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丁亥 2007년 10월 11월 겨울에 친구에게 보내는 한시-2

작성자농월|작성시간08.05.17|조회수1,229 목록 댓글 0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장풍로상(長風路上) 겨울 길에서 긴 바람

凍雨霏霏灑晩天(동우비비쇄만천)-찬 비, 부슬부슬 저문 하늘에 흩뿌리니

前山雲霧接村烟(전산운무접촌연)-앞산 구름과 안개, 마을 연기와 맞닿는다

漁翁不識蓑衣濕(어옹불식사의습)-늙은 어부는 도롱이 젖는 줄도 모르고

閑傍蘆花共鷺眠(한방로화공로면)-갈대꽃 곁에서 백로와 나란히 잠들어있네

                                                                                         정온(鄭蘊)

 

 

겨울 한시를 오늘(11월 1일)부터 시작합니다.

한시를 지금까지 정리하는 동안 느낀 것은 사계 절중에 봄가을을 소재로 한 시는 많고 겨울 여름은 매우 적은 것을 느꼈습니다.

 

현대시 서양시를 정리하지 못하여(정리 할 수도 없지만) 비교 할 수는 없지만 동양인의 감정은 춘추에 서정적(抒情的)인 것 같습니다.

 

“이태리에는 올리브 농장에서 일하는 심부름꾼도 칸초네로 혀를 굴리고 프랑스에는 와인 배달부도 샹송을 흥얼거리며 스텝에 마주어 걷는다고 합니다” 물론 농담이겠지만....

 

이말은 돈만 갖이고서는 신사 숙녀가 될 수 없고 문학과 예술을 가까이 하는 국민이 멋을 아는 사람이라는 풍자입니다.

 

인간이 창조한 위대한 선물의 하나인 문자(文字)를 만들어 우주만물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크나큰 축복입니다.

 

겨울 긴밤, 코드깃을 세운 눈내리는 날에 한시를 읽으면서 사색하며 멋을 내는 계절이 되기를 바랍니다.

-농월-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江雪(강설)강위의 눈

千山鳥飛絶(천산조비절)-눈날리는 천산에는 날아가는 새도 끊기고

萬徑人踪滅(만경인종멸)-만갈래 길에는 사람의 종적도 사라졌어라

孤舟蓑笠翁(고주사립옹)-외로운 배에는 도롱이 입고 삿갓 쓴 노인네!

獨釣寒江雪(독조한강설)-홀로 강위에 내리는 차운 눈을 낚누나.

                                                                                   유종원(柳宗元)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봉화낙선재구호(奉和樂善齋口號) 겨울 낙선재

 

一天霜雁送寒聲(일천상안송한성)

서리 맞은 기러기 싸늘하게 울어대는 하늘엔

 

河漢迢迢夜氣晶(하한초초야기정)

은하수 까마득하고 밤기운은 수정같다

 

臥病胡床仍不寐(와병호상잉불매)

병든 몸 평상에 누워 잠 못 이루는데

 

透簾明月照深情(투렴명월조심정)

대밭 안으로 스며드는 달빛은 다시 마음속으로

 

                                                   인평대군(麟坪大君)

 

※인평대군은 조선 제16대 왕 인조의 셋째 아들로서 1650년 이후 4차례에 걸쳐 사은사(謝恩使)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제자백가에 정통했으며, 병자호란의 국치를 읊은 시가 전해진다. 또 서예와 그림에도 뛰어났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등조령(登鳥嶺)겨울 문경새재에 오르니

 

凌晨登雪嶺(능신등설령)

이른 새벽 눈 덮인 새재에 오르니,

 

春意正濛濛(춘의정몽몽)

봄이 올 뜻이 어렴풋하게 느끼는 구나

 

北望君臣隔(북망군신격)

북으로 임금이 계신 서울은 멀기만 하고

 

南來母子同(남래모자동)

남으로 고향땅은 가까워 지네

 

蒼茫迷宿霧(창망미숙무)

아득하여라 넓은 들은 저녁안개에 서리어 있고

 

迢遞倚層空(초체의층공)

높은 봉우리는 고개를 들어 하늘에 의지하네

 

更欲裁書札(경욕재서찰)

-다시금 글을 담아 보내려 하니,

 

愁邊有塞翁(수변유새옹)

잘된일인지 잘못된일인지 알수 없어 근심이 되오.

 

                                                                     유호인(兪好仁)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山中雪夜(산중설야)겨울 산중 눈오는 암자

 

紙被生寒佛燈暗(지피생한불등암)

종이 이불에선 한기가 일고 불등(佛燈)은 어두우니,

 

沙彌一夜不鳴鐘(사미일야부명종)

사미승(沙彌僧)은 밤새도록 종(鍾)을 울리지 않았구나.

 

應嗔宿客開門早(응진숙객개문조)

나그네가 문을 일찍 연다고 응당 화를 내겠지만,

 

要看庵前雪壓松(요간암전설압송)

암자(庵子)앞 눈 쌓인 소나무를 꼭 보리라.

 

                                                                  이제현(李齊賢)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송참(松站)겨울 소나무 밑에 우두커니 서서

 

雪裡村西日欲斜(설리촌서일욕사)

눈속에 쌓인마을 해는 벌서 지려는데

 

蕭條墟落兩三家(소조허락양삼가)

쓸쓸한 빈터위에 두서너집 남아있네

 

主人好客頗知禮(주인호객파지예)

손을 맞은 주인영감 예의범절 공손하고

 

淨几明窓甁有花(정궤명창병유화)

문방제구 깨긋한데 화병까지 놓였구나

 

                                          박종악(朴宗岳)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溪夜(계야) 겨울 시냇가의 밤

 

積雪消來溪水寬(적설소래계수관)

쌓인 눈 녹아 내려 불어난 시냇물

 

滿樓明月碎琅玕(만루명월쇄랑간)

다락에 비친 달은 옥이 부서지는 듯

 

漁人抛得釣筒盡(어인포득조통진)

어부는 낙시통을 모두 던져 놓고

 

却放輕舟下急灘(각방경주하급탄)

가벼운 배를 놓아 급한 여울 내려간다

 

                                           최도융(崔道融)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寫牧丹(사목단)겨울 매화보다 모란을 그린다면

 

雪裏寒梅雨後蘭(설리한매우후란)

눈 속의 추운 매화와 비 온 뒤의 난초는

 

看時容易畵時難(간시용이화시난)

보기에는 언뜻 쉽게 보여도 그리기는 어려워라.

 

早知不入時人眼(조지불입시인안)

일찍이 세인의 눈에 들어오지 않음을 알았더라면

 

寧把臙脂寫牡丹(영파연지사모란)

내 차라리 연지를 부여잡고 쉬운 모란을 그릴 것을.

                                                                         김굉필(金宏弼)

 

모란을 그린다면〉농월 해제(解題)

눈 속에 핀 매화(梅花)의 차고 고결한 아름다움과 비를 맞은 난(蘭) 잎의 청초함은 더 없이 깨끗하다. 이 아름다움은 눈으로 보기는 쉬워도 그것을 그림으로 옮기기란 어렵다. 즉 세상을 올바르고 깨끗하게 살아가는 것이 옳다는 것을 알고 말로는 쉽지만 그것을 실천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작자(김굉필)는 한탄하며 이어 말하기를 세상살이를 적당히 사는 것이 오히려 쉽다는 것을 일찍이 알았더라면 매화나 난처럼 고결하게 살지 말고 눈치 빠르게 손도비비고 적당히 부정도 하고 재산도 모으면서 길지 않은 인생을 모란처럼 화려하게 재미보며 살았을 것을.........

 

육당 최남선이 쓴 여러 가지 꽃을 기록한“화하만필”에서는 모란의 화려함을 꽃의 왕비로 만들고 있습니다.

 

이 시를 쓴 한훤당 김굉필은 조선조 대 유학자 점필재 김종직의 제자이며 연산군때 사람으로서 정몽주 길재 김숙자 김종직 김굉필 조광조 이황에 이르는 조선 유학의 대통을 이루는 대 학자입니다. 지금 SBS 드라마 “왕과 나”에서 나중에 연산군이 임금이 된 후에 폐비 윤씨 사건으로 일어난 무오사화(戊午士禍)때 유자광을 중심으로 한 보수파에 의하여 "조의제문" 이 빌미가 되어 처형된 당시의 신진 개혁파입니다.

 

저는 이 한시를 20대에 저에게 서예를 가르쳐 주신 스승님으로부터 알게 되어 지금까지 외우고 있습니다. 누구나 살아오는 동안 먹고 살기 위하여 여러 분야에서 일하면서 때로는 물질에 대한 부정한 유혹, 적당히 재미 보고 즐겁게 살자는 등의 뿌리치기 어려운 인관간계의 지뢰밭을 밟으면서 아슬아슬하게 살아오지 않았습니까?

 

때로는 나를 거울에 비춰 보면서 『야 참 너는 주변머리도 융통성도 없다. 좀 슬쩍 눈치껏 하고 거시기 하면 재산도 모으고 어깨 힘도 세울 텐데 우째 그리-- 야 참 답답하다. 그러니까 평생 그 모양으로 살지, 덩신 머저리 같이---』

 

내모양이 어때서?

집있고 자동차 있고 하루세끼 밥 걱정 없이 먹고 마누라 있고 자식 있고 가족 화목하고 인라인 잘타고 한 번도 죄지은 일 없어 파출소 한번 안가고 이만 하면 됐지----

 

어제(11월 7일)아침 막내가 일본에 출장 갔다 밤늦게 와서 아침 출근에 피곤하여 자동차를 태워 주면서 눈을 감고 있는 아들에게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나도 회사생활 30년에 힘들 때가 대부분이더라. 매화 난초처럼 살면 그때는 어려워도 바르게 살면 몸과 마음은 피곤해도 발을 쭉 뻗고 잠을 잘 수 있고 당당해서 좋더라. 이것은 내 방식으로 살아온 것이지만 나이 들어 보니 후회가 없더라. 네 방식은 또 다르겠지만 힘들더라도 회사일 을 하는 동안은 바르게 하면 훗날 너도 네 자식에게 이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농월-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湖上卽事(호상즉사)겨울 호수 위에서

 

雪後渾黃草(설후혼황초)

서리 온 뒤 벌판 풀은 누르다가 마르는데

 

人稀湖上道(인희호상도)

호수 끼고 도는 걸까 사람자취 드물구나.

 

寥寥心事閒(요요심사한)

한가로운 이내심사 지나치게 쓸쓸하니

 

欲共乾坤老(욕공건곤노)

넓고 넓은 하늘땅과 말없이 늙으려오.

 

                                           주대축(朱大畜)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呈金相國(정김상국) 겨울날 먼길을 떠나는 사람에게

今朝零露冷(금조영로냉)-오늘 아침 된서리처 차기도한데

履遠獨凄其(이원독처기)-멀리 멀리 떠나는길 쓸쓸하여라

處世同炊黍(처세동취서)-세상사리 비슷비슷 거의 같은데

持身若累碁(지신약루기)-사는 방식 서로달라 복잡하구나

浮沈元有數(부침원유수)-잘되어도 못되어도 모두 다 운명

覆載本無私(복재본무사)-엎치락 뒤치락 살아도 사심 없으니

白酒可人意(백주가인의)-언제나 좋은 술 마음에 들어

頹然一中之(퇴연일중지)-몸 가눌수 없도록 취해지구나

                                                                                조수(趙須)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경포대부(鏡浦臺賦) 겨울 경포대

霜風振地(상풍진지)-서릿바람이 땅에 떨어지니

鳥萬磨之刀槍(조만마지도창)-천군만마 창검소리 같고

雪花飜空(설화번공)-눈송이가 하늘 가득히 흩날리니

散千斛之玉屑(산천곡지옥설)-옥가루 천만 곳에 뿌리는 것 같구나

율곡 이이(栗谷 李珥)

 

 

이 시는 퇴계 이황선생과 함께 조선조 유학(성리학)의 두 기둥인 율곡 이이선생이 10살 때 강릉 외가 집(오죽헌)에 갔다가 강릉 경포대를 주제로 지은 시로서 세인의 칭송을 받는 시입니다. 우리들이 보는 역사속의 이율곡은 호조·이조·형조·병조 판서 등을 지냈고 특히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시무육조(時務六條-임금에게 올리는 6가지 개혁 방안)를 지어 선조에게 십만양병설 등을 주장한 정치인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을 문인(文人)으로 대하는 것처럼 율곡선생 역시 학자요 문인으로 보는 것이 훨씬 친숙감이 있습니다. 어머니 신사임당의 기질을 받았음인지 10세에 위의 경포대부(鏡浦臺賦)를 짓고 8살에 화석정(花石亭)에 시를 쓴 것을 보면 정치인 보다 문인(文人) 예인(藝人)의 소양이 깊은 것 같습니다. 지난 가을 시를 연재하면서 “화석정”을 꼭 소개할려고 했는데 아끼는 바람에 그만 놓쳤습니다. 내년 가을 까지 기다리면 아름다움과 애절함이 달아날까 싶어 이번에 “화석정”과 경포대옆 강릉차로 유명한 “한송정 달밤”을 소개드리겠습니다.

-농월-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花石亭) 가을 화석정

 

林亭秋已晩(임정추이만)-숲 속의 정자에 가을이 벌써 저물어가니,

騷客意無窮(소객의무궁)-시인의 감정이 끝없이 일어나네.

遠水連天碧(원수연천벽)-멀리 보이는 저물빛은 하늘에 이어져 푸르고

霜楓向日紅(상풍향일홍)-서리맞은 단풍은 햇볕을 받아 붉구나.

山吐孤輪月(산토고윤월)-산은 외롭게 생긴 둥근 달을 토해 내고,

江含萬里風(강함만리풍)-강은 만리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머금었네.

塞鴻何處去(새홍하처거)-변방에서 날아오는 기러기는 어디로 가는가,

聲斷暮雲中(성단모운중)-울음 소리 석양의 구름 속에 끊어지네.

 

                                                                                   이율곡 (李栗谷)

 

화석정 이야기

“화석정”시는 율곡 선생이 8살 때 파주 화석정에서 지었다고 합니다.

율곡 선생의 사당인 자운서원(紫雲書院)을 나와 오른쪽으로 계속 나가면 왼쪽에 미군부대가 나오며 삼거리를 만나게 되는데 직진하면 문산이고 우회전하면 적성으로 갑니다. 적성 가는 길로 조금만 가면 화석정에 이릅니다.

 

파주시 파평면 율곡리에 있는 “꽃돌정자”라는 이름의 화석정(花石亭)은 율곡선생님의 5대조인 강평공 이명신(康平公 李明晨)이 1443년(세종25)에 세운 뒤 증조인 이의석(李宜碩) 대에 증축하여 대물림하여온 정자입니다. 이후 이곳은 율곡선생님의 학문과 사상의 형성에 중요한 장소가 되었습니다. 강릉외가에서 태어나 여섯 살에 어머니 신사임당을 따라 서울 수진방(지금의 청진동)의 친가로 올라온 어린 율곡은 나이 여덟 살 때 이곳 화석정에 올라와 시를 지었을 정도로 감정이 풍부하였고 그 시가 화석정안에 걸려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화석정 인근의 전원을 개간하여 형제 등 일가가 모두 한 곳에 모여 대가족을 이루면서 살기를 희망하였으며 훗날 관직을 물러난 후에는 이곳에서 제자들과 함께 여생을 보내면서 시를 짓고 사색에 잠기곤 했다고 합니다.

 

당시 그의 학문에 반한 중국의 칙사(勅使) 황홍헌(黃洪憲)이 이곳을 찾아와 시를 읊고 자연을 즐겼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화석정은 원래 고려 말 대유학자인 야은(冶隱) 길재(吉再)의 유지(遺址-건물은 없고 옛 자취만 남아 있는 자리)였던 곳이라고 전해지나 자세한 문헌 기록은 없습니다.

 

조선 전기의 문신 이숙함의 정자에 대한 기록에 의하면 당나라 때 재상 이덕유(李德裕)의 별장인 평천장(平泉莊-경치가 매우 아름다웠다 함)의 기문(記文) 중에 보이는 화석(花石)이란 글을 따서 정자 이름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현재의 정자는 1966년 경기도 파주시 유림들이 다시 복원하고 1973년 정부가 실시한 율곡 선생 및 신사임당 유적 정화사업의 일환으로 단청되고 주위도 정화되었습니다. 건물 안에는 이이선생이 8세 때 화석정에서 지었다는 팔세부시(八歲賦詩)가 걸려 있고 정면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쓴 “花石亭” 현판이 걸려 있었는데 작년인가 신문에 독재자 박정희가 썼다고 현판을 바꾸었다고 합니다. 진주 촉석루 현판도 중수시에 이승만 전대통령이 썼는데 4.19 이후 하야시 현판도 바꾸었습니다. 역사라는 것은 세상의 흐름에 따라서 만들어지는 발자취인데 그 흔적을 지우는 것은 춘추역사에 대한 큰 실수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역사의식과 명색이 학자들이라는 사람들의 편견이 가소롭기만 합니다.

 

어떻게 내게 유리하고 좋은 역사만 보존하는 것이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까? 중앙청을 없애 버렸다고 하여 일제 치욕의 역사가 달라집니까?

율곡은 임진왜란이 일어날 것을 미리 알고 임진강 나루에 정자를 지어 이름을 화석정이라 하고 기름에 젖은 걸레로 정자 마루를 닦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임종 때 어려움이 닥치면 열어 보라고 하며 “봉투”를 한 장 남겼습니다.

 

1592년, 조선 팔도는 임진왜란 전쟁의 참화에 빠집니다.

순식간에 왜군이 한양 가까이 왔다는 소식에 선조는 몽진(蒙塵-임금의 피난)을 결정하고 비오는 새벽 백성들의 눈을 피해 몰래 경복궁을 빠져 나옵니다.

 

벽제관에 도착한 선조 일행은 점심을 먹는데 기록에는 왕과 왕비의 상에는 간신히 반찬 몇 가지가 올라갔으나 세자부터는 반찬이 없었으며, 호종하는 자들은 아예 굶었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쉬는 동안 많은 신하들이 도망가 떠날 때는 선조 임금을 따르는 신하들이 불과 100명이 안될 정도였습니다.

 

비를 뚫고 발걸음을 재촉해 파주 관아에 도착하였으나 한양성이 함락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선조는 다급한 마음에 아침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밤길을 재촉하여 의주로 가기를 결정을 합니다.

 

임진강 나루에 도착하였으나 장대비가 퍼부어 지척을 구분할 수 없었고 준비된 배는 물살에 휩쓸려 다른 배라도 찾을까 하였으나 빗줄기가 거세 촛불하나 켤 수 없는 어둠속에 일행은 앞을 분별할 수 가 없었습니다.

 

이 때 왕을 호종하고 있던 백사 이항복은 흰 봉투를 하나 남기며 나라에 위급한 일이 있을 때 열어보라던 율곡의 유언이 떠올랐습니다. 그 안에는 “화석정에 불을 지르라”는 한 마디만 쓰여 있었습니다.

일행은 불타는 화석정을 등불 삼아 무사히 강을 건너 피난할 수 있었습니다.

 

한시 한수에 얽힌 역사적 내용이나 사연들이 이렇게 많습니다. 그 자료를 찾아 책을 읽고 기록을 검색하여 정리를 하는동안 역사적 지식도 늘고 독서의 기회도 갖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책 많이 읽으세요.

-농월-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寒松亭曲(한송정곡)가을 강릉 한송정 달밤 노래

 

月白寒松夜 (월백한송야)-달 밝은 한송정 밤에

波安鏡浦秋 (파안경포추)-파도 잔잔한 경포대의 가을이여 !

哀鳴來又去 (애명래우거)-슬피 울며 오고 또 가는

有信一沙鷗 (유신일사구)-백사장 갈매기 한 마리가 소식을 전하네.

                                                                                     장연우(張延祐)

 

 

달 흰 한송정 밤물결 잔 경포의 가을이여 !

한송정에 달이 떴습니다. 경포호수에 가을빛이 붉게 물듭니다.

미풍에 파르르 떠는 잔잔한 물결 함께 거닐던 옛 님은 어디 갔나요.

갈매기만 그때처럼 끼룩끼룩 날고 있을 뿐입니다.

그대 떠난 후 내 마음엔 물결 잘 날이 없었습니다.

달 떠오르면 자꾸만 사무치는 그리움에 오늘밤도 잠 못 이루고 호숫가를 서성입니다.

달은 경포대 앞바다에도 뜨고, 호수위에도 뜨고, 그리운 그대의 눈동자에도 뜨고,

그대와 마주 들든 술잔에도 떠올랐겄만

지금은 내마음속에 외로움만 뜹니다.

-농월-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동야(冬夜)겨울밤 김삼의당

 

銀漏丁東夜苦長(은루정동야고장)

밤은 길어 괴로운데 물시계 치는 소리

 

玉爐火煖繞殘香(옥로화난요잔향)

따뜻한 화로에는 남은 향기 감돌고

 

依依曙色生窓戶(의의서색생창호)

어렴풋한 새벽 빛이 창문에서 밝아오는데

 

鷄則悲鳴月出光(계칙비명월출광)

닭 우는 소리 아니고 달 떠오르는 빛이로다

 

                                                         김삼의당(金三宜堂)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被謫北塞(피적북새)겨울에 북쪽 변방으로 귀양가며

 

歎息狂歌哭失聲(탄식광가곡실성)

탄식하며 미친 듯 노래하고 실성한듯 울어봐도

 

男兒志氣意難平(남아지기의난평)

사나이 품은 뜻 펼치려니 너무 어려워

 

西山日暮群鴉亂(서산일모군아난)

서산에 해지려니 까마귀 떼 어지럽고

 

北塞霜寒獨雁鳴(북새상한독안명)

변방 서리 찬 날씨에 기러기 울음소리만 들려오네

 

千里客心驚歲晩(천리객심경세만)

천리 먼 곳 나그네 한 해가 감을 아쉬워하고

 

一方民意畏天傾(일방민의외천경)

이 나라 백성들은 하늘의 뜻 기울어짐을 걱정하네

 

不如無目兼無耳(불여무목겸무이)

눈 없고 귀 없는 듯

 

歸臥林泉畢此生(귀와임천필차생)

시골로 돌아가 한 평생 살고 싶어라

                                                             윤선도(尹善道)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창 밖의 눈 위에 달이 다가와

 

紗窓近雪月(사창근설월)-고운 창의 눈 위에 달이 다가와

滅燭延淸輝(멸촉연청휘)-촛불 끄고 맑은 달빛 맞아 들이네

珍重一盃酒(진중일배주)-삼가 올리는 한 잔 술에

夜蘭人未歸(야란인미귀)-밤 깊도록 내곁에 임은 돌아가지 않네

 

                                                                                         이성중(李誠中)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재설(齎雪)겨울 눈개인 날

 

風卷寒雲暮雪晴(풍권한운모설청)

바람에 찬 구름 걷히고 저물녁에 눈이 개어

 

江煙洗盡柳條輕(강연세진유조경)

버들가지 가벼워져 강 경치는 씻은 듯 하네

 

簷前數片無人掃(첨전수편무인소)

처마 밑 눈송이를 쓸 사람이 없어도

 

又得書窓一夜明(우득서창일야명)

밤 들면 글읽는 창문을 밝혀주지 않는가

 

                                                                   융욱(戎昱)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눈내린 들을 걸을때는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눈이 많이 내린 산이나 들을 처음 걷는 사람은

 

不須胡亂行(부수호란행)

절대로 어지럽게 걷지 말고 바른 걸음으로 걸으소서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

오늘 내가 걸어가고 있는 이 발자국은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반드시 뒤에 따라오는 사람의 이정표가 됩니다.

                                                             서산대사(西山大師)

 

이시는 임진왜란 때 승병으로 일본의 왜적을 물리치는데 큰 공을 세운 서산대사 휴정스님의 시로서 모름지기 지도자는 바른 길을 걸으라는 경구입니다.

김구(金九)선생이 평생 애송하는 시 입니다

김구선생은 잘 알려진 대로 조국이 광복 후 남북한이 통일정부가 되기를 몸 바쳐 갈망했으며 백범은 말하기를 “나는 조국광복이 되면 광화문에 문지기가 되겠다” 『내가 잘난 사람이 아니라 못난 한 사람이 민족의 한 분자로 살아간 사람으로 백범이라는 내 호가 이것을 의미한다』고 말하고 조국애와 청렴과 바른길을 걷는 모범을 몸소 실천한 분입니다.

그런데 정말 가소로운 것은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중의 한사람이 이 서산대사의 시를 김구선생이 애송한 것처럼 자기도 애송한다고 합니다. 이시의 중요한 강조는 지도자는 바른길을 걸으면서 모범을 보이라는 큰 의미인데 자식이 돈을 부정하여 줄줄이 감옥행을 하여 국민의 원성을 산 사람이 마치 자기가 김구 같은 애국자라는 위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란 말처럼 나를 수양하고 내가족을 잘 다스린 다음에 천하를 다스려야 되는데 자식하나 제대로 교육시키지 못하면서 어떻게 이 시를 애송한다고 할수 있습니까?

교언영색(巧言令色-남의 환심을 사기 위해 교묘히 꾸며서 하는 말과 아첨하는 얼굴)입니다

 

-농월-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설경(雪景)눈경치 설경

天皇崩乎人皇崩(천황붕호인황붕)

천황씨가 죽었나 인황씨가 죽었나

 

萬樹靑山皆被服(만수청산개피복)

나무와 청산이 모두 상복을 입었네.

 

明日若使陽來弔(명일약사양내조)

밝은 날에 해가 찾아와 조문한다면

 

家家첨前淚滴滴(가가첨전누적적)

집집마다 처마 끝에서 눈물 뚝뚝 흘리겠네

                                                          김삿갓 김병연

 

*천황씨와 인황씨는 고대 중국 전설에 나오는 삼황오제라 일컬어지는

임금중의 두사람 이다.

눈덮힌 나무들을 마치 흰 상복입은 상주들로 보고

눈이 녹아 고드름이 되어 흐르는 물을 임금의 죽음을 슬퍼하여 흘리는

눈물에 비유하였다.

-농월-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부관서방애회(赴關西防昹懷) 눈쌓인 겨울 사냥

 

獰風驅雪曉來深(영풍구설효래심)-매운바람 눈보라쳐 새벽녘되자

寒透將軍病臥衾(한투장군병와금)-찬기운 이불속에 스며드노나

平明强起彈弓坐(평명강기탄궁좌)-아침일찍 일어나 활 퉁겨보니

惟有陰山大獵心(유유음산대렵심)-으스름산 눈쌓인데 사냥가려네

                                                                                              유혁연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도중(途中)눈오는 도중

日暮朔風起(일모삭풍기)-해지자 매운바람 살을 어이고

天寒行路難(천한행로난)-날씨추어 길걷기 정말 어렵네

白烟生凍樹(백연생동수)-연기조차 찬숲에 얼어 서리고

山店雪中看(산점설중간)-촌술집은 눈속에 쌓여 있구나

                                                                                  윤계(尹堦)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雪後(雪後)눈온후에

屋後林鴉凍不飛(옥후림아동불비)

수풀속 언(凍)까마귀 날지못하고

 

晩來瓊屑壓松扉(만래경설압송비)

솔사립문 찬눈에 살을어이네

 

應知昨夜山靈死(응지작야산영사)

알것이다 간밤에 산신령 죽어것을

 

多少靑峰盡白衣(다소청봉진백의)

산마다 빠짐없이 상복 입었네

                                   신의화(申儀華)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영설(詠雪) 눈

松山蒼翠暮雲黃(송산창취모운황)-송악산 푸르름에 저녁 구름 물들더니

飛雪初來已夕陽(비설초래이석양)-눈발 흩날리자 이미 해는 저물었네.

入夜不知晴了未(입야불지청료미)-밤들면 혹시나 이 눈이 그칠려나

曉來銀海冷搖光(효래은해랭요광)-새벽엔 은 바다에 눈 빛이 차갑겠지.

                                                                                     이색(李穡)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모설산행(冒雪山行)눈내린 산을 강행하다

 

山橋日暮少人行(산교일모소인행)

산 속 다리에 날이 저물어 사람의 통행 적어지고

 

野店炊煙一抹橫(야점취연일말횡)

들 주점 밥 짓는 연기 한 가닥, 옆으로 퍼져간다

 

緩轡微吟歸得得(완비미음귀득득)

말고삐 멈추고 시를 읊조리다가 돌아오니

 

馬蹄隨處踏瑤瓊(마제수처답요경)

말 발굽 이르는 곳마다 얼음 구슬 밟는 듯하다

                                                                  권건(權健)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설후(雪後)눈내린 후

臘雪孤村積未消(납설고촌적미소)

외딴 마을 섣달 눈이 쌓인 채 안녹으니

 

柴門誰肯爲相敲(시문수긍위상고)

그 누가 사립문을 즐거이 두드리랴

 

夜來忽有淸香動(야래홀유청향동)

밤이 되어 홀연히 맑은 향이 전해 오니

 

知放寒梅第幾梢(지방한매제기초)

매화꽃이 가지 끝에 피었음을 알겠노라

                                          유방선(柳方善)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重賞仙臺峰瀑布(중상선대봉폭포)겨울 선대폭포를 다시 찾아

仙臺洞裡客重尋(선대동리객중심)

나그네가 다시 찾아본 선대동 겨울폭포

 

雪後空林暮景深(설후공림모경심)

눈 내린 뒤 빈 숲에 저녁 경치가 짙게 깔린다

 

氷閣瀑流聲斷續(빙각폭류성단속)

얼음 누각의 폭포 소리 끊겼다 이어지며

 

峽風吹送玉龍吟(협풍취송옥룡음)

골짝 바람 소리는 옥룡의 신음인 듯 하구나

                                                      임백호(林白湖)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동야(冬夜) 겨울 밤

空堂夜深冷(공당야심냉)-텅 빈 집 밤 되니 더욱더 썰렁하여

欲掃庭中霜(욕소정중상)-뜰에 내린 서리나 쓸어보려 하였다가

掃霜難掃月(소상난소월)-서리는 쓸겠는데 달빛 쓸어내기 어려워

留取伴明光(유취반명광)-그대로 달빛과 어우러지게 그냥 남겨두었네

                                                                                황경인(黃景仁)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雪夜獨坐(설야독좌)눈 오는 밤 홀로 앉아

破屋凉風入(파옥량풍입)-허술한 집에 싸늘한 바람 불어 들고

空庭白雪堆(공정백설퇴)-빈 뜰엔 흰 눈이 쌓이네

愁心與燈火(수심여등화)-근심스런 내 마음과 저 등불은

此夜共成灰(차야공성회)-이 밤 재가 다 되었네

                                                                    金壽恒(김수항)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눈(雪)

村晚初飛雪(촌만초비설)-시골 마을 저녘 처음 날리는 눈

山寒密掩扉(산한밀엄비)-산빛도 차가워 문 닫고 앉았다.

滾風霏細屑(곤풍비세설)-세찬 바람은 눈 싸라기 이리저리 몰고

承月皎淸輝(승월교청휘)-술잔 속에 비치는 맑고 밝은 달 그림자.

大壑松筠凍(대학송균동)-큰 골짜기 소나무와 대나무 얼어 붙고

空林鳥雀饑(공림조작기)-빈숲의 참새 떼들은 배고픔에 죽어 간다.

區區賦鹽絮(구구부염서)-구구하게 염서의 시 읊어 본다만

未可語天機(미가어천기)-기막힌 이 자연 현상 표현도 못하겠다.

                                                                             이식(李植)

 

이식(李植)은 조선 인조 때의 명신(名臣)(1584~1647). 자는 여고(汝固). 호는 택당(澤堂) 한학 4대가의 한 사람으로 이조 판서를 지냈다. 병자호란 때에 척화파(斥和派)로 청나라에 끌려갔다 돌아왔다. 《선조실록》을 전담하여 수정하였으며, 저서에 문집 《택당집》이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雪後(설후) 눈온 뒤에 짓다

雪後山扉晩不開(설후산비만부개)

눈온 뒤 산 사립은 늦도록 닫혀 있고

 

溪橋日午少人來(계교일오소인래)

시내가 다리 한낮인데 오가는 사람 적다.

 

篝爐伏火騰騰煖(구로복화등등난)

화로에 묻은 불은 기운이 모락모락

 

茅栗如拳手自煨(모율여권수자외)

알 굵은 산 밤을 혼자서 구워 먹네.

                                        이항복(李恒福)

 

이항복(李恒福)

조선 선조 때의 문신(1556~1618)으로 자는 자상(子常). 호는 백사(白沙) 필운(弼雲)이다.

임진왜란 때 병조 판서로 활약했으며, 뒤에 벼슬이 영의정에 이르렀다. 광해군 때에 인목 대비 폐모론에 반대하다 북청(北靑)으로 유배되어 죽었다.

이항복이 필운정을 짓고 살았던 집이 인왕산 줄기의 유명한 필운대(弼雲臺)로 종로구 필운동 현 배화여고 뒤뜰에는 암벽만 남아 있다. 참고로 후손 이유원이 조상을 그리는 글이 너무 아름답게 새겨져 있어 여기에 소개한다.

 

백사 선생 필운대(白沙先生弼雲臺)

我祖舊居後裔尋(아조구거후예심)

우리 할아버지 살던 옛집에 후손이 찾아왔더니,

 

蒼松石壁白雲深(창송석벽백운심)

푸른 바위에는 흰구름이 깊이 잠겼다.

 

遺風不盡百年久(유풍부진백년구)

끼쳐진 풍속이 백년토록 전해오니

 

父老衣冠古亦今(부노의관고역금)

옛 어른들의 의관이 지금껏 그 흔적을 남겼구나

                                                         이유원(李裕元)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雪後(설후)눈온후에

白髮羞看雪(백발수간설)-늙어지니 찬눈보기 하도싫어서

終朝不啓門(종조불계문)-늦은아침 되도록 문안열었소

家僮疑我病(가동의아병)-감기인가 아이들 의심하고서

窓外問寒溫(창외문한온)-문밖에서 추시냐고 물어를보네

                                                                            진익종(秦益重)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영설(詠雪) 눈을 노래하다

不夜千峯月(불야천봉월)-아직 밤 아닌데 봉우리마다 달빛이요

非春萬樹花(비춘만수화)-봄 아니지만 나무마다 꽃이 피었네.

乾坤一點黑(건곤일점흑)-천지에 오직 한 점 검은 빛은

城上暮歸鴉(성상모귀아)-성 위에 저물녘 돌아가는 까마귀 한마리.

                                                                               정창주(鄭昌胄)

 

정창주(鄭昌胄1606~?)

조선 중기 문신으로. 1646년 문과중시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53년 승지(비서관)가 되었다. 문장에 뛰어났으며, 문집으로《만사집》을 남겼다.

 

시인이 9살에 썼다고 하는 이시는 참으로 재기가 발랄하여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미소를 짓게 한다. 꾸밈없는 아이의 천진함과 소박함은 눈이 소복하게 쌓인 어느 겨울날의 풍광을 저만치 시간을 돌려 낮 아닌 낮과 봄 아닌 봄을 불러와 보지 못햇던 새로운 자연의 표정으로 깨어 나게 한다.

겨울의 가슴을 가득히 덮은 눈,

그 눈의 깊이를 뒤집어 볼 수 있는 맑은 눈(目)이 있었던 까닭에

눈은 밤이 아닌데도 뭇 봉우리에 달빛을 데리고 오고

봄이 아닌데도 온 나무에 꽃을 피우게 한다.

-농월-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봉설(逢雪)눈을 만나다

馬上逢新雪(마상봉신설)-말 위에서 첫눈을 맞는데

孤城欲閉時(고성욕폐시)-쓸쓸한 성문이 닫히려 한다

漸能消酒力(점능소주력)-눈발은 점점 술을 깨우고

渾欲凍吟髭(혼욕동음자)-시 읊는 수염을 얼어 붙게한다

落日無留景(낙일무류경)-지는 해에 경치는 보이지 않고

棲禽不定枝(서금부정지)-둥지에 드는 새도 가지를 정하지 못한다

㶚橋驢背興(패교려배흥)-패교를 건너는 나귀위의 흥을

吾與故人期(오여고인기)-나는 옛친구와 기약하노라

                                                                       어무적(魚無迹)

 

어무적(魚無迹, ?~?)

연산군때의 시인이다.

유랑하는 백성의 어려움을 대변한 유민탄(流民嘆)의 작품을 쓴 조선 중기 시인이다.

아버지는 사대부였으나 어머니가 관비(官婢)였으므로 관노(官奴)의 신분이 되었다.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천한 신분으로서는 드물게 한문을 익힐 수 있었고 특히 시에 뛰어났다.

연산군때 백성의 어려운 사정을 호소하는 상소문을 올였으나 묵살되었다. 그 후 매화나무에까지 세금을 부과하는 폭정을 규탄한 작매부(斫梅賦)를 쓴 탓에 원의 노여움을 사서 도망다니다가 객사하였다. 그의 시는 특히 유랑하는 백성의 어려움과 가난한 사람들을 대변하는 유민탄(流民嘆)이 유명하다.

-농월-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대설(大雪)큰 눈

塡壑埋山極目同(전학매산극목동)

골 메우고 산을 덮어, 천지가 같이 보이는데

 

瓊瑤世界水晶宮(경요세계수정궁)

영롱한 옥빛세상, 반짝이는 수정궁궐 이로다

 

人間畵史知無數(인간화사지무수)

인간 세상 화가들이 수없이 많겠지만

 

難寫陰陽變化功(난사음양변화공)

음양 변화 그 공덕을 그려내기 어려우리라

                                         신흠(申欽)

 

신흠(申欽,1566~1628)

조선조 선조때의 신망 받은 문신(文臣)입니다. 문장력 뛰어나 중국 명나라 외교문서의 제작을 도맡아 하였습니다. 선조의 딸인 정숙옹주(貞淑翁主)의 부마(駙馬임금의 사위)가 되어 영의정까지 지내고, 정주학(程朱學송나라때의 신유학)학자로 이름이 높았습니다.

-농월-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阿赤河陣中(아적하진중) 겨울 진중에서

虜中霜落鐵衣寒(로중상낙철의한)-찬 기운 갑옷속에 스며드는데

突騎橫行百里間(돌기횡행백리간)-말을 달려 적진 사이를 횡행하였오.

夜戰未休天欲曉(야전미휴천욕효)-밤새도록 싸움은 끝이 안나고

臥看星斗正闌干(와간성두정란간)-하늘에는 별들만 깜박이누나.

                                                                                 신숙주(申叔舟)

 

조선조 단종과 수양대군때의 문신으로 영의정 등 요직을 두루 역임한 조선 초기 핵심 정치인입니다. 세종 때는 훈민정음 창제를 위한 자료 수집에 큰 공이 있는 학자입니다.

수양대군이 계유정난(癸酉靖難단종의 왕위를 빼앗은 구테타)을 일으켰을 때 처음에는 사육신에 가담하였으나 후에 세조에 가담하여 이로 인해 당시 사육신(死六臣)과 생육신(生六臣)으로 대표되는 충절(忠節)의 정치논리 상황에서 변절자라는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습다. 여름에 잘 쉬는 숙주(叔舟)나물의 이름이 변신을 잘 한다고 하여 신숙주(申叔舟)에서 유래 되었다고 합니다.

세조 6년에는 동북방면에서 야인(野人)의 침입이있자 좌의정(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은 지금의 국무총리급 벼슬)의 신분으로 강원·함길도 도체찰사(전쟁지역의 군의 최고 지위)에 임명되어 전쟁에 출정하여 뛰어난 전술 구사로 야인의 소굴을 소탕하여 병법에도 조예가 깊은 인물입니다.

-농월-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설옥(雪屋)눈 내린 집

門外屐痕過訪疎(문외극흔과방소)

문밖에 나막신 자국 보니 찾아간 사람 드물고

 

半庭積雪映窓虛(반정적설영창허)

정원에 쌓인 눈, 창안에 쓸쓸히 비춰든다

 

土爐火冷黃昏近(토로화냉황혼근)

흙난로 불기운 차가워지니 황혼이 가까운데

 

猶自床頭勘古書(유자상두감고서)

책상머리에서, 여전히 옛책을 뒤적이고 있다

                                                           전기(田琦)

 

전기(田琦1825~1854)

조선 후기의 화가입니다. 추사 김정희의 문하에서 서화(書畵)를 배웠으며 추사파 중에서도 가장 문인화(文人畵)의 경지를 잘 이해하고 구사한 화가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그림은 송·원나라 때의 남종파(南宗派) 화풍을 계승하였는데 특히 산수화를 잘 그렸으며 산수화는 거의 고요하고 쓸쓸하면서도 담백한 화풍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서(書)와 시문(詩文)에도 뛰어났습니다.

오늘이 대설(大雪) 절기입니다.

-농월-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효좌(曉坐)겨울 새벽에 일찍깨어 앉아

一陣歸鴻呌遠風(일진귀홍규원풍)

기러기떼 먼먼 하늘 바람차고 날아가고

 

竹風時雜雨聲中(죽풍시잡우성중)

우수수 댓잎소리 비에 섞여 우는구나!

 

寒燈欲滅香初歇(한등욕멸향초헐)

차가운 등불마저 가물가물 꺼지렬제

 

曉月猶遲小院東(효월유지소원동)

새 는달 아직 남아 다락머리 걸려있네

                                                   박씨(朴氏)

 

효좌(曉坐)라는 시의 제목은 “새벽에 일어나” 조용히 명상에 잠기면서 지은 시를 말합니다.

새벽에 일찍일어난 제목으로 시를 쓴 사람들이 정약용 김부용당 김정 육구몽등 작자의 이름을 알 수 있는 시인들이 다수 있지만 박씨(朴氏)처럼 이름을 밝히지 않은 익명(匿名)작도 많습니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여류작가들 중 사대부가나 서민집의 부인 기생들이 쓴 익명의 시들이 많은데 추측하면 여자의 사회적 지위가 낮고 사회적 활동이 자유롭지 못하고 반상(班常)이 엄격히 구분되던 시대에 하고 싶은 일과 말을 마음대로 하지 못하던 시대에 비록 이름은 밝히지 못하지만 자기의 사상을 표현하는 저항적 현상이라고 여겨집니다. 이것이 조선시대 여성의 한(恨)입니다.

시속에 풍기는 내용으로 보아 박씨(朴氏)도 여성으로서 그중의 한사람으로 생각됩니다.

-농월-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雪(설) 눈

天林欲瞑已棲鴉(천림욕명이서아)

온 숲이 저물어 갈가마귀 깃드는데

 

燦燦明珠尙照車(찬찬명주상조거)

찬란히 반짝이며 수레를 비추는 눈

 

仙骨共驚如處子(선골공경여처자)

신선도 놀랄 만큼 깨끗한 순수세상

 

春風無計管光花(춘풍무계관광화)

봄바람도 저 꽃들은 어쩌하지 못하네

 

聲迷細雨鳴窓紙(성미세우명창지)

가랑비 소리인 듯 창호지를 울리고

 

寒引羈愁到酒家(한인기수도주가)

추위에 시름은 주막으로 발길 끌어

 

萬里都盧銀作界(만리도노은작계)

만리천지 은으로 만들어 놓은 세상

 

渾敎路口沒三叉(혼교로구몰삼차)

뿌여니 동구 앞 세 갈래 길 덮였네!

                                            이인로(李仁老)

 

이인로(李仁老, 1152~1220)는 고려시대 대 학자로서 시문(詩文)뿐만 아니라 글씨에도 능해 초서(草書) 예서(隸書)가 특출하였습니다. 시와 술을 즐기며 당대의 석학 오세재(吳世才)·임춘(林椿)·조통(趙通)·황보 항(皇甫抗)·함순(咸淳)·이담지(李湛之) 등과 교류하여 강좌7현(江左七賢)이라고 불렸습니다

자는 미수(眉叟) 호를 쌍명재(雙明齋)라 부르며 정중부(鄭仲夫)의 난 때는 머리를 깎고 절에 들어가 난을 피한 후 다시 환속하였습니다.

저서에 유명한 파한집(破閑集)과 쌍명재집(雙明齋集)이 있습니다.

-농월-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설야(雪夜) 눈오는 밤

一穗寒燈讀佛經(일수한등독불경)

한 촉 찬 등불에 불경을 읽다 보니

 

不知夜雪滿空庭(부지야설만공정)

밤눈이 뜨락에 가득내린 줄도 몰랐네

 

深山衆木都無籍(심산중목도무적)

깊은 산 나무들은 아무런 기척 없고

 

時有檐永墮石牀(시유첨영타석상)

처마 끝 고드름만 섬돌에 떨어진다

                                            혜즙(慧楫)

 

법명을 慧楫(혜즙)스님이라 하고 법호를 철선강사(鐵船講師)라 기록되어있습니다. 성씨는 김씨로서 전남 영암 출신입니다.

5살되던 해 아버지를 여의고 14세 되던해인 순조4년(1804) 해남 두륜산 대흥사로 출가하여 성일(性一)스님 문하에서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됩니다. 스님은 이후 각처를 돌아다니며 20여년간 학인들을 교육하고 지관을 닦았습니다. 스님은 조선 철종 9년(1858) 대둔사 상원암에서 저술과 교육으로 일관한 67세의 생애를 마쳤습니다.

-농월-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서리맞은 낙엽 바람에 날리고

風飄霜葉落(풍표상엽락)-바람이 서리맞은 잎을 떨어트린다

落地便成飛(락지편성비)-떨어지는 잎이 다시 바람에 날아간다

因此心難定(인차심난정)-어쩔거나 이 마음 맡길 데 없어

遊人久未歸(유인구미귀)-잎비 속에 길을 잃고 헤메이나니

                                                                                경허성우(鏡虛惺牛)

 

참고

마지막절에 “잎비 속에 길을 잃고 헤메이나니” 라는 글 중에 『잎비』라는 말이 있습니다. 잎비라는 뜻은 “낙엽이 비처럼 내린다”는 뜻의 엽우(葉雨)를 말합니다.

눈비 소낙비 실비 와 같은 표현입니다. 제가 생각 할 때는 굳이 “잎비” 라고 표현하지 않해도 되는데 낙엽이 바람에 날려 비처럼 떨어진다고 작가는 생각하여 아마도 분위기를 살린다는 의미로 생각됩니다.

 

경허성우(鏡虛惺牛,1849~1912)

출생지는 전북 전주이며 한말의 승려로 범어사의 조실을 지냈다.

9세 때 과천 청계사(淸溪寺)로 출가하여 계허(桂虛)스님 밑에서 5년을 보냈다. 1862년(철종 13) 한학(漢學)을 배우고, 기초 불교경론을 배웠다. 1879년 옛 스승 계허를 찾아가던 중 폭우를 만났으나 마침 돌림병의 유행으로 인가에 유숙할 수 없어 빗속에서 나무 아래 앉아 밤을 새다가 생사의 이치를 깨닫고 동학사로 돌아와 3개월 동안 면벽(面壁)하여 크게 깨달았다.

안변 석왕사의 증사가 되었다가 홀연히 자취를 감추고 그후 범인의 모습으로 돌아다니며 기행(奇行)을 하다가 1912년 4월 갑산에서 입적하였다.

 

*******************

한시(漢詩)라는 것은 한자로 기록한 시입니다.

한국·일본 등지에서 한문(漢文)을 사용하여 중국의 전통적인 민요를 시노래 (시가詩歌)양식에 따라 지은 문학 작품을 말합니다. 그리고 한시를 짓는다는 것은 한문을 많이 아는 사람만이 가능합니다. 시라는 것은 작자가 하고 싶은 말을 몇 줄의 글에 압축하여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읽는 것도 결코 쉬운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매일 한시를 한줄 한줄 읽어 가면 나도 모르게 시를 읽는 습관이 되고 막연히 무언가를 느끼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속에 알이 차게 됩니다. 사실 서울에 많은 사람들이 서예전시회, 미술전시회, 클래식음악회, 심포니오페라, 그리스 로마 조각미술 등을 찾는 것은 그 내용을 잘 알아서 찾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보고 읽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입니다. 그것이 습관화 되면 자연히 동화되어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운전을 하거나 인라인을 타는 것도 감(感)으로 하는 것입니다.

매일 시를 한수씩 읽는 것은 매우 좋은 독서입니다. 하루에 시를 한줄씩읽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지난 9월 1일부터 지금까지 71수를 읽었습니다. 큰 성과입니다.

저는 술은 안 권해도 독서는 꼭 권하고 싶습니다. 책을 많이 읽어야 진정한 지식인입니다. 신문이나 TV 본 내용은 지식(知識)이 아니고 상식(常識)입니다. 누구나 아는 일입니다.

동서양의 고전(古典)중에서 동양고전을 권합니다. 동양고전에는 주옥(珠玉)같은 글이 실려 있습니다. 나이 들어 고집불통인 우리에게 책아니면 누가 가르침을 주겠습니까?

많이 읽으세요!

-농월-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동지(冬至) 동짓날

貪程夜渡津(탐정야도진)-길 재촉하여 밤에 나루를 건너니

今日一陽新(금일일양신)-오늘이 바로 동짓날이로구나

竹籬疏映雪(죽리소영설)-대나무 울타리는 성기어 눈이 비치고

梅塢別藏春(매오별장춘)-매화나무 언덕에는 따로 봄을 감추었구나.

樓閣臨長道(루각림장도)-누각은 긴 길옆에 가까이 있는데

經過問幾人(경과문기인)-지나는 사람 몇몇이나 되는지 물어본다.

白雲看漸逈(백운간점형)-흰 구름은 바라볼수록 점차 아득히 멀어

回首暗傷眞(회수암상진)-머리 돌려보니 은근히 마음만 상하는구나!

                                                                                                   윤회(尹淮)

 

한해를 보내는 동짓날은 이상히 더 추워 보이고 마음이 무거운 느낌입니다. 객지에 있는 사람들은 항상 보는 정자도 매화나무도 마음을 허전하게 합니다.

윤회(尹淮, 1380~1436)는 조선조 세종때의 이름난 문신(文臣)으로 정도전이 쓴 “고려사”를 다른 자료와 대조하여 교정할 정도로 대단한 학자 하였습니다. 유교를 국교로 하여 불교를 배척하는 건의를 올렸고. 1432년에는 세종의 명으로 팔도지리지(八道地理志-조선전기의 지리책)를 편찬하였습니다.

어려서부터 경사(經史-중국 고전인 경서(經書)와 사기(史記))에 통달하여 이름을 떨쳤습니다.

-농월-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야지반(夜之半) 동짓달 기나긴 밤

截取冬之夜半强(절취동지야반강)-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 베어내어

春風被裏屈幡藏(춘풍피리굴번장)-춘풍이불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有燈無月朗來夕(유등무월랑내석)-어른님 오시는 밤이어 든

曲曲鋪舒寸寸長(곡곡포서촌촌장)-굽굽이 펴리라

                                                            황진이(黃眞伊)

 

황진이의 시를 옮기게 되니 이 시인에 대하여 너무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길게 쓸 수가 없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황진이(黃眞伊)는 태어난 날과 죽은 날이 확실하지가 않습니다. 조선시대의 시인 겸 명기(名妓)로서 일명 진랑(眞娘)이라고 하며 기명(妓名)을 명월(明月)이라 불렀습니다. 개성(開城) 출생으로 조선조 중종 때 양반집 진사(進士)의 서녀(庶女)로 태어났으나, 사서삼경(四書三經)을 읽고 시(詩) 서(書) 음률(音律)에 뛰어났으며, 출중한 용모로 더욱 유명하였습니다. 지난번 드라마에도 나온 이야기지만 15세 무렵에 동네 총각이 자기를 연모하다가 상사병(相思病)으로 죽자 기생에 몸을 던져, 선비 문인(文人) 고매한 학자들과 교유하며 탁월한 시의 재주와 용모로 그들을 매혹시켰습니다.

 

30년간 벽만 바라보고 수도에 정진하는 지족선사(知足禪師)를 찾아가 미색으로 유혹하여 결국 굴복시켜 파계승을 만들고 말았다는 일화가 유명하며, 돈만 아는 사람들이 천금을 가지고 유혹해도 돌아보지 않았으나, 대 유학자 서경덕이 학문이 높고 인격이 고매 하다는 말을 듣고 찾아가 여러가지 방법으로 시험하고 유혹하다가 실패하고 그의 높은 인격에 탄복하여 평생 서경덕을 사모하여 스승으로 섬기면서 정신적으로 사랑했다고 합니다.

 

황진이와 화담 서경덕과의 정신적 사랑에 대한 재미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황진이와 서경덕이 금침(衾枕)속에서 나란히 누워 하룻밤을 같이 자게 되었는데 밤이 깊어 가도 서경덕이 황진이에게로 가까이 오지를 않습니다. 서경덕이 어려워서 황진이가 먼저 손을 넣어 껴안을 수도 없는 처지인데 새벽이 가까이와도 꿈쩍도 안합니다. 참다못해 황진이가 손으로 살며시 서경덕의 거시기를 만져보니 놀랍게도 화를 잔뜩 낸 놈이 씩씩거리며 열을 내고 버티고 서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침이 되어 조반상을 마주 하고 황진이가 은근히 서경덕에게 묻습니다. 선생님, 어제 저녁에 하도 조용하여 제가 선생님의 거시기를 만저보니 그 굳굳하기가 마치 여철견강(如鐵堅剛-강견한 쇠말뚝)과 같았습니다. 어찌하여 참고 그대로 계셨습니까?

서경덕이 대답하기를 “명월아 나는 이미 마음속으로 네 속에 들어가서 너를 사랑했는데 또 어디를 들어간다는 말이냐”?』

 

여기에서 중국의 유명한 성의학의서(性醫學醫書) 소녀경(素女經)에 접이불사(接而不射)라는 말이 있습니다. 즉 여성에게 삽입을 하여도 사정을 안 한다는 말입니다. 한의학적으로 접이불사는 “접할 때마다 사정하면 우리 몸의 세 가지 에너지인 정(精)기(氣) 신(神)이 약해저서 건강을 유지하는데 지장이 있으므로 사정하는 것을 아끼면 그 정이 돌아서 뇌(腦)를 보호하여 전신건강이 좋아진다”라고 하였습니다. 정(精)의 무분별한 배출을 경계한 말입니다.

 

사랑에 있어서 접이불사(接而不射)의 의미는 육체적, 성적으로 불타는 에로스(Eros) 사랑보다는 순수하고 정신적인 사랑을 추구하는 플라토닉사랑(Platonic love)과 관계지울수 있습니다.

서경덕은 황진이를 불태우다 사라지는 황홀경의 육체적 대상으로 보지 않고 숭고한 정신적 예술적 반려자(伴侶者)로 보았던 것입니다.

 

 -문장이해-

한 허리 베어내어 - 밤의 한 중간을 도려내어

춘풍이불 - 봄바람 같은 이불

서리서리 - 길고 잘 굽는 물건을 포개며 휘감아 올리는 모양

어룬님 - 정든 사람, 서방님

 

“동짓날 기나긴 밤을” 이 작품은 황진이가 서경덕을 사모하며 지은 시라고 합니다. 사모하는 임이 자신에게 잘 오지 않을뿐더러, 오더라도 다음날 아침이면 떠나버리기에, 황진이는 임과 함께 있을 수 있는 동짓달의 긴 “밤”을 모아두었다가 임이 오신 날 펼쳐내어 임과 오래 동안 함께 있기를 바라는 심경을 쓴 시입니다.

-농월-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영반월(詠半月) 반달을 노래함

誰斲崑山玉(수착곤산옥)-그 누가 곤륜산의 옥을 깍아서

裁成織女梳(재성직녀소)-직녀의 머리빗으로 만들었는가

牽牛離別後(견우이별후)-이별한 견우는 오지를 않아

謾擲碧空虛(만척벽공허)-기다림에 지쳐 던진 빗, 창공에 걸렸구나

                                                                          황진이(黃眞伊)

 

황진이!

그녀는 고작 6수의 시조와 10여편의 한시를 남겼지만 한국문학에 차지한 한 자리는 매우 비중이 크다 할 수 있습니다.

 

위의 “반달”은 황진이의 섬세한 미적 표현감각이 발휘되고 있는 최고의 감정을 묘사한 시로서 매우 수준 높은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가람 이병기 선생은 이백과 두보에 비견될수 있는 뛰어어난 시라고 절찬하고 있습니다.

 

“반달”에서 떠난 임을 견우에 빗댄 직녀, 즉 자신의 상한 마음을 허공에 걸린 푸른 달로 표현했는데, 견우와 직녀는 아주 헤어지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12월 13일 한시 “동짓달 기나긴 밤” 에서는 임을 기다리는 자신을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황진이는 여인들의 일상도구인 “빗”의 모양이 달의 모양과 같다는 것에 착안(着眼)한 것입니다.  자신이 곧 직녀(織女)에 비유되고 있음을 암시(暗示)하고 이별한 견우가 오지를 않아 기다리다 지쳐 화가 나서 옥으로 만든 머리빗을 푸른 하늘에 던져버린 것이 반달이 된 것입니다.

즉 임을 보낸 여인에게 몸단장이 필요없이 푸른 하늘에 던져버린 빗이 바로 반달이기 때문에 이 시의 뛰어난 재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황진이의 “반달”의 시의 제목은 누가 뭐라 해도 뛰어남이 있습니다. 황진이는 허공에 걸린 달을 통하여 자신의 허탈한 심정을 우회적( 迂廻的)으로 표현함에 있어서 견우(牽牛)와 직녀(織女)의 고사(故事)를 당겨오고 중국 곤륜산(崑崙山)의 전설(傳說)을 끌어들여 아련한 동경(憧憬)의 대상으로써 달이 가지는 전설적(傳說的) 이미지에 또 다른

정취(情趣)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재주 많고 박식하고 품위 넘치는 여인이 기생이란 천한 신분으로 취급받던 조선시대에 살았다는 것에 너무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옥황상제의 딸 직녀는 심성이 착하고 일 잘하는 아가씨였습니다. 옥황상제는 다 큰딸이 종일 일만 하고 있는 것이 안쓰러워서 건너 마을의 총각 목동인 견우(牽牛)를 소개시켜 주고 데이트를 하도록 허락하였습니다. 그러나 어찌 알았으리!

만나자마자 이들의 눈에 불꽃이 일어나 뜨거운 사랑에 빠지게 된 것을!

한번 사랑에 눈이 먼 견우와 직녀는 자연히 소를 돌보고 베 짜는 본래의 일을 등한히 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안 옥황상제는 진노하여 이들을 각각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헤어져 살 게하고, 다만 일 년에 단 하루 칠월 칠석 날만 만나라고 엄명합니다. 선남선녀가 사랑의 스파크가 일어나면 그 누구도 말릴 수 없는 것인데도 무정하고 야속한 옥황상제는 이들을 생이별시킨 것입니다. 청천벽력과도 같은 옥황상제의 지엄한 명을 받고 이들의 마음은 어떠하였을까요?

특히 꽃다운 직녀 아가씨가 사랑의 환희를 잃고 흘린 두 줄기 눈물은 바다가 되고, 이별의 아픔은 산을 만들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임, 견우(牽牛)가 은하수 저편으로 눈물 흘리며 떠나가자 직녀는 억장이 무너지는 슬픔을 가눌 수가 없었습니다. 직녀가 던진 얼레빗이 하늘에 그대로 박혀 반달이 되었다고 황진이는 노래한 것입니다. 만고의 절창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임을 떠나보낸 후 직녀의 아픈 가슴을 누가 이렇게 족집게처럼 집어낼 수 있겠습니가?

황진이는 단지 한시 20자로 그림처럼 그려냈습니다.

 

우리는 이 시 한 수만을 읽고도 황진이를 그리는 마음을 가눌 수 없는데 이웃집 총각이 황진이를 단 한 번보고 상사병이 나서 결국 죽음의 길 밖에 없었던 일과, 30년을 도를 닦은 지족선사(知足禪師)가 왜 목탁을 집어 던진 파계승이 되어야만 했던가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농월-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박연폭포(朴淵瀑布)

一派長川噴壑豅(일파장천분학롱)-한 줄기 긴 물줄기가 바위에서 뿜어나와

龍湫百仞水潨潨(용추백인수총총)-폭포수 백 길 넘어 물소리 우렁차다

飛泉倒瀉疑銀漢(비천도사의은한)-나는 듯 거꾸로 솟아 은하수 같고

怒瀑橫垂宛白虹(노폭횡수완백홍)-성난폭포 가로 드리우니 흰무지개 완연하다

雹亂霆馳彌洞府(박난정치미동부)-어지러운 물방울이 골짜기에 가득하니

珠舂玉碎徹晴空(주용옥쇄철청공)-구슬 방아에 부서진 옥 허공에 치솟는다

遊人莫道廬山勝(유인막도려산승)-나그네여, 여산을 말하지 말라

須識天磨冠海東(수식천마관해동)-천마산야말로 해동에서 으뜸인 것을.

                                                                                황진이(黃眞伊)

참고

“나그네여, 여산을 말하지 말라”에서의 여산(驪山)은 중국 섬서성(陝西省) 서안(西安)에 있는 산으로 진시황(秦始皇)이 생전에 70만 인원을 동원해 자신의 묘소를 축조시킨 곳으로도 유명하며, 또 당(唐)나라 현종(玄宗)이 이곳 온천에 화청궁(華淸宮)을 짓고, 양귀비(楊實妃)와 더불어 사랑에 빠졌던 곳으로 중국 최고의 명소입니다. 황진이는 중국의 여산 따위를 박연폭포가 있는 천마산 앞에서 자랑하지 말라고 일침을 놓고 있습니다.

----------

박연폭포(朴淵瀑布)는 송도(松都) 삼절(三絶)중의 하나입니다.

삼절(三絶)이란 말은 시를 잘 짓고 글씨를 잘 쓰고 그림을 잘 그리는 선비를 가리켜 칭송하는 말입니다. 삼절이라는 말의 시작은 중국 당나라 송영문(宋令文)이 문장이 뛰어나고 글씨를 잘 쓰고 힘과 용기가 있어 삼절이라 불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세종 때 안견(安堅)과 세조 때 강희안(姜希顔),등이 모두 시(詩) 서(書) 화(畵)에 뛰어나 삼절이라 불리었습니다.

 

지금의 개성시 박연리(朴淵里)에 있는 옛날 송도(松都:개성)에서는 학자 서화담(徐花潭), 명기(名妓) 황진이(黃眞伊), 절경(絶景) 박연폭포(朴淵瀑布)를 송도의 삼절이라 지금까지 전하여 지고 있습니다.

또한 전북(全北)에 “부안삼절”이라 하여 이매창 유희경 직소폭포가 있습니다.

 

박연폭포는 황진이가 자신을 포함한 송도삼절의 하나로 꼽을 정도로 사랑한 폭포입니다. 송도의 기생이었던 황진이는 이곳을 자주 찾아 폭포를 벗하여 풍류를 즐기며 그녀의 일생에 빼 놓을 수 없는 공간을 메워준 곳입니다. 드라마 “황진이”에서도 거드름 피우는 중국사신앞에서 이시를 읊어 콧대를 꺽은 장면이 나옵니다.

400년전 조선을 살다간 기생 황진이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인간이 만든 것은 더욱 그러하나니. 재미보다는 괴로움이 많고 희망보다는 허무하기만 한 이 세상, 신나게 놀다 가면 그뿐이지, 고작 90년 인생에 출세와 겉치장에 목을 빼고 있으니, 특히 요즈음 대선 후보들의 서로 물고 뜯는 작태를 보면 기생보다 못한 소인배의 뱃속을 들어내 보이고 있습니다. 그 여인의 마지막 유언, 그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애잔한 감동을 남기고 있습니다.

자신의 시신을 매장하지 말고 그냥 길거리에 버려두라고....

 

『나 때문에 천하의 모든 남자들이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했으니, 내가 죽거든 내 시신을 동문 밖 모래터에 그냥 내버려 두어서 개미와 벌레들이 내 살을 뜯어먹게 하여, 천하 여인들의 본보기로 삼아라.』

 

황진이는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천하의 미인으로 불리던 자신도 이렇게 죽으면 그저 개미와 벌레의 밥이 되는 구차하고 초라한 인간일 뿐이라고. 그러니 괜히 어깨 힘주고 거들먹거리거나 속빈 겉치장이나 꾸밈보다는 있는 그대로 진솔하게 이 세상을 살아가라고...

개성 관광이 개통되었으니 언젠가는 가 볼수 있지 않겠습니가?

-농월-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제야(除夜)섣달 그믐 신응조

莫恠今朝把酒頻(막괴금조파주빈)-송년술많이 마신다고 야릇하게 생각마라

明朝七十歲華新(명조칠십세화신)-내일 아침 되고 보면 이내나이 칠십일세

夢中猶作靑年事(몽중유작청년사)-좋은 청춘 자나 간일 꿈결인양 허무한데

世上空留白髮身(세상공유백발신)-이제와선 부질없이 백발만 남았구나.

北望雲飛金厥曙(북망운비금궐서)-임계신 궁궐에는 좋은 구름 서렸으리

東來花老石樓春(동래화노석루춘)-석란에 매화 늙어 봄소식도 가까운 듯

鼓樓更罷城鴉起(고루경파성아기)-파루치자 새벽밝아 자는 새들 날개 친다

                                                                                        신응조(申應朝)

참고

“파루치자 새벽밝아 자는새들 날개친다”에 파루(罷漏)는 조선 시대에 서울에서 통행금지를 해제하기 위하여 새벽에 종각의 종을 서른 세 번 치던 일을 말합니다.

 

신응조(申應朝1804~1899)

조선 후기 고종때의 문신(文臣)으로 1882년 임오군란 후 흥선대원군에 의해 우의정과 좌의정에 올랐으며 은퇴후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습니다. 기로소(耆老所)는 조선시대에 나이가 많은 문신(文臣)을 예우(禮遇)하기 위해 설치한 국가가 설치한 복지 기관입니다. 일단 기로소에 들어가면 녹명안(錄名案)에 이름이 기록되면서 노후 대우를 받는데 기로소제목록후(耆老所題目錄後)이란 책에 조선조 임금도 태조 숙종 영조 등이 기록되어 있으며 최고령자는 현종 때의 윤경(尹絅)으로 98세였으며, 다음 숙종 때 97세의 이구원(李久源), 96세의 민형남(閔馨男) 등의 원로들이 있습니다.

-농월-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제야(除夜)섣달 그믐 윤집

半壁殘燈照不眠(반벽잔등조불면)-깜박이는 등잔불에 잠못 이루고

夜深虛館思悽然(야심허관사처연)-밤 깊도록 빈 집에서 처연한 심사

萱堂定省今安否(훤당정성금안부)-어머님은 요사이 어떠하신지

鶴髮明朝又一年(학발명조우일년)-늙으신 몸 내일이면 또 한 해 맞는데.

                                                        윤집(尹集)

윤집(尹集1606~1637)

조선 병자호란 때 문신(文臣)으로 청나라와 화의(和議)를 적극 반대한 척화론(斥和論)자로 오달제 홍익한과 함께 삼학사(三學士)의 한 사람으로 청나라에 잡혀가서 고문을 받았으나 끝내 굴하지 않고 중국 선양 서문 밖에서 사형되었습니다. 역사는 이들 삼학사에 대하여 “국가의 정통성과 충정을 빛냈다” “아니다 국제정세의 흐름을 감안하여 청나라와 국교를 하여 나라를 보존했어야 했다”는 의견으로 양면의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한해를 마감하는 12월의 그믐에 그렇지 안 해도 마음이 허전한데 대통령 선거를 통한 국민들의 갈등이 너무 큰 상처가 되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12월 19일이 내일 모레인데 과연 이번 후보자들 중에 이 나라를 5년간 마낄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있으면 누구를 선택해야 할 것인가?

이제는 절대로 전라도다, 경상도다, 우파 보수주의다, 친북좌파다, 하는 유치하고 낡아빠진 촌스러운 생각을 버리고 윤집의 한시 한수를 읽으면서 그믐밤에 깊이 고민해야 할 것 같습니다.

-농월-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제야(除夜)섣달 그믐날 강백년

酒盡燈殘也不眠(주진등잔야불면)

밤깊도록 마셨으나 잠못이루고

 

曉鐘鳴後轉依然(효종명후전의연)

새벽종 울려와도 여전하구나

 

非關來年無今夜(비관내년무금야)

내년을 생각마라 오늘 같은 밤 다시 오지 않으니

 

自是人情惜去年(자시인정석거년)

가는해 만류못해 안타까워하네

                                          강백년(姜栢年)

 

강백년(姜栢年, 1603~1681)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장원급제한 뒤 동부승지, 예조참판 등을 지내고 청백리(淸白吏)로 기록되었다.

강빈옥사(姜嬪獄事)가 일어나자 강빈의 억울함을 상소했다가 한때 삭직되었다.

 

강빈옥사(姜嬪獄事)는 남한산성의 치욕으로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 갔다온 소현세자가 귀국 2개월 만에 인조와 불화관계에 있던 중에 의문으로 죽자 소현세자와 강빈 사이에 태어난 원손(元孫)이 폐위되고, 봉림대군(鳳林大君효종)이 세자로 책봉되어 강빈은 설 자리를 잃었다. 여기에 강빈과 반목하고 있던 소의(昭儀) 조씨(趙氏)의 무고로 궁중에서 일어난 인조 저주사건과 왕의 음식에 독약이 들어갔다는 사건의 배후자로 몰려 1646년 3월 사사되었다. 이 사건은 여기에 머무르지 않고 강빈의 어머니와 네 형제가 처형되거나 고문으로 죽었다. 우리의 역사속에는 이처럼 권력을 중심으로 반목을 일삼아온 역사의 발자취가 많은데 지금의 대통령 선거도 역시 남을 흘뜯기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어찌하여 명색의 지도자들이 좋은 본은 버리고 나쁜 본만 받고 사는지 머르겠다.

참 통탄할 노릇이다 !

서양 정치사의 고전인 마키아벨리가 쓴 “군주론”과 맹자의 왕도정치가이 새삼 기억되는 시대이다.

-농월-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격양가(擊壤歌)를 부르게 할 대통령은 선출 되는가?

 

격양가(擊壤歌)라는 말은 “땅을 치며 노래한다”는 뜻으로 중국 요(堯)나라 때의 태평세월을 구가한 노래입니다.

동양에서 역사이래로 가장 나라를 잘 다스린 임금을 요(堯), 순(舜) 임금이라 말합니다.

 

요 임금이 천하를 다스린 지 50년이 되었을 때, 과연 천하가 잘 다스려지고 백성들이 즐거운 생활을 하고 있는지 직접 확인하고자 평민 차림으로 거리에 나섰습니다. 넓고 번화한 네거리에 이르렀을 때 아이들이 노래 부르며 놀고 있어 그 노랫소리를 유심히 들었습니다.

 

立我烝民(립아증민)-우리 백성들을 살게 하는 것은

莫匪爾極(막비이극)-임금의 어질고 지극함이 아닌 것이 없다

不識不知(부식부지)-느끼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면서도

順帝之則(순제지칙)-임금의 법에 따르고 있다

 

위의 뜻은 임금님이 인간의 본성에 따라 백성을 도리에 맞게 인도하기 때문에 백성들은 법이니 정치니 하는 것을 모르고 배우지 않아도 자연 임금님의 어질고 바른 행동과 가르침에 본을 받고 따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요 임금은 다시 발길을 옮겼습니다. 한 노인이 길가에 두 다리를 쭉 뻗고 앉아 한 손으로는 배를 두들기고 또 한 손으로는 땅바닥을 치며 장단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日出而作(일출이작)-해가 뜨면 일하고

日入而息(일입이식)-해가 지면 쉬고

鑿井而飮(착정이음)-우물 파서 마시고

耕田而食(경전이식)-밭을 갈아 먹으니

帝力于我何有哉(제력우아하유재)-임금의 덕이 내게 무슨 소용이 있으랴!

 

이 뜻은 정치의 고마움을 알게 하는 생색나는 정치보다는 정치가 있는지 없는지 전혀 느끼기조차 못하게 하는 정치가 진실로 위대한 정치라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이 노래를 그 유명한 행복에 겨워서 “땅을 치며 노래한다”는 격양가(擊壤歌)라 합니다. 이 노래를 들은 요임금은 크게 만족하여 “과시 태평세월이로다” “진실로 평화와 민주와 태평시대라 하는 것은 임금이 있는 줄 모르고 법이 존재하는 것도 모르면서 사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고 통치권자의 본분이구나” 하였다 하며, 그 후 중국은 물론 한국에서도 풍년이 들어 오곡이 풍성하고 사회가 평안한 태평시대를 비유하는 말로 쓰이고 있습니다.

 

오늘이 대통령 뽑는 날입니다. 입후보자 전원이 상대방은 나쁘고 자기만이 올바른 대통령이 될 자격이 있다고 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요(堯)임금에게는 장남인 단주(丹朱)가 있었지만 나라를 매낄 인물이 못된다하여 멀리 격리 시키고 생지부지 남인 순(舜)이 인물됨이 바르다고 하여 임금 되기를 권하니 순(舜)임금이 사양하여 말하기를 “요(堯)임금같이 큰 태양이 있는데 촞불같은 내가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하고 사양하였지만 간절히 권하는 바람에 임금이 되었습니다.

순(舜) 요(堯) 같은 대통령은 바랄 수 없지만 자신의 얼굴이라도 깨끗이 씻은 사람이 당선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국민들도 자기 고향사람이라고 무조건 찍는 바보 같은 짓은 그만합시다. 정치하는 자들이 그것을 잘 이용하고 있습니다.

『누구든 죄없는 자만이 이 여자를 돌로 쳐라』

-농월-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