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다” 은 잘못 사용되는 말이다.
며칠 전 친목모임에서 “인연(因緣)” 이라는 말끝에 한 친구가 하는 말이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은 옷깃을 가볍게 건드리는 대수롭지 않은 일에도 인연이 맺어질수 있다는 말이지만---
그러나 옷깃은 가볍게 스쳐도 되는 부분이 아니다.
“ 옷깃”은 남녀(男女)의 옷을 불문하고 가슴 부분을 감싸고 있는 은밀한 곳이므로 결코 함부로 다른 사람의 손이 쉽게 접근하거나 가볍게 스칠 곳이 아니고 매우 경계할 부분을 터치(touch)한 것이므로 오히려 옷깃을 스친 것은 무거운 인연(因緣) 이라는 것이다.
즉 “옷고름을 풀었다” 는 암시(暗示)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 친구의 말을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니 맞는 말 같다.
그렇다.
옷고름을 풀고 나면 다음 열리는 곳이 옷깃이고 옷깃이 열리면 유방과 심장이 있는 가슴이다.
옷깃의 뜻은 저고리나 두루마기의 목에 둘러대어 앞에서 여밀 수 있도록 된 부분으로서 가장자리는 동정으로 싼 부분이다.
혹시 “옷깃을 스친 인연 이다”의 예사롭지 않은 인연이 잘못 전하여진 것이 아닌가 ?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냥 "옷만 스쳐도 인연이다" 라고 했으면 예사롭고 무난한 표현일 것인데
굳이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다” 라고 한것은 깊은 사연을 함축한 것이라 생각된다.
옷자락의뜻은 옷의 아래로 드리운 부분으로 치맛자락 두루마기자락으로 옷의 끝부분이고 끝동은 여자의 저고리 소맷부리에 댄 다른 색의 천 으로 쉽게 손이 스칠수 있는 곳을 의미한다.
즉 “아이가 과자 사달라고 엄마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떼를 쓴다” 는 말을 예문(例文)으로 들 수 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다” 라는 말은 불교(佛敎)에서 생겨난 말이라 본다.
불교에서는 우주(宇宙)의 중심을 이루는 거대한 수미산(須彌山)이 있다고 주장한다.
수미산은 고대 인도의 우주관에서 세계의 중심에 있다는 상상(想像)의 산으로 산의 하부(下部)는 바람이 둘러있는 풍륜(風輪), 중간은 물이 싸고도는 수륜(水輪) 상부는 금으로 둘러싼 금륜(金輪)으로 되어 있다.
금륜(金輪) 위에는 9개의 산과 8개의 바다가 둘러싸고 있고, 산의 맨 아랫부분은 바위 하나의 크기가 40리나 되는 바위들로 대(臺)를 이루어 수미산을 둘러싸고 있다는 것이다.
이 바위돌위에 백년마다 한 번씩 하늘에서 선녀(仙女)가 내려와 바위에서 춤을 추는데 그때 선녀의 얇은 치맛자락이 가볍게 스치면서 바위가 닳는데 한번 내려오는 백년을 일겁(一劫)이라 한다.
선녀가 백년마다 한 번씩 내려와 치맛자락을 가볍게 스치면서 40리로 쌓여있는 바위를 다 닳게 하려면 무한(無限)의 세월을 보내야 하는데 이 세월을 영겁(永劫)이라 한다.
불교의 시간 개념은 찰나(刹那)는 72분의 1초, 일겁(一劫)은 백년, 영겁(永劫)은 시작도 끝도 없는 무시무종(無始無終)의 세월이다.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다는 점적천석(點滴穿石)도 불교의 시간을 표현한 것이다.
인도인들이 이처럼 “엄살”이 심하다.
또 신약성경 마가복음 5장 22절~29절에 예수님이 야이로의 병든 딸을 고치려 갈 때 만성 혈우병(血漏症-만성 자궁출혈병) 환자가 군중속에 에워싸여 있는 예수님의 옷자락에 가볍게 손을 대는 정도로 은혜를 입어 병이 나은 일이 있다.
모두가 가볍게 스치는 옷자락의 이야기 이지만 결과는 매우 크게 나타나는 인연들 이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언어중에서 최상급(最上級)과 최하급(最下級)을 구분해서 적당한 대상에 해당되는 말을 인용을 잘해야 되는데 이를 혼동하는 예가 많다.
별생각 없이 중(重)한 것을 가볍게 말하고 경(輕)것을 무겁게 여기는 경우가 있다.
매력이 있다는 차밍(charming) 대신에 노골적인 성적(性的)묘사 느낌을 주는 섹시(sexy)라는 말을 예사로 하는 것도 그중 하나이다.
서양의 섹시(sexy)와 한자의 관능적(官能的)이 주는 의미는 비슷하면서도 언어가 주는 느낌은 다르면이 있다.
우리의 전통적인 언어에서 섹시(sexy)와 관능(官能)은 금병매(金甁梅)의 색남(色男)으로 등장하는 서문경이나 음탕(淫蕩)한 여인들에게 적용되는 말이지
신사나 숙녀에게는 당치도 않은 말이다.
그런데도 모두들 “섹시(sexy) 하다” 는 말을 듣기를 갈망(渴望)하니 탄식할 일이다.
카리스마(charisma)라는 말을 신인(新人) 연예인이나 평범한 사람에게도 얼굴만 좀 이상하고 행동만 약간 티를 내도 마구 붙여 사용한다.
마치 “국민 가수” 국민배우를 아무에게나 붙이는 것 처럼--
우리나라에서 카리스마를 지칭한 최초의 사람은 이승만 전 대통령으로 기억한다.
카리스마는 흔하게 아무에게나 적용하는 가벼운 단어가 아니다.
카리스마는 기독교의 신약성경에서 그 의미를 주는 말이다.
카리스마의 뜻은 “예수님이 성령(聖靈)의 은총(恩寵)으로 아무 대가(代價)없이 무상(無償)으로 주는 은혜”를 의미다.
신약성경에서 예수그리스도가 인간에게 베푸는 모든 은총을 아무 대가없이 베푼다는 뜻인데 이것을 할 수 있는 자는 절대자(絶對者)인 하나님만이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말을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가 신앙의 절대적인 근거로 맺어지는 지배자와 복종관계 사이에서 오직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베푸는 쪽을 카리스마라 하였다.
즉 비교할 데가 없는 위대함이라는 것이다.
좀 유명하다고 아무에게나 붙이는 용어(用語)가 아니다.
한심한 것은 신앙이 깊다고 자처하는 기독교인들이 드라마 “아이리스”의 탤런트 이병헌을보고 “카리스마가 있다”고 하니 몰라도 한참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생활 속에는 잘못 인용되는 말이 많다.
한문(漢文)도 영어(英語)도 잘해야 하지만 우리말을 바르게 사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언어(言語)는 그 사람의 인격(人格)의 척도(尺度)가 된다고 하였다.
바른 언어를 위해 교양(敎養)있는 사람과 교유(交遊)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좋은 책을 많이 읽는 것도 바른말을 하는데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농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