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을 흘러 보내는 따사로운 봄의 길목에서
세월의 빠름에 심정이 울적하여 가벼운 차림과 편한 신발과 모자에
선글라스를 끼고 집 부근의 천변(川邊)을 두 손을 바지에 넣고 어슬렁 거닐었다.
서산에 걸린 일몰은 불그스레한 빛이 감돌고, 천천히 흐르는 물위에 비친 노을과
흘러가는 뭉게구름, 먼산에서 어스레 내려오는 땅거미는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을
또 보는 것 같았지만, 세월은 구름의 등을 타고 서산 너머로 흘러가며
나이 듦의 상념 속에서 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촉촉해지며 자신도 모르게
‘나이 듦’---아름다운 사람아~ 입술로 불러본다.
사람이 '나이 듦'을 스스로 인정하기 되기까지는, 넘게 되는 고비가 있다고 한다.
한 동안은 자신의 눈이 원시(遠視)임을 감추게 된다고...
눈앞이 가물거려도 깨알 같은 글씨로 쓰인 음식점 메뉴 판을
여러 사람이 있을 때는 멀찍이 들고 보는 일 같은 건, 잘 하지 않는 다는 것.
그러나 세월이 흘러, 자신의 나이 듦을 인정한 때가 오면,
주위를 의식 치 않고 안주머니에서 돋보기를 끄집어낸다.
또한 청력이 떨어져 가까이에서 말하는 소리가 잘 들리지 않을 때,
보청기가 필요함을 절감하면서도 남 보기에 좀 부끄러운 시선 때문에
귀에 끼고 다니지 못하고, 잘 안 들려도 아는 척 싱긋이 웃거나 고개를 끄떡인다.
또한, 여성분들은 하이힐 굽 높이가 점점 낮아지고 있음을
처음에는 자신에게 조차도 인정하기 싫다고...
'나이 듦'을 인정하기 싫어하다가, 어느 날 자신의 신발 굽 높이를 보고
어찌 할 수 없어 씁쓸한 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뾰족한 굽 높은 신발을 신고, 높고 험한 곳 가리지 않고 멋 내고 다니다가,
이제와 보니 관절 아프고 다리에 힘이 빠져 높은 굽에서 낮은 굽 신발로,
또 건강신발로 옮아가니 그제야 찾아온 질병을 털어놓는다.
번거로운 모임이 자연 싫어지고 보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어디 가서 말하기보다, 듣는 것이 훨씬 편하고 더 좋아지고
사람과의 대화 보다, 자연을 찾아 관조하는 것이 더 흥미가 있고
누굴 사랑하려는 것보다, 아름다운 추억을 더 그리워하고
무겁고 멋있는 옷보다 가볍고 편한 옷을 더 입게 되고
맛있고 기름진 요리보다, 된장찌개 산나물을 더 찾게 되고
남의 말에 흥분하고 비판하기보다, 그러려니 하고 넘겨 버리려고 더 애쓰고
왁자지껄한 문화공연보다, 바지 주머니에 양손 넣고 개울 변 걷기를 더 즐기고
자신한테 투자하는 돈보다, 가족을 위하는 것이 더 기쁘고 의미 있게 느껴질 때
자신은우리는, '나이 듦'의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젊음은 아름답지만, 젊음에 집착하는 것은 아름답지 못하고 볼 상스럽다.
세월을 막을 육체는 없는데, 반면에 젊은 시절에는 절대로 알 수 없는 세계가
나이 들면서 눈 앞에 펼쳐진다는 면에서는, 인생은 영원한 미지(未知)의 세계다.
나이 들며 생기는 이 새로운 미지의 세계를 '원시(遠視)와 난청과 굽 낮은 신발"이라는
키워드로 들어 올리면, 이제껏 만남의 관계에서 맺어진 것들로부터 멀어지는 이별이다.
그러나, 이별은 나이 듦의 가슴에서는 조금 멀어 지게 된다.
이별은, 손에 닿을 수 없는 그 까닭에, 아름답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내 손안에 쥐고 있어야 안심하는 젊음으로부터
여러 걸음 떨어진 뒤 안 길에서 손에 닿지는 않지만,
내 손끝에서 퉁소가 되어 울리는, 이별이란 그릇에 담긴 사랑!
이렇게 여러 겹의 무늬로 인생이라는 긴 여행의 벗이 되어 주는
그런 사랑은 젊을 때 느끼지 못한, 참으로 신비이지 않은가.
나이 듦의 눈동자에 잔잔히 피어 오른 일몰은, 누가 보낸 편지일까?
나이 듦의 가슴에 곱게 스며드는 붉은 노을은, 누가 보낸 선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