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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이야기

눈 내리는 환승역에서 새해기차로 갈아 타다

작성자恩波 안균세|작성시간23.12.30|조회수113 목록 댓글 0

오늘 아침, 앙상한 나뭇가지에 차가운 겨울 눈이 내린다.

대지 위 낙엽에 매서운 영하의 바람이 휘몬다.

시간이 내린다. 아니 다른 시간이 도착했다.

떠나는 시간을 또 다른 시간이 배웅하기 위해 도착했다.

둘은 그 흔한 포옹 한 번 제대로 못하고 배웅의 이름으로 이별한다.

2023년의 떠나는 겨울과 2024년이 열리는 겨울이 마주치는

환승역에서 벌어지는, 떠나는 검은 토끼의 해 계묘년(癸卯年)과

오는 청룡띠의 해 갑진년(甲辰年)의  이별 모습이다.

 

그래서 우리가 산다는 것은 하나의 시간이 떠나고

또 하나의 시간이 도착하는 것을 목격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사람이 사는 게 아니고 시간이 떠나고, 도착하는 걸 늘 바라보는 일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낙엽에 차가운 눈 내리는 두 주연배우의 ‘시간’이란 제목의 연극을

멀찌감치 떨어진 객석에서 바라보는 관중인지도 모른다.

 

열차 출발시간에 늦어서 택시 타고 죽어라 뛰어, 역 플랫폼에 들어섰지만

열차는 꽁무니만 보이며 여지없이 떠날 때……열차운행 시각표는 ‘시간’이라는

주연배우의 공연 스케줄 같다는 생각이 인생여정에서 들곤 했다.

삶에서 시간은 그렇게 떠나고, 도착하고,

우리는 그 시간의 공연 티켓을 끊어 탑승해선 시간에 맞춰 달리려 애 쓴다.

 

가만히 보면, 내가 달리는 것이 아니고 시간이 달리는 대로 나는 달리고,

그러다가 얼마 후면, 시간도 잠시 쉬려 낯선 이름 환승역에 잠시 멈추곤 한다.

환승역 철로 변에 활짝 핀 아름다운 꽃에 마음을 뺏겨 몇 발짝 옮길라치면

그새 ‘시간’이라는 주인공을 태운 열차는 또 다른 시간의 역을 향해

달리겠다고 기적을 울리며 목청을 높이곤 한다.

 

그런데, 나는 이제껏 내가 주인공이고 시간은 그때그때 필요한

하루짜리 엑스트라 배우라는 생각을 참 오랫동안 했다.

언제나 대기하고 있다가 부르면 오는,

역()도 기억나지 않는 그런 배우라고 생각했다.

 

수년 전, 어느 해 새해 첫 날 아침,

일출 보러 동해의 정동진 해변에 서서 희망차게 떠오르는

새해 태양을 바라보며 두 손 모아 간절히 다짐하며 기원했던 일이 생각난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은 우습기도 하나

그때 바라보는 내 마음이 그랬다.

태양은 희망차게 떠오르는 게 아니고, 시간이 되면 늘 그때그때 떠오르는 것.

태양은 나의 희망을 위해 떠오른 것이 아닌, 시간이 하자는 대로

매일매일 떠오르는 것임을 좀 더 시간이 흘러 알게 되었다.

그래서 요즘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슬픈 날도, 내가 더 이상 희망찰 게 없어도 태양은 그냥 뜬다’.

태양은 그냥 시간이 하자는 대로 뜬다는 것을 아는 것이

나의 삶을 얼마나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인생의 퀴즈였단 말인가.

 

산봉우리 낙엽에 눈이 내리거나 삭풍이 불어도,

올해와 내년 두 배우의 연기가 아무리 애잔해도

무대 위로 쫓아 오르지 못하고 담담하게 마음 속으로만 울어야 하는 것,

시간 바쁜 열차 출발로 환승역 꽃을 마음에만 품고 올 수밖에 없는 것,

오늘의 태양은 나와 상관없이 자연스럽게 뜨는 것,

그래서 내일 태양도 자연스레 뜨고 나도 자연스레 시간을 바라보며 사는 것,

이 모든 것이 내가 시간을 정확하게 바라보는 것임을 알았다.

그게 우리 삶을 위해 얼마나 현명한 지혜와 기준인지도 알았다. 

무덤덤하게, 무뚝뚝하게, 무표정으로 자기 갈 길만 가는 시간이

잠시 아름다운 표정을 지은 상황을 마침 목격한 것이다.

낙엽에 겨울 비와 눈이 조용히 내리는 것이 아니라,

내 눈과 귀와 가슴에는 “짹깍짹깍” 시간이 내린다.

 

다른 시간이 역에서 내리고 또 내린다. 그 곁에 서 있는 우리는 세모에서 내린다.

그리고 새해 역을 향해 출발한다고 기적을 울리며

역무원의 목청을 길게 빼는 “출발”소리에 우리는 열차에 다시 올라탄다.

저 뒤로 2023년이 보인다.

그 흔한 포옹 한 번 제대로 못한 계묘년의 시간이 자꾸 멀어져 간다.

아니, 내가 계묘년으로부터 멀어져 간다

 

언젠가 라디오를 틀고 겨울풍경에 관하여 프로그램 진행자와

기상 캐스터가 눈에 관해 주고받고 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김캐스트, 지금 내리고 있는 눈이 올해 가장 많이 내리는 눈 같은데,

눈과 눈깨비 누가 판정을 하며 진눈깨비도 눈으로 간주되나요?”

“예. 나름의 기준이 있는데, 각 지역 기상관측소에서 관측직원이

맨눈으로 확인할 수 있으면 눈으로 공식 인정합니다.

눈의 양이나 내리는 시간은 상관이 없고, 진눈깨비도 눈에 포함됩니다.

여전히 사람의 눈으로 하늘의 눈을 판별하고 있습니다.”

“하하, 참 재미있네요!”

 

갈수록 심해지는 지구상의 기상이변에도 불구하고,

수도권의 금년의 첫눈은 11월 하순경 내렸으나

올해 온 세상을 흰색으로 덮어버린 가장 많이 내릴 눈은

언제 도둑처럼 밤과 새벽에 몰래 내려와 사람들의 가슴을 적실지 모른다.

그리고 누군가는 “저렇게 많이 내린 눈 봐라~ 온 세상을 하얗게

만들었잖아!”하면서 어김없이 호들갑을 떨 것이다.

 

어쩌면 하늘에서 떨어지는 “첫눈(雪)”을 보자마자,

오래 전 어느 날”첫눈(目)”에 반했던 사람의 얼굴이 불현듯

되살아나는 것은 아닐까?

서로 뜻은 다르지만, “눈(雪)과 눈(目)”을 뜻하는 한자의 우리말 “눈”이라는

발음은 같은 단어 때문에 기억에 혼선이 빚어지면서 우리의 몸과 마음이

순식간에 야릇한 추억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건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런 마음과 심리가 모이고 모여

추억을 찔러 해마다 첫눈을 재촉하고 기다리는 게 아닐까 싶다.

 

이런 이유가 근거가 있는 말이냐고 나에게 묻는다면,

근거가 있는 말은 아니지만, 이 말만큼은 꼭 하고 싶다

“그래도 눈(雪)에는 누구에게나 분명 추억과 연정이 스며 있지 않을까요?”

 

아무리 세상을 어둡게 살거나 목석 같은 사람이라도 눈을 보면

“눈이 와요”하고 문자를 보내기나 전화나 말하고 싶은 사람이

꼭 한두 명쯤은 있을 것이다.

눈이 온 날, 눈 마당에서 같이 뒹굴고 장난치고 싶은 사람,

창 밖을 같이 내다보고 싶은 사람, 손 맞잡고 걷고 싶은 사람,

따뜻한 커피 마시며 소곤소곤 이야기 같이 하고 싶은 사람,

가슴에 머리 대고 응석부리고 싶은 사람, 누군가의 이름이

가슴 한편에 박혀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대지에 눈이 내리면

우리 마음에는 그리움이 내리는 건 아닐까?

그래서 일년 내내 눈이 기다려지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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