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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이야기

추석(秋夕)과 여인(女人)

작성자恩波 안균세|작성시간22.09.08|조회수631 목록 댓글 0

추석(秋夕)은 글자대로 풀이하면, ‘가을 저녁’ 또는 ‘가을 밤’이다.

중국인은 추석 무렵을 중추(中秋) 또는 월석(月夕)이라 하는데, 유학 5경 중

하나인 <예기(禮記)>에 나오는 ‘조춘일 추석월(朝春日 秋夕月)’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음력 8월 중순 ‘달빛이 가장 좋은 저녁’이라는 의미로 ‘월석’이라 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신라시대에 한자 사용이 성행하게 된 뒤 중국인이 부르던

‘중추’와 ‘월석’이라는 말을 합하여 ‘추석’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휘영청 밝은 보름달이 떠오르는 가을 저녁, 달을 향해 소원을 빌고 달을 닮은

떡을 빚어, 서로 나누는 추석은 이름 그대로 ‘달의 명절’인 셈이다.

 

우리나라에서 달을 일월성신(日月星辰)속에 포함되어 오랫동안 민간신앙의

대상이었고, 달에 정령이 있다고 믿어 여인들의 애달픈 기원의 대상이 되었다.

보름달이 떠오르는 밤이면 먼저 보아야 길(吉)하다고 하여 횃불을 들고

앞을 다투어 마을 동산에 올라가 두 손 모아 풍년을 소망했고, 때론 달빛을

보고 1년 농사를 점치기도 했다. 달빛이 진하고 뚜렷하면 풍년이 들고

흐리면 흉년이 든다는 식이다. 이처럼 달은 풍년의 상징이었고, 풍년은 곧

대지의 기운을 좌우하는 여성으로 연결되어 달과 여성은 밀접한 관계를 가졌다.

 

달과 여성 그리고 추석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는 추석의 기원에서 더욱 단단해 진다.

추석을 부르는 다른 말 ‘한가위’에서 ‘한’은 ‘하다(大, 正)의 관형사형이고, ‘가위’란

‘가배(嘉俳)’를 의미한다. ‘가배’라는 말은 <삼국사기>에 첫 등장하는데, 유리왕9년

이래 7월 16일부터 8월 보름까지 한 달에 걸쳐 온 나라 안의 6부 여성들이 둘로

나뉘어 길쌈내기를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 결과에 따라 진 편은 이긴 편에게

술과 음식을 푸짐하게 대접하면서 가무를 곁들였는데, 이를 ‘가배’라 불렀다는

내용이다. 이렇게 옷감을 짜는 풍속인 길쌈이 보편화되었다는 것은, 추석 즈음

나라차원에서 대대적으로 길쌈을 지원했고, 여성들이 주도하는 명절 ‘한가위’는

그렇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농경사회에서 보름달은 풍요를 상징하며 이는 여성과도 관련된다. 여성은 생산의

주체이므로 여성 자체가 풍요를 상징하는 존재이며, 보름달의 만월(滿月)은

만삭의 여성으로 비유된다. 따라서 보름달 아래서 보름달 모양을 만들며 춤을

추는 ‘원무’는 풍요의 극치를 의미하며 풍농을 기원하는 신앙적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달빛 아래서 춤을 추는 대표적인 원무인 ‘강강술래’는 사실 고대 농경시대부터

계속되어온 세시풍속이었으나 임진왜란 때에 이르러 이순신장군에 의하여 제 이름을

갖게 된 것으로 풀이하는 것이 맞다. 그때 당시 수군통제사인 이순신이 적의

군사에게 해안을 경비하는 우리군세의 많음을 과시하기 위하여 부녀자들로 하여금

수십 명씩 떼를 지어 해안지대 산에 올라 곳곳에 모닥불을 피워 놓고 돌면서

‘강강술래’라는 노래를 부르게 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강강’의 ‘강’은 주위

또는 원(圓)을 의미하는 전라도 방언이고, ‘술래’는 ‘경계하라’는 뜻의 한자어

‘순라(巡邏)’에서 온 말로, ‘주위를 경계하라’는 당시의 구호인 셈이다.

물론 이 역시 하나의 설일 뿐 그저 추석날 밤 언덕에서 여인들이 원을 지어

즐기던 노래와 춤이라는 기원 말고는 확실하게 전해지는 것은 없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추석에서 색다른 전통이 발견되었는데, 차례를 마친 여성들에게

허락된 짧은 휴가 ‘근친(覲親)’과 ‘반보기’가 그것이다. 유교사회이던 조선시대에는

‘출가외인’이니 ‘사돈집과 뒷간은 멀수록 좋다’는 속담처럼 사돈 간에 왕래하면서

가까이 지내는 것을 서로 원치 않았다. 그런데 추석과 같이 특별한 날에는 시댁의

허가를 받은 며느리의 친정나들이가 허락된 것이다. 이를 ‘근친’이라 하는데

근친을 갈 때에는 햇곡식으로 떡을 만들고 술을 빚어 가거나 형편에 따라 버선이나

의복 등 선물을 마련해갔다.

 

사정이 여의치 않아 근친이 어려우면, ‘반보기’라 하여 시가와 친정의 중간쯤 경치

좋은 적당한 곳을 택해 친정어머니와 출가한 딸을 만나게 했다. 이때 역시 장만한

음식을 가지고 와서 그 동안의 회포도 풀고 하루를 즐기다 저녁 무렵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지역에 따라 중로(中路)보기, 중로상봉(中路相逢)으로 부르기도 했다.

 

반보기를 할 때 사돈관계가 돈독한 집안에서는 시집간 딸과 친정어머니뿐만 아니라

사돈 부인들이 함께 만나는 경우도 많았고, 동년배들이 함께 참석해 흥을 돋우기도 했다.

이러한 반보기는 딸과 친정어머니의 만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돈의 교류를

활성화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모녀의 상봉과 회포 풀기가 사돈의 교류, 조금

더 나아가 집안 여성들 소통의 장으로 발전한 것이다.

 

유교사상으로 엄격한 가족생활을 영위하던 시대에도 이처럼 추석이면 여성들에게

숨을 쉴 수 있는 여유를 선물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풍부한 8월의 가운데 날은

돌아보지 못하던 곳을 살펴 넉넉함을 나누는 날로 인식되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함께 힘을 모으는 길쌈놀이에서부터 시작된 추석은 그렇게 ‘나눔과 도움’을

실천하는 명절이었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맞는 추석과 격세지감을 느끼는

푸근하고 넉넉한 정을 주고 받는 따뜻한 명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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