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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세종대마와 종이 책 (미래시학 가을호)

작성자源坪齋 김유조|작성시간24.10.24|조회수6 목록 댓글 0

 

세종대마와 종이 책 (미래시학 가을호)

 

세종대마와 종이책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강원도 쪽으로 가다보면 여주 나들목 휘어지는 데에서 무슨 목마 같은 것을 휙 지나치게 된다. 생긴 지가 꽤 되었지만 지나가며 보는 순간의 호기심과 달리 막상 가까이에서 살필 길은 없었다. 고속도로 가까이에 있는 위치라서 오히려 관찰하기에는 스치는 시간이 너무 짧다.

“어? 트로이의 목마가 왜 저기에?”하는 정도의 의문문과 함께 거대한 목조구조물은 매번 시야와 뇌리에서 사라지기 일쑤였다. 그리고는 예전 투르키예 여행을 하며 보았던 에게 해 근방 트로이의 목마를 떠올리고야 만다. 서양편향인가 조금 자책도 하면서.

마침 금년 봄 식목일 즈음해서 산림청 소속 '산림문학회' 주관의 식목행사가 여주 인근에서 개최되었는데 나무를 심고 나서 다행히 그 목마를 구경할 기회가 생겼다. 여주 교외에 대형 임산물유통센터가 있는 데 우리나라 나무에 관한 종합전시관의 성격은 물론이고 임산물을 직접 켜고 상품화하는 현장의 체험 학습장을 행사 후에 안내 받게된 것이다. 그런데 그 가까이에 목마가 위용을 떨치고 있지 않은가. 나무와 숲, 관련 임업 일체에 대한 현장책임자의 설명은 예전 헐벗은 민둥산과 식목과 그 성장과정을 목도하며 자란 세대에게는 벅차고도 가슴 뿌듯한 대 서사로 받아들여지면서 나아가서 인류가 당면한 새로운 위기와 도전에 대한 깊은 사유를 불러일으켜 주었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책을 만드는 일에도 직간접으로 관련하며 평소에도 종이책에 대한 애착과 그 미래에 대한 염려를 항상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었는데 종이책의 원료는 바로 나무가 아니던가. 그리고 글을 쓰는 마음의 원동력은 자주 숲 속에서 얻어내지 않았던가.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목마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서 기원전 12세기경에 있었다는 트로이 전쟁과 목마 이야기는 잘 알려지다시피 신화적이기도 하고 역사적인 사건이기도 한데 목마에 숨은 그리스 군이 트로이를 격파하는 극적인 이야기이다. 켜켜이 쌓인 트로이의 유적은 하인리히 슐레이만의 발굴사로도 긴 이야기를 이룬다.

지금 트로이의 목마는 전해지지 않지만 옛터에 새로 만든 큰 목마가 관광객을 모으는데 전자시대에 걸맞게는 생각도 못한 새로운 흑역사도 만들어내고 있다. 예컨대 오늘날 컴퓨터에 루틴하게 심어놓은 바이러스 코드의 이름에 까지도 트로이의 목마trojan horse가 존재하는 형편이다. 미끼를 던져놓고 오래 숨어 있다가 역습을 하는 컴퓨터바이러스의 종류이다.

지금 투르키예 관광지의 트로이의 목마는 규모가 꽤 커서 목마의 성기부분에 사닥다리가 있고 여행객은 거기로 올라가서는 내부에 있는 카페와 식당에서 휴식을 하며 창밖으로 트로이평원과 멀리 에게 해를 내다보는 형태이다. 앞마당에는 로마시대의 전차가 있어서 한번 타고 사진을 찍으려면 몇 유로를 내어야한다.

여주에 있는 세종대마도 크기에서는 이에 못지않고 목마 위로 올라가면 식당과 찻집도 있고 창밖으로는 여주 평야를 내다보게 되어있다. 마당에는 쇼핑센터도 있고 놀이터도 있고 작은 장터도 있는 식으로 꾸며져 있어서 트로이의 목마 관광지에 못지않다고 할 수 있다.

트로이목마가 역사성으로 의미가 있다면 세종대마는 그보다 위기의 인류문명에 등대 같은 상징적 역할이랄까. 우리시대에 경종을 울리고 횃불을 올리는 봉수대 같은 역할로도 그 의미를 찾아볼만하다. 원래 이 목마를 만든 이유는 전국에 있는 큰 나무들을 지역과 수종에 따라서 상징적으로 베어 와서 목마의 구조물로 형상화하였다는 것이다. 그 의미는 나무가 자라면 그냥 그대로 두는 것이 아니라 때가되면 베어서 가치 있게 사용해야하고 그때 베어낸 나무에는 대기 중에 있던 탄소가 포집되어서 일종의 탄소통조림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베어낸 터에는 새로 육종 개발된 산소나무 신수종을 심어서 평소에는 산소를 대기 중에 뿜어내고 수령이 차서 베어내면 그 자체가 탄소 저장소인 것이다. 나무를 재목으로 써서 건축을 하면 철강이나 시멘트로 시공하는 것 보다는 지구상의 탄소발생량도 훨씬 적어서 오늘날 문명의 위기로 불리는 여러 징후들을 줄이거나 늦출 수가 있다. 우리시대의 문화와 문학의 절박한 주제를 여기 대마 구조물에서 찾고 영감을 얻을 수가 있지 않겠는가 싶다.

한편 자나 깨나 관심사인 종이책 부분에 관한 사유도 목마의 앞에서 슬금슬금 전개되었다. 종이책의 바탕이 종이이기에 산림파괴의 주범이라고 몰아치는 몰상식도 있다. 여기에 말하자면 나무 젓갈로 장단을 맞추는 비독서인이 있다면 한심한 노릇이다.

한동안 종이책을 전자책이 갈아치울 것이라는 전망도 지난세기말부터 팽배하였다. 필자도 그 미래예측에 일말의 동의를 한 적이 있어서 ‘킨들’같은 전자 리더기를 구입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전자책은 한동안 붐을 이루는듯하더니 그 후속이 여의치 않고 일반 독자들의 종이책 열망은 금방 회복되었다. 물론 일반적 독서열의 후퇴현상은 부인할 수 없는 대세이지만. 그러나 일부 잘 팔리는 저자들이 그들만의 카르텔에 안주하고 지난 세기 주지주의적 난해 시와 저술에 독자들이 식상하고 이반을 하더니 이번에는 역설적으로 그 독자들이 자신의 서정과 격정을 스스로 지어서 책으로 출판하는 열정적 붐이 생기며 종이책은 지난해 6만5천종의 출판기록이 금방 7만종 이상으로 상승하는 추세를 보이고도 있다.

전자책과 리더기는 과연 환경 친화적인가. 천만에, 그런 시스템을 확보하는 데에는 종이 책 보다도 에너지와 자원을 더 들여야 한다는 통계도 나왔다. 또한 종이책은 재생과 순환 및 산림자원의 육성에 도움이 되는 반면 전자책은 자원낭비와 쓰레기의 양산이라는 결과 예측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종이책이 만고강산은 아니다. 출판 시장이 위축되는 경향성도 주목해야하고 전통적인 것이 항상 올바른 셈법일 수도 없다. 잡지의 경우만 하더라도 종이책에서부터 서서히 웹진 매거진으로 옮아가는 추세를 거스를 수는 없을 것이다. 웹진 매거진도 물론 한때의 기세에 비추어서는 지금 둔화되어 있지만 쌍방향성이라는 전자시대의 특징을 무기삼아 독자들의 가독성을 높일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웹진 독서 툴tool이 자연친화적이라는 주장도 나올 수가 있다. 종이책의 내구연한은 최대 100년이라는 한계도 있다.

‘세종대마’ 앞에서 혼자서 많은 대화를 나누어보았다. ‘세종목마’가 더 친근한 호칭이 아닐까하다가 여주 군민들의 투표로 붙여진 이름이라기에 입을 닫았다. 새롭게 친숙하기 전 보수적 지적유희가 내 마음에 도사린 듯싶었기 때문이었다.

 

 

시, 세종 대마

 

저 멀리서 나타났다가

의문부호 형상으로 휙 지나가는 거대 목마

트로이의 목마라는 내 서양 취향도

한 순간에 사라지곤 했는데

 

나무 심던 어느 봄날에야 발길 닿았지

이 땅 곳곳에서 자란 나무들 중

적령기에 간벌되어 미쁘게 짜인 구조물은

더불어 살아온 나무와 숲의 표상이자

재목마다 탄소를 가두어 놓은 생명 곳간

 

자랐던 자리는 새로 심은 산소 나무에게 준

오염 시대의 헌신과 희망 서사

트로이의 목마가 되어

세상을 점령하라 세종 목마여!

탄소 중립의 전령이 되라

염원의 목탑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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