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절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
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을 그대로 볼 것이 때문이니”
‘사랑하는 자들아… 다시 말하면 사랑의 사람들아,
사랑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아 하는 의미입니다. 지금은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다. 우리는 하나님의 어린아이다‘
이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은 분명하지만
아직은 어린아이입니다. 다 큰 것이 아닙니다. 아직은
우리가 어떠한 존재인지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자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나타나시면 그와 똑같은 존재입니다.
우리가 본 그대로 우리가 그와 같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 말씀이 보여야 합니다.
대부분 많은 사람들이 성령을 훼방하고 있으면서
자신이 진흙탕 속에 있든지 장난을 하고 있든지 낙서를
하고 있든지 낮잠을 자고 있든지 내 모습 이대로 하나님이
다가오셔서 어루만져주는 것을 사랑으로만 알고 있습니다.
이걸 사랑으로 알고 있어요. 그래서 지금 영상을 보면
찬송을 그들의 말로 신나게(?) 부르고 있습니다. 철부지
입니다. 오락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거기서 끌어
내셔서 당신에게 기어이 이끌고 가시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오해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말로서 신앙의 기준을 그렇게 만든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임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가면 갈수록 파리합니다. 조약돌처럼 반질거리기만 합니다.
그러나 진리 안에서는 절대로 그런 법은 없습니다. 성령이
주시는 자신감과 용기와 담력이 여러분 속에서 일어나지
않으면 자신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딴 걸 점검하지 말고,
우선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인가를 점검해 보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아직 하나님의 자녀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다 실감하지는 못합니다. 수시로 성령께서 내속에서 내주
역사하시는 것으로 우리는 그 맛을 느끼게 될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반드시 완성해 가실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하나님의 유업을 받는다 천당에 가면 상급을 받는다 하니까
천당에 가면 자신의 재산이 있고 마음껏 먹고 누릴 것이 있는
줄 알지만 사실 아닙니다. 천국은 세상과 전혀 딴 판입니다.
우리에게 상속이 있다함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고스란히
물려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자녀의 상속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가 믿는 만큼 하나님이 보여 주십니다.
그 분이 내게 주실 약속에 대해서 믿는 만큼 실상화
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기 때문입니다.
3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는… 항상 가지고 있는
상태입니다. 항상 진리를 순종하는 자세입니다(벧전1:22)
성령이 임하여서 여러분 안에 생명이 되고 능력이 되고
화평이 되고 소망이 되고 기쁨이 될 수 있도록 그걸 항상
사모하고 바라고 있어야 합니다. 바로 계시의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믿고 한번 살아보십시오.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 같이 여종이 주모의 손길을 기다림 같이 항상 이
소망을 가지고 살아 보십시오. ‘내가 하나님의 자녀이며
그 날에 주님이 나타나시면 내가 주와 같이 될 줄을 믿으며
주여 그 영광을 내가 보기를 원합니다’ 이렇게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기를 바랍니다.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지 말고 앉으나 서나 그 마음을 가지고 그 영광의 길을
열어 보시기를 바랍니다. 성령이 반드시 여러분을 위해서
응답을 하실 것입니다. 자신이 깨끗하게 됨을 스스로 알게
됩니다. 그렇게 하는 마음은 이미 깨끗하게 된 겁니다.
그래서 더러움이라는 것은 어떤 대상과의 관계성에서
생기는 겁니다. 호세아가 그 아내 고멜이 2년동안 목욕을
안 했다, 6개월간 머리를 안 감았다 그래서 더럽다 이게
아니잖아요. 고멜이 호세아를 버리고 집을 나간 겁니다.
나가서 엉뚱한 사람과 아이를 낳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 여인은 음녀의 대명사입니다. 바로 두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그래서 깨끗한 마음으로 오직 하나님만
생각하면 소통이 됩니다. 그래서 마음이 청결하면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요(마5:8)하시는 것입니다.
거울을 통해 자신을 자세히 보십시오. 자신이 청결한가
그렇지 아니한가 자신을 보면 그 얼굴에 나타나는 겁니다.
자신의 진보를 보기 위해 거울을 자주 보시길 바랍니다.
욕심의 특징은 더러움입니다. 요한계시록 16:13절에는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방언기도를 하는데 똑같은 말로 반복하는 것은 바로
개구리 영입니다. 개구리는 밤새 개굴개굴할 뿐입니다.
욕심이 바로 더러움인데 주님을 향하여 전심으로
나아가고 있다면 이것저것 다 붙잡고 있는 욕심쟁이가
오면 참 거북합니다. 욕심은 먹는 것 입는 것 마시는 것만
아닙니다. 식욕 소유욕은 기본적인 욕구입니다.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하는 것이 얼마나 얄미운지 모릅니다.
그러면서 항상 사람을 살핍니다. 손님의 실수만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몸을 다이어트 하려고 하지 말고
심령을 깨끗이 하려 하세요. 여하튼 나를 포함해서 살이
계속 찌는 사람들은 회개하셔야 합니다. 저도 살이 찐다면
회개할 겁니다. 이 말은 생각을 다이어트 하라는 뜻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입니다(롬8:6)
영으로 몸의 행실을 죽인다는 말은 영으로 몸을 누른다는 말이
아니고, 영으로 생각과 마음을 다이어트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혀와 눈은 오감으로 바로 들어오고 바로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절대로 길들여지지 않습니다. 눈알을 길들일
수 있겠습니까? 눈은 보는 게 의무입니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보이는 그대로 봅니다. 귀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소리든 나쁜 소리든 그대로 듣는 것이 사명입니다.
입도 무조건 먹어주는 것이 사명입니다. 혀도 생각나는
대로 말을 합니다. 배가 고프면 고프다 추우면 춥다 싫으면
싫다 좋으면 좋다 그렇게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혀를
길들이면 안 됩니다. 생각을 길들여야 합니다 성령으로
생각을 다이어트를 하면 여러분의 얼굴이 달라 질 겁니다.
그래서 언제나 하루 생활을 깨끗이 정돈하고 잠자리에
드시기를 바랍니다. 잠들기 전의 기도가 매우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