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南齋글방

除金沔義兵大將敎書

작성자南齋|작성시간17.08.31|조회수5 목록 댓글 0

除金沔義兵大將敎書


王若曰義莫重於急病讓夷忠莫大於忘身殉國承命盡責是臣子之恒規居官供誠亦職分之常道烏取乎見利而動無貴夫感恩而行惟其不董而效其勤不督而赴於難方可謂之忠臣烈士庶無愧於茂績鴻功孰茲之能惟我臣沔念茲染齒之殘孽蓄此朶頤之凶謀萬里連舳艫先受害者六十州郡半歲厭干戈靡孑遺於億兆民庶三京旣己榛沒   

    




七廟忽焉塵蒙終至失險而再遷未能背城而一戰當此之時咸思保全姓名不問大小臣民勁卒銳兵束手於營鎭之伍金章紫綬竄身於林藪之間爾能獨自拔跡於俎豆奮然繼武於箕裘丹心所存皎然如日赤手而起從者如雲際平時而投簪幾年棲遲林壑遭喪亂而奮劍一朝衝突戈義士附尾而承風武夫開口而奮氣夫豈功利乎見誘盖非職守焉是階惟其耿耿忠義之心了不規規死生之際時以士竭其力功賴以成數百人破甲殘兵雖皆張空弮而來也七十島死寇餘醜可以制白挺而撻之一擧鼎津則殷血混江再戰茂溪則僵尸滿野豊功可揭麒麟之繪懋賞寧靳茅土之封雖錫爾銀緋之秩實使予赧赬于顔頃緣人或有言得聞兵多無統士各自爲戰雖曰義以之名將苟非其人抑恐軍無所總宜擇一介司命俾統闔道義師是庸拜爾慶尙道義兵大將使遠近諸軍皆管攝一身惟命令約束是聽使耳目心力爲一爾其刑人殺人劓刖人義吹之呴之撫靡之惟其仁遠斥堠多間諜謹烽燧指使由已嚴坐作齊進退愼擊刺策應時明今不多門可乃有濟鳴呼一片鰈域山河汚染於腥무羶千里龍灣日月荏苒於偏保數步之外非吾土千乘之重將疇依所幸者嶺南之兵稍有義氣山西之望惟在忠良灑十三代深羞非爾誰也恢二百載舊業惟子能之卽日天日方嚴永雪載路寇皆赤脚而露體卒多土處而火熏縮頸龜藏無意豖突苟一離其巢穴必齊斃於風霜驅諸廣野平原彼焉能用其武加之火砲矢石我可以乘其機母令失時徒貽後悔故
玆敎示想宜知悉






의병대장교서

 

왕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의는 환란 때 서둘러서 오랑케를 쫓는 것보다 더 중할 수 밖에 없고, 충성은 몸을 잊고서 나라에 순절하는 것보다 더 클 수 없다. 명령을 받고 책임을 다하는 것은 이것이 신자(臣者)의 언제나 지킬 일이며 벼슬에 처하여 정성을 바치는 것 또한 직분의 떳떳한 도리이니, ()를 보고서 움직임은 취할 것이 무엇이며, 은혜에 느껴서 행하는 것은 귀할 것이 없도다. 오직 동독(董督:감사하며 독촉하고 격려함)하지 않아도 그 근로(勤勞)를 바치고 재촉하지 않아도 어려움에 내닫는 것이야 말로 가위 충신 열사로서 그 공이 풍성하고 홍열(鴻烈:크고 위대한 공적)됨에 부끄러움이 없으리라. 누가 이것을 능히 할꼬. 오직 나의 신하인 면()이로다. 생각건대 저 염치(染齒)의 족류(族類)는 침략의 흉계를 품고 배들이 만리(萬里)에 이어 왔으니, 먼저 해를 입은 곳은 경상도의 십주군이다. 반년을 방패와 창에 시달렸으니 억조창생은 남음이 없을까 보다. 삼경(서울.개성.평양)은 이미 잡초를 묶었고 칠묘(七廟)는 문득 먼지가 쌓였도다. 끝내 지키지 못하고 재차 옮기기에 이르면서, 능히 성벽을 등대고 한번 싸워 보지도 못했구나. 이때를 당하니 대소신민(大小臣民) 할 것 없이 모두 성명(姓名)을 보전할 것만 생각하여 굳센 졸개, 날랜 병졸들은 영()과 진()의 대열에서 손을 묶은 듯하고 금장자수(金章紫綬)는 숲과 늪 사이에 몸을 숨겼는데, 그대는 능히 혼자 조두(俎豆:제사 때, 음식을 담는 그릇의 하나 )에서 발신하여 분연히 부업(父業)을 계승하였도다. 단심(丹心)에 가진바는 밝기가 태양인양, 적수(赤手: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손)로 일어서매 따르는 이는 구름과 같구나.

   

내 때에 즈음해서 벼글을 던지고 몇해동안 임학(林壑:산림의 깊숙하고 으슥한 곳)에 깃들더니 이 난리를 만나자 칼을 휘둘러 하루 아침에 난관에 부딪치도다. 의사(義士)는 뒤를 따라 추종하고 무부(武夫)는 아연히 투기하도다. 그것이 어찌 공리(功利)에 유혹된 것이라 할 것이며, 또한 직수(職守)에 빙자한 것도 아니로다. 오직 그 경경(耿耿:충성스런 모양)한 충의의 마음이 조금도 생사의 즈음에 망설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기에 의사(義士)는 그 힘을 다하고 공로는 여기에서 이룩한 것이다. 헤어진 갑옷에 쇠잔한 군병 수백명이 비록 다 빈 활을 벌이고 왔다할망정 십섬() 모진 도적의 여류(餘類)는 가히 큰 몽둥이를 마련해서 칠 수 있었도다. 한번 정암진(鼎岩津)에서 갈기니 붉은 피는 강을 흐르고, 재차 무계(茂溪)에서 싸우니 뻗은 송장은 들판에 가득하였도다. 큰 공로는 기린각(麒麟閣:중국 한나라의 무제가 장안의 궁중에 세운 누각)에 초상을 걸만 하고 후한 상으로는 어찌 모토(茅土)의 봉작을 아끼겠는가. 비록 너에게 은비(銀緋)의 계급을 주었지만 실로 나로 하여금 낯을 붉히게 했다.

 

요즈음 남이 흔히 말하는 경우로 인해서 듣건대, ()은 많아도 통솔이 없다고 한다. 사람마다 각자가 싸우니 비록 일러서 의병(義兵)이라 이름하니 장수가 적격자가 아니면 도리어 군의 통섭이 없을까 두려워 진다. 마땅히 한 사람의 사령(司令)을 가려서 온 도내의 의병을 통솔케 해야 하므로 이에 너를 경상도 의병대장으로 봉하여 원근의 여러 군병을 모두 혼자서 관활하고 통섭하여 오직 명령과 약속만을 들어서 이목(耳目)과 심력(心力)을 하나로 되게 하도록 하노라. 그대는 그 사람을 벌주고 사람을 죽이고 사람을 육형(肉刑)하되 한결 옳음에서만 할지며, 그들을 불러주고 그들을 꾸짖어 주고 그들을 쓰다듬어 주되, 오직 어질게 할지어다. 척후는 멀게하고 간첩을 많이 놓고 봉화 올리는 것은 조심스럽게 하되, 지휘가 자신에서 나게 할지며, 좌작(坐作:앉음과 일어남)은 엄하게, 진퇴는 민첩하게, 치고 찌름은 삼가게 하되, 책응(策應)을 되도록 명백히 할지어다. 호령은 여러 곳에서가 아니라야 일은 성취의 길이 있느니라.

 

슬프다. 한조각 접역(우리나라)은 그 강산이 비리고 누린 냄새에 더러웠고, 천리 용만(龍灣)은 그 세월이 한 모퉁이를 지키는데서 흐르고 있도다. 몇 발자국 밖은 내 땅이 아니거니 천승(千乘)의 무게는 장차 어디에 의탁할꼬. 다행한 바는 영남의 병대는 자못 의기를 갖고, 산서(山西)의 촉망은 오직 충량(忠良 :충성스럽고 선량하다)에 있음이로다. 十三대 깊은 수치를 씻을 이는 네가 아니고 누구랴.

 

이백년 옛 기업을 회복함은 오직 그대가 능히 하라. 오늘의 천기는 바야흐로 엄동이라 얼음과 눈이 길게 깔려 있도다. 도적은 다 붉은 종아리에 벗은 몸뚱이로 거개가 많이 굴에 묵고 불에 쬐도다. 목을 움츠리고 거북처럼 파묻히니 돼지처럼 충돌할 뜻은 없도다. 진실로 한번 그 소혈(巢穴)을 벗어나면 반드시 모두 풍상에 쓰러지리라. 평원 광야에 몰아세우면 제가 어찌 능히 무력을 쓸 것인가, 화포시석(火砲矢石)으로 내리 덮치면 우리는 그 기회를 탈수 있다. 이때를 놓치고 후회하지 말지어다. 그러므로 이렇게 교시하거니와 잘 알것이라고 생각된다.



: 난중잡록(趙景男)에는 闔道大將이라 하여 경상도와 전라도를 관섭하였다로 하였음.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