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스크랩] 한국작가 2024 가을호 주간 살롱 <가을, 독서의 계절을 짚어보며>

작성자源坪齋 김유조|작성시간24.09.04|조회수2 목록 댓글 0

 

<주간 살롱> 가을, 독서의 계절을 짚어보며

 

여름 열기에 주눅 들었던 발길들이 가을바람을 타고 전시장과 공연장과 경기장, 그리고 가을 놀이터와 단풍 관광지 등으로 분주하다. 그런데도 가을은 정말 ‘독서의 계절’인가. 사실상 통계적으로 보면 가을은 분명 ‘비독서의 계절’이다. 사람들이 모두 이렇게 야외의 활동적 동선 위에서 분주한데 독서 대에 차분히 앉아있을 겨를이 어디 있을까. 실제로 가을에는 여름보다 15퍼센트 정도 도서 판매량이 줄어든다고 한다. 그런데도 ‘독서의 계절’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은 이 좋은 계절에 너무 놀러만 다니지 말고 책을 읽으라는 권고사항이자 격문의 성격이 아닌가 싶다.

만해 한용운 선생은 가을이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였지만, 법정 스님은 그렇지 않다고 설파하며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셨다. ‘가을은 독서하기에 가장 부적당하다. 이 좋은날에 그게 그것인 정보와 지식에서 좀 해방 될 순 없단 말인가. 이런 계절에는 외부의 소리보다 자기 안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게 제격일 것 같다. 그렇더라도 나는 이 가을에 몇 권의 책을 읽을 것이다. 술술 읽히는 책 말고 읽다가 자꾸만 덮어지는 그런 책을 골라 읽을 것이다’. 스님이 주신 말씀은 표면적인 뜻보다 사실은 내면적으로 새겨들을 내용인가 한다.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는 것은 세계에서 우리나라와 일본뿐인 듯하다. 심지어 당나라 대문호 한유 등이 등화가친을 말하였고 농경문화의 전통이 강한 중국에서도 지금은 ‘독서의 계절, 가을’이라는 말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 ‘가을, 독서의 계절’이라는 명제가 확립된 것은 일제의 문민 통치 강조시기인 1925년에 총독부가 서울에 도서관을 설치하면서 그 개관 날짜가 마침 계절적으로 가을에 맞물려서 ‘독서의 계절’ 운운하였고, 이를 당시 우리말 신문이 맞장구를 친 게 그 유래라고도 보고 있다. 유쾌하지는 않지만 독서를 강조한 것만은 나쁘지 않다.

일본이 ‘독서의 계절’이라는 개념을 정립한 것은 미국을 본받은 모양 같다. 미국에는 물론 그런 계절이 따로 없지만 <독서 주간(Book Week)>이 방방곡곡의 사정에 따라 계절과는 상관없이 설정이 되고 지역성에 맞추어 나름의 캠페인을 벌이는데 일본에서 이를 국가적으로 원용한 모양 같다. 하필이면 절기가 가을인가라는 데에는 해석들이 분분할 뿐이다.

조금 이야기가 빗나가지만 미국에는 “금서주간(Banned Books Week)"도 있다. 내용인즉, 책을 금하자는 운동이 아니라 과거에는 금서 목록이 존재하였고 또 책의 일부 내용을 삭제하던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서 책을 더 읽자는 취지의 캠페인을 벌이는 것이다.

전자시대에 돌입하다보니 독서, 특히 활자 책에 대한 외면이 세계적인 현상이 되고 있다. 물론 전자책을 읽는 것도 독서이기는 마찬가지라고도 하겠지만 전자매체가 갖는 찰나적이고 일회적인 특성을 생각해 보면 활자 책이 주는 사색과 음미의 오묘한 세계를 따를 수가 없고 전자책이 갖는 영상적 표피성은 아무리 비난하여도 지나침이 없을 성 싶다.

한편 활자 책이 퇴조하다보니 온라인 주문 시스템의 발전과 함께 책방들이 자취를 감추는 현상들이 심화되고 있다. 지식을 전자책으로 획득하건 활자 책을 온라인으로 구매하건 간에 책방의 존재가 무슨 상관이냐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책방의 서가에서 뒷짐을 지고 혹은 간이 의자에 앉아서 동서고금의 찬란한 지적 시공을 그윽이 사색하며 유한한 자신의 생애를 반추하다가 마침내 빼어드는 명저 한 편과의 랑데부는 개인의 삶을 살찌게 하고 그가 속한 사회와 국가의 존재에 무한한 가치를 부여하는 순간이 아닌가 싶다.

우리나라에 대형 서점 체인이 몇 군 데 있는 것은 세계적인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것 같다. 물론 꽤 오래전에 잘 알려진 큰 서점 하나가 문을 닫았지만 예컨대 미국의 <반슨 노블(Barnes & Noble)> 같은 대형 서점 체인이 조금씩 줄어드는 데에 비하면 아직은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다. 물론 동네나 학교 앞의 소규모 책방들이 문을 닫는 현상은 가슴이 아프지만.

최근 소식으로는 반슨노블 서점 체인도 분기 실적 발표에서 큰 순손실을 냈고 온오프 분사 계획도 무산되었다고 한다. 큰 서적상 보더즈(Boders)가 오래전 부도가 나면서 파산을 한 적도 있다. 맨해튼의 매디슨 스퀘어 가든 건너편의 그 큰 간판이 내려질 때 우연히 그 앞을 지나가면서 보고는 문명의 위기감 같은 게 느껴졌었다. 하지만 ‘분서갱유’와 ‘문화대혁명’의 인고 속에서도 중국의 문화는 사그러들지 않았다. 전통적인 서점이 문을 닫는 현상으로 문화의 흥망성쇠를 섣불리 논할 수만은 없으리라.

최근 어떤 대형 서점을 찾아보니 책 분류 코너를 바꾸고 고치느라고 야단이었다. 문득 반슨 노블 서점이 생각나서 가슴이 철렁하였다. 여러해 전에 그 서점은 만화 코너를 서점의 맨 한가운데로 옮기는 것이 아닌가. 아무리 활자 책 불황이라도 너무하다 싶었는데 우리의 대형 서점은 그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변방에 있던 만화책들이 서점의 중앙지대 가까운 데로 진입하고 있는 현상은 비슷하였다. ‘모든 미디어는 메시지’라는 맥루언의 주장을 턱없이 원용하면서 세태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어쨌든 어떤 형태, 어떤 내용의 것이라도 일단 책은 우리의 곁에 있어야하고 그런 책방은 건재해야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미국의 경우 전통서점은 몰락하여도 대형 양판점, 예컨대 월마트나 자이언트 이글 같은 데에서의 서적 코너는 예전의 전통적 책방 보다 규모도 크고 효율적이며 함께 있는 전자 코너의 e-북 리더기 등과 조합하여 새로운 전자책들을 쏟아내고 있다. 아까 말한 만화책은 물론이고 오디오 북, 즉 듣는 책도 부지기수이다.

우리나라도 인터넷 서적은 대형 서점 중심으로 벌써부터 스타트 업을 한 형세를 느낀다. 종이 책에만 연연하다가 다른 엔터테인먼트나 게임 등에 밀려 문화세계에서 쫓겨나기 보다는 새로운 미래의 지평을 개척하고 자리를 잡아가야 할 것이다.

이 가을, 어쨌든 독서의 계절이 다시 왔다. 단풍 여행길에 꼭 읽을 책 몇 권은 필히 지참하리라고 다짐해 본다.

<국제PEN한국본부 부이사장, 건국대 명예교수, 코리안드림 문학회 회장, 작가 세계 주간>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