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절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라”
2장 28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자녀들아 이제 그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 바 되면 그가 강림하실 때에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 성령 안과 말씀 안에 거하는 것은
마땅한 일입니다. 그렇게 하면 어떤 복이 우리에게 오느냐?
하나님 앞에 담대합니다. 그 다음 그 앞에서 부끄러움이 없고
망신살이 없는 당당함을 얻습니다. 그래서 그 이름을 부르는
자는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라 하십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
부끄러움을 당치 않습니다. 세상에 부러운 사람이 없습니다.
이 말씀 다음 3장 1절에 '보라'하면서 말씀이 시작됩니다.
이 말은 굉장히 강력한 훈계입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강력한
요구를 할 때에 '이것 봐' 합니다. 옛날에 누구든지 자기보다
나이가 적으면 '봐라' 하며 분명히 사람을 돌려 세워놓고 자기
의견을 표현했습니다. 어른은 사람을 정면에 두고 말을 합니다.
우리는 자녀들에게 이렇게 분명하게 말할 필요가 있습니다.
잔소리를 하든지 훈계를 하든지 분명하게 세워놓고 말을 해야
하듯 오늘 1절 말씀은 요한이 ‘보라’ 너희는 꼭 명심해라.
단단히 알아라 하는 뜻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보라' 하는 이 말은 크게 강조하는 뜻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사랑을 베푸셨는가. 그걸 단단히
알라는 뜻입니다. 사실 성도들이 이걸 잘 모릅니다. 현재
기독교에 하나님의 자녀의 정체성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나는 왜 믿음이 없을까, 나는 왜 이렇게 발전이 없을까,
왜 기도가 안 되는지 모르겠다, 왜 전도가 안 되는지 등등...
이건 한 마디로 말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몰라서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불순종하고, 거역하고 성령을 훼방하고
탈선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사람에게 성령이 임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계속 받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은
그 안에 하나님을 훼방하는 요소들이 가득 차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께 가까이 가지 아니하고, 그리고 말씀이나 진리를
어떻게 하면 피해갈까 궁리합니다. 그런데 피해가는 것만
해도 다행인데 기어이 훼방하는 요소가 그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 사랑을 받지 못하면 그렇게 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하고 습득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면
하나님을 훼방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셨는가? 이 말은 형용사적으로는 최고의
표현입니다. 어릴 때에 간혹 우리 어머니가 '네 아버지가
너를 얼마나 사랑했는데 그걸 네가 알아' 하십니다.
어릴 때에 그런 말씀을 종종 들었어요. 그 말씀에 그만
기가 질려버립니다. 다른 모든 말은 다 대들겠는데 그
말씀엔 기가 죽고 맙니다. 대단한 위력이었습니다.
지금 요한이 그런 식으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그 사랑은 바로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신 겁니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가 어떤 특권을 갖고 있는지 잘 모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그 안에 있는 구원의 특권과 즐거움을
아직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가
뭔지 몰라요. 그래서 에서처럼 진리를 팔아먹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장자권의 값이
얼마나 나가는지 몰라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신앙의 값,
자신의 정체감을 잊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프라이드가
없어요. 하나님의 자녀로서 실제가 없어서 그래요. 다른 사람이
시장에 가니 거름지고 시장에 따라 가듯 다른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라 하니까 나도 하나님의 자녀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뿐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 안에 있는 영광과 존귀와 능력과
거룩함과 상속과 그 풍성함을 너무 몰라 빌빌대고 있어요.
우리는 재벌의 자녀들이 얼마나 대단 한가를 압니다.
그리고 대통령의 자녀들이 얼마나 대단 한지 압니다.
예전에 어떤 대통령의 아들 사건을 한번 보세요. 군대도
그 인맥, 국정원에도 그 인맥, 청와대 비서관 중에도 그 인맥,
이것은 부정적인 이야기이지만 대통령의 아들이 얼마나
대단하면 그렇게 하겠느냐 하는 거지요. 하나님의 자녀라는
걸 말로만 아니라 그 자격이 얼마나 대단 한지 우리는
실제로 체험을 해봐야 합니다. 성령이 이를 가르치십니다.
어떤 사랑을 했는가. 바로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았지
않았느냐? 어떤 사랑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간주되었는가
생각해 보라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의 진수입니다.
하나님이 세상도 사랑하시고, 자기 자녀들도 사랑하시는데
그 내용은 서로 현격하게 다릅니다. 세상은 하나님이 불쌍히
여기시고, 하나님의 자녀는 특별한 사랑을 베푸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특별소유라는
사실을 잘 몰라요.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해요. ‘목사님,
구원이라는 것은 죽을 때 믿어도 구원받고 영생을 얻어
천당 가는 것인데 뭐가 그리 대단해요?’ 철부지입니다.
구원을 다 안다고 함부로 말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평생 하나님의 자녀라고 부름 받는 것 이거 하나
배우는 것만 해도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모릅니다. 물론
하나님이 여러 가지 풍성한 복을 주시지만 내게 주신
복이 있다면 하나님의 자녀라는 자리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뼈저리게 알게 하신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면 다 돼? 먹고 살아야지’ 라고 말합니다. 이건 아직도
구원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구원의 영광을 모르고,
그 구원의 복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담대하게
‘나는 그리스도인이다. 하나님의 자녀다’라 시인하는 사람들의
자부심을 한번 맛보세요. 집사 장로 목사라는 직분을 받기
전에 하나님의 자녀로 간주된 신분이 확실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어도 교회의 직분을 받을 수도
있어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어도 얼마든지 교회의 일을
할 수가 있어요. 근간에 만나는 사람들에게 ‘당신이 왜
쇠약해져 가느냐’고 묻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자격으로
우리의 속이 더욱 풍성해지도록 해야 될 텐데 사람이
일을 하다 보면 그 일에 너무 치우치고 맙니다. 그렇기
때문에 외모에 치중합니다. 신앙의 패션에 치우칩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가운데 반드시 먼저 하나님의 자녀로서
충실하게 성장해야 합니다. 그것이 최우선입니다. 그것이
선행되어야만 집사일도 맡고, 권사일도 보고, 장로, 목사일도
맡는 것이지 그것이 안 되면 신앙생활을 하면 할수록 점점
어려워집니다. 사람이 곱긴 고운데 자꾸 여려 집니다. 약해서
모양만 내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 앞과 사람들 앞에
자신 있게 용기 있는 일을 하지 못해요. 무슨 일이 생기면
결단력 있게 밀고 나가지 못해요. 하나님이 어찌 그런 약골
자녀를 두시겠습니까? 어릴 때 커가면서 그런 걸 느끼잖아요?
가난한 집안의 자녀들 하고 부잣집 자녀들 하고 다른 면이
무엇입니까? 부잣집 자녀들은 돈 몇 백 만원에 까딱도 안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 것 가지고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돈을 세는 폼마저 달라요. 아주 여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에서 봉사나 전도를 하는 것 다 좋지만
먼저 하나님의 자녀로서 반드시 그 키가 커 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가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혈통이나
육정이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로 난 자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땅의 것들이 붙잡을 수
없잖아요. 부잣집 자녀는 가난이 그를 붙잡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늘에 속한 아버지의 자녀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충실하지 못하면 비실비실해서
늘 다리가 꼬입니다. 자기보다 더 큰 사람만 보면 다리가
꼬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충실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그러느냐? ‘우리가 바로 그러하도다.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셔서 자녀로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데 우리가 바로 그러하도다.
우리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도다. 그러나 세상은 우리를
알지 못한다. 왜 모르느냐? 아버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이겁니다.
우리가 담대하여도 왜 그러는지 세상 사람들은 모릅니다.
따라서 우리도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면 세상과 같이 되어
버립니다. 바울이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나를
강권하시는도다’(고후5:14) 하나님의 사랑이 강권하시니 바울이
담대했습니다. 한 마디로 죽이려면 죽여라 두들겨 패려면 패고,
굶기려면 굶기고 멋대로 해 보라는 것이지요. 어차피 진리의
길을 가고자 결단한다면 날마다 마귀가 혀를 날름댑니다.
그런 것 가지고 일일이 다 피해 다니고 숨어 다니면 언제
앞으로 걸어갑니까? 모든 문제를 정면 돌파해 버려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저주저 하다 보니까 사탄의 밥이 됩니다.
자동차가 자갈길을 가는데 자갈을 다 치우고 갈려면 하루에
1킬로도 못 갑니다. 자갈 위로 내 달리는 겁니다. 모양에
사로잡혀 허송 세월이 지나갑니다. 그러므로 ‘벌거벗기려면
벗기고 죽이려면 죽이고 거꾸로 매달려면 매달아라 그래도
나는 가고야 만다’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물질
시험도 끝이 나고, 사람의 시험도 끝이 나는 겁니다.
이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가지고 인생문제를 정면
돌파해야 합니다. 가정 문제도 마찬가지고, 자녀들 문제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로 살아야
합니다. 그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십니다. 사랑합니다 나를
자녀 삼으신 주... 할렐루야 ! 이렇게 안 되면 자주 연약에
휩싸입니다. 자꾸 약해집니다. 어느 한 분을 만났는데 그 분도
시시각각으로 바뀝니다. 나는 예수 믿는 사람이 왜 쇠약해
지는지 모르겠습니다. 왜 비실비실 해 가는지 모르겠어요.
왜 빌빌거리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의가 되는 것 아닙니까? 능력이 되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의 의가 방패가 되는 것 아닙니까?
어떤 사람이 꿈 이야기를 많이 하고, 환상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하는 바람에 버럭 소리를 질러 버렸습니다.
그분이 전화를 걸어와서는 ‘목사님 내 생전에 처음인데
오늘 아침에는 하나님이 말씀을 주시대요’ 이렇게 나옵니다.
이제 제대로 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씀이냐고 물었습니다.
시편 84장 9절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씀이 무엇이냐
‘여호와는 나의 방패가 되시니 나의 얼굴을 살피소서’
아주 정확한 진단입니다. 이 사람에게는 그 영혼과 생각의
방패가 지금 없었기 때문에 그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기름부음에 대한 말씀은 요한일서2장이
가장 상세합니다. 성령의 기름 부음이 안에 계신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잊어버리기도 합니다. 얼굴을 도우시는
분을 몰라요. 사람들이 그 얼굴에 뻔뻔스러운 철판을 깔고는
커버로션을 얼굴에 잔뜩 바르면 그 얼굴을 다른 사람에게
내 놓아도 되는 줄 알아요. 아니지요. 하나님은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보살피시고 그 얼굴을 도우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 중의 하나입니다.
어느 착한 목사가 성령에 대한 말을 알지도 못하고 글을
썼기에 성령이 내주 역사하시는 곳에 따라가는 방법을
설명하라고 말하고 롬6장과 요14-16장을 100번 이상 읽어
보라고 권하고 당신의 얼굴은 아직 성령에 의해 익어가는
얼굴이 아니라고 말해 줬습니다. 이런 분이 참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