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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요한의 breakfast [26]

요한일서 강해 2장18-26절(5)

작성자瑤翰 김요한|작성시간26.06.13|조회수151 목록 댓글 3

 

 22절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냐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냐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누가 거짓말을 전문으로 하는 자일까요?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거짓말쟁이 곧 적

그리스도입니다. 사람들이 예수의 재림은 잘 아는데

생명의 성령으로 현재 우리 안에 오시는(coming)

그리스도는 잘 몰라요. 진리의 성령으로 현재 우리

안에 오신 그리스도를 모릅니다. 생명과 함께 하시면

생명의 성령이시고 진리와 함께 하시면 진리의 성령

이십니다. 적그리스도에게 당하고 있기 때문이 이를

모릅니다. 그래서 고아와 같이 낑낑댑니다(요14:18)

그런데 다 듣긴 들었는데도 불구하고 안 믿어지니

이게 문젭니다.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계십니다. 이건

지식이 아니고 실제(fact)입니다. 그래서 잘못하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와 재림 예수만 있는 종말론이

됩니다. 집으로 치면 1층과 3층만 있고 2층이 없어요.

 

 유대교가 그렇습니다. 그들은 계속해서 메시아가

오실 것을 믿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유대교와 같이 

될 수 있어요. 그런데 문제는 왜 사람들이 그러느냐?

예수 그리스도를 일단 하늘에 앉혀 놓아야 자기들 속이

편한 탓 아닐까요? 인간의 죄성은 하나님이 최대한으로

멀어야 좋다고 여기는 겁니다. 사람들의 본성이 최대한

하나님을 멀리 두고 싶어 합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없다고 말 할 장사는 없습니다. 다 원시적 종교관은

가지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하늘에 계신다고만 말을

하는 겁니다. 하나님을 하늘에만 앉혀놓고 자기 속에

오신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는 사탄의 회입니다.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를 시인하면 되는데 예수와 동행한다고

떠벌리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다고

다 하나님의 백성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교회만 나오면

다 자기 편 인줄 알아요.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을 한번

들어보세요.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밖에는 딴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장아찌의 맛이 납니다.

 

 성령의 임재를 체험하면 그 전에는 자신의 자랑을 하면

할수록 신(?)이 났는데 성령이 내게 임한 이후엔 자기

자랑을 하면 할수록 그 분이 책망하십니다. 성령이 내게

임하시면 어떤 시시콜콜한 이야기라 든가 잡동사니 같은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성령이 싫어하십니다. 길어지면

입이 뻣뻣해집니다. 여하튼 성령을 받았다고 하면서 입심

사납게 세상적인 이야기하는 사람은 조사(fact check)를 해

보아야 합니다. 안을 들여다봐야 해요. 열매를 보아서 그

나무를 알라 하십니다. 왜냐하면 성령이 임하시면 그렇게

함부로 말할 수가 없어요. 농담 한 마디 잘 못해도 성령이

싫어해요.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외에는 말 할 수가 없게

되어 있어 진리를 떠나서 아무 말을 할 수가 없어요. 그게

바로 그 사람이 빛의 자녀인가 어둠의 자녀인가 단번에

알 수 있는 관점입니다. 예수님이 유대인들에게 ‘너희들의

아비는 마귀, 처음부터 거짓말하는 자라’(요8:44)하시는데

거짓말을 하는 아버지를 둔 자녀들이기에 그들이 거짓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이들에게 주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실 수도 있음을 우리는 유념해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을 분별하려고 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곡식이 희어져 복음을 전해야 할 사람은 잘 보고, 

반면 우리 중에 있는 사람들을 잘 분별해야 합니다. 매우

세밀하게 잘 보아야 합니다. 마지막 때에는 결국 교회

심판이니까 교회 안에서 먼저 심판이 일어납니다. 왜?

밖에 있는 사람들은 심판할 가치가 없으니까요. 이미

끝났으니 골라낼 가치가 없어요. 그래서 저는 세상을

보고 심각한 것이 아니고 교회를 보고 상당히 심각하게

여깁니다. 어떻게 저토록 거짓말을 뻔뻔하게 할 수 있나?

문제는 거짓선지자는 자신이 거짓 선자자인 줄 모릅니다. 

이는 결코 지성과 윤리의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윤리나 도덕적 거짓말을 하면 인간의 이성과 양심이 벌써

판단해 버립니다. 그래서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잖아요?

자기는 거짓말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이라는 걸

주장하기 위해서 길길이 뛰며 비판하고 물어뜯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하여 거짓말은 하나님의 이름의

타이틀을 걸면 사람들이 그만 속고 맙니다. 따라서

진리를 모르면 거짓이 뭔지 모릅니다. 육체 안에 오신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가 바로 적그리스도입니다. 

거짓말쟁이가 누구냐? 바로 아버지와 아들을 부정하는

자들입니다. 요한복음 17장을 부정한다는 뜻입니다.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우리가 있어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 안에 하나입니다. 

이걸 부인하는 것을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이게 거짓말쟁이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에게 본질상

아버지와 하나 되기 싫어하는 본성이 있기에 거짓말에

넘어갑니다. 언젠가 상당히 솔직한 집사님을 만났어요. 

그는 자기의 잘못을 알고 나서 “목사님 제 마음은 이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데 ’아니다‘는 말보다는 누군가 

’맞다‘라고 해 주는 말이 더 좋아요” 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런 솔직한 분이 지금의 교회에 많아 지면 좋겠어요.

 

 욕심이 없으면 돈을 못 법니다. 일단 사람이 돈을 벌려면

욕심이 충만해야 합니다. 형제 친구도 없이 인정사정 보지

않아야 부자가 됩니다. 그 욕심이 돈의 형상을 끌고

들어옵니다. 돈의 형상을 끌고 들어왔는데 하나님의

형상이 어디에 들어가겠습니까? 지금 마지막에는

형상의 싸움입니다. 이런 것을 고백하는 솔직한 사람이

참 많습니다. 가만있으면 엉뚱한 생각이 들어옵니다.

그게 그 사람 속에 형상이 들어가 있다는 뜻입니다. 

텔레비전을 보면 그 형상이 들어와 버립니다. 마음은

하나님을 으뜸으로 섬기고 또 언젠가는 하나님을 위해 

충성하고 헌신하겠다는 마음이 항상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을 무엇이 움직입니까? 그 사람 속에 있는

형상이 움직이고 맙니다. 그 형상이 우리를 끌고 다닙니다.

거짓말일지 하루만 세상일에 몰두해 보세요. 그 일이 뇌에

형상화되어서 그 생각이 며칠간 머리에서 뱅뱅 돕니다. 

기도를 하는 사람들 중에 하루만 이렇게 세상 생각을 하고

나면 그만 기도가 안 됩니다. 하루만 그렇게 해도 기도가

안 되는데 몇 년 동안 방황하고 나면 완전히 못 돌아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걸 아시고 그냥 두면 안 된다는

것을 아십니다. 기어코 그 분의 형상을 우리 안에 이루셔야

하겠다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들어오시면

그 사람의 이미지가 좋아 집니다. 좋아진 이미지 때문에 

주님 생각만 하게 됩니다. 그 생각이 행동을 유발합니다.

 

 23절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

 

 아들을 부정하는 자마다 아버지가 없습니다. 아들을

시인하면 아버지도 있다는 말은 너무나 당연한 말입니다. 

아들이 내 안에 계심을 시인하면 아버지도 함께 계십니다. 

아들이 내 안에 계심을 부정하면 아버지도 안 계십니다.

아버지가 없으면 어떻게 되느냐 사생자입니다. 아버지가

없으면 무정란입니다. 아버지가 없으면 책임질 자가 없어요. 

이 말씀을 그렇게 많이 해도 사람들이 그토록 안 믿습니다.

오래 전 한 분이 ‘내 인생 어떡하면 좋으냐 어떡하면 좋아’ 

하며 발을 동동 구르는 겁니다. 그건 아버지가 없는 겁니다. 

책임져 줄 자가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다른 무엇에 몰입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 문제를 아버지께 맡기려

해도 안 됩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먼저 아들이 계셔야 합니다. 

아들이 계시면 그 아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가

되시고 그때부터 아버지가 책임을 지십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먹여 살려야지 아들이 아버지를 먹여 살리면 잘못된 겁니다.

 

 중요한 것은 먼저 아들이 계시고, 그 다음 아버지가 계시는

신앙 위에 확고히 서야 합니다. 그러면 그때부터 주님께서

책임을 지십니다. 그때부터 절대로 아버지는 손해를 보도록

하지 않으십니다. 이 믿음이 중요 합니다. 그 분은 절대

우리 인생을 낭비하게 하지 않으십니다. 부끄럼을 당하게

하지 않으십니다. 사람들이 이 구원을 이루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부끄럼을 당해요. 그런데 이 구원이 현물가치가

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 복을 외면하는 겁니다.

 

 주님의 사랑을 생각하고 아들과 아버지가 내 안에 계시면 

우리가 그 분들과 함께 한다면 무슨 걱정이 있겠습니까?

요한복음 14장 21-23절에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니’하십니다. 만약 대통령이 와서 우리

집에 산다고 합시다. 대통령이 와서 살면 그냥 살겠어요? 

비서실에다 프레스센터에다 가로등 불도 더 밝히고 집을

고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밥을 먹으면 혼자 먹겠어요? 

나눠 먹으려고 할 것 아닙니까? 도둑을 지키면 자기 방만

지키겠어요? 그래서 중요한 것은 먼저 아들과 아버지를

모시는 겁니다. 일단 믿음으로 모셔 놓고 보자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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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류재길 | 작성시간 26.06.13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han5572 | 작성시간 26.06.14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瑤翰 김요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4 성령은 그리스도를 알게 하시고
    그리스도는 아버지와 하나가 되게 하십니다.
    그게 바로 영생입니다(요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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