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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요한의 breakfast [26]

요한일서 강해 2장18-26절(2)

작성자瑤翰 김요한|작성시간26.06.10|조회수171 목록 댓글 5

 18절 “아이들아 이것이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오리라는 말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 인줄 앎이라.”

 

 요즘 들어와서 점점 기독교가 심각하게 생각되는

것은 우리의 구원의 문제가 상당히 복잡다단하게 얽혀

있는 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 구원을 받은 것 같이

말하나 실상 구원이 아닌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대부분

자신은 받았다고 말하지만 구원이 아닌 구원을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어떤 자매의 말을 들어보니 자기는

천국에 간다고 합니다. 장차 천국에 간다고 말하는데

지금은 전혀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않는 상태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과정을 모르고 있는 신앙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지금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이 죽어서 그 영광의 본체 앞에 나갈 수 있겠습니까?

거짓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는 구원받았다 하나님의

자녀다’ 말을 하다가 그렇게 여기고 마는 것입니다. 또

사람들이 그렇게 되기를 소망하는 겁니다. 그리스도께서

영광의 소망(골1:27)이신 것은 그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기 때문입니다. 소망은 보는 순간에 이루어지게 됩니다.

 

 현재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심령에 비취는 약속을

외면하는 사람이 과연 구원받은 사람일까? 그 사람이

천국에 갈수 있는 사람일까? 저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와 같은 이들에게 지금 스코어는 불못이라 말합니다.

그래서 목회를 35년 한 분에게 당신의 믿음은 아니라고

말한 겁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가능을 가지고 또는 예정이 되어 있으니까 하며 앞으로

될 줄로 믿고 하나님의 자녀라 선포해 주고 ‘구원받았다

영생을 얻었다’고 인정해 주는 겁니다. 그러나 자신이

구원을 확신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은 10원에서

1원을 뺀 것이 아닙니다. 구원의 확신은 죄 사함 입니다.

곧 믿음과 양심의 담력입니다. 그러므로 죄 사함이라 함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어야 합니다. 

어떤 이는 아직도 하나님께 대해 알지 못하는 두려움이

있다고 말하는 걸 들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도 좋고 존중히 여기고 공경하는 것이 다 좋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있으면 종의 신앙입니다. 

아들의 신앙이 아닙니다. 종의 신앙이란 구원받지 못한

신앙입니다.  아들의 신앙만이 구원받은 신앙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권세는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는 자격지심입니다. 이는 아무도 대적하고 막을 수

없도록 예수 그리스도께서 열어놓은 길을 따라 의의

면류관을 쓰고 당당히 나아갈 수 있는 길입니다.

이게 자녀의 권세이며 바로 아들의 신앙인 겁니다.

 

 누가복음 15장의 집안에 있는 맏아들은 집 안에 있을

뿐 종입니다. ‘내가 여러 해 동안 아버지 명을 어긴 적이

없거늘’ 이렇게 말합니다. 이런 사람 많이 보지 않습니까? 

그런데 아버지는 ‘내 것이 다 네 것이 아니냐?고 하십니다.’ 

그러나 맏아들은 한 번도 아버지의 것이 자기의 것이라고

생각해 본적이 없어요. 그러나 돌아온 탕자는 아들입니다.

아버지 집에 돌아온 다음에는 자신의 분깃만 자신의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것이 다 자신의 것임을 배우게 됩니다.

많은 신자들이 종의 신앙을 가지고 있으면서 구원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두렵다

부끄럽다고 말하는 것은 아직도 아들의 신앙이 아닙니다.

 

 종의 신앙은 세례 요한의 물세례밖에 모릅니다. 죄인이구나

죄 사함을 받아야겠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 까지 나아올

수밖에 없습니다. 거기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아버지께

나아갑니다.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와 하나됩니다(고전12:13)

성령세례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의 의욕과 의지를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까지 옵니다. 십자가까지는 옵니다.

그러나 십자가 앞에 온 사람을 아버지께로 인도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성령의 능력이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합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살아나심에 합하는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성령 세례는 우리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자로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옮겨 주신 과정을 바로

성령 세례라고 합니다(고전12:13절) 이 성령 세례를 통해

우리는 두려워하는 종의 영이 아니라 아들의 영을 받아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됩니다. 성령이 우리의 영과

더불어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기 때문입니다(롬8:16) 

마지막 때에는 적그리스도가 상당히 많을 겁니다. 그렇다면

적그리스도는 누구냐? 예수는 잘 아는데 그리스도를 그 안에

영접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를 무시합니다. 마지막 때의

교회인 라오디게아교회가 그렇지 않습니까? 주께서 밖에 서

계십니다(계3:2) 자세히 보면 이런 교회들이 엄청 많습니다.

예수는 좋단 말입니다. 내가 하는 일 하나 없이도 죄를 사해

주신다고 하니까. 나와 상관없이 죄를 사해 주신다, 그 분이

다시 오시면 나를 천국에 데려 가신다 얼마나 멋있습니까?

 

 그러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내가 주인인 것을 포기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적그리스도라는 것은 어떤 세력만

적그리스도가 아니라 적그리스도인 요소가 인간 속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게 바로 아담 안에 있는 죄성과 악성의 잔재

입니다. 그리스도를 그 안에 모셔 들이지 아니하려는 요소가

우리 속에 있습니다. 적그리스도란 말은 바로 그리스도를

대적(anti)하는 겁니다. 기독교를 거부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존재를 대적하고 성령을 거역한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임재하심을 거부한다는 뜻입니다.  

이런 것들이 말세(성령이 임하신 날)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그래서 ‘이러므로 마지막 때 인줄 아노라’ 말하는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가 당신 안에 계신다 하면 왜

그리 길길이 뛰고 덤비는지 몰라요. 예수는 하늘에 계시고

성령만 계신다고 해야 비로소 조용해집니다. 그게 현재의

깡마른 오징어 다리 같은 정통신학입니다. 거기다 개혁운운

하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또 그리스도가 그 안에 계시는

신앙으로 능력이 있고 기쁘고 감사하면 왜 그렇게 배 아파

하는지 이상해요. 사촌이 논 사면 배 아파한다고 한 말처럼... 

이것이 바로 우리 속에 있는 적그리스도의 요소들입니다. 

만일 정통신학이라고 말하고 개혁주의 운운한다면 반드시

바울서신을 통해 성령세례가 무엇인지 파악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16세기에서 교회개혁은 1세기 교회로 돌아

가서 그 원형교회를 회복하자는 뜻입니다. 그 당시 교회를

리모델링을 하는 운동이 아닙니다. 한 때 한국교회가 선진

교회를 배운다고 미국에 얼마나 뻔질나게 다녔습니까? 어디

그래서 구원의 살림살이가 좀 나아졌나요? 미국신학도 별

볼일이 없어요. 지금 미국의 유명한 목사의 이름으로 모임을

갖는 목사들도 있는데 그 시간에 바울서신을 연구하세요.

참 교회를 발견하려면 로마서의 개인구원을 마스터하고서

에베소서를 통해 그리스도와 교회를 알고 히브리서를 통해

그리스도을 따라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면 환하게

보입니다. 이게 바로 교회다 하고 무릎을 꿇고 하나님 앞에

엎드리게 됩니다. 좌고우면할 것 없이 성경이면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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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류재길 | 작성시간 26.06.10 아멘! 성경이면 충분합니다. 감사하니다. 할렐루야!!
  • 작성자박경희 | 작성시간 26.06.10 아멘!감사합니다
    날마다 선교사님의 영의 잔소리를 듣고 자라납니다
  • 작성자문호 | 작성시간 26.06.11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han5572 | 작성시간 26.06.11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瑤翰 김요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1 바울 속에 계신 그리스도를 발견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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