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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영호루

작성자南齋|작성시간12.03.03|조회수24 목록 댓글 0

영호루 시판 2008-04-23 09:57:00  
  이름 : 하회촌지킴이      조회 : 1127      

영호루 중건기념비

안동의 영호루는 경남 밀양의 영남루(嶺南樓)진주의 촉석루(矗石樓)전북 남원의 광한루(廣寒樓)와 함께

한수(漢水)이남의 대표적인 누각으로 불리어져 왔다,언제 누구에 의하여 건립되었는지는 기록이 없어

잘 알수없으나 천여년 동안 그 이름이 전통 웅부안동(雄府安東)과 함께 하고있다,

영가지(永嘉誌)에 의하면 고려 공민왕(恭愍王)10년 홍건적의 난이 일어나서 왕이 이곳 복주(福州)로

문무 백관을 거느리고 파천 하였을때 적적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자주 남문밖에 우뚝서있는 영호루를 찾았고,

때로는 누각밑 강물에 배를 띄우기도 하였고 사장에선 활쏘기도 하였다고 한다,난리가 평정되어 황궁한 왕은

복주를 대도호부(大都護府)로 승격 시키고 영호루를 잊지못하여 친필로 映湖樓 3자가 쓰인 금자현판(金子懸板)

을 보내어 누각에 달게 하였는데 조선중기 명종(明宗)2년 1547년 대 홍수로 누각은 유실되었고

현판은 김해까지 떠내려가 발견되어 6년후인 1552년 안동부사 안한준 이 중창(重創)하였으며,

영조(英祖)51년1775년에 다시 홍수로 유실되어 부사 신맹빈(申孟彬)에 의하여 중건 되었다,홍수로 인하여

2차례 중건된 영호루는 정조15년 (1792년)의 홍수때 또 유실되어 4년뒤에 부사 이집두(李集斗)가 중건하여

100여년동안 안동의 관문으로서 그 위용을 갖추었으나 갑술년(甲戌年)1934년 대 홍수때 다시 유실 되었다,

안동 대구간 도로를 연결하는 안동교 공사에 종사하던 인부들이 루 위에서 휴식하던중 갑작스럽게 불어난 강물에

휩쓸려서 여러사람과함께 떠내려 갔고 다음날 구담(九潭)부근에서 사람들은 구조되었으나 누각은 유실되었고

<금자현판>만은 수개월후 선산군(善山郡)구미리(龜尾里)부근의 강물속에서 다시 찾았다고 한다,

이처럼 파란을 격은 영호루가 사라지고 강가의 빈터만 보는이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하던중

전통과 옛 문화를 숭상하고 향토애(鄕土愛)짙은 안동시 군민이 1969년 12월 <영호루 중건 추진 위원회>를

조직하고 드디어 안동시가지 남쪽 강건너 정하동(亭下洞)언덕위에 1085평의 대지를 확보하고 1970년11월에

역사적인 영호루의 중건을 보게되었다,북향으로 향한 새로지은 영호루에 올라보면 노송사이로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일찍이 우탁,김방경,정도전,이황,정몽주,김종직,이현보,등 당대의 대표적인 문장대가47분이 영호루의

경관을 칭송한 시판이 말해주듯 다시 복원된 누각에 올라 눈아래 펼쳐진 대하(大河)와 경관을 바라보면

그 누가 속세의 시름을 잊지 않으리요,,, 


 

북측현판글씨는 공민왕이,남측 현판글씨는 박정희 전 대통령 친필입니다.

 

비록 콘크리트 집이긴 하지만 32개의 돌기둥 위에 모양은 제대로 갖추었답니다.

 

루 위에서 남동쪽을 바라보니,,

 

북쪽을 향해보니 다리넘어 시가지가 우뚝보입니다.

洛東上流 嶺在名樓(낙동상류 영좌명루)

낙동강 상류 강가에있는 영남좌도의이름난  누대 라는 뜻인데 조선 순조때 문신 김학순 안동부사가 당시에쓴 글씨입니다.

 

역동 우탁선생詩 영호루

嶺南遊蕩閱年多(영남유탕열년다) 영남을 여러해 두루다녀 보았건만,

最愛湖山景氣加(최애호산경기가) 물은맑고 산은고아 경치매우좋다네,

芳草渡頭分客路(방초파두분객로) 향기로운풀 끝머리에 나그네길 갈라지고,

綠楊堤畔有農家(녹양제반유농가) 푸른버들 둑곁에는 농가몇집 보이네,

風恬鏡面橫烟黛(풍염경면횡연대)바람잔 거울위로 안개낀산 비껴있고,

歲久墻頭長土花(세구장두장토화) 오랜세월 담머리에 이끼가 자랐구나,

雨歇四郊歌擊壤(우혈사교가격양) 비온뒤 나무숲 어우러지고 여기저기 들에서는 풍년가 들려오네,

坐看林杪漲寒槎(좌간림초장한사) 수풀끝에 밀린 뗏목 앉아서도 보이네.

 

우탁(禹倬) 1263 ~ 1343

고려 말기의 학자. 자는 천장(天章), 호는 역동(易東), 시호는 문희(文僖), 본관은 단양(丹陽),

관직은 성균제주(成均祭酒).

 

충열공 김방경의시 영호루

東征日本過次福州登映湖樓(동정일본과차복주등 영호루)

 

山水無非舊眼靑(산수무비구안청) 산과물은 옛날보던 맑음 그대로 이고,

樓臺亦是少年情(누대역시소년정) 누대또한 어릴때 그대로일쎄,

可憐故國遺風在(가련고국유풍재) 애틋하여라! 고국엔 옛 풍속 남아있어,

收拾絃歌慰我行(수습현가위아행) 노래소리 모아서 내갈길 위로하네.

 

김방경(金方慶) 1212 ~ 1300 고려 후기의 명장, 자는 본연(本然), 시호는 충렬(忠烈), 본관은 안동(安東),

 관직은 평장사(平章事).

 

삼봉 정도전의 詩 영호루

題映湖樓(제영호루)

飛龍在天弄明珠(비룡재천롱명주)나는 룡이 하늘에서 희롱하던 구슬을,

遙落永嘉湖上樓(요락영가호상루) 멀리 영가고을 영호루에 떨어뜨렸구나,

夜賞不須勤秉燭(야상불수근병촉) 밤경치 구경코져  불밝힐일 따로 없네.

神光萬丈射汀洲(신광만장사정주) 신기한 광채가 물가를 쏘니,,

 

정도전(鄭道傳) ? ~1398

조선 개국공신. 자는 종지(宗之), 호는 삼봉(三峰), 본관은 봉화(奉化). 관은 판의흥삼군부사(判義興三軍府事).

 

퇴계선생詩 영호루

映湖樓(영호루)

客中愁思雨中多(객중수사우중다) 나그네 시름이 비만나 더한데,

況値秋風意轉加(황치추풍의전가) 더구나 가을바람에 더욱 심란하구나,

獨自上樓還盡日(독자상루환진일) 홀로 루에 올랐다 해져야 돌아옴이여,

但能有酒便忘家(단내유주편망가)다만 술잔들어 집 그리움 잊는다,

慇懃喚友將歸燕(은근환우장귀연) 은근히 벗을불러 돌아가는 제비는,

寂寞含情向晩花(적막함정향만화) 쓸쓸히 정을품고 늦은꽃을 향하구나,

一曲淸歌響林木(일곡청가향임목) 한곡조 맑은노래 숲속을 울리는데,

此心焉得以枯(차심언득이고사)  이마음 어쩌다 마른 삭정이 같이되었나.

 

이황(李滉) 1501 ~ 1570조선 중기의 대학자.

자는 경호(景浩), 호는 퇴계(退溪), 시호는 문순(文純), 본관은 진보(眞寶). 관은 대제학(大堤學).


포은선생시 안동영호루

安東映湖樓回自日本作(안동영호루회자일본작)

일본서 돌아와 안동 영호루에서

閱遍東南郡縣多(열편동남군현다)동남으로 여러 고을 두루 다녀 보았지만

映嘉形勝覺尤加(영가형승각우가)영가의 경치가 제일 아름다워라.

邑居最得山川勢(읍거최득산천세)고을이 산천 형세 가장 좋은 곳에 있어

人物紛然將相家(인물분연장상가)인물도 많아라, 장상가가 분분하네.

場圃歲功饒菽粟(장포세공요숙속)논밭에 풍년 들어 곡식들은 넉넉하고

樓臺春夢繞鸎花(루대춘몽요앵화)누대의 봄날엔 꾀꼬리와 꽃이 있네.

直須酩酊終今夕(직수명정종금석)모름지기 오늘 밤이 다 새도록 취하리

萬里初回海上槎(만리초회해상착)만리 길을 처음으로 배를 타고 왔잖은가?



정몽주(鄭夢周) 1337 ~ 1392고려 말기의 충신,

자는 달가(達可), 호는 포은(圃隱), 시호는 문충(文忠). 본관은 영일(迎日), 관은 문하시중(門下侍中).

김종직(金宗直) 시

映湖樓 (영호루)

落日簾旌灝氣多(낙일염정호기다)지는 해 쓸쓸한 기운 발에 어리어

倚樓愁思亂交加(의루수사난교가)누에 오른 이 마음 시름도 많아라.

透迤湖水秋通漢(투타호수추통한)출렁이는 물결은 은한(銀漢)에 닿고

轂轆柴車夜向家(곡록시거야향가)덜컹대는 수레는 집을 향하네.

光射汀洲星斗額(광사정주성두액)모래톱을 비추는 북두의 별빛,

香生林簿蕙蘭花(향생임부혜란화)들에서 스며 오는 혜란화 향기.

月明更想前朝事(월명갱상전조사)달 밝은 밤 고려의 흥망을 다시 생각해 보니

惟有鶖鶬呌斷槎(유유추창규단사)재두루미 우는 소리 간장을 끊네.


김종직(金宗直) 1431 ~1492
조선 성종 때의 학자. 자는 효관(孝盥).계온(季昷), 호는 점필재(佔畢齋), 시호는 문간(文簡), 본관은 선산(善山). 관은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학문과 덕행으로 이름 높음.

이현보(李賢輔) 시

次映湖樓 영호루에 차운하여

落魄登樓歲月多(락백등루세월다)낙백하여 누에 오르던 세월도 많았는데

重來非分印章加(중래비분인장가)분에 넘는 벼슬 받고 다시 또 왔네

黌堂負笈留遺蹟(횡당부급유유적)글 배우던 향교엔 옛 자취가 남아 있고

驛里居停有主家(역리거정유주가)집 떠나 머물던 주인집도 그대로네

白首東西身已老(백수동서신이로)동서로 분주하다 몸은 이미 늙었지만

靑山今古眼添花(청산금고안첨화)청산은 예 같아 눈에는 꽃이 피네.

長林遠樹渾依舊(장림원수혼의구)긴 숲 멀리 흐릿하게 뵈는 옛 나무들

三十年來半作槎(삼심년래반작사)삼십 년 동안 반은 삭정이가 됐네.



이현보(李賢輔) 1467 ~1555조선 중종 때의 문신.

자는 비중(棐中), 호는 농암(聾岩), 시호는 효절(孝節), 본관은 영천(永川). 관은 지중추부사(知中樞府使).

 

중암 채홍철 의 詩 영호루

 

海山當日往來多(해산당일왕래다) 바다며 산이며 많이도 오갓지만,

物外精神到此加(물외정신도차가) 벗어나고자 하는마음 여기오니 더하네,

初謂夢遊雲雨峽(초위몽유운우협) 처음에는 비구름 골짜기에서 노늬는가했더니,

漸疑身入畵圖家(점의신입화도가) 몸이첨차 그림속으로 빠저드나 의심되네,

南江秋夜千峯月(남강추야천봉월) 남쪽강 가을밤에 천봉우리에 달이돋고,

北里春風萬樹花(북리춘풍만수화) 북쪽마을 봄바람에 만가지꽃 피어나네.

雖是無情閒道者(수시무정한도자) 제 아무리 무정하고 한가하다는 도인이라도,

登臨不得似古槎(등림부득사고사) 여기오르면 마음이 마른 뗏목 같지는 않으리.

 

채홍철(蔡洪哲) 1262 ~1340

고려 말기의 문신. 자는 무민(無悶), 호는 중암(中菴), 본관은 평강(平康), 관은 정승(政丞).

 

양촌 권근의 영호루詩

 

客裏登臨感歎多(객이등림감탄다) 나그네 처지로 누대에 오르니 감탄이 절로나오고,

倦遊瀛得鬢絲加(권유영득빈사가) 게으르게 놀고있으니 귀밑머리만 더희어졌네,

海天流落空懷國(해천유락공회국) 멀리밀려나서도 공연한 나라생각,

鄕郡歸來未有家(향군귀래미유가) 고향이라 돌아와보니 거처할 집은없네,

百尺危欄浮碧落(백척위란부벽락) 백척 위태로운난간 푸른 공중에 떨어지고,

九重宸翰耀金花(구중신한요금화) 구중궁궐 임금의글씨 금빛꽃같이 빛난다,

長川廻與銀河接(장천회여은하접) 긴~ 내가 돌아가면서 하늘과 맞 닿았으니,

直欲超超一泛槎(직욕초초일범사)  지금당장 뗏목 띄워 멀리가고 싶다네.

 

권근(權近) 1352 ~1409

조선 초기의 명신. 자는 가원(可遠), 호는 양촌(陽村), 시호는 문충(文忠), 본관은 안동(安東). 관은 대제학(大堤學).


 

권사복의 영호루詩

到處樓臺摘勝多 (도처누대적승다)도처에 누대있고 절승도 많지만,

此樓贏得賞心加 (차루영득상심가)이루에 오르니 더욱 맘이 끌리네,

蒹葭岸外西南路 (겸가안외서남로)갈대핀 언덕 너머 서남으로 길 뚫렸고,

桑枯村中數四家(상고촌중수사가)뽕나무 우거진 마을에는 농가 서넛보이네,

三字御書金照水(삼자어서금조수)세글자 어필이  금빛으로 물에비취고,

一區仙境錦添花(일구선경금첨화)한갈피 좋은경치 꽃처럼 빛이나네.

早年攀折江邊柳(조년반절강변류)어릴때 꺽고놀던 강변의 버들가지,

老倒歸來尙來槎, (노도귀래상래사)늙어서 와봐도 아직도 그대롤세

 

권사복(權思復)고려 공민왕 때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관은 봉익대부(奉翊大夫), 판전교시사(判典校寺事).

 

도첨의사 사공 김흔(김방경의아들)의 영호루 詩

 

十載前遊入夢淸(십재전유입몽청) 십년전 놀던일이 꿈결같은데,

重來物色慰人情(중래물색위인정) 모든풍경 다시보니 기뿌고 서럽구나,

壁間奉繼嚴君筆(벽간봉계엄군필) 벽위에 높이걸린 아버님 글월,

堪咤愚兒萬戶行(감타우아만호행) 어리석은 아들만호 걸음이 부끄럽네.

 

김흔(金忻) 1251 ~ 1309

고려 후기의 장군. 방경의 자. 관은 도첨의사사(都僉議司事).

 

이인복(조선 경종때 문신)의 詩 영호루


玆州判是宿緣多(현주판시숙연다) 이 고을은 옛부터 인연이 많은곳,

三到偏疑物色加(삼도편의물색가) 세번째 찾아오니 풍경이 더좋도다,

額上龍咬恭愍筆(액상용교공민필) 누대엔 공민왕 친필이 걸려있고,

瀤西雲木給弧家(회서운목급호가) 강 서쪽 구름낀 나무넘어엔 마을이 보이네,

南城銅柱留荒月(남성동주유황월) 남쪽성 구리기둥위 쓸쓸히 달빛 비치고,

北里笙歌繞雜花(북리생가요잡화) 북쪽마을 피리소리는 꽃을애워 쌓도다,

檻外長湖何恨意(함외장호하한의) 난간밖 긴호수 무슨사연 담고있나,

尋源直欲泛輕槎(심원직욕범경사) 물줄기 따라 곧 가벼운 배에 오르네.

 

이인복(李仁復) : ? ~ ?

조선 경종 때의 문신, 관은 안동부사.


 

홍애 홍간 의 영호루

 

草長江南三月天(초장강남삼월천)풀빛 짙은 강남땅 삼월에

永嘉山水好風烟(영가산수호풍연)영가 고을 산천마다 안개꽃 피었네.

文章太守謝康樂(문장태수사강락)원님 문장은 사영운 못지 않고

珠翠佳人玉井蓮(주취가인옥정연)비취색 미인들 우물속 연꽃이어라.



홍간(洪侃) ? - 1304

고려 말기의 문신. 시인, 자는 평포(平浦), 운부(雲夫), 호는 홍애(洪厓), 본관은 풍산(豊山), 관은 첨의사인(僉議舍人).

 

신천 의 영호루

次韻(차운)

此樓佳致說無多(차루가치설무다)이 누의 좋은 경치 말해서 무엇하랴

摘勝探奇莫我加(적승탐기막아가)나보다 더 명승(名勝)을 탐하는 이 있는가?

百里桑陰藏野店(백리상음장야점)뽕나무 숲에는 술집도 있고

四山松翠護官家(서산송취호관가)푸르른 소나무 관가를 둘렀네.

江頭雨暗連天草(강두우암연천초)강가에 비 개니 하늘에 닿은 풀빛

巷口燃濃出屋花(항구연농출옥화)연기 짙은 마을 어귀 담장 위로 솟은 꽃.

只解登臨如黙黙(지해등임여묵묵)만약에 누에 올라 한 수 읊지 못한다면

詩人沒彩也如槎(시인몰채야여사)시인으로 광채 없음 삭정이와 다르랴?



신천(辛蕆) ? ~ 1339
고려 충숙왕 때의 문신. 호는 덕재(德齋), 본관은 영산(靈山), 관직은 판일직사사(判密直司事)

 

정자후의 映湖樓


起樓詩眼費功多(기루시안비공다)누를 세운 시적(詩的) 안목 들인 공도 많구나.

月斧雲斤亦未加(월부운근역미가)달도끼 구름날인들 예서 무얼 더하랴.

自訝登臨橫翠閣(자아등임횡취각)천상(天上)의 횡취각에 온 것 같으니

誰敎飛上太淸家(수교비상태청가)뉘가 나로 하여금 태청가에 오르게 했나?

春江綠漲葡萄酒(춘홍록창포도주)봄 강물 푸르름이 포도주처럼 불어나고

夕照紅酣躑躅花(다조홍감척촉화)저녁 별 붉은 기운 철쭉꽃에 무르익네.

待過已知軒蓋近(대과이지헌개근)돌아가길 기다리는 헌개 이미 왔는가?

樹頭時有鵲槎槎(수두시유작착사)나무 위의 까치가 때때로 우짖으니.



정자후(鄭子厚)
고려 충숙왕 때의 복주 목사(福州牧使).

 

조간의 영호루


映湖樓(영호루)

此樓風景惱人多(차루풍경뇌인다)영호루 좋은 풍경 사람을 뇌쇄(惱殺)하니

八詠雙溪不敢加(팔영쌍계불감가)쌍계팔영(雙溪八詠)인들 예보다 더 나으랴?

旗蓋影交樵牧路(기개영교초목로)오가는 사람들 길 가득 분분하고

管絃聲落吏民家(관현성락리민가)관아며 집집마다 관현(管絃) 소리 드높아라.

跨空簷豁膚生粟(과공첨홛부생속)덩그렇게 높은 처마 몸이 오싹 떨리는데

照水軒危眼眩花(조수헌위안현화)물에 비친 난간 보니 눈 앞이 아찔하네.

玉斧修成廣寒殿(옥부수성광한전)옥도끼로 다듬어서 광한전을 지은 듯

飄然不訝上仙槎(표연불아상선사)표연히 신선의 뗏목에 오름 같네.


조간(趙簡)
고려 충숙왕 때의 문신, 시호는 문량(文良), 본관은 김제(金堤). 관은 찬성사(贊成事).

 

 정포의시 映湖樓

鞍馬怱怱閱數州(안마총총열수주)말을 타고 총총히 몇 고을 지나

夕陽携水更登樓(석양휴수갱등루)석양에 벗과 더불어 다시 누에 올라라.

謫來未厭湖山好(적래미암호산호)귀양은 왔을지언정 산수(山水)를 좋아 하노니

事去空驚歲月遒(사거공경세월주)일은 지나가고 세월의 빠름에 새삼 놀라라.

半壁殘燈孤館夜(반벽잔등고관야)희미한 등잔불만 외로운 여관의 밤

傍簷疎樹故園秋(방첨소수고원추)처마 곁 성근 나무 고향이 생각나네.

欲知別後相思意(욕지별후상사의)이별한 후 그리는 맘 알고 싶거든

天際長江袞袞流(천제장강곤곤류)님이여! 저 하늘가 은하수를 보소서.


정포(鄭誧) 1309 ~1345
고려 충혜왕 때의 문신, 자는 중부(仲浮), 호는 설곡(雪谷), 본관은 청주(淸州). 관직은 좌사의대부(左司議大夫).

 

이집의시 영호루

映湖樓

花山客半月(화산객반월)보름 동안 화산에서 머물던 나그네

今日向他州(금일향타주)오늘 다른 고을로 떠나려니

 縱有重來約(종유중래약)비록 다시 찾아온다 약속했건만

那堪惜別愁(나감석별수)이별의 근심 가눌 길 없어라.

船開芳草渡(선개방초도)고운 풀 제치고 배타고 건너는데

酒盡夕陽樓(주진석양루)해 저문 누대에는 술통이 비었구나.

行役何時了(행역하시료)언제쯤 마치려나, 나그네길을

風塵滿馬頭(풍진만마두)바람과 먼지가 말 앞에 일어나도다.


이집(李集) 1314 -1387고려 공민왕 때의 학자.

초명은 원령(元齡), 자는 호연(浩然), 호는 둔촌(遁村), 관은 판전교시사(判典校寺事), 광주 귀암서원(龜巖書院)에 제향.

 

전록생(田祿生) 시

映湖樓(영호루)



北望景華疊峯多(북망경화첩봉다)북으로 서울 보니 첩첩 산봉들

樓高客恨轉承加(루고객한전승가)누 높아 객의 한은 더욱 더하네.

仲宣作賦非吾土(중선작부비오토)고향을 생각하며 중선은 부를 썼고

江令思歸未到家(강령사귀미도가)못 가는 집 그리워 강령은 슬퍼했네.

楊柳自搖愁裏縷(양류자요수이루)시름겨이 실가지를 흔드는 버들아

辛夷初發亂餘花(신이초발난여화)난리 뒤 처음으로 꽃 핀 개나리야

若爲江水變春酒(고위강수변춘주)만약에 이 강물이 모두 다 술이라면

一洗胸中滓與槎(일세흉중재여사)가슴 속 쌓인 시름 말끔히 씻으련만.


 


전록생(田祿生) 1318 ~1375
고려 공민왕 때의 문신. 호는 야은(野隱), 자는 맹경(孟耕). 본관은 담양(潭陽), 관은 제주사록(濟州司祿).

 

 


이원(李原) 시

映湖樓(영호루)

今年又作嶺南遊(금년우작영남유)금년에도 또 영남으로 유람길 떠나

行遍南州到福州(행편남주도복주)남쪽 고을 두루 거쳐 복주에 왔네.

地僻堪誇人尙儉(지벽감과인상검)땅이 궁벽하니 사람들은 검소하고

亭閒不覺客凝眸(정한불각객의모)정자가 한가하니 구경하기 좋아라.

山川豈爲興亡改(산천기위흥망개)산천이 어찌 흥망 따라 바뀌랴

風月應隨左右收(풍월응수좌우수)풍월이야 어디서나 마음대로 거두지만.

半日登臨胸次盪(반일등임흉차탕)한나절 누에 있으니 가슴마저 시원하여

欲歸未去重淹留(욕귀미거중엄유)돌아가야겠는데, 발길이 안 떨어지네.



이원(李原) 1368 ~1429이조 세종 때의 문신.

자는 차산(次山), 호는 용헌(容軒), 시호는 양헌(襄憲), 본관은 고성(固城). 관은 좌의정(左議政).

 

류방선(柳方善) 시

映湖樓

吾生漂泊遠遊多(오생표백원유다)

今上高樓興轉加(금상고루흥전가)

千里一身長去國(천리일신장거국)

七年萬死又離家(칠년만사우난가)

倚欄最恨醒臨水(의난최한성임수)

落帽誰期醉採花(락모수기취채화)

坐瞰蒼波殊有味(좌감창파수유미)

何須怪怪學浮槎(하수괴괴학부사)

영호루

내 평생 표표히 유람 많이 하였지만
오늘 누에 오르니 흥 더욱 나는구나.
천리 밖 외로운 몸 기나긴 귀양살이
칠 년간 죽을 고생 또 집을 떠나네
난간에 의지하여 술 깰까 한하노니
뉘 더불어 모자 벗고 취한 채 꽃 딸꼬?
앉은 채 강물 보니 더욱 운치 있으니
무엇하러 이상하게 배 띄우고 구경하리.

류방선(柳方善) 1388 ~ 1443
조선 세종 때의 학자. 자는 자계(子繼), 호는 태재(泰齋), 본관은 서산(瑞山). 시와 문장이 매우 뛰어남.

조효문(曺孝門) 시


映湖樓

嶺南佳麗已無多(영남가려이무다)

形勝花山百倍加(형승화산백배가)

芳草晴川分客路(방초청천분객로)

綠楊脩竹掩人家(록양수죽엄인가)

湖心日暖魚吹浪(호심일난어취낭)

墻角風微燕蹴花(장각풍미연축화)

南北奔馳何日了(남북분치하일요)

瀛洲直欲問張槎(영주직욕문장사)

영호루

영남의 좋은 경치 이미 많지 않은데
지형이며 경치야 화산이 제일이지.
꽃다운 풀 맑은 내에 나그네길 나뉘고
푸른 버들 긴 대는 인가를 가렸네.
호숫물 따뜻하니 물고기 뛰고
바람 잔 담모서리엔 제비가 나네.
남북으로 바쁜 걸음 언제 그치랴
영주에서 장건의 뗏목을 묻고 싶구나.

조효문(曺孝門) ? ~1462
조선 세조 때의 문신. 자는 행원(行源, 시호는 (成度), 본관은 창녕(昌寧), 관은 예조참판.

 

최수(崔脩) 시

映湖樓板上韻

春晩江樓景氣多(춘만강루경기다)

詩人情興向來加(시인정흥향래가)

一城桃李潘安縣(일성도이번안현)

兩岸園池習氏家(양안원지습씨가)

牧隱新文珠泣月(목은신문주읍월)

陽村麗句筆生花(양촌여구필생화)

南巡往事何須問(남순왕사하수문)

老樹潮侵臥作槎(노수조침와작사)



영호루 현판 위의 운을 빌어
늦은 봄 강루엔 경치도 좋아
시인의 흥취가 더욱 더하네.
도리화 핀 고을이 반안현 같고
양 언덕 동산과 못 습씨집 같네.
목은의 문장은 구슬이 달에 우는 듯
양촌의 고운 글귀 붓에서 꽃이 피네.
남순하던 옛 일을 물어서 무엇하리
늙은 나무 물에 잠겨 뗏목이 되었구나.

최수(崔脩) ? ~ ?
조선시대의 문신

 

이석형(李石亨) 시

映湖樓

水光山色上樓多(수광산색상루다)

雨過斜陽景更加(우과사양경갱가)

一路高低禪客院(일로고저선객원)

自烟朝暮野人家(자연조모야인가)

幸生昭代尋芳草(행생소대심방초)

爲向前朝問落花(우향전조문락화)

還使此身生羽翰(환사차신생우한)

直看雲漢掛雲槎(직간운한괘운사)

영호루

물 빛 산 색은 누에 오르니 더 짙고
비 지난 저녁 볕에 경치 더욱 좋구나.
한 쪽 길엔 높고 낮게 선객원있고
흰 연기 아침 저녁 야인가에 오르네.
다행히 소대에 태어나 방초를 찾고
전조(고려)를 향하여 낙화를 물어보네.
돌이켜 이 몸이 날개가 돋힌다면
곧바로 은하수에 뗏목을 띄우리라.

이석형(李石亨) 1415 ~1477
조선 세조 때의 명신. 자는 백옥(伯玉), 호는 화헌(樗軒), 시호는 문강(文康), 본관은 연안(延安). 관은 도체찰사(都體察使).

조순(趙舜) 시

映湖樓

客裏淸遊到此多(객이청유도차다)

上樓情興晩尤加(상루정흥만우가)

晴川芳草東西路(청천방초동서로)

綠竹垂楊遠近家(록죽수양원근가)

三字御書留寶額(삼자어서유보액)

一林風雨落餘花(일림풍우락여화)

傍人莫作尋常看(방인막작심상간)

我是南來亦泛槎(아시남래역범사)

영호루

나그네로 예 와서 놀던 때가 많았는데
늙어서 다시 오니 흥 더욱 나는구나.
맑은 내 꽃다운 풀 속 동서로 길이 있고
푸른 대 수양버들 원근에 집이 있네.
임금이 내린 글씨 현액(懸額) 속에 머무는데
한 줄기 비바람에 남은 꽃마저 지네.
벗이여! 이 일을 예사로이 보지 마오
이 몸 역시 남쪽에서 배를 타고 왔노라.

조순(趙舜) ? ~ ?
조선 시대의 문신. 본관은 함안(咸安), 관은 참판(參判).

양희지(楊熙止) 시


映湖樓

昨夜雨來江水多(작야우래강수다)

映湖春色十分加(영호춘색십분가)

高低細路二三寺(고저세로이삼사)

掩映長林千百家(엄영장림천백가)

金字籠紗雲隱月(금자농사운은월)

玉山欹帽眼生花(옥산기모안생화)

樓頭華到中流半(루두화도중류반)

何用窮河泛古槎(하용궁하범고사)

영호루

어젯밤 내린 비에 강물이 불어
영호루의 봄빛이 더욱 짙었네.
높고 낮은 오솔길 두서너 가람
누를 가린 긴 숲 너머 수많은 인가.
금글씨 비단에 싸이고 달은 구름에 숨는데
취한 채 바라보니 눈에는 꽃이 피네.
누대머리 좋은 경치 물 가운데 어리는데
어찌하여 강물 위에 배를 뛰우리.


양희지(楊熙止) 1439 ~1504조선 성종 때의 문장가. 자는 가행(可行),

 정부(禎父), 호는 대봉(大峰), 본관은 중화(中和). 관은 세자우부빈객(世子右副賓客).

 

김안국(金安國) 시

映湖樓

湖山歲晩客懷多(호산세만객회다)

牽晩風流興轉加(견만풍류흥전가)

落日鳴鐘何處寺(락일명종하처사)

淡烟疎雨幾人家(담연소우기인가)

歌催郢雪飄餘曲(가최영설표여곡)

笛弄江梅落後花(적농강해락후하)

醉倚欄干頻送日(취의난간빈송일)

小船漁火繫枯槎(소선어화계고사)

영호루

호산(湖山)에 해(歲) 저무니 나그네의 회포 많은데
늦게 즐긴 풍류가 흥취 더욱 더하여라.
저녁에 우는 종 어느 절인고
흰 연기 성긴 빗 속 인가가 보이네.
노래는 영설의 표여곡을 재촉하고
피리는 강가 매화에 앉은 눈(雪)을 희롱한다.
취한 채 난간에서 먼 곳을 보니
작은 배 고기잡이불 뗏목에 반짝이네.

김안국(金安國) 1478 ~1543
조선 중종 때의 명신. 자는 국경(國卿), 호는 모재(慕齋), 시호는 문경(文敬), 본관은 의성(義城). 관은 대제학(大堤學).

권응인(權應仁) 시

映湖樓

南州奇勝此偏多(남주기승차편다)

綠樹陰濃景特加(롯수음농경특가)

淸磬出林鳴野寺(청성출림명야사)

淡烟橫浦起漁家(담연횡포기어가)

半邊殘照披雲葉(반변잔조피운엽)

一陣輕風疊浪花(일진경풍첩랑화)

江上晩凉堪濯熱(강산만량감탁열)

弄波鷗渚擬浮槎(농파구저의부사)

영호루

남쪽 고을 명승이 여기에 다 몰렸나
푸른 나무 그늘 짙어 보기 더욱 좋은 걸.
맑은 종소리 숲속 절에서 울려 오고
맑은 연기 비낀 포구 속 하나 둘 어가(漁家).
반변천(半邊川) 석양은 구름 조각 헤치고
한 무리 바람결에 꽃물결이 겹쳐 이네.
강물 위 서늘함이 무더위를 씻어내고
물결을 희롱하는 갈매기 물에 뜬 뗏목 같구나.

권응인(權應仁) 1517 ~ 1588
조선 중종 때의 문인. 호는 송계(松溪). 본관은 안동(安東), 관은 한리학관(漢吏學官).

 



권응정(權應挺) 시

映湖樓

嶺外江山著眼多(영외강산저안다)

映湖樓勝倍增加(영호루승배증가)

龍蛇筆力超三昧(용사필력초삼미매)

烟火居民足萬家(연화거민족만가)

魚戲鏡中飜雪浪(어희경중번설낭)

鷗眼沙畔隔蘆花(구안사반격차화)

憑欄北望思千里(빙난북망사천리)

身世還同泛水槎(신세환동범수사)

영호루

영남의 산천이 눈 가는 곳 많아도
영호루 아름다움 훨씬 더 낫네.
공민왕 붓글씨는 용틀임하고
밥 짓고 사는 백성 일만 집은 되겠구나.
고기 노는 물 속엔 눈 같은 물결 번득이고
백구 잠든 언덕이 갈꽃에 가려 있다.
난간에 기대어 북쪽 천 리 그리노니
이 내 신세 물에 뜬 뗏목과 같구나.

권응정(權應挺) 1498 ~ 1564
조선 중종 때의 문신. 자는 사우(士遇), 호는 묵암(黙菴), 본관은 안동(安東). 관은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정사룡(鄭士龍) 시

映湖樓船

平生不上映湖船(평생불상영호선)

遙和新篇意未圓(요화신편의미원)

創巧草亭安彩鷁(창교초정안채익)

展開秋練落晴天(전개추련락청천)

笙歌引興淸宵永(생가인흥청초영)

風月撩懷繡句傳(풍월료회수구전)

許住三年官便滿(허주삼년관편만)

遊人長憶去侯仙(유인장억거후선)

영호루선에서

내 평생 영호선(船) 못 타 보아서
글 한 편 지으려니 잘 되질 않네.
잘 꾸민 초정(草亭)엔 채색한 익수(鷁首) 편안하고
펼쳐진 가을 하늘 물 속에 떨어졌네.
생황(笙簧)노래 흥 일어 밤 깊도록 노는데
풍월에 회포 실어 고운 시구 읊조리네.
삼 년을 지내면 고을살이도 끝나니
노니는 사람으로 제후도 버린 신선을 기억하리.

정사룡(鄭士龍) 1491 ~ 1570
조선 명종 때의 문신. 자는 운경(雲卿), 호는 호음(湖陰), 본관은 동래(東萊). 관은 판중추부사(判中樞府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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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봉령(具鳳齡) 시


過映湖樓次韻

府城名勝洛湖多(부성명승낙호다)

鳳輦經過氣像加(봉련경과기상가)

金牓影搖銀漢界(금방영요은한계)

朱甍光拂太淸家(주맹광불태청가)

樓中客去千秋鶴(루중객거천추학)

笛裏梅殘五月籠(적이해잔오월롱)

冠盖年年江上會(관계년년강상회)

路人爭指泛仙槎(로인쟁지범신사)

영호루를 지나며

성 안의 명승은 낙동호(洛東湖)에 많으니
나랏님 지난 곳 좋은 기상 더하다.
금자현판 은핫물에 그림자 지고
붉은 기와 우련히 누각을 비춘다.
다락을 떠난 객은 천추학(千秋鶴)이 되어 있고
피릿가락 매화 지고 오월꽃 피네.
선비들 해마다 강 위에 모여 노니
이곳 사람 다투어 뱃놀이 보네.

구봉령(具鳳齡) 1520 ~ 1585
조선 명종•선조 때의 문신. 자는 경서(景瑞), 호는 백담(柏潭), 본관은 능성(綾城). 관은 대사헌(大司憲).

 

약봉 김극일(金克一) 시

映湖樓

麗王東幸此登樓(려왕동행차등루)

金字紗籠泳碧流(금자사롱영벽유)

筆力若能挽世道(필력약능만세도)

三韓當作一金甌(삼한당작일금구)

영호루

고려 왕 동행 길에 이 누에 올랐것다.
금빛 글씨 비단에 싸여 푸른 물에 비침이여
붓힘으로 세상 도(道)를 돌릴 수 있다면
이 나라가 당장에 천국되고 남았으리.

김극일(金克一) 1539 ~ 1602
조선 명종 때의 학자. 자는 백순(伯純), 호는 약봉(藥峯). 본관은 의성(義城), 관은 내자시정(內資寺政).

 

이정신(李正臣) 시


映湖樓

壁上紗花閱歲多(벽상사화열세다)

珊瑚玉樹宛交加(산호옥수완교가)

東南形勝稱玆邑(동남형승칭현읍)

前後風光屬我家(전후풍광속아가)

檻外分留千古月(함외분유천고월)

林間開落幾番花(임간개락기번화)

驅馳原濕王程急(구치원습왕정급)

銀漢忙回博望槎(은한망회박망사)


영호루


벽 위의 이끼는 오랜 세월 겪었고
산호 같은 수목들 멋진 조화 이루었네.
동남땅 빼어난 고을로 이름난 곳
주변 고운 풍경 내 집까지 이어졌구나.
난간 밖엔 천고의 달이 비치고
숲 속의 꽃은 몇 번이나 피고졌을까?
급한 왕명따라 이 곳에 달려오는 길
은하수 밖에서 급히 배 타고 왔노라.

이정신(李正臣) 1660 -1727
조선 숙종 때의 문신. 자는 아언(我彦), 호는 송벽당(松蘗堂), 본관은 연안(延安), 관은 경기도 관찰사.


 

여필용(呂必容) 시

映湖樓

 

 

靑蛇往事問無憑(청사왕사문무빙)

長嘯危欄試一登(장소위난시일등)

近水元龍猶厄運(근수원룡요액운)

誇秋河伯更成稜(과추하백갱성능)

淺深丹碧看新舊(천심단벽간신구)

倏忽滄桑感廢興(숙홀창상감폐흥)

雕飾芳菲吾豈敢(조식방비오기감)

前人遺跡也堪徵(전인유적야감징)


영호루

청사에서 보낸 세월 하소연할 데 없어
긴 휘파람 불며 높은 누대에 오른다.
가까운 물에는 진등의 기세 꺾이지만
짙은 가을에 하백의 위엄은 더한다네.
단청빛 엷고 얕음 속에 고금이 구분되니
갑자기 세상 변천의 감회만 일어나도다.
누대에 향기론 꽃 단장하길 원치 않으니
선인들 유적이 뚜렷이 증거됨일세.

여필용(呂必容) : ? ~ ?
조선 숙종 때의 문신, 관은 안동부사.

류여회(柳汝懷) 시

映湖樓

六載玆樓再度憑(육재자루재도빙)

繡衣前客竹符登(수의전객죽부등)

長橋偃月波生纈(장교언월파생힐)

曲楹棲雲綵作稜(곡영누운채작능)

華額今傳停鳳輦(화액금전정봉연)

遺祠爭說贊龍興(유사쟁설찬용흥)

試看野外盈畦雪(시간야외영휴설)

來歲豊穰喜瑞徵(내세풍양희서징)


영호루

육 년만에 두 번째 다시 찾은 누대
어사 앞의 나그넨 부절차고 오르네.
긴 다리 위 기운 달빛 물결 따라 일렁이며
굽은 난간에 깃든 구름 비단결로 비치네.
빛나는 현판은 공민왕 친필이라 전하고
사당에선 다투어 임금의 성덕을 칭송하네.
들녘에 저렇게 많은 눈 내렸으니,
내년에 풍년들 좋은 징조 기뻐라.

류여회(柳汝懷) ? ~ ?
조선시대의 문신.

 

강침(姜忱) 시

映湖樓

樓下風煙樓上多(루하풍연루상다)

長林極目翠交加(장림극목취교가)

逈臨二水中分處(형임이수중분처)

高出三韓一統家(고출삼한일통가)

霽色軒前峰有月(제색헌전봉유월)

穩流檻外浪無花(은유함외랑무화)

湖心點點支機石(호심점점지기석)

今古誰乘銀漢槎(금고수승은한사)


영호루

누대 아래 안개 피어 누 위까지 자옥하고
저 멀리 긴 숲엔 푸르름이 뒤섞였구나.
멀리 두 물줄기 나누어진 곳
삼한을 하나로 합한 집 우뚝 솟았네.
누대 앞에 안개 걷히자 산봉우리 달 오르고
난간 밖의 물결은 잔잔하여라.
호수에는 군데군데 낚시하던 돌이 있는데
고금에 그 누구가 은하수 배 띄웠을까?

강침(姜忱) ? ~ ?
조선시대의 문신.

 

홍우서(洪禹瑞) 시


映湖樓

徙倚高樓逸興多(사의고루일흥다)

東南形勝此無加(동남형승차무가)

峰巒隱隱開三峽(봉만은은개삼협)

都護槃槃簇萬家(도호반반족만가)

席上芳樽傾竹葉(석상방준경죽엽)

風前長笛落梅花(풍전장적락매화)

 蘭舟更沂澄江月(난주갱은징강월)

天外疑乘不繫槎(천외의승불계사)


영호루

높은 누대에 기대니 흥이 절로 일어나
동남의 빼어난 경치도 이보단 못하리.
희미한 산봉우리 삼협이 펼쳐있고
대도호부 고을에는 수많은 집 빽빽하여라.
맛난 술 대나무잎 술잔으로 기울이는데
바람결에 피리소리 들려오고 매화는 지는구나.
난초 배를 거슬러 올라가니 강물 속 달빛 곱고
하늘 멀리서 두둥실 배 탄 것 같네.


홍우서(洪禹瑞) 1662 - 1716조선 숙종 때의 문신.

자는 중웅(仲熊), 호는 서암(西巖), 본관은 남양(南陽), 관은 대사간(大司諫), 시문에 능하고 당대의 명필.

 


이철보(李喆輔) 시

映湖樓

桐鄕物色倚欄多(동향물색기난다)

手拂紗籠感意加(수불사농감의가)

三世重遊應有數(삼세중유응유수)

一樓頻坐便如家(일루빈좌편여가)

塵迷古壁仍垂網(진미고벽잉수망)

苔生荒階自作花(태생황계자작화)

 萬事沈吟雙涕淚(만사심금쌍체누)

堤邊楊柳半成槎(제변양류반성사)


영호루

선비 고장의 물색 누대에 펼쳐지고
청사초롱 들고보니 감회가 깊도다.
삼 대가 이어 찾아온 건 운세에 달린 법
여러 번 누대에 오르니 내 집같이 편안하여라.
먼지 낀 옛 벽엔 거미줄 얽혔고
거친 계단의 이끼는 저절로 꽃을 이루었네.
만사를 회상하니 두 줄기 눈물만 쏟아지는데
강가 언덕의 수양버들 반쯤 뗏목을 이루었네.

이철보(李喆輔) 1691 ~ 1775
조선 경종 때의 문신. 자는 보숙(保叔), 호는 지암(止菴), 지산(止山), 본관은 연안(延安). 관은 예조판서.

한광조(韓光肇) 시

映湖樓

棟宇千年古意多(동우천년고의다)

孤雲遠樹暮看加(고운원수모간가)

沙圍欄外雙江水(사위난외쌍강수)

春滿城東萬樹家(춘만성동만수가)

疵政每慙彭澤菊(자정매참방택국)

歸心頻夢穎濱花(귀심빈몽영빈화)

靈源知有黃池近(영원지유황지근)

料理輕舟繫柳槎(요리경주계류사)


영호루

천 년 세월 지나온 누대 사연이 많고
먼 나뭇가지 구름은 석양에 짙도다.
난간 밖 모랫벌엔 두 줄기 강물 흐르고
봄 가득한 동쪽엔 마을이 빽빽히 들어섰네.
흠 남긴 정치 때문에 늘 국화꺾는 도연명을 사모하여
돌아가고픈 심정으로 늘 영숫가 꽃을 꿈꾼다네.
낙동강 발원지가 황지땅임을 알고서
가벼운 배 타려고 버들 뗏목을 택했네.


한광조(韓光肇) 1715 - 1768조선 영조 때의 문신(文臣).

자는 자시(子始), 호는 남정(南庭), 남애(南厓), 문과에 장원 급제, 관은 대사헌(大司憲).

홍의호(洪義浩) 시

映湖樓
 
天遠山低水獨多(천원산저수독다)

長堤叢綠樹交加(장제총록수교가)

人間別界凌風榭(인간별계능풍사)

嶺左雄城撲地家(영좌웅성박지가)

玉麈談詩樽有酒(옥진담시준유주)

錦筵張樂妓如花(금연장락기여화)

晩來扶上紅亭去(만래부상홍정거)

百尺橋疑博望槎(백척교의박망사)
영호루

먼 하늘 산밑엔 물이 유독 넘실대고
긴 제방 빽빽한 수목 푸른빛 짙도다.
바람 부는 누대는 별천지 세상이며
영남 좌도 웅장한 고을 집성촌일세.
맨 땅에서 시를 주고 받으며 술 마시는데
술좌석에서 꽃같은 기녀 풍악을 울리네.
늦게 서로 의지하면서 붉은 누대에 오르니
백 척 난간 하늘로 오르는 배 같구나.

홍의호(洪義浩) 1758 - 1826
조선 순조 때의 문신. 자는 양중(養中), 호는 담영(澹寧), 본관은 풍산(豊山), 관은 예조 판서.

 

한홍유(韓弘裕) 시


映湖樓
 
童遊如夢感懷多(동유여몽감회다)

湖水空流歲月加(호수공유세월가)

野外疎鐘西岳寺(야외소종서악사)

城邊老柳太師家(성변노류태사가)

古墟樓起新文榟(고허루기신문재)

兩世詩懸古墨花(양세시현고묵화)

作宰龍州今又到(작재용주금우도)

依依官柳已成槎(의의관류기성사)


영호루

어려서 놀던 곳 아득하나 감회는 깊고
강물 유유히 흘러 세월만 더해가네.
들판 너머 서악사 종소리 간간이 들리고
성 둘레 태사집엔 늙은 버들 늘어졌구나.
옛터에 누대 세워져 고을을 새롭게 빛내며
고려.조선 양대의 묵은 명시들이 걸려있네.
용주 고을 다스리다가 다시 이곳 원님으로 오니
관아의 버들 늘씬하게 자라 배 만들 수 있겠네.

한홍유(韓弘裕) ? ~ ?
조선시대의 문신.

이집두(李集斗) 시

映湖樓
 
水光山色一樓多(수광산색일루다)

吳楚風煙未有加(오초풍연미유가)

芳草洲生明月棹(방초주생명월도)

古槐城出夕陽家(고괴성출외양가)

燕聞咫尺通河漢(연문지척통하한)

龍臥中間劈浪花(룡와중간벽랑화)

不必凌虛須羽化(불필능허수우화)

玉泉將上欲乘槎(옥천장상욕승사)
영호루

강물과 산빛이 누대에 가득하니
오나라 초나라 물안개도 이보단 못하리.
고운 화초 핀 강가는 달밤 뱃놀이하기 좋고
늙은 홰나무 성밖으로 뻗은 마을엔 석양빛 감돈다.
지척간의 제비는 은하수 길로 날아오르며
강에 누운 용은 흰 물결 가르네.
신선되어 오르는 것 부럽지 않으니
옥같은 샘물 찾아 배 타고 거슬러 가려네.



이집두(李集斗) 1744 - 1820
조선 순조 때의 문신. 자는 중휘(仲輝), 호는 파서(琶西), 본관은 경주(慶州), 관은 예조 판서(禮曹判書).

오연상(吳淵常) 시

映湖樓
 
女娘解唱洛東謳(여낭해창낙동구)

玉笛寥寥香共浮(옥적요요향공부)

湖海風流凌萬頃(호해풍류능만경)

蓬萊消息杳千秋(봉래소식향천추)

白雲蕩影平臨岸(백운탕영평임안)

芳草無邊逈接洲(방초무변형접주)

歷略勝區偕宿志(역명승구해숙지)

楓辰花月卜重遊(풍진화월복동유)


영호루

여인이 즐거이 낙동요를 부르니
옥피리 고요하여 향기마저 감도네.
호수의 풍류는 만경의 푸른 물보다 낫고
봉래 소식은 천년 동안 아득하여라.
흰구름 그림자 드리우는 언덕에 다다르니
끝없는 초록빛 풀길 따라 멀리 거슬러가네.
명승지를 둘러보려던 소원을 두루 이루고
단풍 들고 꽃피는 달에 다시 찾아왔노라.

- 1821오연상(吳淵常) 1765
조선 순조 때의 문신. 자는 사황(士黃), 본관은 해주(海州), 관은 이조 참판(吏曹參判).

김학순(金學淳) 시 영호루1

映湖樓

原隰經年疾苦多(원습경년질고다)

容華全減鬢斑加(용화전감빈반가)

每逢佳節難爲客(매봉가절난위용)

忽到仙鄕若返家(홀도선향고반가)

野麥寒消前臘雪(야맥한소전납설)

驛梅香動早春花(역매향동조춘화)

此行歸日無遲速(차행귀일무지속)

泛泛如登萬里槎(범범여등만리착)

 


영호루

왕명따라 이리저리 지내온 세월 근심이 많고
초췌한 얼굴엔 귀밑 털만 더하네.
매년 좋은 시절되어도 풍류를 즐기지 못하다가
갑자기 신선 고을에 이르니 고향 온 것 같도다.
들녘 보리는 섣달 전의 추위로 시들었고
역의 매화는 향기피워 이른 봄꽃 피었네.
이번 행차는 돌아갈 길 재촉 받지 않으니
둥둥 만리 길 배 타고 떠나리라.

김학순(金學淳) 1767 - 1845
조선 순조 때의 문신. 자는 이습(而習), 호는 화서(華棲), 본관은 안동(安東), 관은 이조 판서(吏曹判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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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豊 柳 마 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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