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첫날 새벽녘에 세월 가는 소리에 놀라 잠이 깼다.
일어나 시계를 보니, 새벽 3시다.
좀 더 자야겠다 누워 이리저리 뒤치락거리며 눈을 감았으나
세월 가는 소리가 마치 그 옛날 레일 위로 연기 뿜으며 달리던
기차의 덜커덩거리던 바퀴소리처럼 귓전에 다가와 아련함을 일깨운다.
벌떡 일어나 잠옷 위에 잠바를 걸치고 서재에 앉아 커튼을 걷고
어두운 창 밖을 내다보니, 시간은 오전 4시다. 사방은 아직 컴컴하고 적막하다.
일기예보대로 이번 겨울 들어 가장 추운 영하 10도의 매서운 찬바람이
창을 때리고 서늘한 기운이 온몸을 휘돌아 감는다.
또한 한 해가 세월의 등을 타고 영하의 바람에 떠밀려 산등성너머로
서서히 흘러가고 있음이 눈에, 가슴에 보인다.
이제, 가을은 11월의 끝자락 등을 타고 저 산 너머로 흘러가 버렸다.
12월이 열린 겨울의 첫 길목의 영하의 추위는 춥다 못해 벌써부터 시퍼렇다.
그 옛날, 우리 집 마당에 쌓여있던 장작더미가 생각나며 따뜻한 구들목이 그립다.
겨울채비에 바쁠 때는 덜 마른 나무라도 많이 쪼개어 쌓아 놓아야 마음 푸근하다.
뒤란이며 마당 귀에 차곡차곡 쌓아 놓은 장작은 겨울양식같이 든든했다.
또 그뿐인가, 우리네 살림살이가 좀 나아지면서
앞마당 곳간이나 부엌 한 켠에 쌓아 놓은 것이 시커먼 연탄이었다.
좁은 길에는 연탄 가득 실은 1.5톤 트럭에, 또는 골목이나 비탈오르막에는
손수레에 연탄 가득 싣고 씩씩거리던 아저씨들의 검은 연탄가루 묻은
시커먼 얼굴이 생각난다. 집안구석 어디든지 함석이나 가마니로 덮어 놓은
연탄이 우리의 키보다 높이 쌓여 있어야 부자 마음이었다.
옹기종기 붙은 초가 집집마다 지붕 위 굴뚝으로 나오는 연기만 보아도
장작불인지 연탄 지피는 불인지 우리의 눈은 구분할 수 있었다.
장작의 나무들 속살이며 무늬도 향기롭고 아름다웠다.
지금은 깊은 산골 오두막이나 절 마당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연탄의 가지런한 열아홉 개의 구멍에서 일렁이던 파랑불꽃은
따사로운 예술품이었다.
요즈음은 달동네나 공사현장, 공장 뒷마당에서나 볼 수 있다.
그런 장작과 연탄은 불이요 꽃이며 활력소다.
보고 있으면 모닥불처럼, 화로처럼 뜨거워지고 추억이 새록새록 다가온다.
그래서 누군가의 말처럼 ‘그대에게 가는 길’과 ‘그대 곁에 남는 길’과
‘그대 안에 이르는 길’이 다르다.
제 길로 각각 다른 길로 가다가 이 장작불과 연탄불로 다 모이는가 보다.
자신의 몸을 다 태워 ‘기어이 재’가 되는 길을 택한다.
기웃거리는 인간군상들의 모습과는 다른,
전소(全燒)의 깨끗한 헌신과 사랑으로 주위를 밝히며 덥힌다.
오늘날, 아군과 적군으로 대치의 진(陳)을 쌓고 끝없는 갈등과 공격을 일삼는
정치계를 비롯한 각계 사회상을 바라보면서,
그 옛날의 장작불과 연탄불이 그립다.
찬바람이 드셀수록 장작불을 함께 쬐던 군고구마 같은 옛 벗들과
연탄불 구들목 이불 속에 발 묻고 웃으며 재잘거리던 어릴 쩍 가족이 그립다.
그런 따사롭고 정겨운 광경이 그립고, 푸근하고 찐빵 같은 그런 마음 또한 그립다.
장작
정경화(1961~ )
그대에게 가는 길은
내 절반을 쪼개는 일
시퍼런 도끼 날이
숲을 죄다 흔들어도
하얗게 드러난 살결은
흰 꽃처럼 부시다
그대 곁에 남는 길은
불씨 한 점 살리는 일
바람이 외줄을 타는
곡예 같은 춤사위에
외마디 비명을 감춘 채
아낌없이 사위어 간다
그대 안에 이르는 길은
기어이 재가 되는 일
화농으로 굳은 상처
달빛으로 닦아 보면
비로소 쌓이는 적멸.
솔씨 하나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안도현(1961~ )
연탄재
발로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