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비가 내리는 소리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였다.
아내는 피곤한지 내가 발코니 창문을 열고 빗소리를 들으며 서 있어도 세상 모르게 자고 있다.
한편으로는 측은도 하고, 한편으로는 나와 말벗이 되어주지 않으니 야속하기도 했다.
나이를 먹으면 새벽잠이 없다더니 나도 이젠 나잇살이나 먹었는지 한 번 잠이 깨면 다시 이루기 힘든다.
이렇게 비만 오면, 깊은 밤 빗소리를 들으며 사랑을 하면 너무 좋은데…….
여명이 뿌연 안갯속에 서서히 다가오더니 아침이 밝아와도 비는 그치지 않았다.
나는 서둘러 매일 반복되는 새벽일과를 마치고는 지방으로 땅을 보러 간다고 말한 뒤 묻지마 관광버스가 기다리고 있는 전철역으로 향했다.
그 전철역까지 가려면 시간이 늦어 어제 미리 전화를 걸어 오는 중간 약속장소에서 만나기로 했다.
벌써 몇 번 다닌 탓에 녀석은 나를 알아보고 예약을 받아준 것이다.
이 세상 모든 거래가 그러하듯, 단골은 이래서 좋은 것일 것이다.
어제 두 건의 계약을 했기에 오늘 하루 쉰다고 경제적인 부담을 느끼지 않아 한결 마음이 가볍다.
석탄일과 겹친 3일 연휴임에도 일을 하는 나에게 아내는 측은한 눈빛을 보내며 쉬라고 말했다.
아내가 그럴 때는 여자의 심리를 교묘히 이용하여 어떤 의심도 못하게 더욱 일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나는 일요일은 지방 땅을 보러가기로 약속했다고 말했다.
지난 번에도 서해안 한 곳을 다녀와 두둑한 돈봉투를 내미니 입이 함지박만큼 찢어진 전례로 보아 이번에도 그러한 기대를 하고 있을 것이다.
등산복과 장비 등을 둔 옷방에서 간단한 복장으로 갈아입었다.
지방을 갈 때는 늘 등산복을 입기에 아내는 의심을 하지 않는다.
땅이 도로 곁에도 있겠지만, 야산도 가끔은 있기에 행동의 부담없는 등산복이 언제나 편했다.
집을 나서는 내게 일찍 떠난다고 말했기에 아내는 얼음 얼린 물병을 챙기고 냉장고에 있는 말린 오징어를 두어 마리를 구워 여행가방에 집어넣으며 운전할 때 졸리면 먹으라고 말했다.
일요일이라도 학원가기 바쁜데 남편을 챙기려는 아내에게 몹쓸짓을 하는 날은 정말 많은 갈등을 하게 된다.
이래선 안 되는데…… 이래선 안 되는데……하며 오늘까지 이어온 나의 바람기는 또 유혹에 빠지고 만다.
바람피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한 사람으로 만족하며 오래 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늘 가면 새로운 여인이 기다리는 묻지마 관광은 어느새 내 인생에 중독처럼 굳어져 외로움만 느껴지면 찾고는 했다.
아내와의 단조로운 가정생활과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풍광도 즐기고 색다른 여인과의 짙은 정사를 치른다는 짜릿한 쾌감의 유혹은 정말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었다.
사람들마다 성행위의 방법도 다르고 순서도 다르기에 늘 새로운 사람은 신비스럽게 다가왔었다.
옷은 새옷이 좋고 사람은 옛사람이 좋다지만, 바람피울 상대방은 언제나 새로운 사람이 좋은 법이다.
그래서 그런 버릇에 길들여진 나는 언제나 새로운 여인을 찾아 인생을 방황했다.
차는 전철 가까운 곳 주차장에 맡기고 기다린 지 오래지 않아 낯익은 기사의 묻지마 관광버스가 도착했다.
버스에 오르자 내가 마지막이었기에 자리는 다 차 있었고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집중됐다.
나를 포함한 남자 20명 여자 20명 ㅡ
오늘은 이상하게 사람이 차면 내리던 녀석이 동승하여 앞자리에 앉아 따라왔다.
나는 언제나 버스에 오를 때는 혹시나 지인과 대면할지 몰라 선글라스를 쓰곤 했으며, 어제도 예외는 아니었다.
빗방울이 흩뿌리고 있었으며 바람이 부는 흐린 날임에도 선글라스는 써야 했다.
세상은 넓은 것 같으면서도 좁은 것이다.
언제 어디서 아는 사람과 마주치지 말란 원칙은 없는 것이니 매사에 몸조심해야 한다.
나는 내일 삼수갑산을 간다 해도 일단 버스에 오르면 세상만사 온갖 고민과 인간에게만 있다는 108번뇌를 잊었다.
내가 고민을 한다 해서 될 일도 아니거니와 더 나아질 리 없는 부질없는 생각은 아무 소용 없었다.
이제부터는 나와 만날 여인의 상상만 하면 된다.
언제나 그러하듯 버스에 오르며 기도하는 마음이 된다.
오늘 하루 만날 그녀에 의해 진한 사랑을 나누며 풍요로운 황홀경에 빠지면 그만인 것이다.
잘생겼든 못생겼든 운은 하늘에 맡기고 가장 뒤에 가서 모자를 눌러쓰고 설쳤던 부족한 잠을 자려고 누웠다.
버스에 오르며 보니 여인들의 호기심 어린 눈빛과 남자들의 음흉스런 눈빛이 나를 주시했다.
내가 잘났건 못났건 보아 봐야 그림의 떡인데 보면 뭘하느냐 말이다.
한장의 종이가 우리의 만남과 인연을 점지해 줄 뿐인데 보아야 아무 소용 없었다.
내가 맘에 든다고 해서 그 여인이 내게 와 줄 것도 아닌데, 기대해 봤자 이루어지지 않으면 마음만 상할 뿐이다.
여자들을 대충 훑어보아도 내 시선을 끌 만한 예쁜 여인은 보이지 않아 지난 번처럼 무식한 여인을 만나는 여행이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함에 차라리 눈을 감고 싶었다.
시내를 벗어났는지 안내방송이 들렸고 버스 안이 소란스러워도 나는 눈을 뜨지 않았다.
가장 뒷자리에 앉아 모자를 눌러쓰고 선글라스를 썼기에 간밤에 설친 잠이 오려는 찰라였다.
나에게도 누군가를 선택할 시간이 왔다.
자는 척하는 내게 다가온 사내가 내민 바구니에 담긴 마지막 한 장을 선택할 여지도 없이 주워들었다.
차창 밖으로 서해안 고속도로 입구로 가는 서부간선도로가 보였다.
'무창포'로 간다는 것은 알았지만, 서부간선도로는 이미 차량의 행렬이 길게 꼬리를 물고 있었다.
오늘 내가 만날 여인은 얼굴이나 몸매나 뜨거운 정사를 치른다는 기대만큼 가지고 올 사연은 늘 궁금했다.
어디서 온 여인인지, 나이는, 남편은 있는지, 직업은 있는지, 전업주부인지 모든 게 궁금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묻지 않는 게 묻지마 관광버스에 오르면서 가져야 할 원칙이며 불문율이나, 어떤 여인은 스스로 털어놓으며 재회를 약속하려고 한 여인도 있었다.
여인의 심리는 모두 하나같았다.
잠자리의 결과가 맛(?)있거나, 만나기 쉽다거나, 자기에게 손해나 위해가 없을 것 같으면 재회를 원했다.
나에겐 다행스럽게도 시골뜨기 같은 모습과 강원도 사투리는 여인에게 늘 안심을 준 것 같았다.
좀 더 도회적인 모습으로 바꾸고 목소리도 표준말을 쓰려 해도 고향은 끈질기게 나를 떠나려고 하지 않는다.
지난 번의 여인은 내게 대해 물었지만, 나는 알려주지 않았다.
그녀와 사는 곳도 조금 떨어지긴 했지만, 나는 더욱 멀리 산다고 거짓말을 했다.
나는 그녀를 다시 만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여인이 못생겨도 지적인 여인을 좋아한다.
그녀는 몸매와 얼굴은 예뻤으나 지적이지 못했다.
모텔에 들어서자마자 달려들었으며 내 입술을 요구했다.
버스에서부터 술을 마시기에 무슨 일이 나지 않을까 불안한 마음이었지만, 술 취한 여인은 사랑하기 좋다는 나만의 노하우가 있어 자꾸 권하기도 했었다.
여인은 술이 취하면 부끄러움이 없어지고 적나라하게 모든 것을 노출시키기에 좋은 것이었다.
그녀가 지적이 아님은 정사를 치르기 전부터 나타났다.
어차피 거쳐야 할 수순이지만, 남자가 벗기기 전에 먼저 벗으면 매력이 반감된다.
남자가 벗기려 하면 수줍은 듯, 못 이기는 척 응하면 발기력이 세어진다는 사실을 그녀는 몰랐다.
나는 토트백 안에 있던 술을 꺼내어 그녀와 마시다 화장실을 다녀오니 이미 팬티와 브라만 입은 채 소파에 앉아있었다.
허리는 가늘지만 주름잡힌 아랫배의 모습을 보자 이제까지 그녀에게 가졌던 부풀었던 기대심리는 찬물을 끼얹는 것 같았다.
여인의 매력은 다소곳하고 순종하며 수줍음에 있는 것인데, 그녀는 너무 도도했고 거침없었다.
개방된 가슴과 다리사이는 여인의 모습이었으나 매력도 없었으며 신비감도 떨어졌다.
내가 리드하는 것은 전혀 없었다.
오로지 그녀가 남자의 역할은 모두 하고 있었다.
정사를 치르며 분위기가 고조되어가자, 그녀는 여자의 입으로는 일상에서 들을 수 없는,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쌍스런 말을 뱉어냈다.
온갖 육두문자와 남녀 성기를 표현하는 욕설에 포함되는 말들이 거침없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내게 하는 욕설이 아니라 자기도 모르게 혼잣말로 의식도 없이 떠드는 듯했다.
그녀 위에 있었지만 나는 움직임이 필요하지 않았다.
내 허벅지에 다리를 감싸 올리고 목덜미를 껴안은 채 그녀는 그네를 타고 있었다.
나는 고정된 자세로 움직임 없이 그녀와의 사이에 작은 공간만 벌려주고 있었을 뿐이었다.
모든 행위와 속도는 그녀에 의해 진행되고 완성을 향해 가고있었다.
나는 물끄러미 그녀를 내려보았다.
이마와 콧등에 송글히 맺힌 땀방울이 그녀의 찡그려 감은 눈두덩으로 흐르는 모습을 보았다.
혼자 쉼없이 떠들던 그녀의 온갖 욕설과 음탕한 언어는 쉬지 않고 쏟아지고 있었다.
처음 겪는 해괴한 행동에 나는 어서 이곳을 벗어나고 싶은 생각밖에 없었던 기억 ㅡ
그날따라 사정이 되지 않아 곤혹스러웠던 긴 시간을 난감하게 보냈던 기억뿐이었다.
그만 두고 싶었지만 내 허리에 감긴 그녀의 억센 깍지낀 손은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진저리를 치듯 떨리는 몸짓을 하며 욕설을 퍼붓던 그녀 ㅡ
결국 그녀는 제풀에 꺾여 스러져갔고 그날 나의 묻지마 관광은 허무함만 남긴 채 종말을 맞았었다.
언제나 묻지마 관광은 허무만 남기고 끝맺었지만, 묻지마 관광 중 최악이란 기억만 남겼었다.
불안한 마음으로 오늘은 제발 여인 같은 여인을 만나게 해달라고 빌었다.
자기 자리로 앉아달라는 안내방송이 들려왔다.
다들 배정된 자리에 앉았는데 나만 뒷좌석에 있었나 보다.
내가 오기를 기다리는 듯한 여인이 뒤를 흘깃 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일어나 그녀 곁으로 다가가니 창문쪽으로 비켜앉는 여인 ㅡ
차창밖은 거센 빗방울이 붙었다 떨어지며 오늘의 묻지마 관광을 더욱 찬란하게 수놓고 있었다.
비 오는 날은 사랑하기 좋은 날이며 빗소리가 거셀수록 사랑의 농도도 짙어지기에 나는 비 오는 날이 좋다.
그녀 역시 모자와 선글라스를 써서 눈동자는 볼 수 없었어도 하얀 얼굴에 자그마한 체구의 여인이었다.
나는 늦게 와서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모자를 쓴 채 선글라스를 벗고 인사했다.
내가 그러자 그녀도 선글라스를 벗으며 웃으며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아!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드디어 나의 간절한 기도가 통했나 보다.
지난 번 욕설로 끝난 정사의 악몽은 그녀를 보는 순간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내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얼굴이 희고 도톰한 입술에 가지런한 치아를 보이는 까만 눈동자의 키 작은 여인 ㅡ
봉긋한 작은 가슴의 높이는 대한민국 바람둥이 여인의 지극히 전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제까지의 내 경험을 비추어 볼 때, 저런 여인은 바람둥이이고 색을 무척 밝히는 여인이란 생각은 틀린 적 없었다.
얼마만에 만나는 기다렸던 여인이었던가!
이 여인으로부터 받을 온갖 황홀한 상상은 설렘과 희열 속에 끊임없이 이어졌다.
톨게이트를 벗어난 버스는 점점 속도를 빨리하며 우리의 목적지인 '무창포'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규정속도로 달렸겠지만 나의 마음속엔 굼벵이처럼 느리기만 했다.
어서 이 여인을 벗기고 싶은 마음은 가끔 정체를 보일 때는 좁은 고속도로가 야속하기까지 하며 애를 태우는 것이었다.
ㅡ 계속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