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파공작원
윤호정
“어머 아저씨, 요즘 왜 아침 먹으로 안 왔어, 얼마나 걱정했는데...”
“요로결석이 생겨 죽을 번했어, 물 한잔 갖다 줄 사람도 없으니...”
“그거 엄청 아프다던데 전화라도 좀 해주지.” 김밥 집 아줌마가 울상을 지었다.
이때 건장한 청년 둘이 들어오더니 다짜고짜로 혜란의 머리채를 잡고,
“야 이년아 왜 전화를 안 받아, 죽으려고 환장했어?” 하며 주먹으로 내리칠 기세였다.
“그 손 놔, 이게 무슨 짓이야?”
“형씨, 다치기 전에 꺼져, 밤새도록 떡을 치고 기껏 김밥이나 사주는 주제에...”
‘타다닥’ 단 세 방에 두 놈을 해치운 뒤 혜란의 손을 끌고 집으로 와 계란토스트로 아침을 때우고 나니 “아파트 참 좋네, 아저씨 혼자 살아, 직업이 뭐야, 권투선수야?” 하고 물었다.
“전기기술자야, 산위에 고압선철탑을 건설하려면 체력이 필수지, 그래서 운동을 좀 했어, 그런데 걔들이 왜 널 쫓아다니며 괴롭히는 거야, 뭣 하는 놈들인데?”
“내가 트로트가수지망생이라고 했잖아, 그런데 연습실에 다니려면 돈이 많이 들어, 그래서 가끔 몸을 팔고 있어, 그 자식들은 이 지역의 매춘조직을 장악하고 있는 깡패들이야.”
아득한 옛날 아버지가 농한기에 건설공사장에서 막일을 하다 실족사하자 보상 문제를 도와준 이장이 엄마를 겁탈하고 보상금마저 가로챘다는 편지를 받고 휴가를 나와 이장의 목을 따고 육군형무소로 가게 되자 엄마는 뒷감당을 못해 농약을 마시고 하직했다.
어느 날 계급장도 없는 덩치에게 이끌려 내 의사와는 관계없이 살인죄는 없어지고 의가사제대와 함께 전기회사에 입사하여 비밀훈련소에서 모래주머니 달고 산타기, 맨손격투, 민가에서 음식이나 식량 훔치기, 첨단장비다루기, 소리 없이 사람 죽이는 법 등의 훈련을 받고 일곱 번이나 북한을 다녀온 후 준위로 퇴직하여 안락한 생활을 하고 있는 중이다.
“아저씨, 나 당분간 여기 좀 숨어있으면 안 돼, 밥하고 청소하고 내가 다 할게.”
“마음대로 해, 걔들 손에서 벗어나려면 돈이 얼마나 필요해?”
“빚은 몇 푼 안 되지만 얼굴이 반반하고 나이어린 애를 구하기가 쉽지 않잖아, 그래서 빚을 갚아도 놓아주질 않아,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 이만한 돈줄이 어디 있겠어?”
김상무(소령)로부터 한번만 더 출장을 다녀오라는 사장의 명을 전달받았다.
여생은 국가가 책임을 진다지만 마누라도 자식도 없이 청춘을 다 바친 몸이 나물먹고 물마시고 팔을 베고 누웠으면 그만이지 무슨 호사가 더 필요할까, 즉답을 하지 않았다.
막 잠이 들려는데 반라의 혜란이 “나 아저씨 품에 안겨 자고 싶어.” 했다.
“혜란아 이러면 안 돼, 아저씨는 특수훈련을 받다가 다쳐 성불구자가 됐단다.”
“피~ 거짓말, 이렇게 건강하면서, 김밥아줌마 때문에 그래, 내 젖 한번 만져봐 예쁘지?”
그날이후 혜란은 밤마다 삶은 가지 같은 내 물건을 만지작거리며 잠이 들었고 나 역시 50인생에 처음으로 여자의 알몸을 안아 볼 수 있는 꿈같은 행운을 누리게 되었다.
사장(중령)이 직접 찾아와 ‘이번 임무는 내가 아니면 그 누구도 해낼 수 없고 사진 한 장만 찍어오면 김정일을 꼼짝 못하게 할 수 있다’며 조국과 민족을 위한 나의 결단을 요구했다.
거절할 수 없음을 잘 아는 나는 ‘혜란을 내 호적에 넣어주고 트로트가수로 키워주는 조건’으로 동의했다, 프로에겐 직감이란 게 있다, 이번엔 돌아올 수 없을 것만 같다, 지난 30년 세월이 주마등처럼 지나가고 조각보다 더 아름다운 혜란의 알몸이 덮쳐왔다, 나는 청산가리캡슐을 꺼내며 “혜란아, 남인수의 ‘고향의 그림자’ 한번 불러봐라.”하면서 울음을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