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절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진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알기 때문이요
또 모든 거짓은 진리에서 나지 않기 때문이라. “
진리를 알면 모든 것을 안다는 말씀입니다. 참(true)이
되니까요.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고정관념의 신앙생활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8:31)
하십니다. 진리(truth)가 참(true)이 되기 때문에 실재가
되는 겁니다. 구약의 하나님의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나듯 진리를 알면 그 진리가 우리에게 나타납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말은 자유를 알았다고 하면서 죄의식과
부끄러움과 불안감을 떨치지 못합니다. 요즘에 우울증
공항장애 등으로 고생하는 목사들도 있다고 합니다.
과연 사역의 스트레스로 인해 생기는 병일까요?
지식적으로 죄 사함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건 신학의
교리일 뿐입니다. 죄 사함은 곧 자유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의 일을 쉬면 곧 안식이 되고, 안식이 오면
반드시 번성이 오는데 자기식의 죄 사함을 받았다 하고,
진리를 좇아 간 죄 사함이 아니기 때문에 항상 주님
앞에서 주여 저는 죄인이라고 징징대며 매달리는 겁니다.
그들의 기도는 항상 종의 기도입니다. 그래서 신앙이 늘
아슬아슬합니다. 아들로서 아버지 앞에 담대히 나아가야
하는데 종으로서 제발 붙여만 달라고 사정을 하는 거죠.
겨우 살려만 달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복을
못 받습니다. 진리로 하나님께 접촉이 되어야 복을 받지요.
그래서 진리를 모르면 거짓말이 됩니다. 인간이 죄인임을
깨닫는 것은 모든 종교가 다 같습니다. 그리고 각 종교마다
나름대로 죄 사함을 받는 원리가 다 있어요. 우리 기독교만
죄 사함을 받는 원리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불교도 나름대로
죄 사함을 받는 원리가 있어요. ‘미션’이라는 영화를 보아도
사람을 죽인 죄를 씻기 위하여 쇳덩어리 같은 걸 자루에
잔뜩 넣어 그걸 지고서 폭포 낭떠러지로 올라가잖아요.
끝까지 올라감으로 말미암아 자기 죄 사함을 받는다는
의미를 영화에서 그리지 않습니까? 그래서 원주민들이
그를 같은 식구로 맞아 줍니다. 자연적인 윤리입니다.
죄 사함의 종교는 어디든 다 있습니다. 나름대로
죄 사함 받는다고 믿고 있어요. 그들의 방식으로 죄
사함을 받는다고 다 믿어요. 그런데 기독교만이 왜 참
죄 사함이냐,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죽음에
대해 죽음으로 죽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율법이
아닌 다른 이에게 가서 새 생명을 맺히게 하려 하는(롬7:4)
원리가 우리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죄 사함의
원리는 기독교 외에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
외에는 천하에 어느 누구도 구원받을 길은 없습니다(행4:12)
죄 사함의 원리가 없어 다른 종교는 구원이 없습니다.
자신이 죄인 인줄은 누구든지 다 압니다. 그 죄를 갚아야
되는 줄 누구든지 다 알아요. 또 죄를 갚기 위해서는
어딘가로 가야 되는 것도 압니다. 그러나 죄와 사망에서
끄집어 내서 의와 생명으로 구원하는 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밖에는 없습니다. 그 십자가를 통과시키는 것은
성령의 능력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진리의 성령이십니다.
구원은 내가 스스로 착하고 깨끗하게 되어서가 아니라
바로 소속 곧 장소를 옮겼기 때문에 구원인 겁니다.
그 장소 옮기는 일을 성령이 하십니다. 성령이 그 일을
하게 하시려면 진리를 알아야 합니다. 진리의 성령은
그 진리가 무엇인지 가르쳐 주시는 가정교사입니다.
우리에게 가르치고 생각을 바꾸어 주십니다(요14:26)
문제는 많은 분들이 이 진리를 모릅니다. 예수만 압니다.
성령의 기름부음이 그 안에 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진리에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이 막고 있어서
자기들은 신학교리의 지식으로 죄 사함 받았다고 말하지만
사탄에게 막혀 하나님 앞에 가는 길이 캄캄한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