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가는 설악 서북능선(한계령~귀때기청~대승령~십이선녀탕 ~남교리)

작성자태은|작성시간26.05.24|조회수156 목록 댓글 7

* 연영초를 찾아서

잘 찍고 싶었는데
그 날, 바람이 하도 세게 불어서...


* 팬데믹이 끝나 갈 무렵
어느 단체에서 설악 서북능선종주(무박)
공지가 있었다.
한계령-한계령삼거리-귀때기청-대승령-십이선녀탕-남교리.

3월 중순경, 아직은 추운 때였다.
참가자 중 귀때기청을 가 본 이는 많지 않았다.
일행을 기다리느라고 가다서다를 반복하다가
리딩자에게 허락을 받고 두명이 앞 서 나갔다.
그 중 한명, 나.^^

대승령이 가까워져 리딩자에게 전화하니
사진찍고 쉬다 가다를 반복하며 겨우 귀때기청을 벗어나는 중이라고...ㅜ
마침
십이선녀탕이 공사로 입산금지여서 장수대로 하산한댄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내쳐 걸었다.
발각되면 "몰랐다"고 해야지? ^^
속도를 내기엔 추위가 유리했다.

안산삼거리..
입산금지 표시 같은 건 없었다.
안산도 올라가고 싶었지만
동행인 산우가 화를 냈다.

십이선녀탕~ 남교리
수없이 왔었지만
주로 초록이었거나 단풍..
또는 죽어라 앞 만 보고 걷느라고
주변의 바위가 그리 웅장하고 아름다운 줄을 몰랐다.
그렇게 멋진 바위들이 많은 것도 처음 알았다.
그 때 알았다.
흘림골이거나 설악동이거나
공룡이거나..
설악을 제대로 보려면
나뭇잎이 나기 전이거나
잎이 다 지고 난 후여야 한다는걸.

아름다운 풍광에 감탄하며 남교리에 도착하여 시간을 보니 오후 2시 남짓.
한계령에서 04:50쯤 출발.
대략 9시간.


* 작년(25.5.20)
당일로도 가능하다는..
나의 확신에 찬 꼬드김(?)으로
두 분의 산우님을 더하여 세 명이서
같은 길을 향하여 나섰다.

07:00 동서울에서 출발하는 시외버스를 타고
09:30(?) 한계령 하차.
우선 자리잡고 가지고 온 음식을 꺼내 식사부터.
금강산도 식후경~^^

초입부터 만개한 철쭉과
귀때기청의 털진달래가 곳곳마다 발목을 잡았다.
이리저리 사진찍고 마음껏 힐링하며
여유있게 점심도 먹고..
대승령으로 향하는 길..
털진달래보다 훨씬 더 이쁜 철쭉에 넋을 잃고 있었다.
남교리는 안되겠다.
장수대로 하산하자.. 는 선배의 말에
화들짝! 반신반의..
일단은 대승령에서 결정하기로 하고
발길을 서두르는데..

두둥~
환장하게 이쁜 연영초가 여기저기 군락을 이룬다.
선배의 다급한 발걸음을 따라 가느라고
연신 애틋한 눈길만 보내고
사진 한장 못찍었다. 😭

함께 간 후배가 아이디어를 냈다.
내년 같은 시기에
하루 전 원통에서 자고
새벽 택시를 예약하여 3시에 입산하자고.
그렇게 아쉬움을 달래고 장수대로 하산.

* 지난 5.19(일)
Gooood~~
아이디어를 냈던 산우가 다른 일정으로 취소하고
동행하기로 했던 산우도 빠지고..
남은 건 달랑
나.. 홀.. 로..

나..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일찌기 양쪽 무릎의 연골을 모두 잃고
양쪽 무릎 관절염이 매우 심한 상태.
2년 전 쯤(?)
다니던 병원에서 인공관절 수술만이 방법이라는 처방을 듣고
과감히 병원과 작별하고 아무런 치료도 받지 않는 상태..^^
이러니
누구에게 가자고도 못하고
해서도 안되는 처지다.^^
가서 연영초는 보고 싶고...

지난 몇 개월..
가..?
가지 말어..?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을 반복하다가
결국, 가~!

출발 전날의 내 무릎 상태.
물 주머니가 흘러 내려서 무릎이 없어짐.ㅋㅋ


오후 5시쯤 원통에 도착하여
버스에서 만난 옆자리 매우 친절한 여사님이 소개한 예전엔 여관, 현재는 모텔에 숙소를 잡았다.
파바에 들러 아침에 먹을 간단한 샌드위치 한개와 산행 중 먹을 나의 사랑 단팥빵 한개.
산행 중 먹을 떡 집을 찾아 다니느라고 왔다리갔다리 더운 날 땀 꽤나 흘림.
서울 단골 떡집에서 사가지고 올 걸~
후회 막심.
겨우 찾아낸 떡집에는 달랑 떡 두 팩.
넙적하고 팥앙금 가득인 앙꼬모찌 네 개 짜리 한팩.
노란 콩고물 묻힌 새끼손가락만한 인절미 한팩.
콩고물을 덜 좋아하니 앙꼬 모찌로 샀다.
갈 수 있을까..?
과연 나는 끝까지 걸어 갈 수 있을까..?
두렵고
떨. 린. 다.

5/20(월)
03:00 숙소 출발.
03:30 한계령 도착.
03:40 한계령 출발.

지난 몇 년 동안 갈 지 않는 배터리 탓에 헤드렌턴 불빛이 희미하다.
이 번 만 더 쓰고 갈려고 했지..
그래도 길은 비춘다.

나는
Born Again이다.
지난 15년 동안 단 한 번도 교회는 가지 않았지만..
그래도 나는
본 어게인이다.

한계령..
높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며
나는
그 어느 순간보다도 간절하게..
절박하게 기도했다.
함께 하시기를...
내 아픈 무릎을 잡아 주실 것을...
그리고..
굳게
믿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 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시리라.. 는 것을.

예상은 했지만
예상외로 한산했다.
어쩌다 남여, 또는 여남
뿐이었다.

천천히 걸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체력을 남겨야지..

최대한 짐을 줄이고자 했어도 배낭은
무거웠다.
500ml 생수 한 병
500ml 얼린 커피 한 병
220ml(?) 양반식혜 한 캔
박카스 한병
넓적한 앙꼬모치 세개.
한개는 아침에 먹어 치웠다.
찐 땅콩 세 주먹 반
에이스 두개
초콜릿 입힌 에이스 만한 과자 네 개.
갈아입을 옷, 양말.
휴대폰.
이어폰 한쌍.

드문드문 뒤에 오던 사람들이 빠르게
나를 앞 서 간다.
나는
서두르지 않는다. 서두르지 못한다.

05:25 한계령삼거리(약 10분간 휴식)

세수도 하지 않고
대충 썬크림을 바른 얼굴이 퉁퉁 부었다.

사람들이 떠오르는 해를 보며 연신 감탄하며 사진을 찍기 분주하다.

이때부터 나를 앞섰던 사람들이 하나 둘 처진다.
한시간 반..
오르막 길을 속도 내어 걸은 탓에 벌써
체력이 소진되었기 때문이다.

06:30 귀때기청


귀때기청을 한참 지나서
가파른 계단 시작점 한 곳에 자리잡고
40분쯤 휴식한다.
지나는 사람도 없어서 마냥 내 세상이다.

등산화 벗고
양말도 뒤집어 벗어 널어두고
앙꼬모찌도 한 개 먹고
식혜도 마셨다.
앙꼬모찌가 너~무 달아서 식혜 맛이 닝닝하다.
땅콩도 한주먹 꺼내서 냉커피랑 먹었다.
맛있다.

걸으면서도
먹고 있을 때도
나는
기도를 쉬지 않았다.
끝까지 도와 주실 것을..
그리고
감사했다.

혼자 걸었지만
전혀 무섭지 않았다.

근교 트레킹에서는
무릎이 아파 쩔쩔 매는데
설악에서는
아프지도 않고
오히려 다리가 가벼웠다.

앵초

09:17 1408봉(?)
분명..
작년에는 감투봉이 있었는데..?
내가
헛 것을 봤나?
어리둥절...!!!

1408봉을 지나기까지 한송이도 보지 못했는데
대승령이 가까워서야 하나씩 보인다.
연영초..
그리고 앵초.

하루 차이일 뿐인데
꽃세상은 완전 딴 판이 되었다.
털진달래가 냉해로 없다는 것은
출발 전 이미 알고 있었다.

작년에
기품있고 고고했던 연영초의 군락지는 간데없고
눈씻고 찾고 또 찾아서야
겨우 고개 내민 가녀린 꽃송이.
그나마 활짝 피우지도 못했다.
키큰 앵초는 키만 키우고 꽃은 초라했다.

11:03 대승령

대승령 지나서 간식을 먹으려고 보니
찐땅콩~!!
내 찐땅콩이 없어 졌다.
앙꼬모찌는 너무 달아서 못 먹겠고
할 수 없이 단팥빵을 먹었다.
아끼는 커피와 함께.
얼음이 다 녹아서 더이상 냉커피는 아니지만 그래도
맛있다.

11:59 안산삼거리

여기..

또 여기서..
나는, 내가 찾고자 하는 것을 보았다.^^

혼자만 아니라면 안산을 올랐을텐데..
아쉬움에 뒤돌아 보고
또 돌아보고...

드디어 십이선녀탕 시작이다.
십이선녀탕 쪽은 연영초는
저짝에 비하면
많이 깨끗하고 청초하다.
여전히 꽃은 덜 핀 상태.

15:10 남교리 탐방지원센터

'남교리 탐방지원센터' 옆 계곡에서 머리
감고 무릎도 담그고
옷도 갈아 입고..
정신없어서
건물 사진을 못 찍었다.
이름에 걸맞지 앉게
건물이 몹시 작고 헐었다.
사람도 없는 빈 건물.

지난 일년..
많이 고민하고 걱정하고
여러 번 포기하고 싶었지만
나는..
해냈다.
그것도 혼자..
엄밀히
나의 주 하나님의 동행으로...


* 혹시 도움이 되는 분이 계실까 하여
경비 적어 봅니다.^^

동서울<--> 원통 : 15,300×2
숙박비 : 60,000
택시비: 숙소~한계령휴게소 50,000
찹쌀모찌 : 6,000 (두개 남음)
파바 : 17,000
남교리 가게집: 맥주 1병, 사이다 1병
7,000
밥은 안 사먹었어요~
숙박비랑 택시비가 많이 나와서.^^

여기까지 읽어 오신 분...
수고 많으셨습니다 ~♡

설악..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숨이 있는 한
죽을 때까지
나는
설악을 가고 또 갑니다.^^



한계령에서 남교리 탐방지원센터 까지.

한계령~동서울터미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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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날치 | 작성시간 26.05.24 와아우 ~
    대체 거기에 뭐가있길래 ~
    극기 .인간승리.
    "Ubermensch " ~위버멘쉬
    :세상이 정해놓은 기준을 뛰어넘어
    주어진 상황과 고통을 의지로 극복하면서 "지금의나"를 최고의
    자신을 꿈꾸는존재~
    스스로를 끊임없이 재창조 한계를 과감히 뚫고 나아가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더높은곳을 향해멈추지않는 도전~
    날치는 감히 꿈도꿀수없는 .생각도할수없는.
    박수와응원을 보냅니다.



    댓글 이모티콘
  • 답댓글 작성자태은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5.24 날치님~
    그저 설악산을 좋아할 뿐이랍니다.
    많이 아프지만
    그래도 가려니 가지네요.
    날치님 댓글이 더 대단합니다~^^
    감사해요~
  • 작성자날치 | 작성시간 26.05.24 저는.설악산가서 밑어서만 놀다가와요
    제인생에 아주 오래전 흔들바위.권금성.까지는 가봤어요 ~
    자연이 얼마나 위대하고 대단하다는것을 알기에 ~
    태은님 좋아하는거 하세요
    본인이 좋고 행복하면 그것이 천국입니다 ~
    내려오셔서 얼마나 자신이 대견하고 멋쪘을까 요 !!!
    응원합니다
  • 작성자하늘과산 | 작성시간 26.05.25 new 철의 여인이십니다
    멋집니다
    혼산
    가고싶고
    쉬고싶고
    내 마음대로
    그것이 특혜죠
    마음이 우러날때
    그냥 움직이신 모습
    실천에 옮기시고
    당연하게 당당하게
    해 내신 그날의 모습이
    참으로 멋지십니다
    비록 내 다리 무릎은 고생 했지만
    안전하게 무사히 완주하신 모습 👍
    대단하십니다
    댓글 이모티콘
  • 답댓글 작성자태은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5.25 new 하늘과산 대장님..
    과찬이십니다.^^

    누구보다 열악한 신체조건이지만 시도도 안해 보고 주저 앉기는 싫었어요.
    워낙에 설악산을 좋아하는 것도 있고요.
    늦은 가을에는
    서북능선을 걸으며 새로이 발견한 길을 가보려고 합니다.^^

    새로운 한 주..
    즐겁고 건강한 날 들 보내시기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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