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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이야기

요즈음, 우리에겐 식구(食口)란게 있는가?

작성자恩波 안균세|작성시간23.05.09|조회수167 목록 댓글 0

5월이 열린 가정의 달을 맞아, '식구(食口)'를 생각해 본다. 

가정의 달엔, 그 어느때보다 식구(食口)란 개념이 우리를 따뜻하게 감싸야 할터인데

진정 옛날과 같은 가족애를 느끼며 살아가는 식구란게 오늘날 있는가 하는 생각마져든다.

가슴을 따뜻하게 적시는 우리의 단어---"식구(食口)"가 그립고, 그 시절을 그리워한다.

 

가족은 영어로 패밀리(family)다.

노예를 포함해서 한 집안에서 생활하는 모든 구성원을 의미하는

라틴어 파밀리아(familia)에서 왔다. 즉,"익숙한 사이"라는 의미이다.

중국은 일가(一家), 일본은 가족(家族)이란 용어를 주로 사용한다.

즉,"한 지붕 밑에 모여 사는 무리"라는 의미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식구(食口)라는 말을 주로 사용해 왔다. "같이 밥먹는 입"이란 뜻이다.

그러므로 한국인에게는 가족이란 "한솥 밥을 먹는 식사공동체"라는 뜻이다.

그래서,남에게 자기아내나 자식을 소개 할때도 "우리식구"란 말을 종종 사용하기도 한다.

 

이렇게 볼때,한 집에 살아도 한 상(床)에 밥을 먹지 않거나, 식사를 할 기회가 없다면

엄밀히 말해서,"핏줄"이기는 해도 "식구"랄수는 없다.

최근 한국가정의 위기가 심각해 지고 있는 것은,

가족간에 식사를 같이 하지 않는 풍조가 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몇년 전 뉴스에 나온, 고된 이민 생활속에서도 6남매를 모두 예일대와 하버드대에 보내,

미국 최고 엘리트로 키운 전혜성여사도, 자녀교육의 비결을 묻는 질문에

"무슨 일이 있어도 아침식사는 가족이 함께 했다"며 "밥상머리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요즈음, 우리생활을 들여다 보면,

실제로 식구가 얼굴 맞대고 대화할수 있는 기회가 밥상머리 뿐인데

오늘날,우리나라 가정에서는 온 식구가 한 밥상에서 같이 식사하는 경우가 얼마나 있는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아버지의 출근시간,자식의 등교시간 다르다 보니,

각자 일어나자 마자 허둥지둥, 밥먹는둥 마는둥 또는 우유 한잔 서서 마시고 나가기 일쑤고,

저녁 귀가시간도 각자 달라 저녁식사를 한 식탁에 하기는 커녕,

언제 귀가 했는지 서로 모르고 각자 방에서 잠자기 바쁘다.

이러한 일상의 연속이니 "밥상머리 교육"은 고사하고,

어떤때는 며칠간 얼굴 못볼때도 허다하다.

 

1970년대만 해도,대부분의 가정이 늦게 귀가하는 식구를 위해,

아랫목이나 장롱의 이불 속에 밥을 묻어 두곤 했다. 밥의 온도는 곧,사랑의 온도였다.

자식이 아무리 늦게 들어와도,어머니는 속 버리지 말라며 뜨끈한 국과 따뜻한 밥을 챙겨

주시던 일이 생각난다. 그러나,요즈음은 전기밥솥이 그 자리에 대신 놓여있고,

라면등 몸에 좋지않는 인스탄터 제품이 집집마다 있어 필요 할때면,

한 밤중에라도 각자 알아서 처리하게 끔, 배려(?) 되어 있다.

 

요즈음, 밤늦게 들어와 아내에게 밥상 차리라고 했다간," 이 시간까지 밥도 못먹고

어딜 돌아 다녔느냐"고 핀잔 듣기 십상이고,부엌에 라면 있으니 끓어 먹어라고 한다.

느닷없이 비오는 밤, 버스정류장에는 우산을 받쳐 들고 언제 올 줄도 모르는 

식구를 기다리는 그 많은 모습을 요사히는 볼 수가 있는가?

그러나 요즈음 주부들의 태반이 나름대로 직장과 할일을 갖고 있어니,

충분히 이해할 수도 있어도 현실은 그렇다.

 

자식이 뭐 좀 해달라는데,해주지 못했을 때는 "고개 숙인 부모"를 향해

자식은 "도당체, 해 준게 뭐 있느냐"고 따지고 들때도 있다.

옛날에는,아내와 자식이 가장(家長)의 위압적인 언사때문에 상처받는 다고 하지만,

요즈음 가족들이 던지는 무심한 투정 한마디에 가장은 속마음에 피멍이 들때가 있다,

단지, 자기소치인냥 말하지 않고 지낼 뿐이다.

누가 말했던가?

오늘날 아버지는 "울고 싶어도 울곳이 없는 사람"이 바로 아버지라고 했다.

 

오늘날, 대부분의 아버지는 직업형편상 귀가하는 시간이 대체로 늦다.

그래서 식구들이 가장을 기다리다가 먼저 잠자는 경우가 많다.

어쩌다,아이들이 깨어 있더래도 컴퓨터나 휴대전화에 정신이 팔려,

제방에서 건성으로 인사만 건넨다.

그러니, 밥상머리 교육이나 대화는 기대하기 힘들고,

나아가 얼굴은 자주 못보더래도 서로 각자의 시간과 생활은 간섭이나

침범을 하지 않했으면 하는 바램이,찬바람 불듯, 집안 분위기를 냉각시킨다.

평소 눈길 한번 준일 없던,애완견만이 한 밤중에 쓸쓸히 반갑게 맞아주는

진풍경이 우리들 가정에 벌어지고 있다. 그래서 "품안의 자식"대하듯,

애완견재롱에 푹 빠진 가장을 보면,뭐라 말할 수 없는 쓸쓸함이 밀려온다.

 

한 집에 살지만, 잠만 집에서 자는 동거인(同居人)에 불과해진,

오늘날 한국가족의 현실이 서글퍼 진다.

 

오늘날, 또한 우리에게는 생가(生家)라는 것이 없다.

주소 ㅇㅇㅇ번지,부모가 살고 있는 집에서 태어나지 않는다.

병원에서 태어나고, 돌잔치,생일잔치 모두다 레스토랑이나 호텔에서 갖는다.

그러다가 회갑,칠순잔치도 집 밖에서 하며, 죽을 때도 병원에서 죽는다.

이러고 보니. 생가(生家)가 없다. 전부다 집밖이다

조상과 부모의 체취가 어려있고,나의 첫 울음소리를 내 품었던 집은 이제 찾아보기 힘든다.

 

이렇게 볼때,엄밀한 의미에서 나의 생가(生家),나의 고향(故鄕)은 어디인가?

요즈음 가족잔치는 집에서 손수장만하고 따뜻한 정이 오고 갔던,

그런 분위기가 아니고, 집대신 외부의 음식점이나 호텔로 손님을 초대하는

사실상 "체면 흥행 이벤트"로 변질되어 버렸다.

정진석 추기경도 최근 "가정은 신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마련된 성소이니,물질의 노예,

정보의 노예가 되지 말고, 가정안에서 용서하고 사랑하라"고 한말은 의미가 있다.

 

이렇게 생각을 정리해 보면,

가족과 가정의 해체는 결국 "식구의 소멸(消滅)과 집의 부재(不在)" 에서

비롯됬다고 해도,과언은 아니다.

시대와 사회가 아무리 변해도,자식이 결혼으로 분가하기 까지는,

가급적 한집에서 식구들과 "지지고 볶는"생활을 갖는 것이

진정한 "식구(食口)"이며  삶의"행복"이 아니겠는가!

 

              요즈음, 우리에겐 식구(食口)란게 있는가?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조용히 눈을 감고 되새겨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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