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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구인(삶)사랑방

반세기전에 영천벌에서 혹독한 훈련과 현재 행복한 모교 생활 모습

작성자유 래 영|작성시간26.09.19|조회수459 목록 댓글 1

반세기전에 영천벌에서 혹독한 훈련과 현재 행복한 모교 생활 모습

 

 

아래사진은 3사 관련 자료수집을 하다가 우연히 인터넷카페에서 발견했으며

사진속에 나오는 후보생마크와  막사와 교번 등 여러가지 정황을 분석해

볼때에  대부분 선배님 기수에서 올린 것으로 판단되며 일부는 9기생

사진과 앨범에서 올렸기에 참고를 부탁 드립니다

 

당시에 내무반 점호모습, 식당 자갈밭보행, 단포강 빨래와 여러가지 사진은

우리들이 훈련받을때와 대동소이하다고 생각하며 교육을 받을때에

훈련의 강도는 차이가 있을수 있지만 군사, 일반학 교육내용은 1기부터

10기 까지는 거의 비슷하게 훈련 내용이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합니다,,,,(죄송)  

3사의 혹독한 훈련을 1기 선배님 부터 10기 까지라고 대동소이 하다고

감히 말을 할 수있습니다

 

하지만 오래전에 촬영된 흑백사진은 어느분이 올린것인지 모르지만

당시에 훈련모습을   되돌아 볼수있는 중요한 사진이기에 올렸으며

사진 한장 한장의 생생한 댓글은 제가 그때를 생각하면서 달랐습니다,,,,,

 

 

 

에필로그

작년에 어머니가 돌아가신후에 유품정리를 하다가 우연히 사관학교시절에

사진을 발견해서 한참이나 들여다본후에  이것을 추억삼아서 카페에 올리는것이

좋을것 같아서 인터넷에서 근 열흘간 3사 관련 모든 카페를 뒤져서 퍼와서

편집을 하였으며 모든 사진은 1기 선배님 부터 10기 까지 모든 훈련 내용이

비슷 하다고 생각하기에 모든기수 공통의 추억이 될 것입니다

 

앞으로도 자주 훈련 사진을 올리겠습니다,,,,

이글을 보시는 모든분들이 매일매일 좋은일만 일어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    충  ~~~  성

 

 

2015년 4월 4일 柳來榮 쓰다

~~~~~~~~~~~~~~~~~~~~~~~~~~~~~~~~~~~~~~

 

1968~74년 까지 인간 한계에 도전하는 무시무시한 훈련모습들

   

일년 열두달 하루도 빠짐없이 반복하는 일석 점호는  군기와 정신교육을

겸한 일종의 의식인데 너무 지나쳤다고 생각합니다,,,

 매일 일석 점호시 관물 캐비넷검사

왜 매일 저렇게 괴롭혔는지 모르겠습니다 ㅎ

 툭하면 벌어지는 완전군장에 비상훈련.

긴장된 3 분 식사 시간으로 밥을 먹다보면 동작그만을 외처서

밥을 먹지 못했기에 무조건 국에 말아서 폭풍 흡입해야 3분안에 마칠수 있었습니다

벌써 임관한지 50년이 넘었지만 그때 영향으로 지금도 식샀간이 빠릅니다

비가오나 눈이오나 일요일에는 어김없이 단포다리까지 뛰어와서

세탁을 했는데 때가 빠질리가 없었습니다. 지금은 생도들이 세탁기가

있다고 하는데 저때는 꿈도 꾸지 못한 호항이 담배피던 시절입니다

숙소에서 식당까지 약 400m 정도 되였는데 식사길에는 하루 3번을

곰발바닥을 만들기 위하여  자갈밭위를 걸어다녔는데 지금 생각해도 아찔합니다요 ㅋ.

 

저때 걷기도 힘든데 지나가던 노란명찰 8기 선배님이 동작그만 시키고

귀관들 자세가 뭐냐고 호통치는 상황이 거의 매일 반복되여서

원성이 자자했습니다  ㅠㅠ

  

겨울에 영내에 있는 전투수영장에서 냉수마찰을 하고

물속에 들어가는 고난의 시간을 자주 했습니다

체육시간이면 기마전 등 가혹한 시련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마전에서 지면 가혹한 기압이 따르기에 죽기 살기로 했습니다

 7기생 부터는 2년제였기에 8개월은 대학과정 일반학교육을 바았습니다

일반학 교육시에  간밤에 잠을 못잔 우리는 병든 닭처럼 꾸벅이기 일쑤였다.

 고경의 소총 화기학 교육

 

제가 알기로는 선배님들은 3사 훈련기간이 7개월 부터 14개월로 알고 있고

7기 선배님 부터 정식 2년간 교육 받았으며 9기생은 72년 1월 4일 입교하여

73년 12월 21일 임관 하였습니다, 각 기수 임관인원은 1기 선배님이 771명

으로 알고 있고 4기 선배님이 가장 많았으매 각기는 1,100명~1,200명 

내외로 알고 있습니다

      

고경의 소화기 사격장 까지는 왕복 구보로 다녔는데(지금은 차량이용)

대부분 고경훈련장가 다녀와서 석식은 항상 차가운 밥과 국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선배님들은 대창 중화기 사격장까지도 도보 행군을 했다고

하는데 우리떼는 군용 트럭으로 이용 했습니다

 쪼그려쏴를 하는 고경 소총사격장의 모습

사동 훈련장에서  독도법 훈련을 하는 모습 실습때는 강의장에 늦게 

오기에 기압이 기다렸기에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남니다

 사동 훈련장에서 위장을 하고 분,소대 전술훈련을 하는 모습입니다

마지막에 총검술로 최종 목표 탈취하는 모습입니다

학교 후문을 통하여 사동 교육 출장을 하는 모습입니다

비가 올때는 야외에서 하기에 국은 먹어도 반합에 빗물이

넘처서 맹탕을 먹었는데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유격훈련으로 뢰펠훈련으로 하강하는 모습

김일성 생일날 중대대항 사동훈련장 완전군장 구보대회로

상당한 인원이 탈진되여 말이 많았으며 지금은 상상 할 수도

없는 모습으로 왜그리 괴롭혔는지 모르겠습니다 ㅠ

 

 

3,5인치 로켓보 사격훈련을 하는 모습입니다

학교 정문을 지나면 조국, 명예, 충용의 상징탑

유격훈련 과정에서 단포강에서 낙하훈련으로 인간이

가장 공포를 느낀다는 11피트(?) 로 공포감이 극에 달했습니다

유격훈련중에서 외줄타기 훈련인데 타기전에 조교는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혹독한 

기압으로 얼을 빼서 그런지 무난히 건너 갔습니다

학교에서 일반학이나 실내 교육시에 강의를 받는 모습입니다

훈육관으로부터 정신교육을 받는 모습으로 보입니다

차량학 교육시에 연병장 좌측 지금의 연병장 횃불탑 부근의

수송부에서 차량 점검을 하는 모습입니다

 

 

1967년도 학교를 창설하면서 정문에서 현판식을

하는 모습으로 당시에는 2,3사로 나누어졌기에 "제" 자가

붙었는데 지금은 없어졌기에 귀중한 자료입니다

연병장을 바라보며 육군 소장이 지휘하는 구) 건물 모습입니다

우리가 처음 입교를 할때는 조개탄 뻬치카 쓰는 구)막사로

40명 1개 소대가 함께 사용했으나 1학년 말에 신)막사가 완성

되여서 1개 내무반이 10명으 사용하게 되였습니다

구)막사 사진은 인터넷 전체를 뒤져도 찿지를 못했습니다

 

1970년에 박정히 대통령이 충성대 글씨를 써서 하사 하셨습니다

 

~~~~~~~~~~~~~~~~~~~~~~~~~~~~~~~

 

2015년 4월 현재  3 사관학교 현재 모습입니다

 

 

충성탑, 정문기념탑 으로 바뀌였습니다

 

 

 

 

 

 

 

 

 

 

  

 

생도복장의 변천사

 

 

 

 

 

 

   

    

 

 

 

 

 

 

멸공의 횃불

 

1.아름다운 이 강산을 지키는 우리
사나이 기백으로 오늘을 산다
포탄의 불바다를 무릅쓰면서
고향 땅 부모형제 평화를 위해
전우여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멸공의 횃불 아래 목숨을 건다

2.조국의 푸른 바다 지키는 우리
젊음의 정열 바쳐 오늘을 산다
함포의 벼락불을 쏘아 붙이며
겨레의 생명선에 내일을 걸고
전우여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멸공의 횃불 아래 목숨을 건다

3.자유의 푸른 하늘 지키는 우리
충정과 투지로써 오늘을 산다
번갯불 은빛 날개 구름을 뚫고
찬란한 사명감에 날개를 폈다
전우여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멸공의 횃불 아래 목숨을 건다

4.조국의 빛난 얼을 지키는 우리
자랑과 보람으로 오늘을 산다
새 역사 창조하는 번영의 이 땅
지키고 싸워 이겨 잘 살아가자
전우여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멸공의 횃불 아래 목숨을 건다


서정모 작사/ 나화랑 작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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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9기 정성갑 | 작성시간 26.09.20 젊음을 되찾은 것같습니다. 그때의 고난으로 건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유형, 수고하셨습니다. 고맙고 감사합니다. 늘 행복과 건강 하시길 기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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