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보리떡 다섯과 고기 두 마리에 축사하시므로 5천을 먹이고도 보리떡이 12바구니를 남긴 소위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자 사람들이 억지로 붙잡아 임금을 삼으려고 했습니다(요6:15)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경제대통령이죠. 이 예수를 그 이튿날 기어이 추적해서 따라옵니다. 인간은 이와 같이 자신들의 육신의 욕구엔 집요합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나는 모세처럼 만나를 먹이는 경제대통령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온 생명의 떡이라고 하시니 다 뿔뿔이 흩어질 무리들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인간들은 언제나 영의 일은 등신이고 육신의 일은 귀신들입니다. 주님의 제자들 중에서도 많이 떠나고 말았습니다(요6:66)
믿음도 돈이 안 되면 별 볼일이 없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돈이 천하통일을 했습니다. 주님이 생명의 떡이라고 해도 어디 붙이는 반창고냐 하는 식이 지금의 그리스도인들의 가치관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지금 주님을 왜 찾는지 한번 자문해 봐야 합니다. 혹시 돈으로 해결할 문제를 두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아닐까요? 그러면 차라리 하나님을 거창하게 수식하지 말고 솔직하게 아버지 돈 주세요 하세요. 주님께서 썩는 양식을 위해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요6:27)고 하시니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요6:28) 하고 질문합니다.
주님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요6:29)이라고 대답하십니다. 주 예수그리스도께서 나의 수호신이 되어 나를 축복하시고 보호하시는 인생 가이드가 아니라 생명의 양식으로 알고 먹고 마십니까? 아니면 무리들처럼 당신을 믿어야 할 만한 표적을 보여주세요. 당신이 우리에게 하시는 일이 뭡니까?(요6:30) 이렇게 하릴없이 푸념을 하십니까? 만일 주의 말씀을 듣고 살아났으면(요5:25) 그리스도를 먹고 사는 법을 터득하십시오(요6:57) 그리 쉽지는 않을 겁니다. 죽을 만큼의 힘든 사망의 골짜기도 지나치겠지요. 20년을 지나 말씀을 붙들고 있는 어느 회원을 보면 눈물이 납니다.
육신이 볼 수 있는 신앙의 표적에서 주님이 생명의 떡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꾸역꾸역 따르는 데는 소태와 같은 쓰디쓴 고난의 강을 지나쳤겠지요? 서러워하지 마세요 한탄하거나 근심도 마세요 다 하나님이십니다. 다 주님이십니다. 어떻게 하여야...나를 위해 하시는 일이 뭡니까? 보여 주세요 하던 우리들입니다. 아니 구원을 받아 살아날 때에도 뭔가를 보여줘야 믿지 하고 군시렁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던 지렁이들에게 하늘을 여시고 그리로 오고 가시고 또 임재하신 그리스도를 믿고 보고 먹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요6:57)하신 주님의 말씀대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