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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우회소식

아버지와 아들, 서로 다른 인생...........안효영목사.............성경바로알기(17)

작성자woongdo|작성시간23.12.27|조회수71 목록 댓글 0

하나님의 섭리....130년을 험악하게 산 아버지와 아들.... 야곱과 요셉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전 인생을 성경에서 상세하게 기록한 인물로 야곱과 그의 아들 요셉을 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둘은 서로 다른 인생을 살았습니다. 이들의 일생이 어떻게 서로 다른지를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야곱 이야기입니다. 그는 130세의 노인이 되어 애급 왕이 나이를 묻자 그가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사람임에도 내 나이 130세라 참으로 험악한 세월을 살았습니다라고 했습니다야곱이 태어나기 전에 하나님은 야곱과 함께하여 주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 모친에게 네 복중에서 두 민족이 나누이는데.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게 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이 말씀은 어린 자인 야곱이 하나님을 알기도 전에 이미 하나님이 먼저 야곱을 택하셨다는 사실을 말하여 준 것입니다. 우리는 내가 의지를 발동하여 예수 믿었다고 생각하지만, 성경은 야곱의 이야기를 통하여 네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너를 먼저 택하였다고 하십니다.

 

 이 사실을 요1:12.13에서 이렇게 확증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이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이 말씀은 이 땅에 빛으로 오신 예수를 영접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했으니 내가 먼저 영접한 것으로 생각되기 쉬우나 13절에서 영접하는 그 일이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뜻으로 난 자들이라고 선언하십니다. 이처럼 나의 의지로 내가 영접한 것이 아니고 야곱같이 하나님이 먼저 나를 선택하여 자녀 삼아 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이 사실을 아주 분명하게 인식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손을 잡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나의 손을 잡고 계시는 것입니다. 내가 잡고 있다면 내가 실수해서 손을 놓을 수도 있을 것이지만 완전하신 하나님이 나를 그의 품에 안고 있으시니 우리는 평안을 누릴 수 있고 그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의 품 안에서 자라난 야곱이 바로 왕 앞에 내 인생 130년의 세월이 험악하였다고 했는지가 궁금합니다. 그래서 야곱과 요셉의 일생을 비교해서 살펴봅니다. 이 둘은 태어나면서부터 하나님이 함께 하셨으며 참으로 치열하게 자기 일생을 살았습니다. 그들은 정말로 적당히 살지 않았습니다.

 

 야곱은. 자기 인생의 방향을 자기가 재단합니다. 자기가 계획한 대로 방향을 잡고 열심을 다 합니다. 형 애서의 약점을 이용하여 팥죽으로 장자의 명분을 가로채고 외삼촌 집에서 자기 마음에 드는 부인을 얻기 위해 갑절의 수고를 마다하지 않으며. 재산을 더 많이 가지기 위하여 외삼촌과 지략 대결을 한 것이나....얍복강에서 형으로부터 살해 위협을 당하게 되니까, 강을 건너는 순서를 자기가 덜 아끼는 부인부터 차레로 1. 2진으로 삼고 자기가 제일 사랑하는 라핼을 3진에 두고 그 뒤에 마지막으로 자기가 건너가는 계획을 세웁니다. 앞에서 분란이 생기면 도망갈 시간을 벌자는 계산이지요...,,결과를 자기가 만들어 내려고....온갗 지략과 노력을 다합니다.....당연히 험하고 고된 일생을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야곱이 죽은 줄 알았던 요셉을 만나고 그 덕분에 애급 왕 앞에서....내 인생 130년이 참으로 험악한 세월이었다고 말한 그의 마음을 유추해보면. 늘 자기가 더 크고 좋고 안전한 것 가지려고 그렇게까지 아등바등하며 살지 않아도 되었는데.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하나님 보다 앞서가려는 괜한 욕심을 부려 험악한 인생을 자취했다고 하는 회한의 고백일 것입니다.

 

 요셉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그가 어릴 때부터 노예로 팔리고 보디발의 집에서 노예로 살 때도 모함을 받아 감옥에 있을 때도나중에 총리대신이 되었을 때도 성경은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하셨다고 합니다. (39:23.41:25)

대표적인 구절을 봅니다.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그를 사니라 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39:1-2)

 

....이때 함께 하였다는 원어가 함께 결합하여 있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곡식을 사러 온 형들과 극적으로 만났을 때 그는 자기와 결합되어 있는(아교풀로 전면이 붙어져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그 하나님이 자기를 애급으로 먼저 보내어서 이때를 준비시켰다고 합니다. 노예로 팔려 와서 장성한 총리대신이 되기까지. 자기와 결합하여 함께하신 자기 인생의 하나님이 오늘을 있게 하셨다는 자기 인식입니다.

 

 여기서 우리의 질문이 있습니다. 노예로 팔리는 치욕을 당할 때 하나님이 함께 계셨다면 요셉을 노예에서 구해주시지는 않고 보고만 있었다는 말씀인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언제 까지 입니까. 하나님의 때가 차기까지입니다. “그가 한 사람을 먼저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그의 발은 차꼬를 차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으니.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 (105:17-19)

........하나님의 사람으로 장성한 분량에 이를 때까지 기다려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야곱 같았으면. 노예로 팔려 가는 그 와중에 어떻게 하든지 탈출하려고 계획을 세우고 탈출하여 자기가 원하는 결과를 얻고자 했을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 앞에 두 가지 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야곱처럼 하나님보다 앞서가면서 자기 힘으로 결과를 얻으려고 노심초사하면서 130년의 험악한 인생을 사는 길이 있고. 요셉처럼 설사 감옥이라도 불평 없이 신실하신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고 있으시다는 믿음으로 사는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요셉은 무기력하고 소극적으로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흘러가는데로 그 상황 안에서 최선을 다하며 열심히 살았을 뿐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자기가 원하는 결과를 만들려고 열심히 산 것이 아니고 자기가 원하는 결과가 자기를 찾아오도록 열심히 산 것이라 할 수가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요셉이 더 깊은 믿음의 삶을 산것 같아  좋아 보이긴 하지만 요셉이 당한 것 같이 내일을 보장할 수 없는 감옥 같은 상황을 현실에서 만난다면 과연 견디어 낼만한 담대함이 나에게 있는가? 입니다

 

 우리가 잘못 가기 쉬운 신앙은.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를 요셉과 같이 딱 붙어서 도저히 분리될 수 없는 함께 하시는 하나님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고 객관적이고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너와 나의 하나님으로 인식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라는 주체가 있고 객체로서 하나님. 내가 목소리 크게 내어 불러야 하고 그래도 안 되면 금식을 하고. 새벽기도로 40일을 하루도 빠지지 않아야 겨우 돌아봐 주시는 하나님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칫하면 하나님이라는 우상을 섬기는 것과 같아지는 것입니다.

 

 성경이 이 둘의 일생을 대비(對比)하는 것은 인생이 세상에서 높임을 받거나 낮아진 것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고 인생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장성하게 자라나는 것에 그 고귀함이 있다는 새 길을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버지의 온전하심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5;48)

 

  야곱과 요셉의 일생이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인생은 이 세상에서 대단한 사람이 되어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가 아니고 세상의 부와 명예와 질곡(桎梏)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장성한 자에 이르기 위한 여정(旅程)이고 그렇게 하나님과 함께 한 여정(旅程)이 인생의 거룩함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 해를 뒤 돌아보며..................woongdou@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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