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8세기 아메리카 인디안 부족연맹체였던 이로코이족(族)에게
"토킹 스틱(Talking Stick)"은 절대적인 회의 진행 수단이었다.
대머리 독수리가 정교하게 새겨진 1.5m짜리 지팡이다
발언은 지팡이를 쥔 사람만 할 수 있고,
말하는 동안 누구도 끼어 들거나 찬반을 말할 수 없다.
잠자코 듣기만 해야 한다.
발언자는 자신의 뜻을 다른사람들이 정확히 이해했는지 거듭 확인하고 나서야
옆사람에게 지팡이를 넘긴다.
모든 참석자가 이렇게 차례로 말하고 들어면서 각자의 말을 이해했다고 느끼는 순간,
부정적 감정과 소모적 논쟁은 사라진다.
사람들은 서로를 존중하면서 창조적이고 아이디어가 솟고 대안이 나온다.
5개 부족이 합친 이로코이연맹은 스스로를 "공동주택에 사는 사람들"이라고 불렀다.
그런 이로코이가 격동의 식민지시대 200년을 뚫고 버텨낸 비결이, 독특한 회의 문화였다.
즉 "듣기의 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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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말을 듣기란, 내가 말하는 것보다 힘든 일이다.
그 괴로움을 참고 마음과 눈까지 동원해 진지하게 귀 기울리면,
상대방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
누군가를 설득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사람 말을 귀담아 듣는 것이다.
프랑수아 모리아크가 "한 사람의 벗은 한 쌍의 귀를 의미한다"고 했듯이,
좋은 친구는 들어 주는 친구다.
판소리 격언에 "귀명창 있고 명창있다"고 했다
소리를 제대로 음미하고 소리꾼 경지의 높고 낮음을 가늠해내는 귀,
곧 수준 높은 청중이 명창을 낳는 법이다.
장단 맞추는 고수의 "귀의 힘"이, 명창의 "입의 힘"보다는 크다는 얘기이다.
그러나 오늘 이 세상은 귀명창이나 고수는 없고, 온통 떠들어 대는 소리광대들 뿐이다
.
오늘날, 신문이나 TV, 방송 어디에나 그리고 주위를 돌아 보아도,
듣는 이는 없고 온통 떠들어 대는 말하는 사람뿐이다.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지경이다.
요즈음 각계각층의 지도자들 특히 정치지도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기가 막힌다
옳고 그름의 이야기가 아니고, 내로남불, 방탄, 내게 유, 불리한냐로 따져 목청을 돋우고
정당한냐 부당한냐의 말이 아니고, 내편이냐 네편으로 갈라 마음대로 말해 버리고
좋으냐 나쁜냐의 검토기준이 아니고, 내기분에 맞느냐 안 맞느냐로 결론 지워 버린다.
이를 듣는 국민의 귀에는 소음이요, 머리를 아프게 하고 어지럽게 하는 꽹과리 소리이다.
그러니 토킹 스틱은 몇세기 전의 야만족에게 있었던 우스꽝스런 지팡이가 아니라
오늘날 정치계를 비롯한 우리 사회의 각분야에 그 무엇보담도 꼭 필요한 지팡이다
이 요란한 소음의 시대에 말하는 법보다, 남의 말을 듣는 법을 먼저 터득하는게 절실하다.
우리, 남과 이야기 할 때나, 모임, 회의때
남의 말을 듣기 보담, 내가 너무 많은 말을 하고 있지는 아니한가?
나의 의견과 주장을 너무 강하게 말하고 있지는 아니한가?
나의 의견과 틀리면 다르다고 다양성을 인정치 않고
틀렸다고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공격하고 있지는 아니한가?
오늘, 한해의 반을 떠나보낸 7월이 열린,
무더운 날씨의 저 하늘을 바라보며 답답함을 달래는 심호흡하면서
내 말을 하기 보다 "남의 말에 귀 기울이기"를 힘쓰 봄이.....
오늘, 저 토킹 스틱(Talking Stick)을 내 혀에, 귀에, 가슴에 가져봄이.....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