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정조의 꿈이 230년 만에 기업의 풍요로 나타났습니다.
경기도 화성(華城)의 이름은 조선왕조의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수원으로 옮기면서 ’백성은 왕실의 안녕을, 임금은 백성의 번영을 기원하는 여민동락(與民同樂)의 염원 으로 작명했다고 합니다.그러나 정조의 바람과는 달리 ‘살인의 추억’이나 주한 미군 사격장으로 쓰이다가 2002년에 삼성의 반도체 공장이 3나노 파운드 제품을 세계 최초로 출시하고 다음 해엔 화성 남양만 매립지에 현대차의 연구단지가 들어섬으로서 우리나라의 양대 산업을 모두 가지게 되어,정조의 꿈도 현실화되었습니다. 2001년 화성시로 승격 당시 21만이 올해 100만 명을 돌파하고 재정자립도와 지역내 총생산이 전국 1위일 뿐 아니라,평균연령은 38.8세로 전국에서 가장 젊은 특 A급 도시가 되었습니다. 정조의 풍요 꿈이 230년 만에 역시 기업에서 현실로 나타났음은 흥미있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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