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戊子 2008년 4월에 친구에게 보내는 한시

작성자농월|작성시간08.05.17|조회수876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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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우(老牛) 늙은 소

瘦骨稜稜滿禿毛(수골릉릉만독모)-바싹 여위어 뼈는 앙상하고 털마저 빠졌는데

傍隨老馬兩分槽(방수노마양분조)-늙은 말 따라서 마굿간을 같이 쓰네.

役車荒野前功遠(역거황야전공원)-거친 들판에서 짐수레 끌던 옛날 공은 멀어지고

牧竪靑山舊夢高(목수청산구몽고)-목동 따라 푸른 들에서 놀던 그 시절 꿈만 같아라.

健牛常疎閑臥圃(건우상소한와포)-힘차게 끌던 쟁기도 텃밭에 한가히 놓였는데

苦鞭長閱倦登皐(고편장열권등고)-채찍 맞으며 언덕길 오르던 그 시절 무척 괴로웠었지.

可憐明月深深夜(가련명월심심야)-가련해라 밝은 달밤은 깊어만 가는데

回憶平生滿積勞(회억평생만적노)-한평생 부질없이 쌓인 고생을 돌이켜보네.......

김병연(金炳淵)

 

 4월의 숨가쁜 늙은 소

 

4월은 잔인한 계절이 아니고 숨가쁜 계절이다.

4월은 농사가 시작되는 늙은소의 등이 굽고 숨이차고 침을 흘리는 달이다

 

늙은 소 한 마리가 들판 밭두둑가 나무 밑에 침을 질질 흘리며 가픈 숨을 몰아쉬며 매어 있다. 하루 종일 산비탈 험한 밭을 갈았기 때문이다. 배는 고프고 힘은 빠져 서 있는 두 다리가 후들후들 떨린다. 평생을 이렇게 살아왔다.

하지만 이제 남은 것은 병든 몸에 굶주림과 뼈만 남은 마른 몸,

 

소박한 바램은 마른 짚이라도 깔려있는 외양간에 잠시이라도 쉬면서 여물이라도 실큰 먹었으면 좋으련만 그럴수록 눈앞에 다가오는 것은 더 고된 노동뿐이다.

 

이제 조금 지나면 늙어 쓸모없어진 소는 시장에 나가 팔리거나 도살장으로 가면서 자신의 운명에 고개를 숙이고 땅을 흔건히 적시는 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다.

 

세월의 무상함과 슬픔은 소한테만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도 늙은 소를 보며 세월이 앗아간 지난날의 혈기 넘쳤던 때를 추억한다.

 

마침 이웃 아주머니 한분이 아내의 건강 위문으로 놀러 왔다.

 

마침 라디오에서  “노년의 행복”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하고 있었다. 강의의 요지는 지금부터는 평균수명이 80세 이므로 본인이 원하지 않더라도 100까지는 살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문제는 오래 살아도 경제적으로 노후 준비가 안된 사람은  큰일이라는 것이다. 즉 본인앞으로 재산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지금 60세 이상 되는 사람 중에 70%가 집이라도 한채 남아 있는 사람이나 매달 연금 받는 사람을 제외하고 노후 준비가 안 되어 있다는 것이다.

 

틀린말이 아닌 현실적인 이야기다.

그동안 자식 공부니 사업이니 여러 가지 이유로 재산을 다 써버린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나중에 자식이 잘되면 혹은 잘되지 않더라도 “평생을 자식을 위해 몸 바친 부모”들은 늙어 힘이 없으면 믿을 곳은 자식밖에 없고 또 당연히 부모를 봉양 할 것이라는 희망찬 믿음이 있었기에 노후준비는 생각도 안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믿음은 불행이도 360도 빗나간 현실로 되돌아오고 있다. 자식에게 의지하려는 돈 없는 부모보고 “아버지는 본인의 노후 걱정도 왜 안하셨느냐?” 는 것이 자식들의 항의(?) 인 것이다.

자식들의 불만 밑에는 “무능한 부모”에 대한 문책도 깔려 있는 듯하다.

! ! ? ?

 

돈 없는 부모는 절대로 자식에게 대접못받는 세상이다.

자식뿐만 아니라 친구도 못만나고 요즘 누구나 하나 둘 갖고 있는 친목 모임에도 못 들어간다. 회비낼 돈이 부담되기 때문이다.

자식에게 일일이 용돈 타쓰는 것, 그짓을 어떻게 평생 할것인가--

 

반대로 경제력이 있는 부모는 자식 며느리 손자가 귀찮도록 존경하려고 덤벼든다.

절대로 자식이 불효자(不孝子)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세상이 그렇게 변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활동이 끝나고 다행히 집이라 한 채 있는 부모는 아들이 사업이니 무엇이니 혀끝에 꿀물 같은 소리를 하고 처량하게 슬픈 읍소(泣訴)를해도 절대로 아들에게 집을 넘기지 말고 보증도 서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자식과 등을질 각오의 결심을 갖어야 한다.

 

동물의 세계에서 표범이 잡은 먹이를 나무위에 감추는 것과 똑 같은 것이다.

그래야 안심이 되는 것이다.

 

자식에게 재산 넘겨 주고나면 그때부터는 "아차" 후회하여도 끝난일이고 칼자루는 자식이 쥐고 있고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젊은 부모들은 과외다 유학이다 하는 자식에 대한 장밋빛 희망과 과도한 경쟁심리로 한 달 월급이 부족하게 자식 밑에 집어 넣고 그것도 모자라 “기러기” 효부(孝父)도 있는데 그것은 휘발유를 껴안고 불길로 들어가는 것이다.

 

지금 똑똑한 부모는 자식을 대학에 못보내는 한이 있더라도 수입의 50%만 자식에게 투자하고 50%는 본인의 노후준비를 해야 한다.

이런 위기는 임진왜란 6.25전쟁보다 더 절박한 현실이다.

이것은 율곡 이이의 10만 양병론 보다 더 중요한 충고다.

 

4월의 늙은 소만 가픈 숨을 몰아쉬는 것이 아니다.

100살을 살아야 하는 우리들의 노년들도 숨차기는 마찬가지다.

지쳐 쓸어져도 누가 일으켜 줄 사람은 이 세상 자신외는 없다.

 

긴병에 효자 없다고 부부도 제대로 된 부부라야지 여차하면 팽개치고 남은 것 싸 짊어지고 자기 갈길 가는 것이 요즘 부부다.

 

돈이 있어도 중풍이나 치매 고질병이 들어 오랜 세월 내지 평생을 지낸다고 생각해보면 눈앞이 아찔하다. 차라리 콱 죽는것이 행복인데 그게 마음대로 되나?

서울대학 보내고 미국유학 보냈다고 자랑한 자식이 똥오줌 받아 내겠는가?

꿈 같은 바램요 어림없는 소망이요 바보 같은 망상이다.

 

팔불출 같이 자식자랑 손자자랑 가문자랑 하지 말고, 그 정신 가지고 본인의 혈압수치, 혈당수치, 콜레스테롤 수치가 얼마인지 항상 기억하면서 자기건강 사전에 조심하기를 권하고 싶다.

 

마실 온 분은 아들이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5년전에 의사가 되었다고 만날 때 마다 자랑을 자주 하였다.

자랑할 만하지, 의사되는 일이 쉬운 일인가,

 

2년전에 신도시에다가 의사 3명이 공동으로 출자하여 개업을 하면서 돈이 부족하여 부모 집을 담보로 2억을 대출하였는데 아직까지 은행이자를 부모가 낸다는 것이다.

 

이번에 놀러와서는 의사아들 자랑은 별로 안하고 은행이자 걱정을 많이 한다. 특별히 수입은 없어도 시집안간 딸의 월급으로 살아왔는데 이제는 그 딸도 시집을 가서 여유가 없는데다 이자까지 물게 되니 힘이 든다는 것이다. 아들은 1년만 지나면 안정이 될테니 걱정 말라고 하지만 웬일인지 마음이 무겁다는 것이다.

노후에 남은 것이 집 한 채뿐이고 이것이 희망인데---

 

쓸데없는 걱정하지 말라고 놀러온 사람을 위로하여 보내면서

나는 마음속으로 다시 행복지수(幸福指數)를 3단계 조정하여 둔다.

 

허기심 실기복(虛其心 實其腹) 마음을 비우면 배가 부르고(노자)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성경)

1층을 지어야 3층집을 짓지(벽암록)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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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그리움에 지쳐버린 애달픈 여인

平生離恨成身病(평생이한성신병)

평생동안 이별의 한(恨)이, 몸속 깊이 병이 되어

 

酒不能療藥不治(주부능료약붙이)

술로도 못 고치고, 약으로도 못 다스리네.

 

衾裏泣如氷下水(금이읍여빙하수)

이불 속에 흘리는 눈물은, 얼음장 밑에 물과 같아,

 

日夜長流人不知(일야장류인부지)

밤과 낮을 길게 흘려도 그 누가 알아주리오.

 

옥봉 이씨(玉峯 李氏)

 

이옥봉(李玉峰)

작자인 이씨(李氏)는 호가 옥봉(玉峯)인데 선조 때 옥천군수를 지낸 봉(逢)의 서녀(庶女)로 조선 중기의 문신(文臣)인 조원(趙瑗)의 소실(少室)이다. 시집 옥봉집(玉峰集) 1권 만이 가림세고(嘉林世稿)의 부록으로 전하여 지는 여류 문인이다.

 

15세에 출가한 옥봉은 첫 남편을 여의고, 두 번째 남편에게도 글재주가 뛰어났다는 이유로 버림을 받게 되면서 고독한 나날을 보내게 된다. 이런 자신의 삶에 대한 한탄과 자기를 버린 남편에 대한 원망과 기다림은 마음의 깊은 병이 되어, 한 평생을 우울하게 산 것이다.

 

위의 시는 그녀의 인생만큼 간절하고 안타까움이 담겨있어 후세 사람들에게 오래 동안 마음에 애달픈 여운을 남기게 한다.

 

앞에서도 여러 조선 여성들의 한시가 소개 되었지만 비단 이옥봉 뿐 아니라 조선의 여성들은 남성이 만들어 놓은 규범의 틀(울鬱)속에서 인간의 가장 존귀한 자존(自存)을 강탈당하고 살아온 것이다.

 

우리의 역사적 시야를 좀 더 넓게 보면 조선의 여인뿐 아니라 동서양(東西洋) 인류(人類)의 역사 속에는 암컷(雌자)과 수컷(雄웅)간의 치열한 헤게모니(hegemony주도권)쟁탈전이 계속되어 왔다. 부계혈통(父系血統)을 유지하려는 남성과 모계혈통(母系血統)으로 바꾸려는 여성과의 싸움이 계속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호주제(戶主制)가 폐지되는 것도 부분적인 암컷(雌자)의 저항운동 성과의 한 맥락(脈絡)인 것이다.

 

서양역사의 근간(根幹)이 되는 성경(聖經)에서도 여자는 남자에 예속(隸屬)되어 있고 성경속의 모든 역할은 남자 중심으로 되어 있다. 즉 부계혈통인 것이다.

아브라함으로부터 예수에 이르는 족보가 남자 혈통이다.

 

기독교에서 남녀평등(男女平等)이라는 말은 목사의 설교상 방편(方便)에 불과한 것이지 “말씀”과는 근본적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신약성서 고린도전서 11장 1절~16절 사이에 『남자의 머리는 하나님이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이므로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이고 영광이고 또 여자는 남자를 위해 지음을 받았음으로 여자는 남자 앞에서 머리를 가려야 한다. 하나님께 기도할 때 남자는 맨머리로 기도해도 여자는 반드시 수건으로 가리고 기도해야 한다.』즉 남자를 바로 처다 볼수 없는 것이다.

 

동양사의 기본을 이루는 불교도 마찬가지다.

창시자(創始者)인 싯다르타가 남자이며 초기불교인 교종(敎宗)에서 중국으로 넘어온 선종(禪宗)의 초조(初祖)인 1조 달마(達磨), 2조 혜가(慧可), 3조 승찬(僧璨), 4조 도신(道信), 5조 홍인(弘忍), 6조 혜능(慧能)에서---- 한국 선불교(禪佛敎)의 현주소인 임제종(臨濟宗) 조계종(曹溪宗)이 모두 남자이다.

 

공자의 유교(儒敎)는 단연 남자 단독무대(單獨舞臺single stage)인 것이다.

 

남성중심 세계에서 신화(神話)를 제외한 무대에서 여성으로서 선덕여왕, 클레오파트라, 측천무후, 엘리자베스여왕, 대처 정도가 운동권의 스타로서 겨우 한자리 비집고 앉았을 정도다.

 

오로지 노자(老子)만이 무위자연(無爲自然) 사상 속에서 여성을 남자보다 높은 자리에 올려놓고 있다. 지면(紙面)관계로 길게 못쓰지만 노자 6장의 “곡신불사 시위현빈(谷神不死 是謂玄牝)”은 “여자 하느님은 영원히 죽지 않으며 현묘(玄妙)한 암컷”이라고 받들고 있다. 인류사의 유일한 페미니스트(feminist여성 숭배자)라 할 수 있지 않을가?

 

인류가 생존하고 있는 한 여자와 남자의 자리다툼의 투쟁은 계속 될 것이다. 여자 대통령후보, 여자국회의원, 여자공무원, 여자사관생도가 늘어나고 있으니 이옥봉(李玉峰) 의 원혼(冤魂)도 언젠가는 신원(伸寃)될 때가 있을 것이다.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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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전(丹田)의 쑥뜸 찬가

一年辛苦惟三百(일년신고유삼백)

일년에 애써 삼백 번만 고생하시고

 

灸取關元功力多(구취관원공력다)

관원에 뜸을 뜨면 공력(功力)이 보통 아니라네

 

健体轻身无病患(건체경신무병환)

몸이 가볍고 건강해지며 질병 없어지니

 

彭祖寿算更如何(팽조수산경여하)

팔백 살 팽조보다는 더 오래 살으리라

 

편작심서(扁鵲心書)의 쑥뜸 찬가

 

편작심서(扁鵲心書)

신의(神醫) 편작(扁鵲)이야기를 하나 더 소개 합니다.

이 내용은 편작의 일화가 아니고 편작이 썼다고 전해지는 의학서(醫學書)인 편작심서(扁鵲心書)라는 책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남자들이 흔히 듣는 이야기로 “단전(丹田)을 주먹으로 치거나, 침을 맞거나, 그곳에 뜸을 뜨면 정력이 좋아진” 라는 말이 있습니다.

 

단전의 위치는 배꼽 밑에서 치골(恥骨) 사이에 침(鍼)을 찌르는 혈(穴)자리가 ⑦음교(陰交) ⑥기해(氣海) ⑤석문(石門) ④관원(關元) ③중극(中極) ②곡골(曲骨)의 6혈이 있는데 단전(丹田)부분은 ⑥⑤④번혈이 있는 부분입니다. 6개의 침혈자리가 있는 곳은 침구 경락의 기경팔맥(奇經八脈)중 임맥(任脈)에 속한혈로서 현대의학의 해부학적 위치로서는 비뇨기과 부분의 여러 장기가 분포되어 있는 곳입니다.

 

단전(丹田)은 흔히 배꼽 밑(臍下제하) 3치(9cm쯤)의 부위를 말합니다.

한의학에 의하면 뇌(腦)는 수(髓골수)로서 상단전(上丹田)이 되며, 심(心)은 심궁(心宮몸의 궁전)으로서 중단전(中丹田)이 되고, 배꼽밑 3치의 부위는 정기(精氣)를 저장하는 창고로서 하단전(下丹田)이라고 합니다. 단(丹)의 빨강색은 곧 양(陽열)을 의미하므로 단전은 양기(陽氣)의 밭이라는 뜻입니다. 인체는 정(精)·기(氣)·신(神)으로 구성 되는데, 신(神)은 기(氣)에서 생기며, 기(氣)는 정(精)에서 생기므로 이 3자는 항상 수련하여야 한다고 합니다.

 

여기에 중심적인 혈이 ④관원(關元)혈입니다. 남성들은 이 혈자리를 항상 따뜻하게 하거나 여기에 쑥뜸을 봄 가을로 뜨면 정기(精氣)가 튼튼해진다는 것이 한의학(韓醫學)의 이론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임상학(臨床學)적으로도 많이 적용을 하고 있습니다.

 

관원(關元)혈에 뜸을 뜨면 정력이 좋아진다는 근거가 편작(扁鵲)의 편작심서(扁鵲心書)에 의한 것입니다. 다음을 읽어 보십시오.

 

중국 송(宋)나라 소흥년(紹興年)에 유무군(劉武軍)의 보병부대에 왕초(王超)라는 병사가 있었는데 제대 후에 중호(重湖)지방에서 도적질을 하다가 타지방의 한 이방인(異邦人)을 만나 황백주세(黃白住世)라는 뜸뜨는 법을 배워 90세가 되어도 얼굴에 광채(光彩)가 나고 윤택(潤澤)하였다.

 

신묘(辛卯)년에는 악양지방(岳陽地方) 민가에서 매일같이 10명이 넘는 여자들을 간음(姦淫)하다가 형관(刑官)에 체포되어 처형을 당할 때 법관이 궁금하여 “어떻게 매일 여자 10명을 즐기는 힘이 어디서 나느냐” 하고 묻자 범인 왕초(王超)가 말하기를 봄 가을 철이 바뀔 때에 관원(關元)혈에 매일 뜸 10장을 뜨게 되면 추위와 더위를 타지 않고 배고픔을 느끼지 않으며 지금가지 제하(臍下배꼽밑)에 주먹 같은 덩어리가 뭉쳐있어 마치 불덩이처럼 따뜻하니 흙이 벽돌이 되고 나무가 숯이 되듯이 이들은 모두 화(火불)의 힘에 의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가 처형된 후에 형관이 그의 배를 갈라 해부하여 보니 살도 아니고 뼈도 아닌 마치 돌과 같이 엉긴 듯한 덩어리가 나왔는데 이것이 바로 쑥뜸의 효과 였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황제내경 소문에 기록하기를 나이 40이 되면 양기(陽氣)가 쇠약해지고 50세가 되면 몸이 무겁고 귀가 어두우며 60세에는 양기가 크게 떨어져 발기가 안 되며 상체는 열이 많고 하체는 차고 허약해져 콧물과 눈물이 저절로 나게 된다. 이때 보양하는 첫방법이 쑥뜸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30세가 되면 3년에 한 번씩 관원혈에 300장을 뜨고 50세에는 2년에 한번씩 300장을 뜨고 60세는 1년에 한번씩 300장을 뜨면 불로장생한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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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명(淸明)

淸明時節雨紛紛(청명시절우분분)

청명시절에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니

 

路上行人欲斷魂(로상행인욕단혼)

길 가는 행인의 마음이 들뜬다

 

借問酒家何處在(차문주가하처재)

술집이 어느 곳에 있는가?

 

牧童遙指杏花村(목동요지행화촌)

목동이 살구꽃 핀 마을을 가리킨다.

두목(杜牧)

 

청명(淸明)

오늘(4월 4일)이 청명(淸明)이다.

청명이 절기와 아울러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것은 위의 두목(杜牧)의 한시(漢詩) 때문으로 생각하는 문인들이 많다.

 

우리나라 속담에 “청명에 죽으나 한식에 죽으나”라는 속담이 있다. 청명(淸明)은 한식(寒食)과 붙어 있어서 그날이 그날이라는 뜻이다. 음력 2월 말경이면 만물이 돋아나고 자라며 청결(淸潔)하면서도 맑고 깨끗하여 명정(明淨), 청명(淸明)이라고 부른다. 날씨는 웃옷을 벗을 정도로 따뜻해지고 농촌에서는 봄갈이가 본격화되며 날씨가 좋아 나무를 심는 일을 이때 한다.

 

일기예보에 청명날 서울의 날씨가 맑고 영상 20도를 예보하고 있다. 그런데 온난화(溫暖化)현상 때문인지 4월 5일은 식목하기에는 좀 늦은 감이 든다. 식목일을 3월중으로 변경하는 것을 고려할 필요를 느낀다.

 

청명이 되면 마을과 집 안의 우물을 깨끗이 치우고 그 샘물을 길어 청명주(淸明酒)를 담근다. 청명 절기주(節期酒)로 찹쌀로 빚은 청명주(淸明酒)는 담근 지 7일 뒤 위에 뜬 것을 걷어내고 맑은 것을 마신다고 한다. 또 이때 장을 담그면 맛이 좋다고 하여 한 해 동안 먹을 장을 담그기도 한다.

 

청명에 조상 산소에 가서 성묘를 하고 가족들과 함께 봄놀이를 즐기는 일을 생각하면 멀리 떠나 있는 나그네에게 얼마나 그립고 가슴 찡한 것인가.

 

옛날부터 청명절이면 사람들은 성묘를 하면서 묘소를 손을 본다.

청명과 한식은 모든 귀신들이 하늘로 올라가는 날이므로 죽은 사람과 관련된 어떤 일을 하더라도 재앙을 타지 않는다고 한다. 비석을 바꾸거나 세우는 일도 무너진 무덤을 수리하는 일도 무덤에 잔디를 덧입히는 일도 모두 이때 한다. 동티가 나지 말라는 것이다.

 

또한 나이가 들면 무덤을 보는 눈도 달라진다. “나도 멀지 않아 이곳으로 오게 될 것이다” 라는 생각과 “저편 언덕에 내 생명이 묻히게 될 것이다”라는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청명(淸明)은 깨끗하고 맑은 날이면서도 나이든 사람에게는 한편 서글픈 날이기도 하다.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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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寒食)

麥短侵斜逕(맥단침사경)

짧은 보리이삭은 산 비탈길로 넘어오고

 

苔深淨小磯(태심정소기)

이끼가 무성한 개울가 작은 바윗돌은 깨끗하다

 

林鳩鳴午景(임구명오경)

한낮 볕 속에서 산비둘기는 울고

 

野馬弄晴暉(야마농청휘)

맑은 빛 어울려 아지랑이 어른거린다

 

花事近淸明(화사근청명)

꽃소식에 청명이 가깝고

 

煙光冷節微(연광냉절미)

연기는 한식(寒食)이라서 거의 없다

 

無人會幽意(무인회유의)

그윽한 뜻 알아줄 사람 없으니

 

高詠獨言歸(고영독언귀)

높이 읊조리며 홀로 돌아온다.

장유(張維)

 

장유(張維1587~1638)

조선 중기 광해군 때의 문신으로 양명학(陽明學)을 익혀 기일원론(氣一元論)을 주장한 학자이다. 주자학이 이(理)와 기(氣)의 개념에 근원을 두는데 반하여 양명학은 심즉이(心卽理)에 근원을 두고 지행합일(知行合一)론을 주장하는 학파로서 성리학 쪽에서는 이단(異端)시 하고 있으며. 일본에서는 조선의 성리학보다 양명학을 중심으로 많은 연구와 발전을 하고 있다.

장유(張維)는 몇 안 되는 성리학의 대가이다.

 

오늘 4월 5일은 어제 청명(淸明)에 이어 한식(寒食)이면서 식목일(植木日)이다.

청명 한식이든 추석 무렵의 벌초 성묘든 묘지내외의 일들을 처리하고 나면 한바탕 땀이 난다. 준비한 제수로 절을 올린 후 음식과 술을 한잔하면서 주변 풍경을 자연스럽게 둘러보게 된다.

 

나이 들면 무덤을 보는 눈도 달라지는 모양이다. 요즘은 가끔 내가 죽은 후를 생각하게 된다. 묘지를 쓸 것인지. 화장을 할 것인지. 방송에는 화장이 60%를 넘어서고 있고 수목장(樹木葬)장도 새로이 주목받고 있다고 한다. 어디 몇 평정도 값싼 야산이라도 마련하여 화장을 하여 재를 뿌리던지 수목장을 하던지 내가 죽고난후 자식들이 당황하지 않게 해야 될 것인데--

 

이제 인생의 저물녘에서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면 많은 상념들이 떠오르곤 한다. 내 앞에 많은 분들이 저세상으로 가셨고 이제 나도 그분들의 틈으로 들어갈 것이다. 죽음이란 인간이 받는 저주이면서 동시에 축복이 아닌가.

그 축복이란 내가 왔던 근원(根源)으로 돌아가기 때문일 것이다.

 

선승(禪僧)인 6조 혜능(慧能)이 열반(涅槃)에 들 때에 애통하는 여러 중생(衆生)들의 물음에 답하기를 “낙엽귀근 래시무일(落葉歸根 來時無日)”이라 하였다.

떨어진 잎사귀는 근본인 뿌리로 돌아가고 다시 돌아올 때를 기약할 수 없다는 뜻이다.

 

한식(寒食)은 원래 한국의 풍습이 아니라 중국에서 들어온 풍습으로 한국에 토착화되었다고 전한다.

개자추전설 (介子推傳說)이 그말이다.

중국 춘추시대에 문공(文公)이 오랜 세월 나라를 잃어 망명(亡命)하다가 나라를 회복하여 공(功)이 있는 충신들을 포상할 때 개자추(介子推)가 포상자들 중에 들지 못하자 부끄럽게 여기고 산중에 들어가 숨어버렸다. 문공이 뒤에 알고 그를 찾았으나 산중에서 나오지 않으므로 불을 놓으면 나올 것이라는 생각에서 불을 질렀다.

그러나 끝내 나오지 않고 홀어머니와 함께 버드나무 밑에서 불에 타 죽었다.

이에 그를 애도하는 뜻에서 이날은 불을 쓰지 않고 찬 음식을 먹는 풍속이 생겼다고 한다.

 

청명(淸明) 한식(寒食)은 글자의 느낌처럼 맑고 밝은 것만 아니고 흙으로 돌아갈 처연(凄然)함과 찬밥의 사연도 함께 있는 날이다.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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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월구일억산동형제(九月九日憶山東兄弟) 산수유 머리에 꽂고 고향 생각

獨在異鄕爲異客(독재이향위이객)

홀로 타향에 나그네가 되어

 

每逢佳節倍思親(매봉가절배사친)

명절을 맞을 적마다 친족생각이 간절하구나

 

遙知兄弟登高處(요지형제등고처)

멀리서 형제들이 산에 올라가

 

遍揷茱萸少一人(편삽수유소일인)

모두들 머리에 산수유를 꽂을 때 한사람 모자람을 알겠지.

 

왕유(王維)

 

지난 3월 28일 수리산 등산길에 산수유(山茱萸)가 핀 것을 보고 왕유(王維)의 유명한 중양절(重陽節)의 산수유(山茱萸) 한시(漢詩)가 생각나서 소개 합니다.

 

왕유(王維)는 앞에서도 잠간 소개 하였지만 중국 문학속에 이백 두보와 같이 당대(唐代)를 대표하는 대시인 중의 한 사람입니다. 이백을 시선(詩仙), 두보를 시성(詩聖)이라 불러 왔는데 청(淸)대의 화가 왕사신(汪士愼)은 왕유를 “시불(詩佛)”이라 일컬어 이백과 두보와 같은 반열에 올려놓은 것으로 보아도 왕유가 중국 문학상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짐작할 수 있으며 한시(漢詩)의 작가 이전에 수묵(水墨)의 산수화(山水畵)를 잘 그려 남종 문인화(南宗文人畵)의 시조(始祖)로 불리어 왔습니다. 여기서 남종화와 북종화의 소개는 생략하겠습니다.

 

산수유는 꽃은 이른 봄에 피지만 열매는 가을에 맺는 약재입니다 중국에서는 음력 9월9일(重陽節중양절)에 산수유를 머리에 꽂고 국화주를 마시는 풍습이 있었다는데, 고향에서 형제들이 산수유를 머리에 꽂고 산에 오르는 명절날 왕유 자신만 빠져있음을 느낄 것이라는 생각을 하여 그리움을 표현한 유명한 작품입니다.

 

봄이라는 계절은 오행(五行)상으로 목(木) 풍(風) 동(東)등의 성질로서 모두 외부로 발산(發散)하고 움직이는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봄은 모든 생물이 돋아나는 계절이므로 한의학적으로 질병(疾病)도 봄에 많이 발병(發病)되며 특히 간(肝)질환은 치료와 발병이 교차되는 시기로 관심을 갖일 필요가 있습니다.

 

가을은 마치 장롱 속에 옷을 차곡차곡 정리하면서 옷고름으로 눈물을 닦는 내면의 슬픔이라면 봄은 활짝핀 진달래를 머리에 꽂고 임의 소식을 기다리는 두견새의 아픔입니다.

 

산수유는 겨우내 고이 간직한 연민(憐憫)의 마음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한시라도 빨리 보여 드리고 싶었으나 행여 다칠세라 봄이 오길 애타게 기다린 것입니다.

작은 꽃잎에 수줍은 듯 노란 사연을 알알이 담아 연인에게 친구에게 형제에게 사랑과 아픔을 같이 보내는 것이 산수유입니다.

 

산수유는 한방에서 중요하게 쓰는 약재 중에 하나입니다

산수유(山茱萸)는 음(陰)이 부족한 노인들의 양음(養陰)역활을 하는 대표적인 육미(六味)약입니다. 보혈(補血)과 음(陰)을 기르고 주로 간(肝)과 신장(腎臟)에 효력을 나타내는 약입니다.

 

산수유는 혈액을 따뜻하게 해주어 혈액순환 활성화등 손상된 정기를 보충하고 오줌발이 약한 노인, 야뇨증 등에 사용하는 1급 약재 이며 사포닌 비타민A등 유효성분이 풍부해 어떠한 약재와도 궁합이 잘 어울리지만 고정(固精)과 수렴(收斂), 신맛의 성질이 있으므로 살이 찌고 몸이 비대한 노폐물이 많은 사람에게는 신중히 사용해야 하는 약이므로 반드시 의사의 처방에 따라야 합니다.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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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옥란념고토앵화(見玉蘭念故土櫻花) 백목련 보니 고향 벚꽃 생각나네

不覺時來去(불각시거래)

세월이 오고가는 줄 미처 몰랐는데

 

迎春白翼好(영춘백익호)

노란 개나리 하얀 목련이 보기 좋구나.

 

傳聞櫻朵滿(전문앵타만)

소문에 고향에는 벚꽃이 만발 하였다니

 

就要聚銀魚(취요취은어)

이제 머지않아 은어 떼 몰리겠구나.

 

남기일(南基日)

 

목련(木蓮)

어그제 내린 봄비에 가지마다 기다림의 싹을 피워 목련(木蓮)이 피고 있습니다.

달빛아래 물방울이 달린 수즙움의 순백(純白) 목련!

아침햇살에 천리향(千里香) 담은 부드러운 미소로

봄을 전하고 있습니다.

 

4월을 대표하는 꽃은 목련이 아닐까요?

목련에는 여러 가지 이름이 있습니다.

옥처럼 깨끗한 꽃에 난(蘭)같은 향기를 풍겨 옥란(玉蘭),

난초 같은 나무라고 하여 목란(木蘭),

나무에 피는 연꽃이라고 목련(木蓮),

사랑하는 연인이 그리워 꽃봉오리가 북쪽 바다를 향한다하여 북향화(北向花),

꽃봉오리가 붓끝을 닮았다고 목필(木筆) 등으로 불립니다.

 

한의학에서는 신해년(辛亥年)의 신(辛)과 소수민족이라는 뜻의 오랑캐 나라라는 뜻의 이(夷)를 합해 신이(辛夷)라고 부릅니다. 신이는 폐(肺)와 위(胃)에 작용하는 약으로 관절을 이롭게 하고 특히 비염이나 코가 막힌데 사용하는 중요한 약재입니다

목련은 특이하게도 잎눈에는 털이 없는데 꽃눈에는 황금색 털이 덮여 있습니다.

 

세상의 꽃들이 화려한 색으로 화장할 때

아무 꾸밈없이 순결의 모습으로 다소곳 미소 짓는 목련은

고결(高潔) 순결(純潔) 단아(端雅)함이 귀족 같습니다.

수줍고 다소곳한 자태를 보이기 위해 혹독한 추운 겨울을 이기고

눈 속의 매화에게도 자리를 양보하였습니다.

 

북쪽 바다지기와 이루지 못할 사랑으로 바다에 몸을 던진 공주와

자기의 아내에게 잠자는 약을 먹여 공주 옆에 산채로 나란히 묻고 공주는 백목련(白木蓮)으로 바다지기의 아내는 자목련(紫木蓮)으로 화신(化身)한 슬픈 사연의 목련은 지금도 연인을 잊지 못해 고개를 북쪽으로 돌리고 있는가요?

 

이제 봄을 시샘하는 마지막 바람에 소리 없이 한잎 두잎 떨어질 유백색(乳白色)의 혼(魂)과 같이 봄도 떠날 것입니다.

 

목련지고 벚꽃필때는 개울의 여울물도 한층 초록빛으로 바닥이 훤히 보일 때입니다.

지금은 아련히 동화(童話)속의 추억으로만 남았지만 내 고향 곤양(昆陽)의 당내천(堂內川)과 남산(南山) 모퉁이 언내(堰內)들의 개울은 수정(水晶)같이 맑았습니다. 봄비가 내린 뒤에 보(洑)밑 살래 물(빠른물살)에 반디를 펼치면 은빛 은어(銀魚)가 그물위로 튀어 오릅니다.

 

은어는 성질이 급하여 물밖에 나오면 금방 죽지만 비린내 대신 쌍긋한 수박냄새가 이른 봄내음새와 같이 코밑을 자극합니다. 아직은 좀 이르지만 이때쯤이면 면사무소 앞 벚꽃이 만발하고 남산에는 진달래가 불타듯이 활짝 피어 있습니다. 앞들 논 중간 중간에 풀씨논(자운영紫雲英)이 수놓은 듯 하고 멀리 방천뚝에는 송아지와 염소가 뿔싸움 하는 사이로 삽을 둘러멘 옆집 아저씨 발걸음이 한가롭게 보입니다.

 

벚꽃, 자운영, 은어가 그리운 고향의 추억합니다.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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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포농월(漢浦弄月)한강에서 달과 노닐며

日落沙逾白(일락사유백)

해저물녘에 모래사장 더욱 희고

 

雲移水更淸(운이수경청)

구름이 걷히니 강물이 한결 맑게 드러나네.

 

高人弄明月(고인농명월)

고고한 선비 밝은 달과 노니는데

 

只欠紫鸞笙(지흠자란생)

다만 신선의 피리소리 없는 것이 한이로다.

이색(李穡)

 

 

이색(李穡)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야은(冶隱) 길재(吉再)와 함께 고려 말 삼은(三隱)의 한 사람으로 잘 알려진 대 학자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시입니다.

 

이시는 500년 전의 저녁노을이 질 무렵의 한강 풍경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 시를 읽다 보면 옛날 한강의 노을이 지는 저녁 풍경과 때마춰 떠오르는 달의 아름다움이 선연하게 그려집니다.

 

해가 서산으로 기울 때, 노을에 반사되는 한강 백사장의 반짝이는 모래가 아름다운 모습으로 영상됩니다. 강물에 드리웠던 구름 그림자까지 걷히고 나니 물은 더욱 맑게 보입니다.

 

40년전 필자가 서울에 막 올라왔을 무렵의 한강은 지금처럼 고수부지가 개발이 안 되고 어느 정도 자연 형태 그대로 있을 때 지금의 노량진 수산시장의 강변에는 자갈밭으로 사람들이 차양을 치고 더위를 피했으며 퇴근 후에 투망을 던지면 자가사리가 많이 잡혔습니다.

 

60년대말 70년대 초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한창이라 공장에서 흘러내리는 폐수로 한강에 기름 냄새가 물고기에 오염되어 잡은 물고기를 몇 시간 맑은 물에 우려낸 다음 찌개를 끓려먹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강서구 염창동 한강변에는 모래사장이 꽤나 넓어 청춘남녀들의 데이트 코스로 많이 이용되고 소나무 숲은 키스를 할 때 좋은 병풍역활을 하여 주었습니다. 밤 11시에서 새벽 까지 뱀장어낙시를 하면 50cm가 넘고 어린이 팔뚝만한 장어가 상당히 많이 잡혔습니다.

 

다시 이색(李穡)의 한강 풍경으로 돌아갑니다.

어둠이 내린 한강의 맑은 강물에 달이 둥둥 떠서 흐릅니다. 이때 하늘에 뜬 달과 강물에 빠진 달을 번갈아 바라보는 고고한 선비(여기서는 이색 자신)는, 이 아름다운 정경 속에서 피리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이 다만 아쉬울 따름입니다.

 

달빛은 하늘에서 밑으로 흐르고, 강물은 수평으로 흘러갑니다. 달과 물의 서로 어울림은 절정을 이루는데, 그 정취를 더욱 돋보이게 해줄 피리소리가 없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달그림자를 출렁거리게 하는 물결소리 만으로도 이미 그것은 훌륭한 음악입니다.

 

그래서 이색은 필요한 피리소리를 스스로 지은 시로 대신하고 있습니다. 대학자 이색 다운 여유와 낭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서울을 사랑합니다.

특히 한강을 너무나 사랑합니다.

사계절 어느 때고 한강은 절경이지만 해질 무렵에 동작대교에서 여의도 6.3빌딩에 걸린 저녁노을과 물에 비친 풍경은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없이 아름답습니다. 방화대교에서 잠실을 넘어 끝없이 이어지고 있는 강변로를 인라인으로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기분은 한강에서만이 즐길 수 있는 기분입니다.

한강은 민족의 동맥입니다.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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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백운봉(登白雲峰) 삼각산(三角山) 백운봉에 올라

引手攀蘿上碧峰(인수반라상벽봉)

머루덩굴 손으로 끌어당기며 상상봉에 올라보니

 

一庵高臥白雲中(일암고와백운중)

한 암자가 높이 흰 구름에 누웠구나.

 

若將眼界爲吾土(약장안계위오토)

만약 눈에 들어오는 경계로 내 땅을 삼을 수 있다면

 

楚越江南豈不用(초월강남기불용)

초나라 월나라 강남인들 어찌 받아들이지 않겠는가.

이성계(李成桂)

 

이성계(李成桂)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로(재위 1392∼1398) 요동정벌을 위해 북진하다가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우왕을 폐하고 막강한 권력으로 조선(朝鮮)을 세우고 도읍을 한양(漢陽)으로 옮겨 초기 국가의 기틀을 다진 조선의 제 1대왕이다.

 

위의 시는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고 삼각산 백운봉에 올라 시야에 들어오는 마을과 자연을 보며 호탕한 기상을 노래한 것이다.

 

삼각산(북한산)은 예사로운 산이 아니다.

삼국사기에는 고구려 동명성왕(東明聖王)아들 비류(沸流) 와 온조(溫祚)가 백운대를 최초로 올랐다고 기록되어 있다.

 

필자는 기록이나 표현상 필요할 때를 제외하고는 북한산(北漢山)이라 부르지 않고 삼각산(三角山)이라 호칭한다.

오늘 삼각산(三角山) 한시(漢詩)를 소개하는 자리에서 평소 북한산(北漢山)과 한강(漢江)의 이름과 글자를 고쳐야 한다는 생각을 이 지면을 빌려서 피력(披瀝)하고자 한다.

북한산(北漢山)은 삼각산(三角山)으로 한강(漢江)은 한강(韓江)으로 이름을 바꾸고 글자를 고쳐야 한다.

 

우리나라 여러 가지 이름에는 한(漢)이라는 글자가 들어가는 곳이 많다. 우선 한강(漢江) 북한산(北漢山) 남한산성(南漢山城) 대한문(大漢門) 한라산(漢拏山) 한과(漢果) 한의학(漢醫學→韓醫學)등에 들어가는 한(漢)자는 중국의 한(漢)나라를 의미하는 글자이다.

 

그래서 漢江은→韓江으로 北漢山은→三角山으로 南漢山城은→南韓山城으로 漢拏山은→韓拏山으로 漢果는→韓果로 고쳐야 한다. 漢醫學도→韓醫學으로 1986년에 고쳤다.

 

중국에는

중국 땅을 한토(漢土)라고 한다.

중국의 상징인 양자강을 한수(漢水)라고 한다.

중국에서 생산되는 비단을 한단(漢緞)이라고 한다.

중국의 본토인을 한인(漢人) 한족(漢族)이라고 한다.

 

학자들 중에는 한(漢)자를 쓰는 이유를 신라 때부터 사용되어온 이름이고 “은하수가 흐르는 한(漢)” “크다는 의미의 한(漢)”이라고 말하지만 대한민국의 학자들 치고는 참 좁은 안목의 설명이라고 생각한다.

 

왜 대한민국(大韓民國) 이라는 한(韓)자를 쓰지 못하는가?

한(韓)자의 의미는

대한민국의 韓

조선국명의 韓

마한(馬韓) 진한(辰韓) 변한(弁韓) 삼한(三韓)의 통칭이 한(韓)이다.

크다는 의미의(great)韓

 

한국 땅을 한토(韓土), 한국 사람을 한인(韓人), 한국은행을 한은(韓銀), 한국 쌀을 한백미(韓白米), 한국 옷을 한복(韓服), 한국 집을 한옥(韓屋), 이라 부르는데 왜 민족의 핏줄인 우리 강을 한강(韓江)이라 못하는가?

 

지금 중국은 동북공정(東北工程)이라는 역사왜곡의 프로젝트를 내세워 우리민족의 역사인 부여 고구려 발해국을 중국의 고대사로 날조(捏造)하여 억지를 쓰고 백두산을 자기의 산이라고 하는데 온통 한(漢)자 투성인 한반도를 종국(終局)에는 자기들의 영토였다고 주장하면 무엇이라고 대응할 것인가?

 

우리나라의 지식인들이나 역사학자들은 왜 이런 부분에 소극적이고 관심이 없는가?

 

내나라 대통령(박정희)이 쓴 광화문(문화재 등록도 아닌) 현판은 독재자가 쓴 글씨라 하여 바꾸어야 한다고 야단이고 건국대통령 이승만을 독재자라고 동상을 쓰러뜨리면서 우리나라 역사 전체를 지배하여온 중국의 사대주의와 종속(從屬)의 상징인 한(漢)자를 바꾸는데는 왜 이처럼 인색하고 어려워하는지 모르겠다.

 

옥편에 북(北)자의 글자 설명은 아래와 같다.

뒤(背)라는 뜻의 뒤북(北)

북쪽이라는 뜻의(朔方~北方) 북녘북(北)

북쪽으로 간다는(北行)뜻의 북쪽에갈북(北)

패하여 달아난다는(敗走)뜻의 패하여달아날배(北)

배반한다는(背也)뜻의 배반할 배(北)

나누어진다(分離)뜻의 나눌 배(北)자

 

북(北)자는 사람이 서로 등지고 있는 모양의 상형문자이다. 화합을 해치는 글자이다.

또한 사람은 보통 밝은 쪽을 향하며 집도 남향으로 세우는데 반하여 北자는 반대(反對)쪽인 북쪽으로 삼은 글자이다.

 

한(漢)자의 글자 설명은 아래와 같다.

한(漢)한자는 한수 한(漢水는 양자강을 말한다)

남자를 천하게 부르는 남자천칭(男子賤稱) 한(漢)자이다.

 

한(漢)자는 뜻을 나타내는 삼수변(氵(水물)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어려울 난(難)자의 생략형(省略形)글자이다. 곧 한(漢)자는 어렵다는 의미의 글자이다.

 

한(漢)자는 양자강 상류 하천(水) 지역이라는 뜻을 합(合)하여 중국인 “한나라”를 뜻하며. 본뜻은 양자강(陽子江)의 지류(支流)인 한수(漢水)를 말한다.

 

*한(漢)은 장기판의 궁(宮)의 하나이다.

*한(漢)씨 성(姓)의 하나이다.

 

*중국(中國)의 왕조(王朝) 이름, 또는 중국(中國)의 별칭(“한(漢) 민족(民族)”을 뜻함).

유(劉유방)씨가 세운 한왕조(漢王朝)는 기원전 202년부터 기원후 220년까지 중국(中國)에 군림한 전한(前漢)과 후한(後漢)이다.

 

*은하수가 흐르는 뜻의 한(漢)

 

한토(漢土)라는 말은 중국의 본토인 한나라를 말하고

한수(漢水)는 중국에서 양자강의 이름인데 우리가 왜 한강 한수(漢江,漢水)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따라서 북한산(北漢山)의 글자를 해석해보면 『패하여 달아날망할놈의산』 『백성을 배신할놈의산』 『남북으로 갈라질 산』 『부부간에 불화할 산』 이 되는 것이다. 우리스스로 우리들을 배신할 산, 패하여 달아날망할놈의산, 이라고 부르고 있으니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며 가슴 아픈 일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불러서는 아니 되며 한자(漢字)를 사용하여야 할 문화권에 있므로 우리역사에 알맞은 의미 있는 산 이름과 강이름자로 고쳐 불러야 한다. 북한산의 다른 이름은 삼각산(三角山) 화산(華山) 화악(華嶽)등의 이름도 있다.

 

조선이 서울에 도읍을 정할 때 내사산(內四山)과 외사산(外四山)의 중요성을 염두에 두었다고 한다. 외 사산중에서도 삼각산은 대한민국의 진산(鎭山)이요 수도 서울을 외성으로 감싸고 있는 수호(守護)의 산이다.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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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崇禮門)

畵閣嶢出半空(화각요출반공)

단청한 누각 허공에 높이 솟아

 

登臨況若駕飛鴻(등림황약가비홍)

올라보니 마치 날으는 기러기 탄 듯하구나

 

平生壯志憑無地(평생장지빙무지)

평소의 높은 뜻 의탁할 데 없어

 

獨臥乾坤萬里風(독와건곤만리풍)

천지에 넓게 부는 바람에 혼자 누웠네.

※임득충(林得忠)이 숭례문 누각 벽면에 썼다고 전하는 한시

 

★숭예문(崇禮門)

紛氣消日月明(분기소일월명)

나쁜 기운 사라져 다시 해와 달 밝으니

 

五雲宮闕望爭嶸(오운궁궐망쟁영)

멀리 상서로운 구름 사이로 궁궐의 자태 드러난다.

 

滿城車馬垂楊裏(만성차마수양리)

수양버들 늘어진 길에 말과 수레 가득하고

 

獨上南樓去國情(독상남루거국정)

고향으로 내려가기에 앞서 남대문에 오른다.

※영조 때의 문인 채평윤이 이인좌의 난이 평정되자 숭례문에

올라 그 감회를 읊은 시.

 

 

★숭예문(崇禮門)

千年門閣燬于斯(천년문각훼우사)

천년의 문루가 여기에서 불타버리니

 

世祖銅鐘鎔化之(세조동종용화지)

세조시대의 동종도 불길에 사라졌네.

 

五載口勞官不備(오재구로관부비)

5년 동안 입으로한 정치 관청은 준비 없고

 

相臣負鼎責今時(상신부정책금시)

재상의 책임이니 지금에서 책하라

김윤수

 

숭례문(崇禮門)이 불에 탔다.

풍수지리설(風水地理說)로는 관악산불이 숭례문을 태운 것이다.

숭례문은 경복궁을 지키는 남쪽 문이다.

어찌 보면 숭례문이 제 역할을 다하여 더 큰 액운(厄運)을 막았는지 모른다. 못난 백성들의 화(火)를 살신성인(殺身成仁)으로 산화(散華) 했는지 모른다.

 

관악산은 역풍수지리학상 서울 남쪽에 있는 불산(火山)이라 하여 쳐다보기조차 꺼려했던 산이라고 한다.

 

조선 개국 후 왕궁 터를 정하는 데, 관악산을 정남(正南)으로 하면 궁성(宮城)을 위압하여 국가가 평안치 않으므로 궁성 터를 지금의 신촌부근 연희동 위치로 정해야 한다는 무학대사(無學大師)의 주장과 남쪽 앞에 큰 한강이 있어 무방하다는 정도전(鄭道傳)의 주장은 너무나 유명한 역사적 사실이다. 무학대사가 이성계와 형제 같은 친구이지만 조선은 유교 국가이고 불교를 억누르는 정책이므로 정도전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아무튼 관악산이 불산(火山)인 것은 틀림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불의 산인 관악산과 불기운(火氣화기)을 끊는다는 풍수설에서 숭례문(崇禮門-현 남대문) 바로 앞에 남지(南池)라는 연못을 팠다. 연못뿐만 아니라 모든 성문의 액명(額銘현판)이 가로로 되어 있음에 비하여 숭례문의 액명이 세로로 되어 있음도 관악산에서 옮겨 붙을 화기를 막는다는 뜻에서였다.

 

예(禮)는 오행(五行)으로 따져 화(火)에 해당하고, 방위(오방五方)로 따져서는 남(南)에 해당하고 남쪽은 불(火)이다.

숭(崇)자은 불꽃이 타오르는 모양의 상형문자(象形文字)이기에 숭례(崇禮-타오르는 불)는 세로로 세워야 불이 타오를 수 있고, 또 타오르는 불로 불산(火山-관악산)에서 옮겨 붙을 불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알았다. 즉 불은 불로 막는다는 이치다.

 

대원군이 경복궁을 재건할 때 관악의 화기(火氣)를 극복하기 위하여 물짐승인 해태 조각상을 광화문 앞에 세우고 관악산 꼭대기에다 우물을 파고, 관악산의 주봉(主峰)인 연주봉(戀主峰)에 아홉 개의 방화부(防火符)를 넣은 물 단지를 묻은 것도 관악의 화기를 약하게 하기 위함이다.

 

조선시대에는 서울 양반촌인 북촌(北村)에서는 이 관악산과 마주보는 집에서 자라난 딸은 화기(火氣)를 받아 요망스럽고, 음탕하여 일부종사(一夫從事)를 할 수 없다 하여 혼인을 거절한 실례가 있는가 하면, 주민들이 관악산과 마주 보이는 집을 피한다든지, 또는 친정으로 가 아이를 낳는 풍습까지 있었다고 한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믿거나 말거나 한 풍수지리설이다.

우리 선조들은 이런 풍수설을 동원하면서 까지 귀중한 유산을 후손인 우리에게 남겼다.

훌륭한 부모가 아무리 좋은 훈계를 하고 집에 좋은 책을 많이 쌓아두어도 자식이 어리석어 읽지 아니하면 무슨 소용이 되며 부모가 유산을 많이 남겨도 자식이 못나면 보존하지 못하고 전부 탕진하게 된다.

 

“복원하는데 3년이면 충분하다”라는 원두막 짓는 식의 못나고 어리석은 소리 하지 말고 이제 남은 일은 “돌아온 탕자”의 후회를 교훈 삼고 200년 걸려 지은 베드로성당의 본을 받아 충분한 시간으로 완전한 복원(復元)을 하는 것이 역사에 속죄하고 숭례문의 원혼을 위로하는 것이다.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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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목멱산(木覓山)

南山當戶儼蒼顔(남산당호엄창안)

문 앞의 남산(南山) 의젓한 푸른 얼굴

 

山腹晴雲一望間(산복청운일망간)

산허리에 구름 개여 한눈에 들어오네

 

聚散須臾饒變化(취산수유요변화)

모였다 흩어지고 넉넉함도 잠깐으로 변화무궁해

 

棲棲終不似人間(서서종부사인간)

편안한 이곳이 인간 세상 같지 않구나.

신숙주(申叔舟)

 

남산(南山)은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어 왔다

*목멱산(木覓山), 종남산(終南山), 인경산(引慶山), 목밀산(木密山), 마뫼, 등이다.

 

*목멱산(木覓山)을 순우리말로는 마뫼라 기록 되어 있는데 마(南)+뫼(山)로 남산(南山)이란 뜻이다.

 

*종남산(終南山)은 조선시대에 국가의 위급한 사항을 일리는 봉화(烽火)를 사용했는데 그 봉화를 설치하는 곳을 봉수대(烽燧臺)라하며 전국 각지의 봉화(烽火)가 서울 남산(南山) 봉수대(烽燧臺) 5개소에 집결하여 끝난다하여 붙은 이름이다.

 

종남산(終南山)은 종교적인 의미를 갖는 산이기도 하다. 신라인들이 경주 남산(종남산)을 신앙의 대상으로 여겼듯이, 중국 당나라 수도 장안 사람들도 종남산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왔다. 중국불교의 4대 종파가 모두 종남산(終南山)에서 발상(發祥)하여 “천하제일 복지”라 불릴 만큼 유명한 불교와 도교의 성지(聖地)이며 당나라의 종교적 문화적 정신이 머물고 있는 산이 바로 종남산이다.

 

*인경산(引慶山)은 끌 인(引)+경사 경(慶)=길이길이 경사스러움을 이끌어 들인다 하는 축원의 뜻으로 붙인 산 이름이다.

 

*목밀산(木密山)은 목멱(木覓)이라 하기 전에는 소나무가 울창하여 나무 목(木)+빽빽할 밀(密)=하여 목밀산(木密山)이라고 하였는데 조선에 온 중국 사신이 중국 발음으로는 밀(密)과 멱(覓)이 같아서 나무 목(木)+찾을 멱(覓)으로 생각고 발음한 것으로 전해져 그 이후로 목멱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목멱(木覓)은 바다에 고기잡이를 나가는 어부들이 출항하기 전에 무사함을 기원하는 제사의 의식으로 목멱산(남산)이 마포등 한강의 연안(沿岸)이므로 한강과 바다와 관련이 있는 산이라는 설도 있다.

 

남산(南山)은 도심 중에 단순한 시민들의 휴식을 제공하는 산이 아니다. 앞에서도 소개 했지만 송악(松嶽개성)에서 서울로 천도(遷都)하면서 풍수설(風水說)로 경복궁을 수호(守護)하기 위해서 내사산(內四山)과 외사산(外四山)을 정하는데 내사산(內四山)은

서울 4대문안 4개 산인 북쪽의 북악산(백악산), 동쪽의 낙산(타락산), 남쪽의 남산(목멱산), 서쪽의 인왕산이다.

 

그 중에서도 남산(南山)은, 경복궁을 중심으로 북쪽으로 진산(鎭山)인 삼각산(三角山)과 주산(主山)인 북악(北岳) 남쪽으로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光化門)과 숭례문(崇禮門) 목멱산(木覓山) 관악산(冠岳山)등으로 풍수지리설(風水地理說)로 일련(一連)의 벨트 라인 (belt line순환선)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조선태조는 나라를 개창(開創)고 수도를 서울로 옮긴 1년 뒤 북산(北山)인 백악산신(白岳山神)을 진국백(鎭國伯-어지럽던 나라를 태평하게 하는 으뜸)에 봉하는 한편 남산 산신을 목멱대왕(木覓大王)에 봉하고 목멱대왕을 봉사(奉祀)하기 위해 지은 신사를 목멱신사(木覓神祠)라 불렀다. 목멱신사에서는 태조 이성계와 신승(神僧) 무학대사(無學大師)의 초상(肖像)을 걸고 봄가을로 무당을 불러 영혼을 위로하면서 국사당(國師堂)이라 부르다가 1925년 일본인들이 남산에 신궁(神宮)을 지으면서 인왕산 서쪽 기슭 선바위아래(종로구 무악동 산) 에 옮겨져 현재까지 남아 있다.

 

위의 이미지는 조선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의 독자적 특징을 정립(鼎立)한 겸재(謙齋) 정선(鄭敾1676~1759)의 목멱조돈(木覓朝暾) 산수화다.

목멱조돈은 “남산에서 아침 해를 맞이하는 그림”이라는 뜻이다.

 

목멱산(남산)의 아름다움은 자연 속에 정지(停止)된 경치만이 아니고 삼각산의 신비로운 연봉(連峰)이 즐기즐기 내려와 북악(北岳)과 인왕(仁王)으로 이어져 경복궁에 정기(精氣)를 내리고 연이어 우뚝 솟은 남산에 도달하는 역동(力動)의 진경(眞景)으로 대한민국 수도(首都) 정신의 줏대인 얼(정신의 줏대)인 산이다.

 

남산(南山)이라는 이름은 남쪽에 위치한 산의 뜻만이 아니고

한 국가의 도성(都城수도)의 남쪽에 위치한 산이라는 뜻으로 국가 중심의 정기(精氣)가 모인 곳이다. 애국가의 “남산위에 저 소나무--” 가 이를 의미한다.

 

서울시민은 정말 남산(南山)을 사랑하고 아껴야 한다.

남산뿐만 아니고 삼각산 관악산 인왕산등 서울 주변의 산을 소중히 보존해야 한다. 이들 서울 주변의 산자락이나 산등성이에는 여러 가지 명목으로 건물을 지어 산을 망치고 있다. 서울대학교도 관악산의 좁은 공간에서는 산만 망치지 세계적 일류 대학의 반열에 오리기 어렵다. 빨리 더 넓고 확 터인 곳으로 옮겨 웅지(雄志)를 펴야 한다. 진정으로 서울환경을 보존하려면 산을 침범한 건물을 철거하고 산의 기본적인 모습을 회복시켜 자손만대에 진경유산(眞景遺産)으로 물려주어야 한다.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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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관악산(登冠岳山) 관악산에 올라

行筇주到白雲間(행공주도백운간)

지팡이 짚고 흰 구름 속으로 들어가서

 

坐見長空鳥影閒(좌견장공조영한)

끝없는 하늘에 한가로운 새 그림자를 바라본다.

 

對西中國連平海(대서중국연평해)

서쪽으론 중국과 평평한 바다로 이어지고

 

拱北王城冠衆山(공북왕성관중산) 공

북쪽으로 서울을 껴안아 뭇 산 가운데 으뜸이다.

 

五江舟楫春馮遠(오강주즙춘풍원)

한강의 다섯 강에는 배들이 봄바람에 멀리가고

 

列郡人烟夕照還(열군인연석조환)

주변 고을들 인가에선 석양에 밥 연기 피어난다.

 

俯仰乾坤知廣大(부앙건곤지광대)

하늘을 우러러보고 땅을 굽어보아 그 광대함을 알겠나니

 

胡爲庸碌作羞顔(호위용록작수안)

어찌 용렬하게 부끄러운 얼굴을 지으랴.

유인석(柳麟錫)

 

관악산(冠岳山)

관악산(冠岳山)은 서울과 경기의 진산(鎭山)이다.

산 이름 중에 악(岳,嶽)자가 있는 산은 흰 바위가 드러나 있는 산을 악산(嶽山)이라 한다. 설악산(雪嶽山) 송악산(松嶽山) 북악산(北岳山) 관악산등이 대표적인 악산(岳山)이다.

 

지금 KBS 드라마 “대왕세종” 에 등장하고 있는 태종(이방원)이 셋째 왕자 충녕대군을 태자로 책봉하려 하자 이를 눈치 챈 첫째 양녕대군과 둘째 효령대군이 왕궁을 빠져 나와 발길 닿는 대로 방랑의 길을 떠나 이산 저산을 헤매다가 며칠 만에 문득 발을 멈춘 곳이 관악산(冠岳山)이라고 하였다.

 

관악산에는 대웅전이 수려한 유서 깊은 삼막사(三幕寺)가 있다.

삼막사(三幕寺)는 관악산줄기가 끝나는 삼성산(三聖山)에 있는데, 신라시대 원효대사 의상대사 윤필거사 세 성인(聖人)이 막(幕)을 치고 수도했다는 일화가 절과 삼성산의 내력으로 전한다.

 

조선시대 삼남지방의 선비들이 과거를 보기 위하여 서울에 올라와 과거날짜까지 기다리면서 공부한 곳이 삼성산 자락이며 지금 서울대학교가 들어서고 고시원이 성업중인 것도 삼성산(三聖山)과 관련이 있다고 전한다.

 

삼막사가 주목을 받게 된 또 다른 이유는 이 사찰의 칠보전에 모셔진 마애삼존불(磨崖三尊佛)의 앞에 세워져 있는 남근석(男根石)과 여근석(女根石) 때문이다.

 

연주대가 있는 연주봉(戀主峯)은 관악산 최고봉으로 신라시대 의상(義湘) 대사가 관악사(冠岳寺지금의 연주암)을 창건하고 의상대(義湘臺)를 세웠는데 조선 태조때 연주대(戀主臺)로

이름을 바꾸었는데 이는 양녕대군이 군주(君主)를 그리워한 곳이라는 의미도 있다고 한다.

 

풍수상으로 관악산(冠岳山)은 경복궁의 외안산(外案山)이 되는데, 남쪽이 화(火)인데다 산봉우리의 모양이 불과 같아 풍수적으로 화산(火山)이 된다. 따라서 이 산이 바라보는 도성에 화재가 잘 난다고 하여 그 불을 누른다는 상징적 의미로 관악산의 한 봉우리인 호암산 산꼭대기에 못을 파고, 무학대사의 말에 따라 절을 세웠다고 한다.

 

또한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에 해태상을 만들고 숭례문을 관악산을 잇는 일직선상에 위치하게 해서 관악산이 덜 보이게 한 것 등은 불기운을 막기 위한 풍수적 의미라고도 한다.

일본이 광화문의 위치를 옆으로 옮긴 것은 일직선상을 방해하기 위한 것인데 지금 원 위치로 복원하고 있는 것이 이 내용이다.

 

관악산(冠岳山)의 산 중턱에 바위가 하나 있는데, 이것을 왕후묘(王后墓)라 부르고 있다. 이 바위는 경기도 전설지(傳說誌)에 실려 있는 이야기로 관악산 아래에 사는 한 정혼(定婚) 한 처녀를 연산군이 사냥터에서 취한 후 처녀가 목숨을 끊은 슬픈 사연이 전하고 있다.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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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비 많은 세상사

世事紛紛是與非(세사분분시여비)

세상일는 옳고 그러다는 시비 소리로 어지러우니,

 

十年塵土汚人衣(십년진토오인의)

십년 벼슬길에 머문 티끌과 흙탕물에 사람 옷깃 더럽혔구나.

 

落花啼鳥春風裏(락화제조춘풍리)

꽃지고 새우는 봄바람 뒤에는

 

何處靑山獨掩扉(하처청산독엄비)

어느 메쯤 시비 없는 청산 속에서 홀로 살 수 있으려나.

김제안(金齊顔)

 

김제안(金齊顔)은 고려 공민왕때의 문신으로 어지럽고 혼탁한 속세를 피하여 산 속에 들어가서 조용히 살고픈 심정을 적은 글입니다.

 

이제는 대통령 선거 국회의원 선거도 끝났습니다.

오직 나만이 올바른 정치를 할 사람이라고 호언(豪言)을 한 사람들도 투표로서 구분을 지어 놓았으니 더는 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낙선(落選)자들은 4년 후 재기를 계획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위의 시를 쓴 사람처럼 둔세지의(遁世之意-속세를 떠날 생각)로 정치를 마감할 마음을 정리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선거철이 돌아오면 스스로를 도모하지 못하고 다시 출세(出世)의 격랑(激浪)속으로 뛰어드는 것이 권력의 마력(魔力)에 이끌리는 속성(屬性)인 가 봅니다.

 

그러나 진실(眞實)로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정치가라면 꼭 벼슬의 품계(品階)를 받지 않더라도 재야(在野)에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것을 역사속의 선열(先烈)들은 보여 주고 있습니다.

 

멀어져 가는 봄이여 !

오늘 더욱 그대가 야속합나다.

혼탁한 세상은 오늘도 크고 작은 일 모두에 저만 옳고 남은 그르다고 시비가 한창입니다.

 

자기 귀는 닫고 저 할 소리들만 쏟아내니,

아무도 소리를 들을 수가 없습니다.

 

시인은 한탄합니다.

벼슬 길 십년에 남은 것은 혼탁한 세상 시비에 물든 더러운

옷 한 벌 뿐이라고.

 

4월도 중순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떨어지는 목련 잎을,  꽃비(花雨화우)에 마음 적시는 애절함도

목이 붓게 울어대는 새들을 보니

봄은 정녕 떠나는가 봅니다.

 

이 절규를 외면 한 채 떠나는 그대가 야속하여

관악산 산정(山頂)으로 흘러가는 흰 구름만

바라봅니다.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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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객집나삼(醉客執羅衫) 술 취하신 임

醉客執羅衫(취객집나삼)

술 취하신 님 사정없이 내 옷소매 끌어당겨

 

羅衫隨手裂(나삼수수렬)

비단저고리 손길 따라 찢어지는 구나

 

不惜一羅衫(불석일나삼)

이까짓 비단 저고리야 아까울 것 없지만은

 

但恐恩情絶(단공은정절)

마음속 깊히 맺힌 정 끊어질까 두려워서 그렇지요

이매창(李梅窓)

 

이매창(李梅窓 1573~1610) 조선중종 때 부안(扶安) 기생으로 황진이 신사임당 허난설헌과 더불어 조선시대 최고의 여류시인으로 알려진 여성이다. 그리고 유희경 직소폭포와 더불어 부안삼절로 유명하다.

 

위의 시는 당대의 시재(詩才) 이었던 촌은(村隱) 유희경(劉希慶)을 사랑하다가 그를 떠나보내고 시름 중에 지은 시라고 한다. 매창은 기생이지만 아무에게나 사랑을 허락하지 않았다.

조선시대의 혹독한 신분사회 속에서 서녀(庶女)의 운명으로 태어나 밑바닥 계급인 기생(妓生)의 삶을 살지만 그녀의 시는 이시 대 현대시인 들도 가히 흉내 낼 수 없는 높은 품격과 여유를 보여주고 있다.

 

기생방을 찾아든 임(손님)의 몸이 달아오를 대로 달아올라 짓궂게 굴다가 그만 그녀의 단 한 벌 밖에 없는 비단 저고리를 찢는 실수(?)를 범하였지만, 그녀는 웃음을 잃지 않고 넌지시

“이까짓 비단 저고리야 아까울 것 없지만은

임이 주신 온정까지도 찢어질까 그게 두려워요.”

하는 구절은 정말 탄복할 만큼의 절창이요 재치이다.

 

그까짓 비단 저고리 하나쯤 찢어지는 게 무슨 대수냐.

임이 주신 정(情)이 안 찢어지는 게 다행이 아니겠는가 하는

여유는 그야말로 “마음과 사랑의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준다.

 

친구든 연인이든 순수한 사랑으로 교류하는 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다. 카바레나 술집이나 기생집에서 마음 내키는 대로 육체적인 향락에 빠지는 현대인들의 정서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한시(漢詩)를 읽는 묘미를 여기서 느낄 수 있고 이렇도록 격조 높은 시를 쉽게 만날 수 없다.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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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기다림

春草盛夜雨(춘초성야우)

밤새 내린 봄비에 향기롭고 꽃다운 풀들은 무성한데

 

鏡顔衰憂愁(경안쇠우수)

거울속 내 얼굴은 근심에 가득 찼네!

 

年年還花神(년년환화신)

해마다 화신(花神)은 돌아오지만

 

望海無君舟(망해무군주)

그대는 어디가고 빈 배만 돌아왔네.

최재효(崔在孝)

 

봄에는 비가 한번 오고나면 하루가 다르게 풀은 더욱 푸르고 강물도 푸른빛을 띤다. 아직 제비는 날아오지 않고 뜰에는 하얀 꽃비가 소리 없이 떨어져 꽃잎이 진 그 자리를 푸른 잎이 대신하지만 이곳저곳 나뭇가지에는 아직도 코끝을 스치는 여훈(餘薰) 이 배여 있다.

 

만물은 생동하고 환희에 차 있고 가슴은 희망에 부풀어 있다.

이처럼 해마다 찾아오는 봄의 화신(化身)을 맞이하여 생(生)의 찬미(讚美)를 구가(謳歌) 하는 축제 속에도, 건강이 좋지 못하여 병상에 있는 사람, 세상살이에서 여러 가지 사연으로 감옥에 있는 사람, 경제적 궁핍으로 고민하는 사람, 헤어진 가족이나 정인(情人)을 기다리는 사람, 또 큰 포부로 선거에 출마하였다가 낙선한 사람 등 이모저모로 실망과 근심으로 그늘진 모습들이 봄의 향연(饗宴)속에 섞여 있다.

 

춘풍무사(春風無私)라 하여 봄바람은 어느 누구에게나 고르게 베푼다고 하였는데도 기다림은 오지 않고 “빈 배만 돌아와” 애절(哀切)한 상춘(傷春)의 아픔을 더하고 있다.

 

그래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빈 배라고 실망하지 않고 기다리고 있다. 나뭇짐 지고 힘든 고개를 넘으면 대부분 평지길이 나오는 것처럼 꼭 특별이 방법이나 대책을 세우지 않아도 그냥 열심히 세월 따라 기다리며 살다보면 먹고사는 것도 좀 나아지고 병도 나아지는 것을 경험으로 많이 보아 왔기 때문이다.

한래서왕(寒來暑往) 추위가 오니 더위가 가는 것처럼---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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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弄珠灘上魂欲消(농주탄상혼욕소)

사랑을 나눈 시냇가에서 임을 보내고

 

獨把離懷寄酒樽(독파이회기주준)

외로이 잔을 들어 하소연 합니다.

 

無限烟花不留意(무한연화불유의)

피고 지는 저 꽃 내 뜻 모르니

 

忍敎芳草怨王孫(인교방초원왕손)

오지 않는 임을 원망하는 이 봄이여!

양양 기생

 

사랑 !

이 나이에 사랑(love)이라고 하면 징그럽고 주책 떤다고 할 것 같아 사량(思量)이라고 말하겠습니다.

사랑(love)은 순수한 정신적 사랑인 플라토닉 사랑(Platonic love)도 있고, 조국애(祖國愛love of country)도 있고, 정욕(情慾sexual love)의 사랑도 있고, 종교적인 아가페 사랑(love by God)도, 큐피드(Cupid)도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거창하고 고급스런 사랑은 잘 모릅니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도, 듀마의 춘희의 사랑도 모릅니다.

당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도, 현해탄에 몸을 던진 윤심덕과 김우진의 사랑도, 파란만장한 수덕사의 김일엽 스님의 사랑도 모릅니다.

제가 말한 사랑(思量사량)이란 생각 사(思)+부피 량(量)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언제나 눈앞에 서 있는 부부의 사랑을 말합니다.

 

부부의 사랑은 멋도 없고 세련되지도 못하고 촌스러운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별로 귀하지도 않습니다.

 

500원 깎으려고 시장에서 입에 거품을 문 볼쌍쓰러운 모습과, 비싼 옷이 진열된 쇼윈도를 힐끔 힐끔 보면서 발걸음은 5000원 짜리 “골라 골라”에서 만족하는 좀 모라는(?) 여자와 한 달 벌이도 별로 변변치 않고 새까만 얼굴에 세 사람 모인 곳에서도 맨 정신으로는 말 한마디 못하면서 소주 한잔 들어가면 개선장군처럼 호기를 부리는 남자와 같이 사는 것이 부부입니다.

 

이 촌스러운 아내가 몸이 아프면 밤잠을 못자는 것이 남편이고, 가자미눈처럼 흘기면서 콩나물 아스파라긴 해장국을 끓이는 여자가 아내입니다.

이 두 여자와 남자가 같이 사는 것을 부부(夫婦)라 합니다.

또 이렇게 사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꼭 백년해로(百年偕老)라는 다짐까지 둡니다.

 

그렇지만 이 세상에 부부의 사랑만큼 고귀한 것은 없습니다.

그 사랑은 눈감으면 아내의 코고는 소리도 스트라우스의 봄의 왈스 같이 들리고 소주냄새 풍기며 침 흘리는 자는 남편의 모습도 위대한 영웅 부럽지 않습니다.

사랑이란 시간과 거리에 관계없이 상대방을 항상 마음속에 생각하고 그리워해야 합니다. 생각이 없고 그리움이 없는 사랑은 단순한 육체적 향락(享樂)과 물질적 교류에 불과 합니다. 연인과 친구간의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思量사량)에는 질(質)과 량(量)이 다 포함 되어 있습니다.

사랑이란 정(情)을 말합니다. 정(情)이란 항상 마음(心)속에 담고 있는 감정을 말합니다. 감정(感情)에는 애정(愛情)도 증오(憎惡)도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네글자 속에는 마음 심(心)자 들어 있습니다.

 

사랑은 항상 같이 있고 자주 만나고 말을 많이 나누어야 합니다.

사량(思量)은 상대방을 많이 생각하는 사랑(love)입니다.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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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시(雜詩) 여자의 마음

精金明月珠(정금명월주)

아름다운 황금으로 빛나는 진주로

 

贈君爲雜佩(증군위잡패)

노리개 만들어 그대에게 드려요

 

不惜棄道旁(불석기도방)

싫으면 길가에다 버리는 것은 아까울 게 없지만

 

莫結新人帶(막결신인대)

다른 여자 허리에는 매어 주지 마세요.

허난설헌(許蘭雪軒)

 

허난설헌(許蘭雪軒) 허초희(許楚姬)는 홍길동전의 작자로 유명한 허균(許筠)의 누나입니다.

이 시는 여성 특유의 다정다감한 심경을 섬세(纖細)하고 완곡(婉曲)하게 묘사하여 수많은 여인들의 심금(心琴)을 울리게 하는 명 작품입니다. 이 5언절구 시 한수로

아내의 마음은 물론 여자의 속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제가 직장시절 일요일 어느 날 제 아내와 찻잔을 사이에 두고 한가하게 이런 저런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지운이 엄마, 내 월급이 적어서 생활 꾸려 나가기에 너무 힘이 드는 줄 알고 항상 미안하게 생각하여 왔소.  내 오늘 이 자리에서 당신을 부잣집 귀부인으로 만들어 주면 어떻 겠소.』

 

『?? ?』

 

『우선 강남에 60평짜리 아파트를 마련하고, 차는 포드20M(그 당시 최고급)으로, 당신 목걸이는 대추알 크기의 다이아로 만들고 독일수입품 비로드(당시 고급품)로 양장을 하고 한 달에 두 번 정도 신라호텔 귀빈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명사들의 파티에 참석하고, 여름에는 와이키키해변에서 휴양을 즐기고, 겨울에는 시베리아산 모피코트에 몸을 싸고 동토(凍土)의 바이칼호수를 기차여행하며 백야(白夜)에서 행운의 오로라를 감상하고, 집안 잡일은 도우미에게 매끼고

시간나는대로 피부미용실을 가는 것이 어떻겠소?』

 

『단번에 귀부인이 됐네요. 더 바랄 것이 무엇이 있겠어요.』

 

『그 대신 나도 우리 생활과 걸맞는 수준의 바깥 활동을 하다보 면 때로는 본의 아니게 다른 여성도 만나게 되고 그러다보면 로맨스도 있게 마련이데 당신 이 정도는 이해해 주겠지요?』

 

『여보! 나 60평 아파트도 시베리아산 모피코트 입은 귀부인도 싫으니 우리 그냥 전셋집에 이대로 살아요.』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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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無題)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며

相見時難別亦難(상견시난별역난)

만나기도 어렵지만 헤어지면 더 힘들어

 

風無力百花殘(동풍무력백화잔)

봄바람 살짝 불어도 꽃송이가 떨어진다.

 

春蠶到死絲方盡(춘잠도사사방진)

봄누에는 죽어서야 겨우 실 뽑는 것을 멈추고

 

蠟炬成灰淚始乾(랍거성회루시건)

촛불은 재가 되어야 흐르는 눈물을 비로소 거두리.

 

曉鏡但愁雲鬢改(효경단수운빈개)

아침 거울 앞에 앉으면 검은 머리 변할까 걱정되고

 

夜吟應覺月光寒(야음응각월광한)

저녁 시 읊조릴 땐 달빛 처량함을 느끼게 된다.

 

蓬山此去無多路(봉산차거무다로)

그대가 머문 봉래산은 여기서 멀지 않아

 

靑鳥殷勤爲探看(청조은근위탐간)

파랑새 오가며 서로 소식 전해다오

이상은(李商隱)

 

이상은(李商隱812-858)은 중국 만당(晩唐) 시기의 대표적인 애정(愛情) 시인이다. 그는 독특하게 시의 제목을 무제(無題)라 하여 20수를 남겼는데 거의 모두가 사랑(愛)을 주제로 다룬 것이다. 그중에 위에 소개하는 상견시난별역난(相見時難別亦難)은 읽는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애정시의 정수(精髓)라 할 만한 대표작이다.

 

이 시는 만남과 헤어짐의 안타까운 사연으로 점철(點綴)되는 남녀 간의 애틋한 사랑을 잘 표현한 애정시(愛情詩)의 백미(白眉)로 꼽는 대표적인 시이다.

 

이상은(李商隱) 무척이나 정(情)이 많은 사랑의 음유시인(吟遊詩人)시인으로 전하는데 감당하지 못 할 사람에게 정을 쏟았다가 결국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 앞에서 애를 태우며 혼자만이 간직한 비밀스런 사랑의 감정을 고백하지도 못하고 무제(無題)라는 제목을 빌어 혼자만의 언어로 표현하였다.

 

음유시인(吟遊詩人)이란 사랑의 시를 지어 읊으며 여기저기 떠돌아다는 유랑시인(流浪詩人)을 말한다. 조선시대는 김삿갓을, 독일의 미네젱거, 이탈리아 트로바토레등을 들고 있다.

 

이상은(李商隱)은 여자들 마음을 끌어내는 매력이 있었는지, 그에겐 궁녀, 유부녀 처녀등 비밀 연인이 많았었다고 하며, 드러내놓고 말하기 곤란한 이들 여인과의 사랑 이야기를 시로 그려내고 있다.

 

이시의 절정은 “누에가 죽어야만 실 토해내기를 그치 듯” 그들의 사랑도 죽음이라야 갈라 놀을 수 있을 것이라 표현하고 “촛농(촉농燭膿)의 흐름을 눈물로 비유하고 흐르는 눈물의 그 끝은 재가 되는” 사랑의 깊은 우울과 절망을 구구절절이 나타내고 있다.

 

헤어져 시간이 흐른 것을 아침의 거울에 비친 귀밑머리 희어지는 것을 세어보는 것으로 오랜 시간의 흐름을 말하고, 저녁 차가운 달빛으로 임 그리워하는 애달픈 마음을 표현했다.

 

전설의 산, 즉 갈 수 없는 곳에 있는 임에게 전설의 소식 심부름꾼으로 파랑새을 등장시켜 간절한 내 사랑의 마음을 전하여 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이 시에서 그리운 임의 소식을 전하는 파랑새(청조靑鳥)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영조(靈鳥)로서 길조(吉兆)를 상징한다. 요즘에는 듣기가 어려운 말이지만 사랑하는 연인의 대명사나 시나 소설에서 “나의 파랑새”라는 단어를 사용하였고 반가운 소식을 전하는 사람이나 기다리는 편지를 뜻하기도 하였다.

 

서양에서는 벨기에의 인형극 작가 마테를링크가 지은 동화극 속에 남매가 크리스마스 전야에 파랑새를 찾아 헤매는 꿈을 꾸다가 문득 깨어나 자기들이 기르던 비둘기가 바로 그 파랑새였음을 깨닫는다는 내용으로, 행복은 가까이에 있다는 의미를 주고 있다.

 

한편 심리학에서는 마테를링크의 동화극 파랑새에서의 주인공처럼 미래의 행복만을 꿈꾸면서 현재의 일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파랑새증후군(靑鳥症候群)을 경계하고 있다.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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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조가(靑鳥歌) 사랑의 파랑새 노래

靑鳥靑鳥(청조청조)

파랑새야 파랑새야

 

彼雲上之靑鳥(피운상지청조)

저 구름 위의 파랑새야.

 

胡爲乎止我豆之田(호위호지아두지전)

어이해서 내 콩 밭에 머물러 있었던가.

 

靑鳥靑鳥(청조청조)

파랑새야 파랑새야

 

乃我豆田靑鳥(내아두전청조)

내 콩 밭의 파랑새야.

 

胡爲乎更飛入雲上去(호위호경비입운상거)

어이해 다시 날아 구름 위로 가버렸나?

 

旣來不須去(기래부수거)

왔거든 모름지기 가지를 말것이지

 

又去爲何來(우거위하래)

또 갈 걸 어이해 찾아 왔더란 말이냐.

 

空令人淚雨(공령인루우)

부질없는 눈물만 비 오듯 하고

 

腸爛瘦死盡(장란수사진)

애간장 다 녹아 죽을 지경 되었구나.

 

吾死爲何鬼(오사위하귀)

나는 죽어 무슨 귀신이 될까?

 

吾死爲神兵(오사위신병)

나는야 죽어서 신(神)이 보낸 강한 군사가 되리니.

 

飛入殿君護護神(비입전군호호신)

궁궐에 날아들어 임금 지키는 호신(護神)이 되어

 

朝朝暮暮保護殿君夫妻(조조모모보호전군부처)

아침마다 저녁마다 임금 부처(夫妻) 보호하여

 

萬年千年不長滅(만년천년부장멸)

만년 천년 길이길이 스러지지 않게 하리라.

화랑세기(花郞世紀)

 

화랑세기(花郞世記)

신라 성덕왕 때의 학자 김대문(金大問)이 화랑의 유래에 관해 적은 책을 말한다. 지금까지 신라 화랑에 관한 자료는 학자들이 쓴 기록에 의존하였으며 대부분 김부식의 삼국사기 열전에 근거 하여오다가 1980년대 후반 김해에서 조선 순조 때의 필사본이 발견되어 화랑제도 연구에 획기적인 사료가 되고 있다.

 

이 화랑세기(花郞世紀)에 청조가(靑鳥歌)란 노래가 실려 있다. 화랑 사다함이 미실(美室)이란 여인을 사랑하였는데, 전쟁에 나갔다 돌아와 보니 이미 궁중으로 들어가 왕의 부인이 되어 있었다. 이에 상심한 사다함이 지어 불렀다는 노래가 바로 청조가(靑鳥歌 파랑새 노래)다. 그 내용이 너무나 구슬퍼 당시 사람들이 다투어 이를 외워 전하였다고 한다.

파랑새는 미실(美室) 여인을 뜻한다.

 

미실이란 여인은 화랑세기에 기록된 신비의 여인으로 타고난 미색으로 진흥왕, 진평왕 사다함 등 당대 영웅호걸들을 녹여내고 신라왕실의 권력을 장악해 간 여인으로 기록되어 있다.

 

파랑새(靑鳥청조)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길조(吉兆)를 상징하는 새로서 반가운 소식을 전하는 사람이나 편지를 이르는 말로서 푸른 새가 온 것을 보고 동방삭이 서왕모의 사자라고 한

한무제(漢武帝)의 고사에서 유래한다고 한다.

 

서왕모(西王母)는 중국 곤륜산(崑崙山)에 사는 선녀로 사람 얼굴에 호랑이의 이빨 표범의 털을 가진 죽지 않는(不死불사) 약(藥)의 선녀로서 중국고대 주나라 목왕과 사랑에 빠져 왕이 궁궐로 돌아오는 것을 잊었다는 고사가 있다.

 

파랑새 이야기는 장화홍련전에서는 계모의 학대에 못 이겨 장화가 빠져 죽은 연못까지 파랑새가 홍련을 안내하는 슬픈 사연으로 등장하며, 호남 지방 어린이들의 자장가로 오랫동안 전해 내려오는 녹두장군 전봉준의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 ”에서 청포 장수는 조선 민중을 가리키고 파랑새는 조선 농민군을 끊임없이 탄압하는 일본군으로 상징되어 악역(惡役)을 맡기도 한다.

 

반면에 새해 설날에 즐겨보는 한해 운수(運數)인 토정비결에는 대부분

“靑鳥傳信(청조전신) 파랑새가 반가운 소식을 전하니”

“靑鳥報喜(청조보희) 푸른 새가 기쁜 소식을 가져오니”

등으로 행운을 가져다주는 길조(吉鳥)로 묘사 되고 있다.

 

청색(靑色)은 침착 냉정 고독 정절(貞節)과 행복한 상상(想像)을 느끼게 하는 색이다.

매사에 좋은 징조나 조짐이 좋을 때 청신호(靑信號)라고 한다.

그런 의미로 파랑새(靑鳥청조)는 좋은 소식을 전하는 새이다.

 

잠간 틈을 빌려 화랑세기 발굴에 따라서 필자가 동서양 종교사에 관한 책을 읽는 중에 알게 된 고대문서 발굴에 대한 정보를 드리고자 합니다. 중국의 “마왕퇴와 곽점”에서 노자 텍스트인 백서(帛書)와 죽간(竹簡)의 발굴로 송(宋)대의 교정의서국(校正醫書局)에서 편찬한 중국역사 내용이나 특히 한의학(漢醫學) 의서(醫書)인 상한론(傷寒論) 금궤요약(金櫃要約)등 많은 부분의 내용이 발굴서 내용과 차이가 나 비교 검토 중에 있으며 현재 우리나라 한의대에서는 송(宋)대의 교정의서국(校正醫書局)에서 편찬한 책으로 공부하고 있으므로 한의학 기본에 대한 진실성이 의문되는 실정입니다.

 

기독교 성서는 “사해문서(쿰란동굴) 나그함마디 파피루스 코덱스” 등 기원전 3세기 성서기록이 무더기로 발견되어 로마황제 콘스탄티우스 3세황제때 밀라노칙령과 니케아종교회의를 계기로 헬라어로 만들어진 현재의 기독교성서와 깊은 비교가 되고 있습니다.

이 사해문서 발굴품이 서울 전쟁기념관에서 “사해사본과 그리스도교의 기원 특별전”이 6월 4일까지 열리고 있습니다. 기독교인이나 관심 있는 분들은 좋은 기회가 될것입니다.

입장료 성인 15000원 중고생 12000원--입장료가 비싼 것으로 보아 귀한 전시로 생각됩니다.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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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우(穀雨)

城南城北閙鷄豚(성남성북료계돈)

고을의 남북쪽에선 닭 돼지 우는 소리 시끄럽고

 

賽罷田神穀雨昏(새파전신곡우혼)

땅 신(神)에게 고사를 끝내니 곡우 날이 저물었다

 

太守遊春勤勸課(태수유춘근권과)

원님은 봄놀이 삼아 농사일 부지런히 권하노라니

 

肩興時入杏花村(견흥시입행화촌)

가마가 때마추어 살구꽃 핀 마을로 들어선다.

유호인(兪好仁)

 

오늘(4월 20일)은 곡우(穀雨) 절기다.

사실 50살 이하 되는 사람들은 이 절기가 낯설지도 모른다.

그만큼 세월은 많이 변하고 인간의 삶은 자연과 상당히 멀어졌다는 의미도 된다. 곡우(穀雨)는 봄비가 백가지 곡식(百穀백곡)을 윤택하게 하기 위하여 내리는 비다. 곡식에 필요한 비가 내린다는 곡우는 옛날에는 농사에 가장 중요한 절기중의 하나였다.

 

곡우 무렵은 농촌이 한창 농사 열기로 후끈 달아오르기 시작하는 시기이다. 농사 중의 농사인 벼농사의 파종이 있는 날에는 죄인도 잡아가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곡우 무렵에 대부분의 농가에서는 못자리를 만든다. 시골 출신인 50~60대 들에게는 잘 아는 일이겠지만 종자 볍씨를 약한 소금물에 담가 물위에 떠는 것은 버리고 가라앉은 것만 골라야 한다. 좋은 볍씨를 얻기 위해서다. 부정을 타지 안기위해서 몸과 마음도 정갈히 해야 한다. 일 년 농사의 성패가 걸려있는 행사다. 세월이 변하여 지금은 자동이양기용 모판을 만들므로 이런 정서는 찾아볼 곳이 없다.

 

눈을 감고 50년 전의 내 고향 곤양(昆陽) 앞들 뒷들 언내들을 아련히 회상한다. 모판을 만들기 위해 옆집 아저씨는 소가 끄는 쓰래로 모판을 갈고 작두로 자른 볏짚과 자운영을 섞은 밑거름을 모판에 뿌려 놓고 발로 골고루 밟는다. 그리고 직사각형의 모판을 몇 개 만들고 나무판자로 표면을 바둑판처럼 평편하게 다듬고 그 위에 볍씨를 뿌리고 물을 적당히 들여 보낸 후 비닐로 모판을 덮고 나온다.

 

논 뻘이 묻은 아저씨의 장딴지에 흡사 정맥(靜脈)처럼 붙어 피를 빨고 있는 거물이를 떼어 눈부시게 초록빛을 띤 보리논으로 휙 던지면서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보리고랑 사이로는 너불단지(꽃뱀)가 스르르 꼬리를 감춘다.

 

후한서(後漢書)에는 곡우(穀雨)절기에 물고기들의 활발한 모습을 아래와 같이 표현한다.

어영곡우인인(魚迎穀雨鱗鱗)-물고기가 곡우를 맞으며 비늘을 번뜩인다.

곡우전후에 따는 잎으로 만든 차를 우전차(雨前茶)또는 세작(細雀)이라 하여 최상품으로 친다. 원(元)의 양조영(楊朝英)은 그의 수선자(水仙子)란 시에서 아래와 같이 곡우차를 귀하게 선보이고 있다.

 

客到家常飯(객도가상반)

손님오시면 늘 먹는 집안 음식을 내어놓고,

僧來穀雨茶(승래곡우차)

스님 오시면 곡우 때 딴 차를 내어놓는다.

 

얼마나 소박하면서도 멋과 풍치가 있는 손님 접대 아닌가?

곡우때는 나무가 한창 물이 오르는 시기이다.

호남, 영남, 강원도 등에서는 깊은 산 속으로 곡우물을 약수로 마시러 가는 풍속이 있다고 한다. 경칩의 고로쇠 물은 여자 물이라 해서 남자에게 좋고, 곡우 물은 남자 물이라 해서 여자들에게 더 좋다고 한다.

 

내 고향 곤양(昆陽)에는 신라때 창건한 쌍계사의 말사인 다솔사(多率寺)가 있는데 곡우 무렵을 삼월 삼짇날이라고 하여 이절로 동네 부녀자들은 “물맞이”를 갔었다. 삼짇날 물을 맞으면 부스럼도 안생기고 감기도 안 걸린다고 했다.

 

다솔사에는 고색창연한 대양루(大陽樓)가 있는데 일제강점기에 만해 한용운(韓龍雲)이 이곳에서 수도하였고 김동리(金東里)가 그 유명한 등신불(等身佛)을 쓴 곳으로도 유명하다.

 

곡우를 전후하여 요 며칠 날씨는 초여름을 방불케 한다. 어제 이어 오늘 아침 6시 현재도 섭씨 16도다. 곡우비는 안오고 계속 날씨만 더울 것인가---

미국쇠고기 수입으로 열 받는 축산농민들의 머리라도 식혀주기 위해서는 곡우 비라도 꼭 내려서 새로운 희망을 주었으면 좋겠다.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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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숙생(下宿生)

人生是流浪路(인생시유랑로)-인생은 나그네 길

何處來何處去(하처래하처거)-어디서 왔다가어디로 가는 가

如行雲悠悠路(여행운유유로)-구름이 흘러가듯 여울져 가는 길에

勿留情勿留戀(물류정물류연)-정이랑 두지말자 미련일랑 두지말자

人生是遊人路(인생시유인로)-인생은 나그네길

如天上雲飄飛(여천상운표비)-구름이 흘러가듯

不知歸向哪里(부지귀향나리)-정처없이 흘러서 간다.

 

하숙생(下宿生)

위의 글은 한시(漢詩)가 아니고 최희준씨가 부른 노래입니다.

1960년대 서민들의 지친 삶을 어루만지는 노래로 대표되는 “하숙생”을 불러 공전의 힛트를한 톱가수 최희준씨가 벌써 72세라고 합니다. 믿어지지가 않네요. 세월이 그렇게 흘렀습니까?

 

개성 송도삼절 중의 하나인 박연폭포로 가는 천마산 산길 도중에 두 갈래의 길이 나타난답니다. 한쪽 길은 돌아가는 길로 험하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길이고 다른 한 길은 길은 좋은데 중간에 약 1m 넘게 끊어진 곳이 있어 넓게 뛰면 가까스로 저편에 건널 수 있는 위험한 낭떠러지가 있는 길입니다. 사람들은 이곳에 이르면 어느 길을 선택할 것인지 망설인다고 합니다.

 

우리의 삶도 살아가는 동안 어떤 경우에 선택의 기로에 처할 때가 있습니다.

어느 길로 가야 내 인생의 길이 바른 길인가----

최희준씨도 서울법대 출신으로 법관이 되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뜻과 다르게 가수의 길을 택했다고 합니다.

 

노랫말처럼 인생은 어떤 길을 선택하든 나그네 길입니다.

역려과객(逆旅過客)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뜻은 세상은 여관과 같고 인생은 그곳에 잠시 머무는 나그네와 같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나그네는 참 외롭고 쓸쓸합니다.

때로는 길동무가 한둘 있을 때는 이런 저런 이야기로 시름을 잊다가 갈림길에서 혼자가 되면 그 적막함은 말로 표현 할 수 없습니다.

 

인라인을 타는 동호인중에 필자보다 나이 세살 위인 친구가 한분 있습니다. 어느 날 점심을 같이 하면서 소주잔을 같이 나누는 자리의 대화입니다.

 

『농월은 노래 18번이 무엇이요?』

『저요? 애수의 소야곡입니다. 박형은 무슨 노래요?』

『나는 최희준의 하숙생이야』

『참, 나는 하숙생 같은 나그네 생활을 했지. 정신없이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동안에 십 년 전에 환갑을 맞이 했어. 그저 환갑이구나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또 왔다 갔다 했지.

 

그러다가 졸지에 2년 전에 아내를 저세상으로 먼저 보냈어. 

평소에 건강이 좋지 못했지, 

가만히 생각하니 참 기가 막히더군.(박형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있을 때는 예사로 여기고 몰랐는데 인생의 동반자를 잃으니 말이야.

왜 진작 좀 더 나와 함께 오래 살도록 내가 관심을 가지고 보살펴 주는 노력을 못한 것이 후회돼. 지금 생각하면 죄스럽기도 하고,

그러나 이미 상황은 다 끝난 것이야.

죽음은 연습이 없더군. 후회를 하여야 아무런 소용이 없어.

(소주잔을 단숨에 넘긴다) 

 

이제는 나 혼자 살 궁리를 하기가 더 급해졌어.

그러다가 작년에 아들놈으로부터 “아버지, 이번 생신날이 고희(古稀)에요”

하는 소리를 듣고 부터는, 자다가도 깜짝 놀라곤해.

가만히 생각하면 유아독존(唯我獨存)이란 말처럼 “이 세상에 나 혼자 남았구나” 하는 외로움이 몰아쳐 왔어요.

친구들도 이상한 눈으로 보는 것 같애-- 

 

혼자 살면서 식사, 세탁,등 일은 진작에 생각하였던 일이라 별것 아닌데,

같이 걸어가는 인생의 동반자를 잃으니 자꾸만 어두운 그림자만 생각하게 돼.

사는 재미도 없고 맥이 풀어져, 첫째 사는 의욕이 없어--

집도 20평자리 아파트로 확 줄였어.

 

『박형은 경제적인 면은 어떻세요?』

『응, 세끼 밥은 먹을 수 있어. 아이고 그것마져 안되면 정말 문제지

   내수중에 돈마져 없으면 약먹고 콱 죽어버리지, 농담 아니야』

 

『농월 자식에게 절대 재산 넘겨 주지마. 그때부터 끝장이야』

 

자식? 우리집 새끼 불효자 아니야. 아직까지 용돈도 그냥주고 보통은돼. 그런데 자식보고 마음에 있는 소리 할 수 있어?

자식이 내 외로움 달래줘?

난 농월 김형이 더 좋을 때가 있어. 이렇게 인라인도 같이 타고 술도 한잔 하면서 이런 이야기도 할 수 있으니 말이야.

농월도 부인이 아파서 힘든 것 알지만 그래도 살아있으니 장땡이야.』

 

『박형 말씀이 맞아요. 인생은 나그네인데 언젠가는 어느 쪽이던 혼자가 되겠지요. 조금 빨리 가고 늦게 가는 차이 뿐이지요.

힘내세요! 박형은 성격이 좋으니 어디 비슷한 처지의 부인이라도 친구로 사귀면서 다시 새로운 인생을 만들어 보세요. 잘 될거예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봄 날씨 치고는 맑은데 오늘따라 자전거 페달이 무겁게 느껴진다.

“하하~하~하” 훈련할 기분도 안난다.

하늘에는 흘러가는 구름이 더 정처 없이 보인다.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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送春(송춘) 봄을 보내며

三月三十日(삼월삼십일)-삼월 삼십일

春歸日復暮(춘귀일부모)-봄이 떠나가는 하루가 또다시 저문다.

惆悵問春風(추창문춘풍)-서글픈 마음에 봄바람에게 물어보네.

明朝應不住(명조응부주)-내일아침에는 아마 여기있지 않을 거지?

送春曲江上(송춘곡강상)-봄을 곡강(曲江) 위에서 보내는데

眷眷東西顧(권권동서고)-마음을 가눌 길 없어 동서로 돌아보지만

但見撲水花(단견박수화)-보이는 것은 물위에 떨어지는 꽃잎뿐

紛紛不知數(분분부지삭)-펄펄 날리어 그 수를 헤아릴 수 없구나.

人生似行客(인생사항객)-인생이란 마치 나그네 길과 같아서

兩足無停步(량족무정보)-두 다리는 잠시도 멈추질 않는다.

日日進前程(일일진전정)-날마다 앞을 향해 나아가지만

前程幾多路(전정기다노)-앞으로 갈 길은 얼마나 남아있을까.

兵刀與水火(병도여수화)-전쟁과 병사의 칼과 물 불은

盡可違之去(진가위지거)-모두를 피해 갈 수가 있지만

唯有老到來(유유노도내)-오직 늙음이 오고 나이를 먹는 것만은

人間無避處(인간무피처)-인간세상에선 피할 길이 없구나.

感時良爲已(감시량위이)-가는 계절이니 어찌할 수 없다 생각하고

獨倚池南樹(독의지남수)-홀로 곡강의 남쪽 나무에 기대어 서서

今日送春心(금일송춘심)-오늘 이 봄을 보내는 마음

心如別親故(심여별친고)-마치 친한 벗과 헤어지는 심정과 같구나.

백거이(白居易)

 

백거이(白居易)는 이름보다 자(字)인 낙천(樂天)이 더 많이 알려져 있고 이보다 더 할려져 있는것이 당현종과 양귀비의 뜨거운 사랑을 노래한 시 장한가(長恨歌)

이다. 중국 당나라를 시대별로 구분하면 초당(初唐) 성당(盛唐) 중당(中唐) 만당(晩唐) 으로 구분하며 백낙천은 중당(中唐)시대의 시인이다.

 

백낙천은 중국 시인 중에서도 시를 가장 많이 쓴 사람 중의 한사람이다. 그의 시가 인기 있는 이유 중의 하나는 글과 내용이 이해하기 쉽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일화 중에 백낙천은 길거리 노파에게 자신의 시를 보여 주고 자기의 시를 이해 할 수 있느냐고 물어보고 노파가 이해하지 못하면 시를 다시 이해 할 수 있도록 고쳤다는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하다. 암송하기 쉽고 문장이 쉽고 아름답고 편안한 것이다.

 

위의 시는 백거이가 마흔 네 살때 봄이 떠나감에 따라 나이가 많아짐을 한탄하여 지은 시로서 한줄 한 줄에 모두 무정한 세월의 아쉬운 정감이 넘치고 있다

 

요즘은 봄이 너무 짧고 여름이 빨리 오는 것을 느끼고 있다.

지구의 환경오염으로 인한 온난화(溫暖化)가 그 원인이라고 한다.

꽃도 움이 터고 봉오리를 맺어 점차로 개화(開花)하면서 꽃이 질 때도 한잎 두잎 시일을 두고 떨어지지 않고 한꺼번에 활짝 피고 단번에 지고 만다.

 

어제 같이 담아래 하얀 눈을 머리에 얹고 다소곳이 매화꽃 필 때에도, 북쪽 창문 앞에 쌓인 잔설(殘雪)이 녹지 않아

봄은 더디더디 오는 줄 알았더니

어느 날 갑자기 목련과 벚꽃이 앞 다투어 피고 지더니만

진달래술 담아 친구와 정담(情談)을 나눌 시간도 없이

삼각산 쪽으로 봄자락을 감춘다.

 

봄이 온다는 것은 추운겨울이나 어려운 상황이 지나가고 희망이 온다는 것이고 봄이 간다는 것은 좋은 세월이 다 간다는 아쉬움을 뜻하는 것이다.

좋은 세월이란 인생에 있어서 젊음을 말하는 것이다.

 

인생에 있어서 봄이 빨리 간다는 것은 늙음이 빨리 온다는 것이다. 늙음이 온다는 것은 죽음이 가까워진다는 신호인 것이다.

봄이 다른 계절에 비하여 짧은 것은 우리 인생에 대하여 즐거움이 짧은 것이다.

 

그러기에 봄은 화창해지기도 하고 슬퍼지기도 하며,

노래가 나오기도 하고 눈물이 나기도 하는 감정의 계절이다.

 

아래의 글 구절은 우리의 마음을 더욱 슬프게 한다.

 

花不送春春自去(화부송춘춘자거)

꽃은 봄을 보내지 않았지만 봄은 스스로 떠나가고

人非迎老老相侵(인비영노노상침)

사람은 늙음을 맞으려 아니해도 늙음이 저절로 침범하는구나!

 

즉 세월은 기다려 주지 않고 지나가니 지금 남아 있는 눈앞의 이 시간을 소중히 쓰고 감사하라는 것이다.

 

나는 스스로에게 간절히 다짐하고 있다.

나에게 가장 소중한 때는 어제도 아니고 내일도 아닌 바로 지금이 시간 이고,

나에게 가장 귀한한 사람은 지금 눈앞에 내가 만나는 사람이고,

나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오늘을 즐겁게 감사하는 일이라고--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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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棋) 바둑

縱橫黑白陳如圍(종횡흑백진여위)

흑백이 종횡으로 에워싼 것처럼 진을 치니

 

勝敗專由取舍機(승패전유취사기)

승패는 오로지 때를 잡고 못 잡음에 달렸네

 

四皓閑秤忘世坐(사호한칭망세좌)

사호가 숨어살며 바둑으로 세상을 잊었고

 

三淸仙局爛柯歸(삼청선국난가귀)

삼청 신선들 대국에 도끼자루 다 썩더라

 

詭謨偶獲擡頭點(궤모우획대두점)

뜻밖의 속임수로 세력 뻗을 점도 얻고

 

誤着還收擧手揮(오착환수거수휘)

잘못 두고 물러 달라 손 휘두르기도 하는구나

 

半日輪營更挑戰(반일윤영갱도전)

한나절 승부를 걸고 다시금 도전하니

 

丁丁然響到斜輝(정정연향도사휘)

바둑알 치는 소리에 석양이 빛나네!

김병연(金炳淵)

 

바둑

바둑을 한자로는 기(棋-碁)라고 쓰며, 바둑의 옛 명칭을 난가(爛柯)라고도 한다. 일본에서는 고(GO)라고 하고 중국은 웨이치(Weichi-圍위 棋기)라 부른다.

 

난가(爛柯)라는 말은 신선(神仙)들의 바둑 두는 구경이 재미가 있어 나무꾼이 도끼자루 썩는 줄도 모를 정도로 세월이 지나 있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한 것이다.

 

중국고전 술이기(述異記)라는 책에 왕질(王質)이라는 나무꾼이 깊은 산속에 나무를 하러 갔다가 두 동자(童子)가 나무 아래에서 바둑 두는 구경을 했는데 동자가 귤 비슷한 것을 주어 먹으니 배고픈 줄 모르고 바둑을 구경했다.

 

바둑이 한판 끝나자 한 동자가 “왕질의 도끼자루가 썩었다”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어 황급히 마을로 내려와 보니 전에 살던 사람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마을사람들은 그의 집에서 제사 준비하느라 분주하였다. 이상하여 물으니 이 집 주인의 증조부인 왕질 이라는 사람이 산에 나무하러 갔다가 돌아오지 않아 이 날을 제삿날로 삼았다고 하였다. 두 동자는 신선이어서 바둑 한판 두는 데 수백 년의 세월이 흘렀던 것이다.

 

바둑의 어원(語源)에 대해서는 아래와 같은 가지 설이 있다.

바둑은 순수한 우리말이다.

육당 최남선은 인도네시아어인 바투(Batu)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바둑학자인 안영이씨는 티베트의 산스크리스트어 바드(Badh)가 바독→바둑으로 변화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광복 전까지 바독 또는 바돌이라 불렸으며 지금도 일부지방에서는 그렇게 부르고 있는데 “독”이나 “돌”자는 한자의 돌석(石)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바둑은 밭(田전)과 돌(石석)의 결합으로 본다. 밭돌(田石)→바돌→바둑으로 변한 것이다. 밭(田)은 바둑판과 비슷하게 생긴 글자이다.

 

바둑의 어원은 “바닥”에서 시작된 것이다.

바둑의 아홉 개의 화점(花點)은 주역(周易)의 구궁(九宮)과 같고,

바둑판에서 가장 가운데 점인 천원(天元)을 제외한 여덟 개의 화점은 주역의 팔괘를 의미한다. 바둑은 “바닥의 돌” 이란 뜻이다.

 

바둑의 역사는 오랜 옛날 중국에서 처음 만들어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요(堯) 임금이 좀 모자라는 아들 단주(丹朱)를 깨우치기 위해 바둑을 만들어 가르쳤다. 순(舜) 임금이 아들 상균(商均)이 어리석었기 때문에 바둑을 만들어 가르쳤다.

위의 두 이야기는 바둑의 전설이라고 볼 수 있다.

바둑은 고대 중국에서 발생된 것이 아니고 동이족(東夷族)에서 나왔다는 주장도 있다.

 

바둑 흑(黑)의 “덤”은 1940년 일본 본인방(本因坊)기전에서 “흑 덤4집”을 시작으로 발전하여 오늘날 5집반 덤으로 진행 중이다.

 

바둑은 왜 9단까지만 있을까?

바둑에는 10단이 없다. 10단전이란 경기의 타이틀을 말하는 것이다.

중국의 삼국시대의 바둑경기에 바둑실력을 평가하는 품급제(品級制)가 있었다. 바둑 두는 사람을 9단으로 나눈 역사는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시대부터 이다.

위진남북조 시대란 중국 역사상 후한(後漢)이 멸망한 다음 해부터 수(隋)의 문제(文帝)가 진(陳)을 멸망시키기까지(221∼589)의 368년 동안을 말한다. 위진남북조 시대는 관리(官吏)의 등급(等級)이 9품으로 나눴졌다. 지금 우리나라 공무원 급수 9급부터 1급까지와 비슷하다.

 

선비나 학자들의 지위도 역시 9등급으로 나눴다.

심지어는 당시의 신선(神仙)들까지도 9품으로 나누었다.

이러한 인품(人品)과 공무원들의 관품(官品) 구분제(區分制)의 제도는 문화 예술까지 영향을 미쳐 바둑기사 역시 9등급으로 나뉘어 지금까지 전해 내려온 것이다.

 

북송(北宋)의 장의(張擬)가 쓴 기경품격편(棋經品格篇)이라는 책에서 바둑을 9품으로 나누어 9단부터 아래로 입신(入神9단) 좌조(坐照8단) 구체(具體7단) 통유(通幽6단) 용지(用智5단) 소교(小巧4단) 투력(鬪力3단) 약우(若愚2단) 수졸(守拙초단)로 분별했다.

 

대만에서는 지금도 “단(段)” 대신 품(品)으로 사용하고 있다.

 

※참고

★사호(四皓)-상산사호(商山四皓)라고 하며 중국 진시황 때에 난리를 피하여 산시성 상산(商山)에 들어가서 숨은 네 사람. 동원공, 기리계, 하황공, 각리 선생을 이른다. 호(皓)란 본래 희다는 뜻으로, 이들이 모두 눈썹과 수염이 흰 노인이었다는 데서 유래한다.

 

★삼청(三淸)-도교(道敎)에서, 신선이 산다는 옥청(玉淸)·상청(上淸)·태청(太淸)의 세 궁(宮)을 이른다.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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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묵노도(水墨鷺圖) 먹물로 그린 백로

雪作衣裳玉作趾(설작의상옥작지)

눈으로 흰옷을 짓고 황금 옥으로 다리를 갖인 학이

 

蘆渚窺魚幾多時(노저규어기다시)

갈대 숲 물가에서 얼마나 물고기를 엿보았던가?

 

연비과산음현(偶然飛過山陰縣)

우연히 하늘을 날아 산음현을 지나가다가

 

오락희지세연지(誤落羲之洗硯池)

실수로 황희지의 벼루 씻는 못에 떨어져 빠졌네!

성삼문(成三問)

 

성삼문(成三問)

우리는 상삼문이라는 역사적인 인물을 접할 때 수양대군이 계유정난(癸酉靖難)을 일으켜 족하인 단종을 밀어내고 왕위를 찬탈(簒奪)한데 반발하여 죽음으로 충절을 지킨 충신으로, 또한 세종 때 집현전 학사로 예기대문언두(禮記大文諺讀)를 편찬하여 한글 창제때 음(音)과 운(韻)을 정확하게 하는데 큰 공을 세운 학자로 알고 있습니다.

 

예기대문언두(禮記大文諺讀)이란 예기(禮記)의 본문에 토를 달아 해석하고 어려운 글자에는 네 종류의 소리인 사성(四聲)과 반절(反切)을 중요한 내용으로 훈민정음에 적용한 책입니다.

사성(四聲)이란 중국 국어의 4가지 소리 내는 방법인 술어 소리인 평성, 상성, 거성, 입성을 말합니다.

반절(反切)이란 훈민정음의 다른 이름으로 역시 초성, 중성, 종성을 합하여 한 글자를 이룬다는 내용입니다.

 

성삼문은 그 시대에 대단한 명성을 떨친 학자였습니다.

성삼문의 명성은 중국에서도 그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었다고 합니다.

 

위의 한시는 성삼문의 한시 감각에 대한 재치를 유감없이 발휘한 대단히 유명한 작품입니다. 기억해 두실만한 한시입니다.

 

저의 설명이 좀 부족할지는 모르지만 차분한 마음으로 서둘지 말고 냉정히 읽어 보십시요.

 

성삼문이 중국 사신으로 명(明)명나라 에 갔을 때에 그의 학문과 시의 수준이 이름 높다는 말을 듣고 명(明)나라 황제(일설에는 어느 귀족이라고도 함)가 그의 재주를 시험해 볼 양으로 어전에 중국의 신비들을 불러 모은 자리에서 두루마리 하나를 내 보이며,

 

『지금, 짐이 가진 두루마리에는 백로(白鷺흰학)의 그림이 그려져 있소. 이 백로(白鷺)를 두고 시(詩)를 지어 보시오.』 라고 하면서 백로(白鷺)의 그림을 보여주지 않고 시를 지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림을 보아야 감정이 나오고 시상이 떠 오를 것인데 보지를 못하니 참 딱한 일이지요.

백로(白鷺)의 특징은 이름대로 몸 전체가 하얀 새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성삼문(成三問)은 즉시 1행과 2행의 시를 아래와 같이 지었습니다.

 

雪作衣裳玉作趾(설작의상옥작지)

눈으로 흰옷을 짓고 황금 옥으로 다리를 갖인 학이

蘆渚窺魚幾多時(노저규어기다시)

갈대 숲 물가에서 얼마나 물고기를 엿보았던가?

 

자, 우리도 같이 상상해 보고 나름대로 시를 짓는다고 생각해 봅시다. 백로(白鷺)는 몸 전체가 눈같이 흰 백색이고 다리는 황금색의 새입니다. 그리고 고개를 살짝 옆으로 하고 물고기를 기다리는 모습입니다. 성삼문도 우리와 같은 생각으로 이렇게 1행과 2행의 시를 지었습니다.

 

성삼문이 위의 두 구절을 짓자 황제는 벽에 그림 두루마리를 펼치는데, 놀랍게도 그림은 먹으로만 그린 묵화(墨畵)의 검은색 백로(白鷺), 아니 흑로(黑로鷺) 였습니다.

그리고 황제는 비웃으며 말하기를

 

『그대의 시에는 “눈으로 옷을 짓고 황금색 옥으로 다리를 ....”라고 하였는데, 이 그림은 흰 눈과 같이 백색의 의상도 아니며 황금 옥으로 된 백로의 다리도 아니니, 시와 그림이 틀린 것 아니요?』

하며, 성삼문(成三問)을 트집 잡아 당황하게 만들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성삼문(成三問)은 의연한 자세로 말하기를

『폐하, 외신(外臣)의 시가 다 완성되려면 아직도 두 구절이 남았는데 나머지 까지 채워 보겠습니다.』하고 다음과 같이 이었습니다.

 

偶然飛過山陰縣(우연비과산음현)

우연히 날라 산음현을 지나다가

誤落羲之洗涓池(오락희지세연지)

잘못으로 왕희지의 벼루 씻는 물에 떨어졌구나.

!!~ !

산음현(山陰縣)은 명필 왕희지(王羲之)가 살던 고을입니다.

 

성삼문은 나머지 두 구절에서 백로(白鷺)는 원래 흰색 이였는데 왕희지 벼루 씨는 못에 빠져 먹물이 배어 검어졌다고 명나라 황제의 회롱에 대응한 것입니다.

벼루의 먹물 씻은 못은 칠흑(漆黑)같이 검습니다.

이 재치에 황제이하 모든 선비들이 놀라 마지않았다고 합니다.

 

시공을 초월한 성삼문의 기발한 상상력은 살아있는 학 한 마리를 왕희지가 벼루를 씻던 산음현 못에 빠져버리게 만들고 있습니다.

 

두루마리 그림 속의 학이 하늘을 날아올라 멀고 먼 산음현, 그것도 왕희지가 살던 아주 오래된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 벼루 씻던 못에 빠졌으니 대단한 비약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쩌면 족자의 그림은 성삼문의 시로 인하여 살아있는 한 마리 학으로 다시 태어 났는지도 모릅니다.

정(停)에서 동(動)으로의 윤회(輪廻) 환생(還生)!

 

수묵(水墨)으로 그린 학 한 마리를 왕희지가 벼루 씻던 못에 빠진 학으로 표현한 것은 가히 화룡점정(畵龍点睛)의 경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화룡점정(畵龍點睛)이란 용(龍)을 그린 다음 마지막으로 눈동자를 그린다는 뜻으로 가장 결정적인 부분의 일을 끝냄을 이르는 말입니다.

 

왕희지는 중국 동진(東晋)시대 때 명필로 산음현에서 벼슬을 할 때 “난정((蘭亭)”이라는 곳에서 선비들과 흐르는 물에 술잔을 띄워 돌리면서 함께 글을 지었다는 곳입니다. 경주에 있는 포석정도 난정((蘭亭)의 본을 따서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 당시의 글들을 모은 것이 그 유명한 난정집서(蘭亭輯敍)인데, 왕희지는 그 책의 서문(序文)을 써서 더욱 유명해졌습니다. 너무 아름다운 글이라서 다음에 소개 하겠습니다.

 

머리빗을 창공에 던져 “반달”을 만든 황진이나 백로를 왕희지 벼루 씻은 못에 빠트려 검은 학을 만든 성삼문이나 한시(漢詩)의 매력은 여기에 있습니다.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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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절명시(賦絶命詩) 목숨이 끊어질 때 남긴 시

擊鼓催人命(격고최인명)

둥둥둥 북소리가 사람의 목숨을 재촉하는데

 

回頭日欲斜(회두일욕사)

머리 돌리니 해는 서산을 넘어가는 구나

 

黃泉無客店(황천무객점)

황천가는 길엔 주막도 없을 것이니

 

今夜宿誰家(금야숙수가)

오늘밤은 누구 집에서 잘 것인가?

성삼문(成三問)

 

성삼문(成三問) 절명시(絶命詩)

위의 절명시는 성삼문이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가 발각되어 38세의 나이에 새남터 사형장에서 마지막으로 남긴 시라고 합니다.

이 시는 조선시대 몇몇 절명시중에 최고봉으로 식자층과 지조를 중히 여기는 절개파(節介派) 간에는 익히 읽혀지는 한시 입니다.   

 

 

새남터는 조선시대에 사형을 집행하던 곳으로 사남기(沙南基)라고도 하며 지금의 신용산 철교와 인도교 사이 이촌동(二村洞)부근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절명시(絶命詩)란 죽음을 앞두고 이 세상 마지막에 남기는 시(詩)입니다. 유언(遺言)과는 다른 의미를  갖습니다.

역사적 인물로 세인(世人)의 기억에 남고 있는 절명시로는 성삼문의 부절명시(賦絶命詩), 매천 황현(黃玹)의 절명시(絶命詩), 녹두장군 전봉준 절명시(絶命詩), 조광조 절명시(絶命詩) 그리고 앞에 소개드린 민영환등의 시가 식자층에 회자(膾炙)되고 있습니다.

 

성삼문(成三問)!

노량진 사육신 묘지를 찾아 성삼문의 묘소 앞에 서면 이 세상에 사나이 대장부로 태어나서 성삼문만큼 지조(志操)를 지킨 인물이 우리 역사상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부귀(富貴)와 공명(功名)을 얻기도 어렵지만 그것을 버리기는 더 어려운 게 인간의 삶인데 부귀 보다는 인간의 높은 가치에 삶의 비중(比重)을 더 두었던 것 같습니다.

 

수양대군의 혹독한 고문에도 결코 굴하지 않고, 세조(世祖)가 “나를 왜 임금으로 인정하지 않느냐”고 호통 치자 성삼문은 끝까지 그를 전하(殿下)라고 부르지 않고 “나는 단종대왕(端宗大王)의 신하다”라고 하였습니다. 세조는 대노(大怒)하여 불에 벌겋게 달군 쇠꼬챙이로 성삼문의 다리를 지지고 팔을 자르고 결국 사지(四肢)를 찢어 죽이는 사형(死刑)을 집행하게 됩니다. 집행관이 마지막으로 남길 말을 하라고 하자 그은 태연히 위의 절명시를 남긴 것입니다.

 

성삼문의 절명시는 죽음을 재촉하는 북소리와 서산에 지는 해를 통해 생명의 마지막 순간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찾아 볼 수 없고 황천 가는 길에 주막이 없어 오늘 밤은 어디에서 쉬어야 할지 걱정하는 성삼문의 모습은 마치 먼 여행을 준비하는 담담한 나그네의 모습처럼 느껴집니다. 실로 대인(大人)의 마지막 모습입니다.

 

출세를 위해서라면 이 당(黨) 저 당(黨)을 가리지 않고 기웃거리고 부끄러움도 모르고 아무런 신념(信念)도 신의(信義)도 국민을 위한 정신도 없이 거짓말을 물 마시 듯하며 철새처럼 날아다니는 오늘날의 정치인들과 는 너무나 비교되는 모습입니다.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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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명시(絶命詩)

鳥獸哀鳴海岳嚬(조수애명해악빈)

새 짐승도 슬피 울고 강산도 찡그리네.

 

槿花世界已沈淪(근화세계이침륜)

무궁화 온 세상이 이젠 망해 비렸구나.

 

秋燈掩卷懷千古(추등엄권회천고)

가을 등불 아래 책 덮고 지난 날 생각하니,

 

難作人間識字人(난작인간식자인)

인간 세상에 글 아는 사람 노릇하기 어렵기만 하구나.

매천(梅泉) 황현(黃玹)

 

매천(梅泉) 황현(黃玹)은 성삼문과 함께 매천(梅泉) 황현(黃玹)의 절명시는 너무 유명하기 때문에 소개를 드립니다.

두 분 다 나라를 위한 우국충정과 굳은 절개의 절명시라는데 공통점이 있습니다.

 

황현(黃玹1855∼1910)은 조선 구한말의 학자로 호는 매천(梅泉)이라하며 영남·호남 선비들의 성금으로 매천집(梅泉集) 이 간행 되었고, 한말(韓末)의 역사를 쓴 매천야록(梅泉野錄)이 유명합니다.

시인인 황현은 구례에서 작은 서재를 마련해 3,000여 권의 서책을 쌓아 놓고 독서와 함께 시문(詩文) 짓기와 역사 연구, 경세학 공부에 열중하였습니다.

 

황현(黃玹)은 1910년 8월 22일 매국노 이완용과 데라우치 사이에 한일 합방이 이루어지자 하룻밤에 절명시 4편을 짓고 망한 나라가 부끄러워 목숨을 끊으려 더덕 술에 아편 덩이를 타서 마시기 전에 부른 노래입니다. 이시는 4수중 제 3수입니다.

 

마지막 결심을 하고 흔들리는 호롱불을 보며 읽던 책을 덮었겠지요.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나라를 잃은 상념(想念)들---

 

차라리 머릿속에 지식이라도 없었으면 무지렁이 백성으로 살아가겠는 되, 나라가 망한 이때눈앞에 갈 길이 분명히 보이는데 가지 않는다면 글자 배운 보람이 없지 않겠는가. 고개 한 번 돌리면 외면할 수도 있었을 그 부끄러움조차 지니지 않으려고 그는 아편 덩이를 삼키고 목숨을 끊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세상이 변하여 지금은 메일을 통한 편안한 마음으로 이 절명시를 읽고 있지만, 시류에 영합하여 권력과 이권이라면 국가, 민족 명예 체면도 심지어는 신앙도 자신의 정체성도 다 저버리고 돈이라면 최고라는 이시대의 우리 모두의 모습과는 너무나 대조적입니다.

 

국가의 수난기에 대처하는 모습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직접 나라를 이끄는 주체가 되기도 하고, 저항적이기도 하고, 외세와 타협하여 민족을 저버리기도, 국권을 강탈당하는 위기에 처하자 선비로서의 힘과 능력의 한계를 절감하고 그 고민과 고뇌를 목숨을 던져 의사를 표시하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 대의명분(大義名分)을 중시하면서도 역사를 이끄는 힘을 갖지 못하여 적극적인 행동으로 나서지 못하는 선비의 한계가 드러난 절규라 볼 수 있습니다.

 

황현은 나라(宗社종사)가 망하는 날 국민이면 누구나 죽어야 옳다고 여겼습니다. 사대부들이 염치를 중히 하지 못하고 직분을 다하지 못하여 나라를 망쳐 놓고도 자책할 줄 모른다고 통탄하였습니다. 어떤 면으로는 극단적이라 할 수도 있지요.

그는 인간 양심의 각성을 외치며 순명(殉名)한 강화학파(江華學派)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순명(殉名)이란 명예를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강화학파(江華學派)란 조선 후기에 강화 출신 정제두(鄭齊斗)를 비롯한 양명학자(陽明學者)들이 강화도를 중심으로 형성한 학파로서 양명학은 기존의 유학과 반대되는 입장을 취한 일종의 진보성향의 신유학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일본은 양명학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참고

제 4수에 있는

진동(陳東)-중국 송나라 선비로, 국가의 기강을 세우는 상소를 하 고 황제의

               노여움을 사서 억울하게 죽음을 당합니다.

윤곡(尹穀)-중국 송나라 진사로, 몽골 침입 때 가족이 모두 죽음 을 당합니다.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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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주 만물은 변화의 연속입니다.

결론적으로 63괘 수화기제(水火旣濟)의 괘(卦)는 우주만물이 완전한 상태로 이루어져 완성되어 끝맺는다는 괘상(卦象)입니다.

6효(爻)가 모두 제자리에 안전하게 위치하고 불 위에 물이 끓고 있으니 이상적인 모양입니다.

 

성경 요한복음 19장 30절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다 이루었다” 하시며 천국으로 승천 하시는 것과, 부처님이 쿠시나가라 강가의 사라쌍수아래서 꽃비를 맞으며 열반(涅槃)에 드시는 것이 다 완성(完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자, 이제 완성이 되었다는 것은 더 필요치 않고 끝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끝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더 나아갈 일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없어지는 것은 무(無)입니다.

 

우주는 존재라 볼수 없으믈  무(無)나 허(虛로 표현 될 수 없습니다.

우주 속의 만물은 종말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주역은 다시 64괘 화수미제(火水未濟)를 등장시킵니다.

끝나지 않았다!

끝이라는 것은 우주만물의 무대에는 등장 할 수없다! no end !

 

64괘인 화수미제( 火水未濟)는 매우 불완전한 모양으로 구성된 괘(卦)의 형태입니다.

물위에 불이 있으니 가장 불안전한 상태입니다.

불완전이라는 것은 완전을 전제로 다시 시작하는 암시가 있습니다.

우주만물은 불완전에서 완전으로 미완성에서 완성으로 가기위해 부단한 변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위의 글은 역경(易經)의 팔괘(八卦)에서 거듭 세분화된 육십사괘(六 十四卦)중 마지막의 두 괘입니다. 역경(易經)은 너무나 현묘(玄妙)하여 필자가 감이 여기서 논할 수 없고 또한 그럴만한 식견(識見)도 없습니다. 다만 지나가는 구경삼아 읽어본 내용 중에 마지막 두괘가 항상 우리의 삶에 연속성을 의미하는 것 같아 소개를 드립니다. 역경(易經)을 고대 중국의 주(周)나라때 문왕(文王)이 64괘를 만들고, 점치는 효(爻)를 주공(周公)이 만들었다고 하여 주역(周易)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여기서 역(易)이라는 말은 이(易)라고 읽을 때는 “쉽다”는 뜻이 되고 역(易)이라고 읽을 때는 “변(變)한다”는 것을 의미 하며 변하는 것은 “바뀐다”는 뜻입니다.

 

결국 주역(周易)의 요체(要諦)는 우주의 모든 사물(事物)과 인간이 지각(知覺)할 수 있든, 또는 지각할 수 없든 모든 상황들이 고정(固定) 불변이 아니고 항상 변(變)한다는 뜻입니다.

 

미항공우주국 나사(NASA)과학자들이 1969년 인류사상 최초의 달 착륙 우주선을 개발할 때 우주를 철학적으로 접근하기 위하여 동양철학의 정수(精髓)인 주역(周易)을 읽었다는 기사를 기억합니다.

 

저는 이번에 삼성사건에 즈음하여 역경(易經)의 두 괘를 다시 생각하여 봅니다.

 

제1차 세계대전의 동기가 오스트리아 황태자 페르디난트 내외가 세르비아인 청년에게 암살당한 사건으로 이것은 오스트리아와 세르비아와 외교적인 문제에 불과한 것이 세계대전으로 비화(飛火) 확대된 것입니다. 이정도의 사건으로 세계대전까지 일어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고 세계적인 기업이며 70년의 역사를 갖인 삼성이 사원 한사람의 문제 제기로 큰 변화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역경의 이치입니다.

변화의 결과에 대하여는 논의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글에서는 모든 것은 항상 변한다는 그 자체가 중요한 것입니다.

 

우주만물의 모든 것은 그 동기가 어디에 있었던 변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요람에서 죽음에 이르는 것도, 병이 나고 치료가 되는 것도, 기업이 흥하고 망하고 권력이 바뀌는 것도 지구의 모든 생물 무생물이 진화(進化)의 과정도 변화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불교의 윤회(輪廻) 사상은 생명이 있는 중생이 반복되는 괴로움의 연속을 의미합니다. 이 괴로움(苦고)의 연속인 윤회(輪廻)에서 벗어나려면 열반(涅槃)에 들어야 해결됩니다.

열반(涅槃)이란 모든 번뇌의 얽매임에서 벗어나고, 진리를 깨달아 불생불멸(不生不滅)의 법(法)을 체득한 경지를 말하며 불교의 궁극적인 실천 목적입니다.

 

그러나 저는 단정(斷定)코 말하고자 합니다. 불교에서 열반(涅槃)은 없고 있을 수도 없습니다. 불교에 열반이 있으면 그것은 완성이며 끝이기 때문에 불교가 존재할 필요가 없습니다.

불교는 열반과 극락을 목표와 희망으로 삼고 끝없이 염불을 하는데 불교의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불교는 열반을 추구하기 위해서 소승(小乘)에서 대승(大乘)으로 교종(敎宗)에서 선(禪)으로 교학(敎學)에서 불입문자(不立文字)불교로 끊임없이 변화하여 왔습니다.

 

기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에 천당이 도래하면 그것 역시 완성이므로 기독교는 존재할 가치가 없습니다. 거듭되는 부활의 정신으로 하나님의 보좌 옆에 앉을 천국을 목표로 기도하는 것이 기독교의 존재 가치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기독교도 율법(律法)위주의 구약(舊約)의 계약서를 사랑을 중심으로한  신약(新約)의 계약서로 바꾸었습니다. 이것이 천국으로 가기 위한 변화입니다. 

 

 

2000년 전부터 다시 온다는 하나님의 나라는 지금까지 기다림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앞으로 또 2천년 아니 영원히 이어 질 것입니다. 그래야만이 기독교의 존재 이유가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63괘 수화기제(水火旣濟)와 64괘 화수미제(火水未濟)의 반복되는 변화인 것입니다. 이것이 우주 속에서 숨 쉬고 있는 우리의 삶입니다.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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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월정(弄月亭)

足翁亭子澗之幽(족옹정자간지유)

그윽한 시냇가에 지족당의 정자

 

曠世吾行爲暫留(광세오행위잠류)

귀한 여행길에 잠시 발길이 머무네

 

月出金砂燦可數(월출금사찬가수)

달뜨니 금빛 모래 찬란히 새겨지고

 

谷虛雲日遞相浮(곡허운일체상부)

골짜기 텅 비니 구름 해 번갈아 뜨네

 

風光乍動紛盈目(풍광사동분영목)

풍광이 언뜻 이니 눈에 가득하고

 

塵土旋銷在轉頭(진토선소재전두)

먼지는 고개 돌리는 사이에 사라지네

 

始識子荊非善謔(시식자형비선학)

자형(子荊)이 농담 잘 못함을 알겠으니

 

終宵一枕枕寒流(종소일침침한류)

밤새도록 찬 물결에 선잠을 이루네!

하겸진(河謙鎭)

 

우리 집에 아름다운 집 이름(당호堂號)을 붙여 보세요.

사람이 사는 생활 주변에 자동차, 산, 강, 음식점 심지어는 애완동물도 고유한 이름을 지어서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데 안식(安息)의 기본이 되고 추위, 더위, 비바람을 막고 외부로부터의 자연적 인공적 위험의 방책(防柵)이 되어 주고 재산으로서 가장 소중하고 가치가 제일 높은 집은 그 흔한 이름하나 붙여주지 않고 있습니다.

“집”이라는 보통명사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름처럼 고유명사를 붙여주자는 것입니다.

 

평생 월급을 모아 어렵게 마련한 집, 전쟁을 방불케 하는 치열한 경쟁에서 분양받은 아파트, 수십년 전셋집 서러움에서 마련한 내 집, 이 얼마나 소중한 집이 강아지에게도 붙여주는 그 흔한 이름이 없다는 것은 집이 갖고 있는 위상(位相)에 비하여 너무나 야박하고 무관심한 대접입니다.

 

집에 이름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문인(文人)이나 예술인 또는 사회적으로 특별한 분야에 종사하는 명사(名士)들은 당호(堂號)를 지어 부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역사 속에는 다산 정약용 생가의 여유당(與猶堂), 사임당(師任堂), 대원군의 이노당(二老堂), 이승만의 이화장(梨花莊), 김구의 경교장(京橋莊), 만해의 심우장(尋牛莊), 등이  당호(堂號) 입니다. 사임당(師任堂)은 당호를 따서 호(號)로 사용했으며 이름은 신인선(申仁善)입니다. 지면 관계로 긴 설명은 못하지만 만해의 심우장(尋牛莊)도 매우 소박하면서 의미있는 당호며 불교와 깊는 관련이 있습니다. 

 

저는 평범한 생활을 하는 우리 서민(庶民)들의 집에 의미 있고 아름다운 이름을 붙여 주자는 것입니다. 집전체의 이름도 좋고 컴퓨터가 있는 방을 서재(書齋)로 정하여 이름을 지어도 매우 훌륭하고 멋있습니다. 예를 들어 달빛에 책읽은 곳이라는 월광재(月光齋)는 어떻습니까?

  

 저는 33년전 대전(大田)으로 근무처가 발령되는 바람에 그곳에 살면서 30대 초반에 아무 연고도 없는 그곳에서 저축한 돈으로 땅을 50평 산후 돈이 부족하여 돈대로 짓는다고 건평 16평의 집을 지었습니다. 집을 지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얼마나 건축업자에게, 지역 깡패에게 시달림을 당했는지 모릅니다. 집이 80% 될 때에 업자가 돈을 갖고 도망을 간후 내손으로 집을 완성시키면서 많이 울기도 하였습니다. 집이 완성된 후 너무나 감격하고 꿈만 같아서 그 집에다 이름을 붙였습니다.

피우당(避雨堂) !

비바람을 겨우 피할 수 있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이후로 제가 사는 집, 지금 사는 신림동 집 이름도 피우당(避雨堂)입니다.

 

경남 함양군 지리산 자락 수정 같은 맑은 물이 흐르는 화림동 계곡 1,000여 평되는 바위위에 아름다운 농월정(弄月亭)이 있습니다. 이 정자는 조선 광해군 때 예조 참판을 지낸 박명부가 정계에서 은퇴한 뒤 자연에 묻혀 살면서 분수(分數)에 만족(滿足)하는 안분지족(安分知足)을 생활신조로 삼고 만족함을 안다는 뜻의 호(號)를 지족당(知足堂)으로 삼았던 한 선비의 심미안(審美眼)을 빛내기 위해 후손들이 지은 정자입니다.

 

농월정(弄月亭)은 달을 회롱하며 벗한다는 뜻입니다. 저는 스스로 만족을 아는 지족(知足)의 깊은 뜻을 마음에 담기위해 호(號)를 정한 것이 “농월(弄月)”입니다.

-농월-

 

※참고-자형(子荊)

자형(子荊)은 진나라 사람으로 속세를 떠나기 위해 친구인 왕제에게 마음을 털어놓으면서 “돌을 베개 삼아 눕고 흐르는 물로 양치질하는 생활을 하고 싶다(枕石漱流-침석수류)“라고 말할 것을 잘못하여

 

“돌로 양치질하고 흐르는 물을 베개 삼겠다(漱石枕流-수석침류)”라고 말했다. 왕제가 실언임을 지적하자 자형는 자존심이 상하여 “흐르는 물을 베개삼겠다는 것은 옛날의 은자인 허유(許由)처럼 쓸데없는 말을 들었을 때 귀를 씻으려는 것이고, 돌로 양치질을 한다는 것은 이를 닦으려는 것일세.” 하고 억지 변명을 하였다

 

그후 수석침류(漱石枕流)는 남에게 지기 싫어하여 사실이 아닌 것을 억지로 고집부리는 것, 또는 실패를 인정하려 들지 않고 억지를 쓰는 것을 일컫는 말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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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蟹해)는 남의 구멍에 들어가지 않는다.

負石穿沙自有家(부석천사자유가)

돌을 지고 모래를 파니 저절로 집이 되고

 

前行卻走足偏多(전행각주족편다)

앞으로도 가고 뒤로도 가니 발이 많기도 하다.

 

生涯一掬山泉裏(생애일국산천리)

평생을 한 움큼의 샘물로도 부족함이 없으니

 

不問江湖水幾何(불문강호수기하)

세상에 물이 얼마이건 물어 무엇 하리오.

이황(李滉)

 

무장공자(無腸公子)

이 시를 쓴 퇴계(退溪) 이황 선생은 가정 형편이 워낙 어려워 스승을 뫼시고 공부를 할 수가 없어 혼자 절에 가서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면서, 몸에 고질병이 나도록 공부를 하였다.

 

어머니는 종종 자식들을 꿇어앉히고 “너희들은 아버지가 안계시므로 남의 집 아이들과는 달리 공부만 잘 해도 안 되고 행실을 각별히 조심해야 된다. 만약 행실이 올바르지 못하면 애비가 없어 교육을 옳게 받지 못해 그렇다고 남들이 손가락질을 할 테니 특별히 명심하여 조상들을 욕먹게 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니 과부의 자식은 몇 백 배 더 조신(操身)하여야 한다.”

이처럼 선생께서는 어머니와 스승의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 몸소 실천하고 꾸준히 공부하여 세계적인 대학자가 되었다.

 

이 시는 퇴계(退溪) 이황 선생이 15살 때 개울가의 가재(石蟹석해)를 보고 지은 시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시는 제목이 없는데, 그것은 겨우 15살의 소년이 냇가의 가재를 보고 떠오른 감상을 글로 옮겼기에 시를 대표할만한 무슨 거창한 제목이 필요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위의 제목은 필자가 이 한시를 옮기면서 편의상 붙인 것이다.

 

이 시는 “자유부인”으로 유명한 소설가 고 정비석 선생이 쓴 퇴계소전(退溪小傳) 이라는 책에서 나오는데 정비석은 설명을 통해 『게가 구멍을 파고 들어가는 광경을 보고 읊은 천진난만한 노래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한 움큼의 샘물 속에서도 살아갈 수 있으니 강호에 물이 아무리 많기로 탐낼 것이 아니다.” 라는 대목은, 열다섯 살에 이미 세상을 관찰한 철언(哲言)이었다고 말해도 그다지 과언은 아닐 것이다. 15세라는 어린 나이에 이미 주체의식(主體意識)이 확립 되었고, 인생관(人生觀)이 확고해졌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한의학 의서(醫書)인 본초강목(本草綱目)에 게의 다른 이름을 무장공자(無腸公子)라 하였다. 이 이름은 창자 없는 공자라는 뜻이다.

 

게를 특히 조선의 여인들이 부러워하였다. 시어머니와 남편의 구박 속에 자식을 키우면서 숙명적인 천대를 받아 벙어리 귀머거리 장님9년에 속은 타고 애간장이 녹아내려 창자 없는 게를 부러워하였다. 게는 창자가 없으니 속탈 애간장도 없기 때문이다.

 

1908년에 안국선(安國善)이 쓴 금수회의록(禽獸會議錄)이라는 신소설이 있다. 이 소설에는 까마귀, 여우, 개구리, 벌, 게, 파리, 호랑이, 원앙 등의 금수(禽獸)들이 사람으로 가장하여 회의를 하는 장면이다. 회의 내용중에 게((蟹해)가 발언한 내용을 아래와 같이 정리하여 본다.

 

게의 연설 부분을 무장공자전(無腸公子傳)이라 하는데 세상을 빈정거리고 사람을 희롱한 내용이다. 사람들은 앞을 보면서도 똑바로 걷지도 못하고, 창자 없는 게보다 자존심도 없는 모습을 비꼰 내용이다.

 

연단에 선 연사(演士)는 생김새가 괴상하고 강열한 눈빛과 힘센 장수같이 두 팔을 쩍 벌리고 어깨를 추썩추썩하며 하는 말이,

 

『나는 게올시다. 지금 무장공자라는 제목으로 연설할 터인데, 이 말은 창자 없는 공자란 뜻으로 이는 대단히 무례한 말이로다. 그렇소, 우리 게는 창자가 없고 사람들은 창자가 있소. 지금 세상 사람 중에 옳은 창자 가진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소?

 

사람의 창자는 참 더럽소. 비단으로 옷을 잘 입어서 겉은 화려해도 가죽만 사람이지 그 속에는 똥으로만 차 있소. 칼로 배를 가르고 그 속을 보면, 구린내가 물큰물큰 나오.

 

지금 어떤 나라 정부를 보면 깨끗한 창자는 아마 몇 개가 없으리다. 신문에 그렇게 나무라고, 사회에서 시비(是非)하고, 백성이 원망하고, 욕들을 하여도 모르는 체하니 이것이 명색이 창자 있는 사람들이오?

 

그 정부에 옳은 마음먹고 벼슬하는 사람 몇 명이나 되오?

머리 쓴다는 것이 봉급 올릴 생각, 백성 등쳐먹을 생각, 나라 팔아먹을 생각밖에 아무 생각 없소. 이같이 썩고 더럽고 똥만 들어차서 구린내가 물큰물큰 나는 창자는 우리 게들에게는 없는 것이 도리어 낫소.

 

일본에 나라를 빼앗겨 압제를 받아도 분한 마음이 없고, 욕을 보아도 노여워할 줄 모르고 종노릇하기만 좋고 달게 여기며, 자유를 찾을 생각이 도무지 없으니, 이것이 창자 있는 사람들이라 하겠소?

 

우리 게는 창자가 없어도 남이 나를 해치려 하면 죽더라도 큰 가위 게발로 집어 한 놈 이라도 물고 죽소.

 

내가 한번은 어느 나라에 가보니 외국 병정이 그 나라 부인을 회롱하여 젖통을 만지려 하매 그 부인이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한즉, 그 병정이 발로 차며 폭력을 가해도 사람들이 구경만 하고 한 사람도 대들어 그 부인을 도와주고 구원하여 주는 사람이 없으니, 그 사람들은 자기와는 상관이 없어서 그러한지 겁이 나서 그러한지 분낼 줄 모르고 도리어 웃고 구경만 하니, 그 부인의 오늘날 당하는 욕이 내일 제 어미나 제 아내에게 또 돌아올 줄을 왜 알지 못하는가?

 

이런 것들이 창자 있는 사람이라 스스로 자랑스러워 하니 게허리가 아파 못 살겠소. 창자 없는 우리 게는 어찌하면 좋겠소?

 

나라에 경사가 있어도 기뻐할 줄 모르고 국기 달 성의도 없으니 그것이 창자 있는 사람의 할 짓이요? 그런 창자는 부럽지 않소. 창자 없는 우리 게의 행한 일을 좀 들어 보시오.

 

한 처녀가 뱀에 물려 죽게 된 것을 살려 내느라고 위험을 무릅쓰고 그 큰 뱀을 우리 게발 가위로 잘라 죽였으며, 객사한 송장을 드러내어 음란한 계집의 죄를 발각하는 옳은 일을 하였소.

 

우리 게는 사람같이 더러운 일은 하지 않소. 또 사람들도 우리의 행위를 자세히 아는 고로 『게도 제 구멍이 아니면 들어가지 아니한다』는 유명한 속담이 있소.

 

참말이요. 우리는 암만 급하더라도 들어갈 구멍에만 들어가지, 부당한 구멍에는 들어가지 않소. 사람들은 부당한 구멍으로 들어가는 일이 참 많소. 부모처자를 내버리고 중이 되어 산 속으로 들어가는 이도 있고, 양가집 부인네들은 음란한 생각으로 불공한다 핑계하고 절간 초막으로 들어가는 이도 있소, 불공드리다가 초막(草幕)에는 왜 들어가오?

 

명예 있는 신사라 자칭하고 남의 부인 사타구니에 들어가는 이도 있소, 당연히 들어갈 데와 못 들어갈 데를 분별치 못하고 들어가서 화를 당하고 눈물을 흘리니, 이런 사람들이 창자 있는 것이 무슨 자랑이라고 우리 게의 창자 없는 것을 비웃는단 말이요?

 

지금 사람들을 보면 그 창자가 다 썩어서 얼마 후에 창자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이 다 무장공자가 될 것이니, 이다음에는 사람더러 무장공자라 불러야 옳겠소.』

 

게가 연설을 끝내고 연단에서 개선장군처럼 내려온다.

 

게는 창자가 없어도 무지하게 잘 먹는다. 게를 자세히 보면 사람의 손등 손가락과 닮아서 그 성질이 종(縱세로)을 꺼려하고 횡(橫가로)에 길들어져 있다. 즉 앞으로 가기를 싫어하고 옆으로 다니는 것을 좋아 한다. 두 눈은 앞으로 드러내고도 걸음은 옆으로만 가는 것이다. 그래서 그 발들이 종(縱세로)으로 거스르면 다 떨어져 나가게 되어 있다. 이 게를 보면 근래 이 나라 정치인들의 행적과 비슷하다.

 

동의보감에서는 게가 가슴속 맺힌 열(結熱결열)을 다스리고, 위(胃)의 기운을 좋게 하여 소화력을 향상시키며, 산후에 배가 아픈 통증을 다스린다고 나와 있다. 게껍질과 새우 껍질은 키토산이 풍부하나 그대로 먹으면 물에 녹지 않아 효과가 없으므로 매우 부드럽게 가루를 내어 먹어야 하고 새우를 먹을때는 꼬리부분이 최고의 영양가다.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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