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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풍로상(長風路上) 겨울 길에서 긴 바람 凍雨霏霏灑晩天(동우비비쇄만천)-찬 비, 부슬부슬 저문 하늘에 흩뿌리니 前山雲霧接村烟(전산운무접촌연)-앞산 구름과 안개, 마을 연기와 맞닿는다 漁翁不識蓑衣濕(어옹불식사의습)-늙은 어부는 도롱이 젖는 줄도 모르고 閑傍蘆花共鷺眠(한방로화공로면)-갈대꽃 곁에서 백로와 나란히 잠들어있네 정온(鄭蘊)
겨울 한시를 오늘(11월 1일)부터 시작합니다. 한시를 지금까지 정리하는 동안 느낀 것은 사계 절중에 봄가을을 소재로 한 시는 많고 겨울 여름은 매우 적은 것을 느꼈습니다. 현대시 서양시를 정리하지 못하여(정리 할 수도 없지만) 비교 할 수는 없지만 동양인의 감정은 춘추에 서정적(抒情的)인 것 같습니다. “이태리에는 올리브 농장에서 일하는 심부름꾼도 칸초네로 혀를 굴리고 프랑스에는 와인 배달부도 샹송을 흥얼거리며 스텝에 마주어 걷는다고 합니다” 물론 농담이겠지만.... 이말은 돈만 갖이고서는 신사 숙녀가 될 수 없고 문학과 예술을 가까이 하는 국민이 멋을 아는 사람이라는 풍자입니다. 인간이 창조한 위대한 선물의 하나인 문자(文字)를 만들어 우주만물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크나큰 축복입니다. 겨울 긴밤, 코드깃을 세운 눈내리는 날에 한시를 읽으면서 사색하며 멋을 내는 계절이 되기를 바랍니다.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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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조령(登鳥嶺)겨울 문경새재에 오르니
凌晨登雪嶺(능신등설령) 이른 새벽 눈 덮인 새재에 오르니, 春意正濛濛(춘의정몽몽) 봄이 올 뜻이 어렴풋하게 느끼는 구나 北望君臣隔(북망군신격) 북으로 임금이 계신 서울은 멀기만 하고 南來母子同(남래모자동) 남으로 고향땅은 가까워 지네
蒼茫迷宿霧(창망미숙무) 아득하여라 넓은 들은 저녁안개에 서리어 있고 迢遞倚層空(초체의층공) 높은 봉우리는 고개를 들어 하늘에 의지하네 更欲裁書札(경욕재서찰) -다시금 글을 담아 보내려 하니, 愁邊有塞翁(수변유새옹) 잘된일인지 잘못된일인지 알수 없어 근심이 되오. 유호인(兪好仁)
송참(松站)겨울 소나무 밑에 우두커니 서서
雪裡村西日欲斜(설리촌서일욕사) 눈속에 쌓인마을 해는 벌서 지려는데 蕭條墟落兩三家(소조허락양삼가) 쓸쓸한 빈터위에 두서너집 남아있네 主人好客頗知禮(주인호객파지예) 손을 맞은 주인영감 예의범절 공손하고 淨几明窓甁有花(정궤명창병유화) 문방제구 깨긋한데 화병까지 놓였구나 박종악(朴宗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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被謫北塞(피적북새)겨울에 북쪽 변방으로 귀양가며
歎息狂歌哭失聲(탄식광가곡실성)
탄식하며 미친 듯 노래하고 실성한듯 울어봐도
男兒志氣意難平(남아지기의난평)
사나이 품은 뜻 펼치려니 너무 어려워
西山日暮群鴉亂(서산일모군아난)
서산에 해지려니 까마귀 떼 어지럽고
北塞霜寒獨雁鳴(북새상한독안명)
변방 서리 찬 날씨에 기러기 울음소리만 들려오네
千里客心驚歲晩(천리객심경세만)
천리 먼 곳 나그네 한 해가 감을 아쉬워하고
一方民意畏天傾(일방민의외천경)
이 나라 백성들은 하늘의 뜻 기울어짐을 걱정하네
不如無目兼無耳(불여무목겸무이)
눈 없고 귀 없는 듯
歸臥林泉畢此生(귀와임천필차생)
시골로 돌아가 한 평생 살고 싶어라
윤선도(尹善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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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밖의 눈 위에 달이 다가와
紗窓近雪月(사창근설월)-고운 창의 눈 위에 달이 다가와 滅燭延淸輝(멸촉연청휘)-촛불 끄고 맑은 달빛 맞아 들이네 珍重一盃酒(진중일배주)-삼가 올리는 한 잔 술에 夜蘭人未歸(야란인미귀)-밤 깊도록 내곁에 임은 돌아가지 않네
이성중(李誠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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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暮朔風起(일모삭풍기)-해지자 매운바람 살을 어이고 天寒行路難(천한행로난)-날씨추어 길걷기 정말 어렵네 白烟生凍樹(백연생동수)-연기조차 찬숲에 얼어 서리고 山店雪中看(산점설중간)-촌술집은 눈속에 쌓여 있구나 윤계(尹堦) |
雪後(雪後)눈온후에
屋後林鴉凍不飛(옥후림아동불비)
수풀속 언(凍)까마귀 날지못하고
晩來瓊屑壓松扉(만래경설압송비)
솔사립문 찬눈에 살을어이네
應知昨夜山靈死(응지작야산영사)
알것이다 간밤에 산신령 죽어것을
多少靑峰盡白衣(다소청봉진백의)
산마다 빠짐없이 상복 입었네
신의화(申儀華)
영설(詠雪) 눈
松山蒼翠暮雲黃(송산창취모운황)-송악산 푸르름에 저녁 구름 물들더니
飛雪初來已夕陽(비설초래이석양)-눈발 흩날리자 이미 해는 저물었네.
入夜不知晴了未(입야불지청료미)-밤들면 혹시나 이 눈이 그칠려나
曉來銀海冷搖光(효래은해랭요광)-새벽엔 은 바다에 눈 빛이 차갑겠지.
이색(李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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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설산행(冒雪山行)눈내린 산을 강행하다 山橋日暮少人行(산교일모소인행) 산 속 다리에 날이 저물어 사람의 통행 적어지고 野店炊煙一抹橫(야점취연일말횡) 들 주점 밥 짓는 연기 한 가닥, 옆으로 퍼져간다 緩轡微吟歸得得(완비미음귀득득) 말고삐 멈추고 시를 읊조리다가 돌아오니 馬蹄隨處踏瑤瓊(마제수처답요경) 말 발굽 이르는 곳마다 얼음 구슬 밟는 듯하다 권건(權健)
설후(雪後)눈내린 후 臘雪孤村積未消(납설고촌적미소) 외딴 마을 섣달 눈이 쌓인 채 안녹으니 柴門誰肯爲相敲(시문수긍위상고) 그 누가 사립문을 즐거이 두드리랴 夜來忽有淸香動(야래홀유청향동) 밤이 되어 홀연히 맑은 향이 전해 오니 知放寒梅第幾梢(지방한매제기초) 매화꽃이 가지 끝에 피었음을 알겠노라 유방선(柳方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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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야(冬夜) 겨울 밤 空堂夜深冷(공당야심냉)-텅 빈 집 밤 되니 더욱더 썰렁하여 欲掃庭中霜(욕소정중상)-뜰에 내린 서리나 쓸어보려 하였다가 掃霜難掃月(소상난소월)-서리는 쓸겠는데 달빛 쓸어내기 어려워 留取伴明光(유취반명광)-그대로 달빛과 어우러지게 그냥 남겨두었네 황경인(黃景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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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林欲瞑已棲鴉(천림욕명이서아) 온 숲이 저물어 갈가마귀 깃드는데 燦燦明珠尙照車(찬찬명주상조거) 찬란히 반짝이며 수레를 비추는 눈 仙骨共驚如處子(선골공경여처자) 신선도 놀랄 만큼 깨끗한 순수세상 春風無計管光花(춘풍무계관광화) 봄바람도 저 꽃들은 어쩌하지 못하네 聲迷細雨鳴窓紙(성미세우명창지) 가랑비 소리인 듯 창호지를 울리고 寒引羈愁到酒家(한인기수도주가) 추위에 시름은 주막으로 발길 끌어 萬里都盧銀作界(만리도노은작계) 만리천지 은으로 만들어 놓은 세상 渾敎路口沒三叉(혼교로구몰삼차) 뿌여니 동구 앞 세 갈래 길 덮였네! 이인로(李仁老) 이인로(李仁老, 1152~1220)는 고려시대 대 학자로서 시문(詩文)뿐만 아니라 글씨에도 능해 초서(草書) 예서(隸書)가 특출하였습니다. 시와 술을 즐기며 당대의 석학 오세재(吳世才)·임춘(林椿)·조통(趙通)·황보 항(皇甫抗)·함순(咸淳)·이담지(李湛之) 등과 교류하여 강좌7현(江左七賢)이라고 불렸습니다 자는 미수(眉叟) 호를 쌍명재(雙明齋)라 부르며 정중부(鄭仲夫)의 난 때는 머리를 깎고 절에 들어가 난을 피한 후 다시 환속하였습니다. 저서에 유명한 파한집(破閑集)과 쌍명재집(雙明齋集)이 있습니다.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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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야(雪夜) 눈오는 밤 一穗寒燈讀佛經(일수한등독불경) 한 촉 찬 등불에 불경을 읽다 보니 不知夜雪滿空庭(부지야설만공정) 밤눈이 뜨락에 가득내린 줄도 몰랐네 深山衆木都無籍(심산중목도무적) 깊은 산 나무들은 아무런 기척 없고 時有檐永墮石牀(시유첨영타석상) 처마 끝 고드름만 섬돌에 떨어진다 혜즙(慧楫) 법명을 慧楫(혜즙)스님이라 하고 법호를 철선강사(鐵船講師)라 기록되어있습니다. 성씨는 김씨로서 전남 영암 출신입니다. 5살되던 해 아버지를 여의고 14세 되던해인 순조4년(1804) 해남 두륜산 대흥사로 출가하여 성일(性一)스님 문하에서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됩니다. 스님은 이후 각처를 돌아다니며 20여년간 학인들을 교육하고 지관을 닦았습니다. 스님은 조선 철종 9년(1858) 대둔사 상원암에서 저술과 교육으로 일관한 67세의 생애를 마쳤습니다. -농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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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冬至) 동짓날 貪程夜渡津(탐정야도진)-길 재촉하여 밤에 나루를 건너니 今日一陽新(금일일양신)-오늘이 바로 동짓날이로구나 竹籬疏映雪(죽리소영설)-대나무 울타리는 성기어 눈이 비치고 梅塢別藏春(매오별장춘)-매화나무 언덕에는 따로 봄을 감추었구나. 樓閣臨長道(루각림장도)-누각은 긴 길옆에 가까이 있는데 經過問幾人(경과문기인)-지나는 사람 몇몇이나 되는지 물어본다. 白雲看漸逈(백운간점형)-흰 구름은 바라볼수록 점차 아득히 멀어 回首暗傷眞(회수암상진)-머리 돌려보니 은근히 마음만 상하는구나! 윤회(尹淮) 한해를 보내는 동짓날은 이상히 더 추워 보이고 마음이 무거운 느낌입니다. 객지에 있는 사람들은 항상 보는 정자도 매화나무도 마음을 허전하게 합니다. 윤회(尹淮, 1380~1436)는 조선조 세종때의 이름난 문신(文臣)으로 정도전이 쓴 “고려사”를 다른 자료와 대조하여 교정할 정도로 대단한 학자 하였습니다. 유교를 국교로 하여 불교를 배척하는 건의를 올렸고. 1432년에는 세종의 명으로 팔도지리지(八道地理志-조선전기의 지리책)를 편찬하였습니다. 어려서부터 경사(經史-중국 고전인 경서(經書)와 사기(史記))에 통달하여 이름을 떨쳤습니다.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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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반월(詠半月) 반달을 노래함
誰斲崑山玉(수착곤산옥)-그 누가 곤륜산의 옥을 깍아서
裁成織女梳(재성직녀소)-직녀의 머리빗으로 만들었는가
牽牛離別後(견우이별후)-이별한 견우는 오지를 않아
謾擲碧空虛(만척벽공허)-기다림에 지쳐 던진 빗, 창공에 걸렸구나
황진이(黃眞伊)
황진이!
그녀는 고작 6수의 시조와 10여편의 한시를 남겼지만 한국문학에 차지한 한 자리는 매우 비중이 크다 할 수 있습니다.
위의 “반달”은 황진이의 섬세한 미적 표현감각이 발휘되고 있는 최고의 감정을 묘사한 시로서 매우 수준 높은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가람 이병기 선생은 이백과 두보에 비견될수 있는 뛰어어난 시라고 절찬하고 있습니다.
“반달”에서 떠난 임을 견우에 빗댄 직녀, 즉 자신의 상한 마음을 허공에 걸린 푸른 달로 표현했는데, 견우와 직녀는 아주 헤어지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12월 13일 한시 “동짓달 기나긴 밤” 에서는 임을 기다리는 자신을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황진이는 여인들의 일상도구인 “빗”의 모양이 달의 모양과 같다는 것에 착안(着眼)한 것입니다. 자신이 곧 직녀(織女)에 비유되고 있음을 암시(暗示)하고 이별한 견우가 오지를 않아 기다리다 지쳐 화가 나서 옥으로 만든 머리빗을 푸른 하늘에 던져버린 것이 반달이 된 것입니다.
즉 임을 보낸 여인에게 몸단장이 필요없이 푸른 하늘에 던져버린 빗이 바로 반달이기 때문에 이 시의 뛰어난 재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황진이의 “반달”의 시의 제목은 누가 뭐라 해도 뛰어남이 있습니다. 황진이는 허공에 걸린 달을 통하여 자신의 허탈한 심정을 우회적( 迂廻的)으로 표현함에 있어서 견우(牽牛)와 직녀(織女)의 고사(故事)를 당겨오고 중국 곤륜산(崑崙山)의 전설(傳說)을 끌어들여 아련한 동경(憧憬)의 대상으로써 달이 가지는 전설적(傳說的) 이미지에 또 다른정취(情趣)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재주 많고 박식하고 품위 넘치는 여인이 기생이란 천한 신분으로 취급받던 조선시대에 살았다는 것에 너무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옥황상제의 딸 직녀는 심성이 착하고 일 잘하는 아가씨였습니다. 옥황상제는 다 큰딸이 종일 일만 하고 있는 것이 안쓰러워서 건너 마을의 총각 목동인 견우(牽牛)를 소개시켜 주고 데이트를 하도록 허락하였습니다. 그러나 어찌 알았으리!
만나자마자 이들의 눈에 불꽃이 일어나 뜨거운 사랑에 빠지게 된 것을!
한번 사랑에 눈이 먼 견우와 직녀는 자연히 소를 돌보고 베 짜는 본래의 일을 등한히 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안 옥황상제는 진노하여 이들을 각각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헤어져 살 게하고, 다만 일 년에 단 하루 칠월 칠석 날만 만나라고 엄명합니다. 선남선녀가 사랑의 스파크가 일어나면 그 누구도 말릴 수 없는 것인데도 무정하고 야속한 옥황상제는 이들을 생이별시킨 것입니다. 청천벽력과도 같은 옥황상제의 지엄한 명을 받고 이들의 마음은 어떠하였을까요?
특히 꽃다운 직녀 아가씨가 사랑의 환희를 잃고 흘린 두 줄기 눈물은 바다가 되고, 이별의 아픔은 산을 만들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임, 견우(牽牛)가 은하수 저편으로 눈물 흘리며 떠나가자 직녀는 억장이 무너지는 슬픔을 가눌 수가 없었습니다. 직녀가 던진 얼레빗이 하늘에 그대로 박혀 반달이 되었다고 황진이는 노래한 것입니다. 만고의 절창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임을 떠나보낸 후 직녀의 아픈 가슴을 누가 이렇게 족집게처럼 집어낼 수 있겠습니가?
황진이는 단지 한시 20자로 그림처럼 그려냈습니다.
우리는 이 시 한 수만을 읽고도 황진이를 그리는 마음을 가눌 수 없는데 이웃집 총각이 황진이를 단 한 번보고 상사병이 나서 결국 죽음의 길 밖에 없었던 일과, 30년을 도를 닦은 지족선사(知足禪師)가 왜 목탁을 집어 던진 파계승이 되어야만 했던가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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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폭포(朴淵瀑布) 一派長川噴壑豅(일파장천분학롱)-한 줄기 긴 물줄기가 바위에서 뿜어나와 龍湫百仞水潨潨(용추백인수총총)-폭포수 백 길 넘어 물소리 우렁차다 飛泉倒瀉疑銀漢(비천도사의은한)-나는 듯 거꾸로 솟아 은하수 같고 怒瀑橫垂宛白虹(노폭횡수완백홍)-성난폭포 가로 드리우니 흰무지개 완연하다 雹亂霆馳彌洞府(박난정치미동부)-어지러운 물방울이 골짜기에 가득하니 珠舂玉碎徹晴空(주용옥쇄철청공)-구슬 방아에 부서진 옥 허공에 치솟는다 遊人莫道廬山勝(유인막도려산승)-나그네여, 여산을 말하지 말라 須識天磨冠海東(수식천마관해동)-천마산야말로 해동에서 으뜸인 것을. 황진이(黃眞伊) 참고 “나그네여, 여산을 말하지 말라”에서의 여산(驪山)은 중국 섬서성(陝西省) 서안(西安)에 있는 산으로 진시황(秦始皇)이 생전에 70만 인원을 동원해 자신의 묘소를 축조시킨 곳으로도 유명하며, 또 당(唐)나라 현종(玄宗)이 이곳 온천에 화청궁(華淸宮)을 짓고, 양귀비(楊實妃)와 더불어 사랑에 빠졌던 곳으로 중국 최고의 명소입니다. 황진이는 중국의 여산 따위를 박연폭포가 있는 천마산 앞에서 자랑하지 말라고 일침을 놓고 있습니다. ---------- 박연폭포(朴淵瀑布)는 송도(松都) 삼절(三絶)중의 하나입니다. 삼절(三絶)이란 말은 시를 잘 짓고 글씨를 잘 쓰고 그림을 잘 그리는 선비를 가리켜 칭송하는 말입니다. 삼절이라는 말의 시작은 중국 당나라 송영문(宋令文)이 문장이 뛰어나고 글씨를 잘 쓰고 힘과 용기가 있어 삼절이라 불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세종 때 안견(安堅)과 세조 때 강희안(姜希顔),등이 모두 시(詩) 서(書) 화(畵)에 뛰어나 삼절이라 불리었습니다. 지금의 개성시 박연리(朴淵里)에 있는 옛날 송도(松都:개성)에서는 학자 서화담(徐花潭), 명기(名妓) 황진이(黃眞伊), 절경(絶景) 박연폭포(朴淵瀑布)를 송도의 삼절이라 지금까지 전하여 지고 있습니다. 또한 전북(全北)에 “부안삼절”이라 하여 이매창 유희경 직소폭포가 있습니다. 박연폭포는 황진이가 자신을 포함한 송도삼절의 하나로 꼽을 정도로 사랑한 폭포입니다. 송도의 기생이었던 황진이는 이곳을 자주 찾아 폭포를 벗하여 풍류를 즐기며 그녀의 일생에 빼 놓을 수 없는 공간을 메워준 곳입니다. 드라마 “황진이”에서도 거드름 피우는 중국사신앞에서 이시를 읊어 콧대를 꺽은 장면이 나옵니다.
400년전 조선을 살다간 기생 황진이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인간이 만든 것은 더욱 그러하나니. 재미보다는 괴로움이 많고 희망보다는 허무하기만 한 이 세상, 신나게 놀다 가면 그뿐이지, 고작 90년 인생에 출세와 겉치장에 목을 빼고 있으니, 특히 요즈음 대선 후보들의 서로 물고 뜯는 작태를 보면 기생보다 못한 소인배의 뱃속을 들어내 보이고 있습니다. 그 여인의 마지막 유언, 그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애잔한 감동을 남기고 있습니다. 자신의 시신을 매장하지 말고 그냥 길거리에 버려두라고.... 『나 때문에 천하의 모든 남자들이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했으니, 내가 죽거든 내 시신을 동문 밖 모래터에 그냥 내버려 두어서 개미와 벌레들이 내 살을 뜯어먹게 하여, 천하 여인들의 본보기로 삼아라.』 황진이는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천하의 미인으로 불리던 자신도 이렇게 죽으면 그저 개미와 벌레의 밥이 되는 구차하고 초라한 인간일 뿐이라고. 그러니 괜히 어깨 힘주고 거들먹거리거나 속빈 겉치장이나 꾸밈보다는 있는 그대로 진솔하게 이 세상을 살아가라고... 개성 관광이 개통되었으니 언젠가는 가 볼수 있지 않겠습니가?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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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야(除夜)섣달 그믐 신응조
莫恠今朝把酒頻(막괴금조파주빈)-송년술많이 마신다고 야릇하게 생각마라
明朝七十歲華新(명조칠십세화신)-내일 아침 되고 보면 이내나이 칠십일세
夢中猶作靑年事(몽중유작청년사)-좋은 청춘 자나 간일 꿈결인양 허무한데
世上空留白髮身(세상공유백발신)-이제와선 부질없이 백발만 남았구나.
北望雲飛金厥曙(북망운비금궐서)-임계신 궁궐에는 좋은 구름 서렸으리
東來花老石樓春(동래화노석루춘)-석란에 매화 늙어 봄소식도 가까운 듯
鼓樓更罷城鴉起(고루경파성아기)-파루치자 새벽밝아 자는 새들 날개 친다
신응조(申應朝)
참고
“파루치자 새벽밝아 자는새들 날개친다”에 파루(罷漏)는 조선 시대에 서울에서 통행금지를 해제하기 위하여 새벽에 종각의 종을 서른 세 번 치던 일을 말합니다.
신응조(申應朝1804~1899)
조선 후기 고종때의 문신(文臣)으로 1882년 임오군란 후 흥선대원군에 의해 우의정과 좌의정에 올랐으며 은퇴후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습니다. 기로소(耆老所)는 조선시대에 나이가 많은 문신(文臣)을 예우(禮遇)하기 위해 설치한 국가가 설치한 복지 기관입니다. 일단 기로소에 들어가면 녹명안(錄名案)에 이름이 기록되면서 노후 대우를 받는데 기로소제목록후(耆老所題目錄後)이란 책에 조선조 임금도 태조 숙종 영조 등이 기록되어 있으며 최고령자는 현종 때의 윤경(尹絅)으로 98세였으며, 다음 숙종 때 97세의 이구원(李久源), 96세의 민형남(閔馨男) 등의 원로들이 있습니다.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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半壁殘燈照不眠(반벽잔등조불면)-깜박이는 등잔불에 잠못 이루고 夜深虛館思悽然(야심허관사처연)-밤 깊도록 빈 집에서 처연한 심사 萱堂定省今安否(훤당정성금안부)-어머님은 요사이 어떠하신지 鶴髮明朝又一年(학발명조우일년)-늙으신 몸 내일이면 또 한 해 맞는데. 윤집(尹集) 윤집(尹集1606~1637) 조선 병자호란 때 문신(文臣)으로 청나라와 화의(和議)를 적극 반대한 척화론(斥和論)자로 오달제 홍익한과 함께 삼학사(三學士)의 한 사람으로 청나라에 잡혀가서 고문을 받았으나 끝내 굴하지 않고 중국 선양 서문 밖에서 사형되었습니다. 역사는 이들 삼학사에 대하여 “국가의 정통성과 충정을 빛냈다” “아니다 국제정세의 흐름을 감안하여 청나라와 국교를 하여 나라를 보존했어야 했다”는 의견으로 양면의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한해를 마감하는 12월의 그믐에 그렇지 안 해도 마음이 허전한데 대통령 선거를 통한 국민들의 갈등이 너무 큰 상처가 되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12월 19일이 내일 모레인데 과연 이번 후보자들 중에 이 나라를 5년간 마낄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있으면 누구를 선택해야 할 것인가? 이제는 절대로 전라도다, 경상도다, 우파 보수주의다, 친북좌파다, 하는 유치하고 낡아빠진 촌스러운 생각을 버리고 윤집의 한시 한수를 읽으면서 그믐밤에 깊이 고민해야 할 것 같습니다. -농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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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야(除夜)섣달 그믐날 강백년 酒盡燈殘也不眠(주진등잔야불면) 밤깊도록 마셨으나 잠못이루고 曉鐘鳴後轉依然(효종명후전의연) 새벽종 울려와도 여전하구나 非關來年無今夜(비관내년무금야) 내년을 생각마라 오늘 같은 밤 다시 오지 않으니 自是人情惜去年(자시인정석거년) 가는해 만류못해 안타까워하네 강백년(姜栢年) 강백년(姜栢年, 1603~1681)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장원급제한 뒤 동부승지, 예조참판 등을 지내고 청백리(淸白吏)로 기록되었다. 강빈옥사(姜嬪獄事)가 일어나자 강빈의 억울함을 상소했다가 한때 삭직되었다. 강빈옥사(姜嬪獄事)는 남한산성의 치욕으로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 갔다온 소현세자가 귀국 2개월 만에 인조와 불화관계에 있던 중에 의문으로 죽자 소현세자와 강빈 사이에 태어난 원손(元孫)이 폐위되고, 봉림대군(鳳林大君효종)이 세자로 책봉되어 강빈은 설 자리를 잃었다. 여기에 강빈과 반목하고 있던 소의(昭儀) 조씨(趙氏)의 무고로 궁중에서 일어난 인조 저주사건과 왕의 음식에 독약이 들어갔다는 사건의 배후자로 몰려 1646년 3월 사사되었다. 이 사건은 여기에 머무르지 않고 강빈의 어머니와 네 형제가 처형되거나 고문으로 죽었다. 우리의 역사속에는 이처럼 권력을 중심으로 반목을 일삼아온 역사의 발자취가 많은데 지금의 대통령 선거도 역시 남을 흘뜯기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어찌하여 명색의 지도자들이 좋은 본은 버리고 나쁜 본만 받고 사는지 머르겠다. 참 통탄할 노릇이다 ! 서양 정치사의 고전인 마키아벨리가 쓴 “군주론”과 맹자의 왕도정치가이 새삼 기억되는 시대이다. -농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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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양가(擊壤歌)를 부르게 할 대통령은 선출 되는가?
격양가(擊壤歌)라는 말은 “땅을 치며 노래한다”는 뜻으로 중국 요(堯)나라 때의 태평세월을 구가한 노래입니다. 동양에서 역사이래로 가장 나라를 잘 다스린 임금을 요(堯), 순(舜) 임금이라 말합니다. 요 임금이 천하를 다스린 지 50년이 되었을 때, 과연 천하가 잘 다스려지고 백성들이 즐거운 생활을 하고 있는지 직접 확인하고자 평민 차림으로 거리에 나섰습니다. 넓고 번화한 네거리에 이르렀을 때 아이들이 노래 부르며 놀고 있어 그 노랫소리를 유심히 들었습니다. 立我烝民(립아증민)-우리 백성들을 살게 하는 것은 莫匪爾極(막비이극)-임금의 어질고 지극함이 아닌 것이 없다 不識不知(부식부지)-느끼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면서도 順帝之則(순제지칙)-임금의 법에 따르고 있다 위의 뜻은 임금님이 인간의 본성에 따라 백성을 도리에 맞게 인도하기 때문에 백성들은 법이니 정치니 하는 것을 모르고 배우지 않아도 자연 임금님의 어질고 바른 행동과 가르침에 본을 받고 따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요 임금은 다시 발길을 옮겼습니다. 한 노인이 길가에 두 다리를 쭉 뻗고 앉아 한 손으로는 배를 두들기고 또 한 손으로는 땅바닥을 치며 장단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日出而作(일출이작)-해가 뜨면 일하고 日入而息(일입이식)-해가 지면 쉬고 鑿井而飮(착정이음)-우물 파서 마시고 耕田而食(경전이식)-밭을 갈아 먹으니 帝力于我何有哉(제력우아하유재)-임금의 덕이 내게 무슨 소용이 있으랴! 이 뜻은 정치의 고마움을 알게 하는 생색나는 정치보다는 정치가 있는지 없는지 전혀 느끼기조차 못하게 하는 정치가 진실로 위대한 정치라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이 노래를 그 유명한 행복에 겨워서 “땅을 치며 노래한다”는 격양가(擊壤歌)라 합니다. 이 노래를 들은 요임금은 크게 만족하여 “과시 태평세월이로다” “진실로 평화와 민주와 태평시대라 하는 것은 임금이 있는 줄 모르고 법이 존재하는 것도 모르면서 사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고 통치권자의 본분이구나” 하였다 하며, 그 후 중국은 물론 한국에서도 풍년이 들어 오곡이 풍성하고 사회가 평안한 태평시대를 비유하는 말로 쓰이고 있습니다. 오늘이 대통령 뽑는 날입니다. 입후보자 전원이 상대방은 나쁘고 자기만이 올바른 대통령이 될 자격이 있다고 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요(堯)임금에게는 장남인 단주(丹朱)가 있었지만 나라를 매낄 인물이 못된다하여 멀리 격리 시키고 생지부지 남인 순(舜)이 인물됨이 바르다고 하여 임금 되기를 권하니 순(舜)임금이 사양하여 말하기를 “요(堯)임금같이 큰 태양이 있는데 촞불같은 내가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하고 사양하였지만 간절히 권하는 바람에 임금이 되었습니다. 순(舜) 요(堯) 같은 대통령은 바랄 수 없지만 자신의 얼굴이라도 깨끗이 씻은 사람이 당선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국민들도 자기 고향사람이라고 무조건 찍는 바보 같은 짓은 그만합시다. 정치하는 자들이 그것을 잘 이용하고 있습니다. 『누구든 죄없는 자만이 이 여자를 돌로 쳐라』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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