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승묘법연화경 일일법문:모든 부처님은 법에 있어

작성자보운법사|작성시간26.06.14|조회수25 목록 댓글 0

-經典會上-

 

일승묘법연화경 일일법문:모든 부처님은 법에 있어

 

모든 부처님은 법(-삼세의 경전)에 있어

가장 뛰어난 자재(自在)를 얻으시어

모든 중생(衆生)

가지가지 욕구(欲求)와 원하는 것이며

의지(意志)와 힘을 아시고

감임(堪任-가르침을 감당할만함)할 바에 따라

무량(無量)한 비유(譬喩)를 가지고

설법(說法)을 하십니다.4-107

 

제불어법 득최자재 지제중생 종종욕요

諸佛於法 得最自在 知諸衆生 種種欲樂

 

급기지력 수소감임 이무량유 이위설법

及其志力 隨所堪任 以無量喩 而爲說法

 

諸佛於法得最自在하사

知諸衆生種種欲樂이며

及其志力하시고 隨所堪任

以無量喩而爲說法하시니이다

 

-모두 제. -부처님 불. -어조사 어. -법 법. -얻을 득. -가장 최. -저절로 자. -있을 재. -알지. -모두 제. -무리 중. -날 생. -가지 종. -가지 종. -욕구 욕. -원할 요. -또 급. -그 기. -뜻 지. -힘 력. -따를 수. -바 소. -감당할 감. -맡을 임. -써 이. -없을 무. -헤아릴 량. -비유할 비. -말이을 이. -할 위. -말씀 설. -법 법.

 

1-이 게송은 모두 32글자로 노래를 하였다. 모든 부처님이 중생을 교화하시는 법식을 이 게송으로 함축하여 노래하였으니, 네 명의 아라한이 원교묘각의 경지를 이해하였음을 알 수가 있다.

 

2-제불어법 득최자재(諸佛於法 得最自在)! 유불여불(唯佛與佛)의 지견(知見)을 말한다. 즉 원교묘각의 경지를 노래한 것이다. 과거에 모든 부처님의 경전과 미래에 모든 부처님의 경전과 현재의 모든 부처님의 경전을 모두 통달하였기 때문에 제불어법 득최자재(諸佛於法 得最自在)라 노래한 것이다.

 

3-지제중생(知諸衆生)! 넓은 의미에서는 시방의 모든 중생이 부처님이 되는 과정을 아시는 것이고, 좁은 의미에서는 가까운 미래에 부처님이 되는 중생을 가리킨다. 즉 가까운 미래에 부처님이 되는 중생이란! 교화의 영역 안에 든 중생을 말한다.

 

4-원교의 묘각이란! 자신도 부처님이 되는 과정을 알고, 남도 부처님이 되는 과정을 아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시방의 모든 중생이 부처님이 되는 과정을 알게 되면, 시방이 바로 불계(佛界)이고 중생계(衆生界)도 없고 성문과 연각과 보살의 경계도 없음을 알게 된다.

 

5-만약 자신만 부처님이 되는 과정을 알고, 남도 부처님이 되는 과정을 모르면 마왕(魔王)의 경계에 빠진 것이 된다.

 

6-종종욕요 급기지력(種種欲樂 及其志力)! 종종욕(種種欲-온갖 욕망)과 종종요(種種樂-온갖 원하는 것)와 종종의(種種意-온갖 의지)와 종종력(種種力-온갖 힘)을 가리킨다.

 

7-수소감임(隨所堪任)! 부처님의 경전을 받아드리는 일을 가리켜 감임(堪任)이라 한다. 즉 시방의 모든 부처님은 경전을 받아드릴 만한 인연이 되는지를 관찰하신 다음에 교화를 펼치시니, 바로 성문의 근성인가! 연각의 근성인가! 보살의 근성인가! 여래의 근성인가를 먼저 관찰하시는 것이다.

 

8-다시 말해 성문과 연각의 근성은 소승의 근성이기 때문에, 이들을 위해 소승의 경전을 먼저 가르치지 않고, 곧바로 대승경전 즉 보살을 위한 경전을 가르치게 되면 도리어 교화의 이익이 없다.

 

9-또 보살의 근성에게 보살의 경전인 대승경전을 가르치지 않고, 소승의 경전을 가르치게 되면 역시 교화의 이익이 없다. 이와 같이 우리들의 경우 곧바로 일승의 경전인 법화경을 가지고 교화하지 않고, 소승의 경전이나 대승의 경전을 가지고 교화를 하게 되면 도리어 우리들이 후퇴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10-따라서 우리들이 생사의 경계에서 법화경을 만난 것은 영산회상에 삼승인(三乘人-성문.연각.보살)에 비해 복()과 공덕과 능력과 지혜가 부족하거나 없기 때문이 아니고, 우리들이 불도를 닦는 일에 있어 생사의 경계가 가장 적합하기 때문에.. 우리들이 지금 이곳 남염부주에 태어나 법화경을 의지하여 읽고 외우는 것일 뿐이다.

 

11-이를 다시 설명하면, 삼승인이 만약에 중생인 채 이곳 생사의 경계인 남염부주에 태어나 우리들처럼 법화경만을 의지한 채 법화경을 읽고 외워서 부처님이 될 수가 없기 때문에.. 부처님이 이들을 가엾게 여겨 해탈의 경계인 영산회상에 참석을 시켜 법화경의 설법을 듣게 한 것일 뿐이다.

 

12-만약 영산경계(靈山境界)와 경전경계(經典境界)에 있어, 중생을 교화하는 그 힘과 능력이 다르다면, 구차하게 이곳에 법화경이라는 경전이 존재할 이유가 없다.

 

13-부처님의 입장에서는 영산의 경계와 경전의 경계를 차별하지 않고, 동일하게 보시기 때문에.. 법화경에서 법화경에 공양을 드리는 일은 차라리 영산회상에서 나에게 공양을 드리는 일보다 더욱 뛰어나서.. 삼세의 모든 부처님께 공양을 드리는 공덕이 된다.”하시었으니, 어찌 영산경계만 뛰어나고 경전경계만 하열하다고 말할 수가 있겠는가!!

 

14-우리들이 중생의 몸을 한 채 법화경을 감임(堪任-감당하는 일) 할 만하기 때문에 법화경을 만난 것이고, 또 법화경을 읽고 외워 부처님이 될 만 하기 때문에 법화경을 만난 것이고, 또 법화경을 널리 유통하여 남도 부처님의 계위에 올려놓을 수가 있기 때문에 법화경을 만난 것이지! 법화경을 읽고 외운 공덕으로 천상에나 태어나고자 하여 법화경을 만난 것이 아니다.

 

15-만약 우리들이 중생의 몸을 한 채 부처님이 될 만한 법기(法器)가 못 되고, 또 법화경을 널리 유통하여 남도 부처님의 계위에 올려놓을 만 한 능력이 못 되면 결코 법화경을 만날 수가 없다.

 

16-또 우리들이 비록 중생의 몸을 하였으나, 중생의 몸을 한 채 방편의 교화를 받지 않고 곧바로 부처님이 되는 종족은 시방세계 안을 두루 관찰해 보아도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17-미륵보살이 보처(補處)의 계위에 올라놓고도 그 많은 지용의 보살 중에 단 한 명의 이름과 얼굴도 알지 못한 것은, 마치 우리들을 알아보지 못한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따라서 부처님이 법화경의 유통을 지용보살과 우리들에게 부촉을 하신 것이니, 우리들이 바로 보살의 계위를 방편으로 삼아 여래의 계위에서 시작해 원교묘각의 계위에 오르는 종족이기 때문이다.

 

18-이무량유 이위설법(以無量喩 而爲說法)! 모든 부처님이 비록 중생을 교화하심에 있어 중생이 교화의 영역 안에 들었다 해도, 교화하는 설법에 있어 헤아릴 수 없는 비유가 필요한 것은, 첫째 무량한 겁이 걸린다는 것이고, 둘째 무량한 경전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고, 셋째 무량한 능력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고, 넷째 무량한 세계를 둘러보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19-질문, 우리들의 경우는 삼승인(三乘人-성문.연각.보살)처럼 삼거(三車-양거.녹거.우거)의 수레조차 타지 않았기 때문에 무시(無始-처음이 없는)의 무명(無明)일 때부터 지금까지 중생의 몸을 벗어난 적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 남염부주를 벗어난 적이 없고, 시방세계를 가본적도 없다. 따라서 어떻게 우리들이 법화경만을 의지하여 부처님이 될 수가 있다고 말할 수가 있는가!!

 

20-대답, 보살이 본신(本身)을 본지(本地)에 남겨 놓은 채, 방편의 몸을 하여 시방의 모든 부처님 처소(處所-불국토)에서 가르침을 받거나, 내지는 중생을 교화한다. 우리들의 경우도 이와 다르지 않아서 구몽삼매(九夢三昧)에 들어가 무량한 겁을 걸치며 시방의 모든 부처님을 뵙고, 또 시방의 모든 부처님에게 가르침을 듣고, 또 깊은 불도의 경지에 들어가 부처님의 계위에 오르게 되고, 또 시방의 모든 중생을 교화하고, 또 시방의 모든 중생이 부처님이 되는 과정을 지견(知見)하게 된다.

 

21-쉽게 설명을 하면, 보살은 실지에 있어 시방의 모든 부처님을 뵙는 것과, 우리들이 구몽삼매에 들어가 시방의 모든 부처님을 뵙는 일에 있어 그 과정이 차이가 있을 뿐이고 시방의 모든 부처님을 뵙는다는 결과에 있어 동일하다.

 

22-질문, 우리들은 지용보살의 교화를 받아 부처님이 된다고 말하였는데, 어찌하여 다시 구몽삼매에 들어가 시방의 모든 부처님을 뵙고 가르침을 듣는다고 말하는가!

 

23-대답, 지용보살은 구몽삼매에 드는 법까지만 교화를 하고, 이 뒤로부터는 스스로 불도를 닦을 만한 경지에 들게 된다. 마치 아버지가 자식이 농사를 지을 만하다고 판단이 서면 논과 밭을 물려주어 스스로 농사를 짓게 하는 것과 같다.

 

24-어떻게 구몽삼매에 들게 하는가! 바로 여래행(如來行)을 먼저 닦게 하는 것이니, 모든 행위와 마음에 있어! 여래는 어떻게 음식을 드시는가! 여래는 어떻게 자식을 가르치는가! 여래는 어떻게 남을 대하는가! 하는 등이 모두 여래행(如來行)이다.

 

25-여래행이 마음과 몸에 익숙하게 되면, 저절로 구몽삼매에 들게 된다. 당장은 번뇌가 가득한 중생이고 괴로움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한 번뇌덩어리라 할지라도, 여래행을 닦기 시작하면 구몽삼매에 들게 된다.

 

26-만약 법화경을 읽고 외우면서 여래행(如來行)을 닦지 않으면 마치 소가 경문을 읽는 소리를 듣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27-여래행을 닦기 때문에 부처님과 가까워지는 것이고, 부처님과 가까워지기 때문에 구몽삼매에 들게 되는 것이다.

 

28-삼승인들은 원교의 묘각을 부처님의 경지라 말하지만, 우리들의 경우는 구몽삼매를 부처님의 경지라 말한다. 삼승인들은 보살오품위에서 등각에 올라 원교의 묘각을 깨닫게 되지만, 우리들은 여래오품위에서 곧바로 원교의 묘각에 올라 구몽삼매를 거처 부처님이 된다.

 

-偈頌-

 

우리들은 구몽삼매를

원교의 묘각이라 부른다.-1

 

따라서 수행의 방법에 있어

여래오품위를 닦는 중에

곧바로 구몽삼매를 거쳐

부처님의 경지에 오르게 된다.-2

 

중생의 몸을 한 채

구몽삼매에 들어가

부처님을 만나 설법을 듣고

깊은 도리를 깨달아

무상(無上)의 불도(佛道)를 증험하고

곧바로 출가해 부처님이 되어

무량한 중생을

교화한 다음에

무여열반에 드는 일이

바로 구몽삼매이다.-3

 

우리들은 우리들끼리

불도에 드는 법이 있으니,

바로 구몽삼매를

닦아 부처님이 된다.-4

 

법화경에서 부처님이

우리들에게 구몽삼매를

이해하라고 말씀을 하셨고,

영산회상 당시에

대중에게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니다.-5

 

다시 말하면 법화경의

가르침 중에

우리들에게 하신 가르침과

영산인에게 하신 가르침을

구분하지 못하면

법화경은 어려워

이익을 얻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경전회상에서

설법이 되는 가르침을 들어야

구몽삼매에 들 수가 있는 것이다.-6

 

-寶雲地湧 堪任合掌-

 

一乘妙法蓮華經 一切諸佛神通力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