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샘 추위가 지나가니 봄 꽃이 사방에 화사하게 만개하여 찬란한 봄을 피운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는 끊임없이 이런저런 고난이
초대하지 않은 손님처럼 찾아와 우리의 삶을 힘들게 하고 위협한다.
우리는 이런 고난의 이유와 왜 닥쳐오는지 그 연유를 다 알지도 못하고 설명할 길이 없다.
김영랑이 노래한 ‘모란이 피는 그 찬란한 봄’은 왜 꽃샘추위를 거치지 않고는 오지 않는가?
신석정이 노래한 그 ‘새빨간 능금 또옥 딱 따는 그 먼 나라의 가을’은
왜 장마와 모진 태풍을 앞서 보내지 않고는 오지 못하는가?
왜 자지러질 듯 울어대는 아기의 울음 없이는 한 생명의 탄생을 볼 수 없는가?
왜 사랑하는 이에게 이별의 아픈 눈물 남기는 슬픈 죽음 없이는 저 천국에 이를 수 없는가?
왜 그리스도의 뼈저린 십자가 없이는 부활의 영광도 없는가?
1924년 소설가 소온톤 와일드는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라는 소설을 썼다.
페루의 작은 도시에서 줄 다리 하나가 끊어져 건너던 다섯 사람이 죽는다.
한 가톨릭 사제가 이 참사를 본 후 이런 참변이 왜 일어났는지를 고민한다.
그는 오랜 추적을 통해 죽은 사람들은 모두 최근에 당면했던 문제들을 잘 해결했고
그들의 삶이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된 시점에 처해 있었음을 알고는 내린 결론은,
그들은 죽을 때가 되어 적절하게 죽었다고 결론지었다.
그런데 작가는 자신의 소설 내용에 만족하지 못하고, 40년 후 <제 8요일>이라는
소설을 통해 고난의 의미를 다시 추구한다. 여기서 그는 불운한 삶을 살았던 한 사람의
생애를 추적하며, 결말부분에서 아름다운 금실로 만든 수단(繡緞)을 보여준다.
전면의 금 수단은 길이와 색깔이 다른 여러 가지 실로 매우 화려하나, 뒤집어보면
짧고 긴 여러 가닥의 실들이 잘리고 헝클어져 있고 삐쭉 빼쭉한 여러 가닥의 실들이
엇갈려 뒤죽박죽이다. 와일드는 우리가 당하는 고난의 의미를 이 금 수단으로 대답한다.
그렇다. 고난의 그 이면에는 아름다운 그림이 숨겨져 있다.
어느 누가 눈물 젖은 베개 없이, 새벽을 깨울 수 있는가?
어느 누가 허리 끊어지는 고뇌 없이, 인생이란 문제에 접근할 수 있는가?
어느 누가 나락에 떨어지는 자기 절망 없이, 신의 구원의 손길을 붙잡는 신앙을 가질 수 있겠는가?
그러고 보면 고난은 축복이며 특권이다.
인간은 고난을 통해서 만이 자기의 한계를 넘어 참다운 삶의 광장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누군가 ‘평안은 신께서 주시는 선물이지만, 편안은 마귀가 주는 시험’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아무 고통을 모르는 그저 편안한 사람이다.
기도하려고 해도, 기도할 꺼리가 없는 만사 태평한 사람.
신을 향한 경배의 자리에 나와도, 굳이 위를 앙망할 것이 없이 수평의 자리에서 관람하는 방청객.
혹은 높은 눈으로 내려다보는 배심원처럼 간절함도 경외함도 없이 여유 자적한 그런 사람이다.
그들이 누리는 세상은 이미 낙원이니 따로 천국이 필요 없다고 여기고,
돈과 권력이 가까이에 있으니 신께까지 절실하게 무얼 청탁할 필요도 없다.
나름대로 제 생각, 제 판단이 옳고 정확했으며 현실에 만족히 이루어졌기에,
애써 신의 인도나 도움을 구할 일이 없다.
혹시 닥칠지 모르는 재난에 대해서도 몇 겹으로 보험은 다 들어 있어서,
하늘의 도움 따윈 필요 없을 만큼 모든걸 갖춰 놓았다고 생각한다.
베스트 셀러 <지선아 사랑해>의 저자 이지선자매가 처참한 교통사고로 고운 미모와
희망의 미래를 잃어버렸다가 믿음으로 감사를 회복했을 때, 그녀는 이런 고백을 했다
“고난은 축복입니다. 힘겹고 괴로운 시간을 보내고 이기고 나면 주어지는 보물이
있습니다. 고난을 통하지 않고서는 배울 수 없는, 가질 수 없는 열매들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지금 제 안에 담겨 있는 고난이 가져다 준 축복의 보물들을 정말 그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몰랐던 신의 은혜를 알게 되었고 사랑을
맛보았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은 것 안에 있습니다.”
인생의 길에서 고난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리고 그것이 더 더욱 결코 결론도 아니다.
오직 영광과 평안에 이르는 과정이요, 길일 뿐이다.
김종해 시인은 <그대 앞에 봄이 있다>란 시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 살아가는 일 속에/ 파도 치는 날 바람 부는 날이/ 어디 한두 번이랴! /
그런 날은 조용히 닻을 내리고/ 오늘 일을 잠시라도 낮은 곳에 묻어두어야 한다. /
우리 사랑하는 일 또한 그 같아서/ 파도 치는 날 바람 부는 날은/
높은 파도를 타지 않고 낮게 낮게 밀물 져야 한다./ 사랑하는 이여! 상처받지 않은/
사랑이 어디 있으랴! / 추운 겨울 다 지내고/ 꽃필 차례가 바로 그대 앞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