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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우회소식

평안(平安)하시지요............안효영목사..............성경바로알기(36)

작성자woongdo|작성시간26.06.05|조회수74 목록 댓글 0

  인생의 긍극적 목적이 행복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행복의 최대조건이 평안(平安)입니다. 유엔(UN)에서 발표한 2022년 세계행복보고서에 삶의 균형과 조화(Balance and Harmony)라는 주제를 다루면서 전 세계 100여 개국 사람들에게 설문 조사를 했습니다.

 "당신은 '흥미진진한 삶(Exciting Life)''평안한 삶(Calm Life)' 중 어느쪽을 더 선호하느냐는 질문에 전 세계 응답자의 74.3%가 평온한 삶(Calm Life)을 선호하고 흥미진진한 삶(Exciting Life)은 약 17% 에 불과하였습니다. 종교나 문화를 막론하고 인류의 압도적인 다수가 자극적인 즐거움이나 큰 성공보다는 내면의 고요와 평안을 인생에서 가장 높은 행복의 단계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통계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사람들이 행복을 가장 원하면서도 실제 조사에서 "나는 평안하다"라고 답하는 비율이 상당히 낮게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경제력(GDP)이나 기대 수명은 매우 높지만, 삶의 균형이나 행복지수의 순위는 세계 하위권에 머물고 있습니다. 왜 인간은 그렇게 행복하기를 바라면서도 실제로 평안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가?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가? 오늘 우리의 주제입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한복음 14:27)

 

 예수님은 세상과 다른 평안을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평안은 어떤 조건이 충족되어야 하는 것으로 자기가 처한 환경에 기반합니다. 통장 잔고가 넉넉할 때, 건강하고 자녀가 잘될 때, 사업이 성공하여 명예가 존중받을 때, 이렇게 "문제가 없고 모든 일이 술술 잘 풀리는 상태"를 평안이라 부릅니다. 그런데 세상에 문제가 없을 때가 있습니까? 고난과 분쟁과 미움과 투쟁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평안은 일시적이고 표면적이고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성경의 평안은 '관계''존재'에 기반합니다. 예수님의 평안은 내 안에 깊이 뿌리박힌 생수와 같아서 고난이 와도 마르지 않는 영속성을 가집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내가 너희 안에 너희가 내 안에 있어서 우리가 하나라고 하셨기에 그리스도인은 예수 안에서 예수 하나님과 연합하여 함께 사는 존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도 베드로가 감옥에 같힌 이야기를 우리는 압니다. 헤롯 왕이 야고보를 죽인 후 베드로마저 죽이려고 잡아들였습니다. 내일이면 사형장으로 끌려가야 하는 절체절명의 밤이었습니다. 그는 두 명의 군사가 지키는 가운데 두 겹 쇠사슬에 묶여 있었는데 천사가 구출하러 왔을 때, 베드로는 옆구리를 쳐서 깨워야 할 정도로 깊이 잠들어 있었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일이지요. 죽음 앞에서 깊은 잠을 잘 수 있는 이 평안은 살고 죽는 문제를 자신의 손이 아닌 그리스도의 손에 완전히 맡겼기에 찾아오는, 계산이 끝난 자의 평안입니다. (12)

 

그런데 이러한 평안의 핵심은 "평안은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받는 것"이라는 점에 있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요한복음 14:27) 너희가 애써 평안을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평안을 선물이고 은혜라고 합니다. 은혜는 값없이 주시는 것으로서 그야말로 공짜입니다. 내가 노력해서 만든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인간은 귀하면 귀한 것일수록 공짜로 받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면서 한편으로는 설마 그렇게 귀한 것을 공짜로 주다니 무언가 의심스러워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스스로 떳떳하고 싶은 원초적인 선한(?) 욕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자기 힘으로 행복하고 평안해지려고 끊임없이 노력하지요. 명상(冥想)을 하고, ()를 이루어 조직사회 안에서 명예를 얻고 체면을 지키려 합니다. 이렇게 인간은 자기가 노력해서 당당하게 평안과 행복을 확보하려는 성향이 있고 그것을 성경은 율법주의적인 성향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부지런히 도덕과 윤리의 모범이 되려고 노력합니다.

 

 이렇게 인간의 성향이 율법주의로 기울어지는 것은 먼저 통제 욕구 때문입니다. 내가 노력하고 관리해서 결과를 얻고 싶다는 욕구이지요. 은혜는 통제할 수 없지만, 행위는 내가 통제할 수 있으므로 믿음으로만은 불안하고 내가 뭔가 했다는 것으로 더 안정감을 가지려 합니다.

 

 다음으로 인간은 자존심 유지 본능이 있습니다. 완전한 은혜는 사실 인간의 자존심을 무너뜨립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존해야 한다이건 인간에게 굉장히 불편합니다.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자기공로를 끼워 넣으려 합니다.

 

 세 번째로 인간은 보상 구조에 익숙합니다. 세상은 전부 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있는 인과율(因果律)의 구조입니다. 그런데 복음은 원인이 없는데 결과가 오고 오히려 실패자였음에도 은혜가 주어지고 자격 없는 자를 의인으로 칭하여 줍니다. 이건 인간 사고체계와 정반대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할 수만 있으면 인과율의 체계로 돌아가려 합니다.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평생에 죽을힘을 다해도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어마어마한 빚을 지고 있는데 어느 날 채권자가 조건 없이 당신 빚을 다 탕감하여 주겠다고 하면 어떤 반응을 예상할 수 있습니까

 

 율법적인 반응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조금이나마 내가 갚는 것이 있어야지 완전히 공짜로 받는 것은 무언가 꺼림칙하고 양심이 개운치 않습니다. 일부라도 갚으려는 것은 선한 행동같이 보이지만 은혜를 은혜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조금이나마 자기 체면과 자존심을 세워보자는 속셈의 발로입니다. 인간은 그런 선한(?) 양심의 가책에 시달릴 수밖에 없어서 결코 평안을 누릴 수 없습니다.

 

  성경은 존재의 가치를 자기 힘으로 지켜보려는 무장이 해제되고 하나님 앞에 완전한 항복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예수님이 주시는 참된 평안을 누릴 수 있다고 합니다 그 완전한 항복에 대하여 성경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6:3-4)

 

 항복은 일부분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고 아예 그리스도와 함께 전체가 장사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옛날의 나는 죽어 없어지고 그리스도가 살리심을 받은 것처럼 우리도 살리심을 받아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살아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다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많은 성도가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신다는 그 믿음으로 살아간다고 입으로는 고백하지만 불쑥불쑥 올라오는 자기의(自己義)와 자존심 때문에 좌절에 빠지고 자기 자신에 대하여 실망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실망하지 말라고 그런 일은 단번에 되는 것이 아니니 삶을 연습하라고 하십니다.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딤전4:7-8)  경건에 이르는 연습은 하나님 앞에 항복하는 연습입니다. 이때 연습한다는 원어가 발가벗고 운동하고 연단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치장하는 모든 허례와 가식을 벗어버리는 그런 연습입니다.

 

 성경에서 평안, 평강, 화평으로 번역된 원어가 헬라어로 에이레네이고 히브리어로 샬롬입니다. 그 뜻이 평화 혹은 고요함 그리고 하나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 평화는 심리적이거나 전쟁이 없는 그런 고요함이 아니고 처지와 환경과 관계없이 하나님과 하나 되어 얻어지는 평안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5;9). 하나님과 하나 되어 화평한자가 되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로 대접을 받는다는 말씀이지요.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이 모인 방에 들어서서 처음 하신 말씀이 너희에게 평강이 있기를 바란다고 하셨습니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거듭 말씀하셨습니다. (20;19-21) 그만큼 예수님은 당신의 백성이 당신과 하나되어 하나님이 누리시는 모든 평강과 부요를 함께 누리시기를 간절히 바라신다는 믿음과 소원을 담아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하시고 지금 우리에게도 그렇게 축복하시고 계십니다아멘 아멘입니다.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임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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