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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이야기

장사익의 '꽃구경', '찔레꽃'--- 어머니를 생각하며!

작성자恩波 안균세|작성시간22.05.08|조회수334 목록 댓글 0

5월 가정의 달, 오늘은 ‘어버이 날’이다.

우리 민족이 품고 있는 한()의 정서를 가장 한국적으로 잘 부른다는

시대의 소리꾼 장사익이 부른 어머니를 향한 애 뜻한 감정이 스며있는

 ‘꽃구경’과 ‘찔레꽃’,을

오후시간, 서재의 창을 통하여 어둠이 깃드는 저 산 넘어

남쪽 먼 고향 쪽을 바라보며, 뭉클한 심경을 훔치며 들으니,

잠자든 그리움을 일깨워 수십 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케 한

그가 작사 작곡한 ‘꽃구경’을 무심히 듣다가 그 이면에 숨겨진 깊은 뜻을 알아채고는

억제할 수 없는 한줄기 뜨거움이 눈가를 적신다.

 

"어머니, 꽃구경 가요

제 등에 업히어 꽃구경 가요

세상이 온통 꽃 핀 봄날

어머니는 좋아 라고 아들 등에 업혔네

 

마을을 지나고 산길을 지나고

산자락에 휘감겨 숲길이 짙어지자

아이구머니나!

어머니는 그만 말을 잃더니

 

꽃구경 봄 구경

눈감아 버리더니

한 움큼씩 한 움큼씩 솔잎을 따서

가는 길 뒤에다 뿌리며 가네

어머니 지금 뭐 하나요

솔잎은 뿌려서 뭐 하나요

 

아들아 아들아 내 아들아

너 혼자 내려갈 일 걱정이구나

길 잃고 헤맬까 걱정이구나”

 

원래 ‘꽃구경’은 다음과 같은 설화(說話)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노래다.

 

고구려 때 박00 정승이 있었다.

그는 나이든 노모를 지게에 짊어지고 산으로 올라갔다.

‘고려장(高麗葬)’을 하기 위해서였다.

깊은 산 속에 도착한 박 정승이 큰절을 올리자 노모가 말했다.

“얘야, 나라의 법을 어길 수는 없다. 날이 어둡기 전에 어서 내려가라.

네가 길을 잃을까 봐 나뭇가지를 꺾어 길 표시를 해두었다”

박 정승은 그 사랑에 감격해 노모를 다시 업고 내려와 남모르게 봉양했다.

 

그 무렵, 당나라 사신이 말 두 마리를 끌고 고구려를 찾았다.

사신은 “이 말은 크기와 생김새가 같다.

어미와 새끼를 가려 내보라”고 문제를 냈다.

조정은 매일 회의를 했으나 묘안을 찾지 못했다.

박 정승이 이 문제로 고민하는 것을 보고 노모가 말했다.

“그게 무슨 걱정거리냐. 나처럼 나이 먹은 부모면 누구나 안다.

말을 하루 정도 굶긴 후 여물을 갖다 주어라. 먼저 먹는 놈이 새끼 말이다.

원래 어미는 새끼를 배불리 먹이고 나중에 먹는다”

아들은 그 방법으로 어미와 새끼를 가려냈다.

그러자 당나라 사신은 고구려인의 지혜에 탄복하고 본국으로 돌아갔다.

박 정승은 임금께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고려장’을 철폐할 것을 진언했다.

그때부터 고려장은 사라졌다고 한다.

 

꽃의 여왕이라 일컫는 장미꽃은 원 조상이 찔레꽃이다.

장사익의 이어지는 곡 ‘찔레꽃’을 들어보자.

 

하얀 꽃 찔레꽃

순박한 꽃 찔레꽃

별처럼 슬픈 찔레꽃

달처럼 서러운 찔레꽃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목 놓아 울었지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밤새워 울었지

아!

찔레꽃처럼 울었지

찔레꽃처럼 노래했지

찔레꽃처럼 춤췄지

찔레꽃처럼 사랑했지

찔레꽃처럼 살았지

당신은 찔레꽃

 

‘찔레꽃’에 얽힌 가사의 역사적인 변천과정을 살펴보면

진한 감동을 더욱 느끼게 된다.

 

‘고향의 봄’을 쓴 동요작가 이원수(1911-1981)는

 ‘찔레꽃’을 1930년 ‘신소년’ 에 기고했다.

 

찔레꽃이 하얗게 피었다오.

언니 일 가는 광산 길에 피었다오.

찔레꽃 이파리는 맛도 있지.

배고픈 날 따 먹는 꽃이라오.

광산에서 돌 깨는 언니 보려고

해가 저문 산길에 나왔다가

찔레꽃 한 잎 두 잎 따 먹었다오.

저녁 굶고 찔레꽃을 따 먹었다오.

(* 언니 : 예전에는 남자 아이가 형을 "언니"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원수의 찔레꽃은 가수 이연실이 새롭게 번안(飜案)하여 불렀는데,

박태준의 우리 귀에 낯익은 ‘가을밤(기러기)’ 멜로디를

그대로 빌려서 발표하여 큰 인기를 누렸다.

 

엄마 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

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

배고픈 날 가만히 따 먹었다오

엄마 엄마 부르며 따 먹었다오

밤 깊어 까만데 엄마 혼자서

하얀 발목 바쁘게 내게 오시네

밤마다 보는 꿈은 하얀 엄마 꿈

산등성이 너머로 흔들리는 꿈

 

배고픈 어린 시절,

아카시아 꽃이나 찔레꽃을 따먹어본 사람은

이 노랫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금방 알 것이다.

우리들의 엄마가 바로 찔레꽃이었다는 사실을 느끼고

눈물짓지 않을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1995년 47세의 늦은 나이에 우리 가요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장사익 씨는 가수라기보다는 인생의 심연을 드려다 보는

그리고 누구나 쉽게 들을 수 있지만 누구도 못하는

특유의 소리영역을 만들어 가지고 영혼을 흔들어 대는 연금사 같다.

 

나는 이 시간 조용히 눈을 감고 생각해 본다.

정말 생전에 어머니를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 드렸는가?

아무런 답을 할 수 없고 멍멍하며 가슴이 서리며 아프다.

어머니는 내게 있어

하나님 사랑 같으신 아무 조건 없는 맹목적인 사랑 그 자체다.

나의 어머니는 마치 찔레꽃 같으신 분이다.

 

아무리 사랑하는 어머니라 할지라도

자식 된 도리로서 살아 생전

어머니를 위해 해드린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걱정만 끼쳐 드렸다. 모든 것이 철저히 무심하며 무능했다.

인생의 후반기를 지나는 지금도 생각하면,

이것이 안타까운 아픔이요 후회요 한()이다.

한평생, 이 못난 불효자식 위해 모든 것 다 바쳐 고생하시며

낳아 키워주시고 사랑해주시고 헌신과 기도의 삶을 살아셨던 우리 어머니!

 

5월, 가정의 달을 흘려 보내며 어버이날이 있는 길목에서,

따뜻한 마음으로 화사한 봄 꽃과 어머니를 연상하며,

꽃구경, 찔레꽃 가사와 노래를 따라 웅얼거리며 가슴 깊이 읊조린다.

 

“사랑합니다, 어머니!

어머니께서 주신 사랑과 헌신, 그리고 기도,

영원히 잊지 않고 마음 깊이 간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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