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절 “그들이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그들이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
우리에게 속해 있지 않기 때문에 나갔답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들입니다.
우리라는 말은 이쪽도 있고 저쪽도 있어 서로 우리라고
주장합니다. 요즘 들어와서 더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은
믿음은 아무나 것이 아니란 사실입니다. 혹자는 말씀을
들으면서 ‘목사님 기도가 왜 끊깁니까?’ 라고 질문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당연히 끊깁니다. 그러나 그 때부터 참
기도가 시작됩니다. 입으로 토하면서 고함치듯 큰소리쳐
능력(?) 받은 것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나지만 성령의
능력에 의해 나타나는 능력은 항상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할 때에 입으로 떠들어 대면
기운이 몸에서 나오므로 그걸 아마 기도의 능력인 줄
착각하는가 봐요. 그건 혼의 능력입니다. 수동적인 성격의
사람이 아무 소리 안하고 가만히 있으면 우울해지고 다운이
되거든요. 다운이 된 상태에 기도로 감사하라 기뻐하라
찬양하라 이렇게 강조하니까. 성령의 능력과 상관없이
기분이 업 되어 좋아져 힘이 나니 그걸 ‘은혜 받았다
능력 받았다’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지 모릅니다.
그 사람들이 그렇다고 하는 증거는 찬송할 때는 그들의
언어로 신(?)이 나서 부르다가 설교가 시작이 되면 잠이
드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거짓말이라는 뜻이 아닙니까?
그런 사람이 바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중입니다.
자기 생각과 자기가 필요한 기도를 하다가 하나님 뜻이
그 속에 정립이 되고 나면 그 하나님 뜻을 알고 나서 누가
감히 그 앞에서 무엇을 다고 다고 하며 졸라대겠습니까?
어린아이가 아버지 어머니의 뜻을 잘 모를 때는 달라고
졸라 대지만 그 가정의 규범을 알고 난 다음에는 어떻게
무조건 달라고 할까요? 용돈을 일주일에 만원으로 정했는데
월요일도 5,000원, 수요일에도 5,000원 금요일도 5,000원
내 놓으라고 할 수 있겠어요? 아버지가 정했으니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이렇게 나와야 정상인 가장인 겁니다.
그게 바로 부분적인 것을 폐하고 온전한 신앙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아무나의 것이 아닙니다. 그 과정을
거치는 사람이어야 하는데 그 과정을 거치면 정말 깊고 오묘한
기도가 됩니다. 하나님의 뜻이 내게 이루어지는 곧 하나님의
역사가 내게 이루어지는 기도가 됩니다. 바로 주기도입니다.
그때부터 능력자가 되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는 겁니다. 그러나 적그리스도는 그리스도를
대적해야 자기들이 주인이 되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대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임하신 그 믿음을 말하면 자신이
가짜가 되기 때문에 기어코 아니라고 우깁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는 유대인 꼴입니다.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것은 우리 안에서 말씀하시면
성령의 역사이고 밖에서 말하면 사단의 역사인 겁니다.
기도할 때 밖에서 들리는 소리를 들으려고 하지 마세요.
나의 내면에서 들리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적 그리스도
인가? 그리스도이신가? 지금 이 세대는 이 양쪽의 보이지
않는 큰 싸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지금 거대한 가라지
숲이 펼쳐져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실종되고 있습니다.
20절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
그리스도인의 증거가 무엇인가? 바로 거룩한 자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것입니다. 이게 바로 영적 특권입니다.
영적 특권이 바로 성령의 보증입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해 주십니다. 내 안에서 깨끗해
졌다는 사실을 성령이 보증해 주십니다. 내 안에서 의로워
졌다는 사실도 그 분이 보증해 주십니다. 성령이 내 안에서
나의 심령을 붙잡는 능력이 되십니다. 그 분이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혜가 되십니다. 이게 그리스도인의 특권입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입니다. 기름부음 만이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갖게 하십니다. 이 성령의 기름
부음이 우리를 하나님께 달라붙도록 만드시는 겁니다.
하나님이 영적인 가치성을 부여하십니다. 곧 그 영광입니다.
이 성령의 기름 부음을 얻기 전 까지는 들은 말씀이 절대로
확증이 안 됩니다. 이 성령의 기름 부음이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주가 되심을 확증해 주십니다. 그래서 성령이 아니고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고 부를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고전12:3)
말로는 주여 주여 하지만 진짜 당신의 주님이시냐? 따지면
실제로는 주님으로 불러지지 않습니다. 자신이 주인입니다.
사실 눈에 보이는 우상은 목을 잘라버리면 되지만 내 안에
꽉 차 있는 땅의 형상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부르기는 하나
쉽사리 그 형상이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로 삼도록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고 부르는 걸 간단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예수그리스도가 주님이시면 자기는
자연스럽게 그분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성령이 아니고는
아무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될 수가 없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없는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여 주여 할 때에
시험삼아 ‘주님 제가 주의 종입니다’ 한번 해 보세요. 아마
그렇게 하면 그 양심이 ‘거짓말 하지마 네 주인은 따로 있어’
그렇게 참소할 것입니다. 성령이 아니고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주가 될 수 없고, 성령이 아니고는 그 분에게 복종할
수가 없습니다. 그 분과 우리는 존재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분과 우리가 존재가 다르지만 성령님만이 그 분께 우리의
의지나 사고방식과 방법과 생각과 뜻을 복종하게 하십니다
성령님만이 모든 것을 알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위치를 정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을
얻었다 우리는 반석이신 그리스도 안에 있다 등, 성령님이
그 위치 안에 있는 나를 보증하시고 알게 하십니다. 그래서
‘성령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알게 한다. 말씀의 의미를
안다’ 하는 겁니다. 많은 분들이 이게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확신이 없어요.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하고,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안 되는 것 같기도 할 뿐입니다.
죄 사함이라는 것은 내가 죄 사함 받았다 주장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죄 사함은 죄에서 죽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사는 것을 말하는 겁니다. 그걸 성령의 능력이
아니면 누가 대신해 줄 수 있느냐는 겁니다. 내가 스스로
십자가에 죽어 다시 살아서 건너편으로 건너 갈수 있을까요?
성령의 기름부음이 없으면 죄 사함의 확증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할 수가 없어요.
무언가 거리낌이 있어요. 하나님께 대한 거리낌이 있다든가
사람들에게 거리낌이 있다는 것은 죄 사함이 되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자기 말로만 죄 사함일 뿐입니다. 많은 이들
중에서 신앙의 발전이 없고, 하나님께 헌신이 안 되고,
복음도 전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자기식의 죄 사함일뿐
성경의 말씀과 성령이 보증하는 죄 사함이 아닌 탓입니다.
그러므로 죄 사함을 여러분이 간단하게 보지 마세요.
하나님 측에서 볼 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으로 일괄적으로 죄를 사하셨지만
내게 적용이 되고 안 되고 하는 문제는 각자의 몫입니다.
그래서 신학이 하나님의 관점의 원론적인 신학은 이미 다
끝난 일이지만 도상신학 곧 주관적인 신학은 개인에 따라
서로 다릅니다. 성령님만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총을
내게 적용시켜 주십니다. 우리가 아무리 죄 사함 받았다고
큰 소리 쳐도 우리 양심을 속일수가 없어요. 그 양심에
참소하는 사단의 고발을 스스로 이길 수가 없어요.
내가 믿는다고 해서 하나님께 바로 나아갈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내가 아무리 잘 믿는다고 해도 나 혼자 사탄의
권세를 이길 수가 없는 겁니다. 성령의 기름부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새롭고 산 길, 주의 몸으로
휘장 가운데 열어 두신 그 길을 담대히 나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히10:19-20) 이 복을 얻기 위해서 성령의 기름
부음을 사모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은총을 따라 회개와 세례로 죄 사함의 자리로 따라가면
성령이 임하십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성령 안에서
진리를 순종하므로 하나님께 열납이 되어가는 겁니다.
이를 두고 베드로는 믿음의 결국은 혼(soul)의 구원이라고
합니다(벧전1:9) 성령님이 그 끝(테로스)에 이르게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