위해 우리가 한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방적인 역사로 우리는 얼떨결에 이끌려 주 안에 초청이 되어 들리는 말씀을 아멘 하고 믿었을 뿐입니다.
이게 바로 작정이 된 그리스도인들에게 다가오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말씀이 가까워 입에 얹히고 마음에 고입니다. 믿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아브라함처럼 들으면 믿어집니다. 이건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의 신기한 매커니즘입니다. 다만 에서처럼 하나님께서 아무 말씀 안하시는 사람도 있는데 그것도 하나님의 작정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쟤들은 왜 그래요? 하고 물을 일이 아닙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주와 연합이 된 사실을 깨닫는 반면에 주님과 조직과 성분이 같아지는 해산의 수고가 속에서 벌어지게 됩니다. 신학교수가 미국의 어떤 신학자의 성령론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느라 쩔쩔매고 있는 것이 한국교회의 현실입니다. 성경에 있는 대로 성령의 역사를 본인이 체험하고 그대로 강의하면 한국교회가 확 달라질 겁니다.
주께서 하나님 아버지께 돌아가셔서 직접 보내신 성령을 미국에서 수입해온 성령론으로 공부를 해야 합니까? 자다가 남의 다리 긁는 것과 같지요 그러니 전직 대통령이 유사한 기독교에 심취하거나 또 한 사람은 70이 넘은 나이에 자신의 어머니의 신앙을 간증하는 어린 신자를 만들어 놓는 겁니다. 한국교회의 책임입니다. 그로 인해 자신들의 구원을 차가운 감옥 안에서 이루어야 하고 그들이 재임하는 시간만큼 대한민국이 큰 상처를 받고 서글퍼진 겁니다. 그로인해 한국교회는 유물론자들에게 더 큰 수욕을 당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없어 광풍에 밀려가는 물 없는 구름과 같은 현상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옛 자아와 새로운 피조물인 새 자아의 사이에 큰 충돌이 일어납니다. 아픕니다. 혼란스럽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합니다. 주의 이름을 간절히 호소하는 기도와 함께... 그런 과정을 거쳐 주께서 내 속에 나타나시므로 큰 기쁨을 얻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