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절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기름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신앙이 죄에서 구속함을 받아 몸의 속량에 이르면
주께 받은 기름부음(크리스마)이 우리 안에서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심을 압니다. 더 이상
보충할 필요가 없습니다. 크리스마가 지혜와 지식과
총명이 되어 그 다음부터는 성장과 발전이 있습니다.
기름부음인 성령이 모든 말씀을 해석하고 적용하시고
가르치십니다. 또 말씀을 사실화하고 참되게 하십니다.
따라서 사람이 억지로 적용하려 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 거짓이 없습니다. 진리의 영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가르침을 받은 대로 그 분 안에 거하라 하십니다.
문제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양의 문이시기 때문에
그 문으로 들어가는 가르침이 중요합니다. 설교자가
여러분은 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하면 아멘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주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에 연합이 되는 회개와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께서
주가 되시는 자리로 따라가야만 합니다. 이를 성령께서
하십니다. 농사를 치면 이른 비입니다. 성령이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아버지 하나님께 나아가면 삼위 하나님이
임재를 하십니다. 이를 농사로 치면 농부가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오래 참아 기다리듯(약5:7) 주의 강림 곧 주의
임재하심을 마음 굳건히 길이 참으며 기다리는 겁니다.
이 강림하심을 재림으로 보든 아니면 임재로 보든 그건
각기 수준에 따라 다르므로 더 강조하지는 않겠습니다.
28절 ”자녀들아 이제 그의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 바 되면 그가 강림하실 때에 우리도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
그리고 이제(now) 현재를 굉장히 강조합니다. 그 안에
거하라 곧 그의 강림 우리 안에 나타내실 때를 말합니다.
재림과 진리의 성령으로 강림하심은 다른 사건인 겁니다.
진리의 성령으로는 이미(already) 나타나시고 구름 타고
오시는 재림은 아직(not yet)입니다. 이 두 사건을 알아야
합니다. 담대함은 스스럼없이 대화가 되는 걸 말합니다.
요15장에서도 주께서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들이 된
제자들에게 너희는 더 이상 종이 아니라 친구라 하십니다.
진리의 성령으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계명을 지키면 친구가 됩니다(요15:14)
또한 진리의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계명을
지키면 주의 나타나심 앞에 부끄러움이 없습니다. 죄인이
의롭게 되어 새 계명을 인내로 지키면 망신살이 없습니다.
주님의 나타나심을 주저주저하거나 우왕좌왕하지 않습니다.
우물쭈물 않고 담대하게 주여 내게 임하소서 하게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 거하면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할
수 있습니다. 시편처럼 주의 임재를 간절히 사모합니다.
29절 ”너희가 그가 의로우신 줄을 알면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리라”
예수 그리스도가 의로우신 줄 알면 그 분이 내 안에서
의가 되시므로 의를 행하는 자가 됩니다. 그리고 그가
나를 낳은 줄을 알게 됩니다. 그의 소속이며 소생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제 개인의 최고점에는 아직 멀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건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드러나길 간구하지만 아직은 영 아니올시다이며 또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주의 역사로 내가 함을
다해 수고하리라(골1:29) 다짐할 뿐 내 속에서 역사
하시는 그리스도의 생명의 영에 의해 활동하는 습관이
오락가락하기 때문에 매일 나는 아직 한참 멀었다고
탄식을 하는 중입니다. 성령(3위)께서 그리스도(2위)와
하나가 되게 하시고 그리스도께서 아버지(1위)와 하나가
되도록 그 형상과 영광을 주셨지만 아담의 타락한 죄성과
악성이 남아 있어 온전하게 합일되지 않아서 삼위 안에
연합된 채 끊임없이 은혜의 보좌(하늘 성소)를 향하여
나아가는 중일뿐 주의 임재를 온전히 체험하고 있다고
장담하지는 못하는 겁니다. 다만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날마다 나를 부인하고 나의 십자가를 지고 주의 생명의
영을 얻어 생명과 평강의 생각을 가짐은 큰 복입니다.
그렇지만 뒤에 것은 잊어버리고 주께 붙잡힌 것을 붙잡고
삼위 하나님 안에서 그 임재를 간절히 사모하며 주께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며 부르시는 그 보좌를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주를 찾는 자에게 상 주심을 믿고 내시처럼 주를
향해 구부정한 자세로 귀를 기울여 주를 듣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