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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이야기

나이 한살 더 먹어보니!

작성자恩波 안균세|작성시간24.01.09|조회수275 목록 댓글 0

갑진년 새해가 밝아 나이를 한 살 더 먹어보니,

지난날과 걸어온 뒤안길도 보이고, 또 태양 솟아오르는 희망찬 새날과 앞길도 보인다.

그러나 팔십대에 올라서서 나이 한 살 더 먹어보니, 감회가 남다르며 전같이 않다.

 

옛 시조를 보면, 탄로(嘆老)와 백발을 소재로 한 작품이 많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이랄 수 있는 시조로는

고려 말기 우탁(禹倬, 1262~1342)선생의 작품 두 편을 들 수 있다.

그 하나가 “춘산에 눈 녹인 바람 건듯 불어 간데 없다/ 적은 덧 빌어다가

머리 위에 부리고저/ 귀 밑의 해 묵은 서리를 녹여 볼까 하노라.”는 시와

다른 하나는 “한 손에 막대잡고 또 한 손에 가시 쥐고/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렀더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는 시조다.

 

대개 늙기를 슬히 하는 시가 인생무상을 주조로 허무와 감상적일 수 있는데 반해

이들 시조는 삶의 의지와 저항, 풍유의 여유마저 깔고 있어 그나마 다행스럽다.

요즘을 백세시대라 한다. 구차하게 백발을 한탄하느니 보다는 인생을 관조하며

아름다운 노년을 예찬해도 좋을 축복의 시대로 들어서고 있다.

그만큼 장수와 더불어 향유의 시간이 길어졌다는 말이다.

 

지난 연말, 오랜만에 책상 서랍과 옛 서류봉투를 정리하다 묵은 수첩이 눈에 띄었다.

3,4년 전에서부터 족히 십 년은 넘긴 기록들이다. 친척, 친구, 지인들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빼곡히 적혀 있다. 순간적으로 쉬지 않고 훑어 내려갔다.

웬걸 그 동안 세상을 떠난 친척, 친구들이나 지인들의 이름이 많이 띄어

새삼 놀라고 말았다. 고향,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대학교, 그리고 직장동료,

사회지인 등등….. 그들의 얼굴이 스치며 공허감이 일시에 밀려왔다.

또한 연락이 서로 두절되어 근황을 전혀 모르는 친구, 지인들의 이름도

참 많이 보인다. 개중에는 내가 신세 진 분들도 있다.

 

세월이 빨리 흐름을 절감하면서도 참, 많이 보고 싶은 얼굴들이었다.

그간 잊고 온 세월에 자괴감마저 들었지만, 새삼 그 얼굴들이 그립고 그 이름을

불러보고 싶었다. 생전에 또 자주 만날 때 함께 엮었던 추억과 시간들이

애틋해 그렀고, 각자마다 그와 맺었던 인연 또한 나름대로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러한 애틋함과 공허감이 일시에 밀려오면서도 순간 자신이 세월에

밟히고 부대끼며 그 무게와 상황에 눌리며 이 나이 먹기까지 잘도 버텨 왔구나

하는 야릇한 감회마저 스쳤다.

 

최근에 나온 연구결과로는 장수에 교우관계가 큰 도움을 준다고 한다.

호주 연구팀이 70세 이상 노인 1477명을 10년간 조사한 결과로는 교우관계가

가장 좋은 492명은 하위 492명보다 22%나 장수했다는 것이다.

대화상대가 있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두뇌활동과 면역체계가

활성화되고 스트레스에도 잘 대처하기 때문이라 한다.

 

좋은 친구와 대화 상대할 지인들이 주변에 많다면 외로울 순 없다. 만나고 서로를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지고 모두를 품어주며 사랑하고 관용할 수 있는 존재에 감사

하게 된다. 그래서 “수명은 친구에 정비례한다”는 장수공식이 성립하고 그래서

외롭지 않고 건강하며 사랑과 존경을 받는 노후생활이 보장되는 것이 아닐까?

 

노 철학자 김형석선생(103세)은 수년 전, 신문 인터뷰에서 “살아보니 인생의

절정기가 철없던 청년기가 아니라 인생의 매운 맛, 쓴 맛을 다보고 무엇이 좋고

무엇이 소중한지를 알 수 있는 시기, 곧 ‘60대 중반에서 70대 중반’이다”라고 했다.

참으로 동감가는 말이다.  나는 이따금 “늙음도 축복”이라고 자위하며 감사할 때가

있다. 즉 누구의 말처럼 “나이 먹음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라고….

노년의 삶이 가장 자유스럽고 개성적이며 주체적이다 싶기 때문이다.

거의 내 마음대로 시간을 짜고, 마음대로 사고하고, 마음대로 행동하고,

대충 내 삶을 내 생각대로 간섭 없이 즐길만 하기에 그렇다.

젊은 시절에는 이상과 야망을 키우고 일터와 가정경제에 얽매이고 사회망 확장에

신경 써느라 어디 감히 꿈이나 꾸어 볼 수 있었던가 말이다.

 

자! 우리 친구들, 

數步一停 十步一(몇 발자국 가서 한번 멎고, 열 발자국 가서 한번 쉬어야 하는) 

그날까지 우리 자주 연락하고 만나고, 남은 인생여정을 함께 가자 우!

안 보면 보고파지고 보면 반갑고 푸근함을 가진 우리들,

이래야만 직성이 풀리는 이 우정과 사연을 이 땅 위에 어디서 찾으며 뉘가 가늠할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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