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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지(臙脂) 찍고 분바른 부처님
아래 사진은 신림동 보라매 공원 내 연꽃이다.
3~4년 전만해도 이 인공연못은 자연적으로 수초(水草)가 자라서, 썩고, 연못가의 둑이 흙으로 쌓여 풀들이 자연스럽게 난 것이 마치 들판에 있는 자연 늪지 같았다.
그런데 청계천 본을 받았는지 생태파크를 조성한다면서 연못 주변을 석축(石築)을 쌓고 수중 분수대와 주변에 확성기 벤취등을 설치하여 완전히 환경을 바꾸어 놓았다.
오후가 되면 확성기에 빠른 템포의 디스코, 힙팝송등이 흘러나오고 연못에서 음악분수가 음(音)의 고저(高低)에 따라 술 취한 듯 춤을 추고 취객의 흐느적거림과 좋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연못 위쪽 높은 숲속 절에서도 확성기를 설치하여 경쟁하듯 염불소리가 크게 들린다.
디스코송, 취객의 고함소리, 음악분수, 목탁소리가 어울려 그야말로 “보라매 심포니”다.
연꽃을 처염상정(處染常淨)이라하여 화려한 모란(牡丹)과 다르게 보는 것은 “더러운 진흙속에서도 오염되지 않고 청결하게 꽃을 피워 항상 깨끗함”을 간직하기 때문이다.
처염상정(處染常淨)은 가섭존자(迦葉尊者)를 통하여 중생에게 전달된 “부처님의 자비의 마음인 염화미소(拈華微笑)”인 것이다.
은어(銀魚)는 깨끗한 물에 살아야 그 비늘이 더욱 빛나고
연꽃은 썩은 흙탕물과 번뇌에 오염된 세속(世俗)에 피어야 중생을 피안(彼岸)에 인도하는 진면모를 알 수 있다.
화려하고 풍요로움만 좋아하는 중생들이 연꽃의 깊은 마음을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 마는 보라매 깨끗한 연못의 연꽃은 고생모르고 귀하게 자란 부잣집 고명딸 같은 인상을 준다.
차라리 화왕(花王)의 이름이 붙은 모란이나 화비(花妃)인 장미가 보라매공원 분위기에 더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물론 연꽃을 일반 꽃들과 같이 관상용(觀賞用)으로 보는 공원관리측과, 만다라화(曼陀羅華)로 보며 이 글을 쓰는 필자와 견해(見解) 차이는 있다.
옛 선인들은 8월의 새벽에 조용히 연지(蓮池)를 돌면서 연꽃의 향기를 맡으면 아주 미세한 소리가 난다고 하였다. 연꽃이 피어 벌어지는 청개화성(聽開花聲)의 소리다.
이것은 중생과 부처님과의 대화이다.
코로 맡은 향기는 아랫배로 내려가고 다시 몸 전체를 돌면서 기운을 소통시키는 소주천(小周天)의 보기(補氣)작용을 한다고 하였다.
전국각지에 알려지지 않은 연지(蓮池)가 많겠지만 세인(世人)의 입에 오른 역사가 오래된 연지(蓮池)로는 전주의 “덕진연못(德津蓮池)”이 유명하다. 덕진채련(德津採蓮)은 전주 8경중 하나이다.
맑고 깨끗한 보라매에 핀 연꽃은 중생의 어려움을 살피는 관음보살(觀音菩薩)이기보다 환속(還俗)하여 속세(俗世)에 동화(同化)된 “비단 이불속의 보살”과 같다.
육당(六堂) 최남선이 쓴 “화하만필(花下漫筆)”에서 연꽃을 소개하기를
『연(蓮)은 본래 인도산(産)으로 불교와 깊은 관계를 가진 꽃이나 중국에 들어와서는 불교를 떠나서 아주 현세화(現世化)하여 오희월여(吳姬越女)와 깊은 관계를 맺었다. 그리하여 연화(蓮花)라면 벌써 채련여(採蓮女)를 생각게 하는 동시에 채련곡(採蓮曲)을 그립게 된다』
여기서 오희월여(吳姬越女)란 중국 오(吳)나라 강남 일대의 아름다운 미녀(美女)들을 말한다. 연밥을 따는 채련여(採蓮女)와 뽕잎따는 여인은 사랑하는 낭군을 기다리는 속세의 낭자이다.
육당(六堂)의 주장대로라면 중국과 한국에 핀 연꽃은 사바세계(娑婆世界)의 흙탕물에 허우적거리는 중생을 구제하는 이미지보다 속세의 아름다운 여인의 상징으로 변질 되었다는 것이다.
승복(僧服)인 가사(袈裟)가 회색(灰色) 황색(黃色)인 것을 분소의(糞掃衣)라 하는데 이 옷은 쓰다버린 쓰레기 같은 헝겊조각이나 시체를 싸서 내다버린 수의(壽衣)인 총간의(塚間衣)를 조각조각 연결하여 만든 옷을 말한다.
탁발(托鉢) 걸식(乞食)때 부잣집과 가난한 집을 불문하고 일곱 집의 음식을 주는 대로 얻고그 음식을 남기지 않고 다 먹는 것도 하심(下心)하고 절제(節制)하며 인욕(忍辱)하는 삶을 몸으로 실천하는 수행이다.
이 분소의(糞掃衣)와 탁발(托鉢)공양이나 발우(鉢盂)공양은 불교의 근본 진리인 무소유(無所有)와 검소함을 통하여 불필요한 생명의 희생(犧牲)을 막는 자비의 상징이다. 이것이 부처님의 진리인 염화미소(拈華微笑)인 것이다.
무소유(無所有)란 집도 옷도 돈도 갖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자기 신분에 맞는 분수대로 소유하는 것이 무소유(無所有)다.
선불교(禪佛敎)의 소의경전(所依經典)인 금강경(金剛經)에서 강조하는 무소유는 부파불교때 권위주의(權威主義)로 변질되어 부패한 아라한(阿羅漢)을 개혁하여 누구나 깨달음을 얻으면 부처가 될수 있다는 보살(菩薩)운동의 대승불교(大乘佛敎) 근본정신이다.
보살운동이란 일체의 차별주의를 거부하고 내가 속한 어느 집단만이 열반에 들 수 있다는 일체의 구분의식이나 우월 특권의식을 배제하며 누구든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완전한 깨달음)에 이르면 부처님이 될 수 있는 성도(成道)인 것이다.
이는 하나님을 빙자한 율법주의(律法主義)인 유대교를 “믿음 소망 사랑” 으로 개혁한 마틴루터의 기독교 개혁과 같은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새로운 부처님 상으로 개혁한 보살(菩薩)운동의 대승불교가 우리 중생의 눈에 비치는 모습은 초기 불교의 부패한 아라한(阿羅漢) 상(像)으로 되돌아 간 모습이다.
좋은 천으로 만든 가사로 온 몸을 감싸고 고급승용차에 탄 얼굴에는 번지르하게 윤이 나는 것이 요즘 중님들의 모습으로, 중생의 고통을 보면서 고뇌에 잠겨 있는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다.
무소유 염불을 입으로는 외우면서 이권(利權)에 직면하면 대승(大乘)의 보살(菩薩) 정신은 찾아 볼 수 없고 “몽둥이”를 휘두르며 이마에 핏대를 불룩이며 종권(宗權)과 사찰재산 선점(先占)에 돌진하는 것을 보면 승복만 입었지 세속인과 하등의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삼국시대부터 지금까지 우리의 생활 속에 녹여 있는 불교의 상징은 너그러운 포용력과 겸손이었다. 인간의 생활 속에 일어나는 욕심 질투 절망과 미움 외로운 마음을 자비(慈悲)로 감싸 주었다. 경쟁하지 않았다, 바쁘게 서둘지도 않았다.
외향적(外向的)인 사막종교인 기독교와 인간관계의 도덕을 중시한 유교의 경직에 비하여 내향적(內向的)인 숲의 종교인 불교는 세상일에 초연(超然)하고 편안한 모습이었다.
이 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온 지 100년의 초기에도 불교의 너그러움은 승복(承服)의 소매만큼 넓고 넉넉하였다. 배타적(排他的)인 개신교가 아무리 앙앙 그려도 그저 인자한 할아버지가 손자 대하듯 자비로웠다.
그런데 근묵자흑(近墨者黑)일까?
먹을 가까이 두니 검은 물이 들었을까
연꽃이 흙탕물에 피워 있는 지신을 잊었을까
개신교를 닮아 가는지 불교도 남을 미워하는 속인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겸손도 없어졌다.
법문을 설하면서 신도들에게 “반말”투를 예사로 하는 스님들의 모습에서 겸손은 찾아 볼 수 없다. 스스로 “큰 스님”이라 자칭(自稱)하고 그렇게 불리기를 원한다.
아상(我相)을 버리라는 부처님의 말씀은 잊은 지 오래인 것 같다.
스님은 스스로가 당연히 공양 받는 응공(應供)이 되었고 신도는 당연히 공양하는 불자로만 규정 지워 보인다. “중생이 곧 부처다”라는 전심요법(傳心要法)은 찾아 볼 수 없다.
구도자(求道者)로서의 보살(菩薩)보다 대접받는 아라한(阿羅漢)이 되고자 함이다.
불교는 어떠한 난관에 처하더라도 너그러움으로 초연(超然)히 기다리며 극복한 것이 매력이다.
그것은 불교 역사상 가장 어려운 고비였던 중국의 삼무일종의 법난(三武一宗 法難)과 조선 중종때의 법난을 겪으며 도교 유교와 치열한 사회적 헤게모니 쟁탈전에서 지금까지 건재함을 과시하는 내면에는 불교 특유의 “부질없는 속세에 대한 초연(超然)”함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불교도 품어주는 자비보다 다른 쪽이 “여차” 하면 불교도 “저차”하는 속인(俗人) 으로 전락(轉落) 되었다.
흙탕물에서 고결한 청정함을 추구하는 처염상정(處染常淨)의 연꽃보다는 연지 찍고 화려하게 단장하여 속세의 영화를 누리는 영파연지(寧把臙脂)의 모란(牡丹) 됨을 더 갈망하는 모습으로 보인다.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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