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보물은 그 보물이 아닙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마 6 :19 - 21)
이 말씀은 비유임이 분명합니다. 눈에 보이는 보물을 눈에 보아지 않는 하늘에 쌓아 둘 수 없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많은 기독교인이 세상의 보물인 돈을 세상을 위해 쓰지 말고 교회에 헌금하면 하나님이 30베 60배로 갚아 주신다고 한때 부흥사들의 단골 메뉴이기도 하였고 오늘날도 심심찮게 교회의 강단에서 완곡하게 그런 뉘앙스로 전하여지기도 합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딤전6:10)라는 말씀도 있고 하니 더욱 그러합니다...... 과연 그런 뜻인지? 깊이 다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보물이란 이 세상에서 가치 있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그 보물을 어디에 두거나 혹은 두지 말라고 하는 것은 자기의 가치를 어디에 두고 있는가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명언이 있는데, 그게 황금이 돌처럼 여길 만큼 가치가 없다는 말이 아니라 돈이라는 것에 삶의 목적을 두지 말라는 뜻이지요…. 그러니까 어떤 것에 가치를 부여하여 그것을 보물로 여긴다는 것은 그 어떤 것을 이루어 내야 할 목적으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존재하는 모든 것의 가치는 존재 이유에 있습니다. 사과나무의 존재가치는 가을이 되어 사과가 주렁주렁 열리는 것에 있고 젖소의 가치는 하루 몇 리터의 우유를 생산하느냐에 따라 존재가치가 달라지지요.
그렇다면 사람의 존재이유와 가치는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어느 스님이 공개강좌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을 힘들어하고 고민과 걱정을 많이 하는데 왜 그렇게 번뇌가 많은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인생이 살아가는 것은 살아 있으니까 살아가는 것뿐이라고 간단하게 정리하였습니다.
언뜻 들으면 단순 명쾌한 말 같지만, 인간은 다른 자연의 동물과는 다릅니다. 동물들이야말로 자연환경이 어떻게 변하여도 번뇌하는 일 없이 그렇게 변하는 자연환경에 잘 순응하면서….그야말로 살아 있으니까 살아가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다른 동물에게는 없는 비교의식이 있고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있고 무한의 가치를 창출하고자 하는 영혼의 염원이 있어서 환경의 개선과 자신의 개발을 위해서 자동으로 끊임없이 노력하게 되어 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인간 존재 자체의 구조가 자연환경을 인간에게 적합한 환경으로 고쳐 만들려고 끊임없이 연구 노력하는 구조이며 그것이 천성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자기 처지와 환경의 개선을 위해서 돈이나 명예나 능력을 upgrade 시키는 일에 가치를 두고 절대 명분으로 삼지만, 어느 순간 그 절대 명분이 허상이라는 것을 깨달아 절망과 허무를 견디기 어려워합니다.
왜냐하면, 이 땅의 모든 것은 하늘 것의 모형에 불과한 것인데 허상인 이 땅의 것을 존재의 가치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이 땅은 하늘에 연결되어 하늘의 상태를 나타내는 것으로 하늘이 흐리면 땅이 비에 젖고, 하늘이 따뜻하면 땅에 봄이 오고 꽃이 피고 하늘이 차가워지면 땅에 얼음이 얼고 겨울이 오는 것입니다. 이처럼 땅의 모든 현상의 근원은 하늘에 있고 땅은 순환하는 과정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와같이 자연의 이치가 하늘이 근원이듯이 사람의 살아가는 의미의 근원도 하늘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보물로 비유된 너희 인생의 가치와 의미를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에게 두라고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사람이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을 따라 지어졌다고 하는 것은 사람은 이 땅에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대리하는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사람은 마땅히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의 의와 뜻을 자신의 보물, 자신의 존재 목적, 존재 이유로 여겨야 함이 정상입니다.
성경에서 어떠한 것이 보물인가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33:5. 여호와께서는 지극히 존귀하시니 그는 높은 곳에 거하심이요 정의와 공의를 시온에 충만하게 하심이라. 네 시대에 평안함이 있으며 구원과 지혜와 지식이 풍성할 것이니 여호와를 경외함이 네 보물이니라
고후4장6.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우리가 이 보물을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여호와를 경외함이 보물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우리에게 비추시는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보배이고 보물입니다. 그러니 이 땅을 사는 우리가 보물이라고 하는 것과 성경이 말하는 보물은 다른 것입니다. 그러니 이 둘을 동시에 섬기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고 하십니다.
눅16:13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한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는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에는 차등이 있게 마련입니다. 하나님과 재물, 하늘의 보물과 땅의 보물 둘 중에 어느 쪽을 주인으로 섬길 것인가는 우리의 선택입니다.
하나님은 섬김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재물은 이웃을 섬기기 위한 수단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눅16:9) 그러나 깊이 생각해보면 결국 돈이 문제이고 돈이 그렇게 중요해 지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을 섬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과 재물 중에서 어느 것을 우선으로 하느냐는 것은 최종적으로 자기 자신과 하나님 중에서 어느 쪽을 우선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인간은 늘 하나님과 같아 지고 싶어 합니다. 선악을 자기가 판별하고 싶고 생(生)과 사(死)를 자기가 결정하고 싶어 합니다. 자기가 하나님이 되어 모든 것을 결정하고 싶은 것이지요. (창3:22-24)
이렇게 인간은 각자가 자기 소견대로 살고자 하는 욕망이 강렬하지만, 불행하게도 인간은 끓어오르는 자기 욕망을 제어할 능력이 완전치 못합니다. 결과적으로 이 땅에서는 끊임없는 갈등과 전쟁과 고난이 그칠 날이 없습니다.
성경은 이러한 세상을 향하여 명확하게 해결책을 제시하십니다.
마 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너희가 구하는 평강과 희락)을 너희에게 더하리라......너희 각자의 소견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소견을 가장 가치 있는 보물로 여겨 거기에 마음을 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가장 명시적으로 제시한 성경 말씀이 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8.)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롬14:17.)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일은 범사에 감사하는 것으로 시작되고 그 감사하는 능력을 회복하면 의와 평강과 희락이 이루어진다는 약속입니다.
감사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대단한 능력입니다. 그런데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능력은 이 땅에서 실제에 부딪힐 때마다…. “범사(凡事)”의 내용에 따라 결코 만만하게 실천 할 수 있는 그런 일이 아닙니다.…….주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감사가 나올 수 없는 일이 처처에서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우리의 보물이 있고 거기에 우리의 모든 가치가 있다고 고백하지만 “범사(凡事)”에 걸려 자신도 모르게 두 주인을 섬기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그것은 나의 이중적인 비참함입니다.....그러나 이러한 비참함을 자각하여 가슴에 안고 있는 모두에게는 내가 결코 너를 혼자 두지 않으신다는 그리스도의 은혜의 약속이 우리를 든든하게 지켜 주실 것입니다........ 그 은혜 안에서 평강을 누리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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