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이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니라”(행19:3)
바울이 에베소에 이르러 어떤 제자들을 만나 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하고 물으니 그들은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다고 대답을 했습니다(행19:1-2) 심각하죠.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전 세계의 교회문제입니다. 아볼로와 같은 설교자들이 대세를 이루어 언어의 기교로 사람들에게 듣고 싶은 말을 쏟아내고 싶습니다. 사실 설교는 사람들이 듣고 싶은 말을 하는 게 아니라 꼭 들어야 할 말씀을 전해야 하는 거죠. 신학교의 설교학으로 부터 아볼로와 같은 인재가 만들어 집니다. 에베소에 간 아볼로는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사람이었습니다(행18:24) 거기다가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는 열정까지 있습니다. 이 정도면 이 시대의 목회자로서는 만점입니다.
문제는 요한의 세례만 아는 것입니다(행18:25) 그러므로 예수가 그리스도가 되는 과정을 따르지 못하고 마냥 십자가 앞에 서 있습니다. 논산훈련소로 치면 수용소에서 대기하는 장정과 같습니다. 군인으로 부름을 받긴 했는데 아직 정식 군인이 아닙니다. 청함은 받았으나 그리스도와 합하여 죽고 다시 사는 세례를 모르므로 그리스도로 옷 입은(갈3:27) 택함이 없습니다. 하늘나라 혼인 파티의 예복이 아니라 제 옷을 입고 있고 버티다가 들켜 불법에 대한 지적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손발이 묶여 바깥 어두운 데에 던져져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됩니다(마22:12-13) 이를 가는 걸 보니 거짓말에 속았기 때문에 몹시 억울한 거죠. 아볼로와 같은 설교꾼들에게 속은 거죠.
아볼로도 사실은 자신이 속고 있는 걸 몰랐습니다. 잘하는 줄로만 알았으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에게 하나님의 도를 정확하게 배우고 나서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언하기 시작했습니다(행18:26,28)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가 3일 후에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이 되심을 듣고 따라온 거죠. 곧 그리스도와 합하게 되니 성령세례입니다(고전12:13) 그만큼 진리의 복음을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약 아볼로같이 한 시대를 풍미하고 있는 예수선생들이라면 진리의 성령이 임하신 후에 이루어진 새 언약에 대한 말씀을 깊이 숙고해야 합니다. 요한의 물세례는 죄를 깨닫고 예수를 믿게 하지만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의 세례는 성령 안에서 주와 한 영이 되게 하고 하나님과 하나가 되게 합니다.
요한의 세례냐? 주 예수그리스도의 세례냐? 세례(침례)는 잠긴다는 뜻인데 물에 잠기면 죽을 것은 죽고 성령에 잠기면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영원히 사는 거죠. 그래서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고, 주님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십니다(마3:11) 불 세례는 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자들의 불 못 심판이기 때문에 언급을 생략합니다. 마지막 때는 짐승과 어린 양의 싸움판입니다. 주님은 반드시 이기십니다. 그리고 주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청함)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faithful follows)들도 이깁니다(계17:13-14) 요한의 세례만 아는 자들은 집니다. 성령이 아니고는 마지막 환난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베드로나 바울과 같이 성령세례를 받은 사람을 통해 주 예수 이름 안에 있는 세례(침례)를 받아 성령을 선물로 받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행2:38, 1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