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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의 향기

광야소리 3100-3101

작성자맹물|작성시간26.06.14|조회수51 목록 댓글 0

●3100

<힘빼기> 은경축 성지순례 파견미사

일시: 2026. 5. 27
장소: 프랑크푸르트 한인성당

 

(INTRO)
사제서품 25주년을 기념하는 성지순례의 마지막 파견미사를 이곳에서 봉헌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신 김준한 신부님과 프랑크푸르트 한인성당 공동체에 감사의 인사를 먼저 드립니다.

저희는 천주교부산교구에서 2001년도 사제로 서품을 받았던 동기사제들이고, 오늘 이 미사를 끝으로 지난 10여일간의 순례지를 떠나, 저마다의 사목현장으로 돌아가 저희에게 맡겨진 소임을 다시 크고 작은 일상으로 살아내야 하는 사제들입니다.

그간 이 성지순례를 준비해주신 분들, 그리고 기도로 동행해주셨던 모든 이들과, 특히 저희가 기도의 지향으로 봉헌했던 많은 이름들을 기억하며, 지금 이 순간까지 베풀어주셨던 풍성한 은혜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미사를 봉헌하겠습니다.

잠시 침묵하겠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해주신 놀라운 일들을 기억하겠습니다.

(강론)
사제 생활 25주년 기념 성지순례를 간다고 했을 때, 도대체가 제대로 <기념>이라는 것을 할만한 인생이었는지, 짜달시리 내놓을 것 변변찮은 인생이 아니었는지, 교구 선후배 신부들이 돈을 보태서 굳이 성지순례를 보내주실 적에 민망한 마음도 없지는 않았습니다.

뭐, 25년이라는 숫자가 대수일 수도 없고, 또 그만큼 살아냈다는 물량적 사실만 가지고 기념 운운하는 것도 마땅치 않아, 신부생활 25년, 뭘했나? 되물을 때, 그랬습니다.

가장 보수적인 저의 답변은, 교회가 요구하는 것을 저는 지난 25년간 살았을 뿐입니다. 나에게 맞지 않는 옷도 있었고, 딱히 내가 원했던 것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완벽하지는 않았고, 때론 성실하지도, 어떤 경우는 그닥 친절하지도 못했지만, 지난 25년간 나에게 주어지는 소명을 지키기 위해, 적어도, 도망치지는 않았습니다. 지켜야 하는 그 자리를 적어도, 피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느덧 25년이 이렇게 흘러간 것입니다.

물론. 좀 더 잘했으면 더 좋았을텐데... 늘 떠나고 나서야 크고 작은 후회를 남기면서도, 지금 이순간까지 살아온 모든 시간에 대하여, 그렇습니다. 잘했건 못했건, 충분했건 부족했건, 나에게 맡겨진 자리를 지켜내게 해주신 것에 대하여, 진심으로, 분명히, 감사드립니다.

성지순례의 명분이라면 명분입니다. 저희들이 성지순례를 떠난 장소들은 대부분 성모성지였습니다. 성모님께서 발현하시거나, 성모님께 봉헌된 성당들이었지요.

성모성지들의 메시지는 일관되었습니다. "비는 자의, 빌어주는 그 힘이 바로 우리 안에 있음!"을 성모님께서 알려주셨습니다.

강하고 잘나고 가진 자들이 권력과 무력으로, 그 때나 지금이나 온통 내리누르는 세상에서, 이것은 제대로 된 세상이 아니라고! 구원은 결코 그런 것이 아니라고! 이렇게 산다는 일을 갖은 힘으로 내리누르는 방식으로는 결국 모두 다 죽을 것이라고!

비는 자! 그리고 빌어주는 자의, 그 빎에 의탁하고 무릎 꿇어, 나도 그 빌어주는 자의 하나가 될 때, 비로소 나와 당신은 죽지 아니하고 생명을 얻게 될 것이라고!

그렇게 빌기 위하여, 빌어주는 자 되기 위하여, 나의 힘을 빼는 것! 마치 오늘 복음처럼 말이지요.

선생님의 오른쪽과 왼쪽에 누가 앉을지 자릿싸움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마시는 잔, 당신의 죽음을 나도 마실 수 있으며, 당신이 받은 세례, 거듭남을 위하여 썩음과 죽음이라는, 나의 힘을 뺄 수 있을 때' 비로소,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로 왔다! 하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사는 길임을 성모께서 깨우쳐주십니다.

방법은 하나입니다. 힘을 빼는 것입니다. 나이를 먹을 수록, 신앙을 먹고, 하느님과 함께 살면 살 수록, 힘을 빼야 합니다. 내 힘을 빼야 남을 위해 빌어줄 수 있고, 내 힘을 빼야 남을 섬길 수 있으며, 내 힘을 빼야 당신을 사랑할 수 있고, 내 힘을 뺄 때 비소로 세상의 평화를 위해 비는 자 될 수 있습니다.

간신히, 이 한 줄, 얹기 위해, 25년을 돌고돌아 다시 사목지로 돌아갑니다. 내리누르는 자가 아니라 빌어주는 자, 저에게 주어진 이 자리를 제 숨이 떨어지는 그 날까지 지키게 해달라고, 다시 사제의 시간을 펼쳐주십니다.

민망합니다만, 다시 25년이 지나, 우리가 만날 수 있다면, 솔직히는 몇명이나 살아남아 그렇게 만날 수 있을지 알 수는 없으나, 설령 비록 못만난다 할지라도 우리, <빌어주는 자>로. 그렇게 힘 빼며 살아가는 하느님의 방식에 물들어가며, 우리 신부님들 모두, 이제는 우리들의 금경축 미사에서도 함께 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저희 은경축 사제반 데까누스, 정상천 스테파노 신부님께서 이번 순례에 대한 감사의 말씀을 저희 단톡방에 남겨주셨습니다. 그것으로 이 강론을 갈무리하겠습니다.

순례 정리와 감사

25주년 은경축 순례에 감사할 분이 많습니다.
교구장주교님, 그리고 총대리, 두 분의 주교님.

죄인 회개와 세계 평화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라며 늘 우리와 함께하시는 파티마 성모님.

그리고, 기도로 함께하는 각 사목지 신자들

삼위일체 대축일을 기다리며 버팀목 셋을 먼저 떠올려 봅니다.

또한,
이 순례가 무사히 잘 진행하고 마칠 수 있게 애쓴
순례 가이드 안젤라 자매님과 두 분 버스 기사님
리액션이 부족하고 호응이 약했을지라도
경청하려는 우리의 마음만은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순례지의 좋은 정보와 일정 진행하는 동안 참 수고 많으셨습니다.

좋은 날씨과 음식, 잠잘 곳을 이미 마련해 주시고 곳곳마다 당신이 만들어놓으신 곳을 보며 찬미할 수 있는 기회와 은총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끝으로 이 모든 순례 기획하고 애쓴 순례준비위원장 만수르님(계만수 신부님)과 문캅쓰(신문갑 신부님) 덕분에 편안히 일정을 보냈습니다. 고맙습니다.

함께 오지 못해 아쉬운 요섭형님(최요섭 신부님)과 건강상 이유로 함께하지 못한 맹 진학, 이상일 신부님, 천선생(천경훈 신부님) 또한 그 이름을 기억하며 이 순례를 마칩니다. 각자 기억하는 이들에게 주님 축복과 은총이 가득한 밤 되기를,기도합니다.

2026년 5월 27일
동기회 회장 정상천 스테파노 신부.

 

●3101

<윤지충과 아버지학교> 아버지학교 봉사자 미사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순교자>

 

(INTRO)
아버지 학교를 준비하는 봉사자들의 두 번째 미사입니다. 여러분들이 계셔주신 덕분에 우리들의 아버지 학교가 다시 시작될 수 있었고, 우리들을 통한 은총의 체험이 또 다른 아버지들에게 전달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게 되었습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땅에 떨어져 스스로를 죽인 밀알을 통하여 많은 생명을 얻게 될 것이라는 오늘 복음이야말로, 우리 아버지 학교의 회생을 준비하는 우리들에게 가장 강력한 지표가 될 것이라 믿습니다. 잠시 침묵하며,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순교자들 미사를 준비합시다.

(강론)

<윤지충, 그리고 아버지 학교>

어제 저녁 7시 귀국했습니다. 지난 십여일을 파티마를 중심으로 해서 포르투칼의 성모성지와 야고보 성인의 유해가 모셔져 있는 산티아고 대성당을 마지막으로 순례를 마치고 돌아와, 첫 번째 미사를 부산교구 아버지 학교의 회복을 준비하는 아버지들과 함께 봉헌하게 된것을 대단히 기쁘게 생각합니다.

더구나 오늘은 선종하신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124위의 신해•신유 박해 순교자들을 복자로 선포하고 그들을 통한 전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주신 덕분에, 한국천주교회는 5월 29일을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순교자 기념일로 지내고 있습니다.

1984년 이미 성인이 되신 김대건 신부님과 정하상 바오로 성인 모두 기해와 병인박해, 그러니까 신유박해보다 60년이 더 지난 후손들이 먼저 성인이 된 것이니까, 124위 순교자들은 그 할아버지뻘 세대가 뒤늦게 복자품에 오른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분들의 이야기는 좀 더 오래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1584년 예수회 신부 마태오 리치가 중국에 들어와 북경을 중심으로 선교를 시작하는데, 유교가 생활화 되어있던 중국인들이 공자를 공경하고 조상에게 제사를 올리는 예절을 보고 마태오 리치를 포함한 초기 선교사들은 이런 행위가 천주교의 신앙과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제사라는 것이 자녀가 부모를 공경하는 좋은 것이고 공자에게 드리는 제사 역시 제자가 스승을 섬기는 사랑의 표현이라고 밝히면서 일종의 <적응주의>적인 선교 방식을 택합니다. 이것은 특히 중국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한 좋은 성과가 있었지요.

하지만 60년이 지나 도미니꼬회와 프란치스꼬회가 각각 1631년과 1633년 중국 선교에 나서서 보니 시골 산간의 중국인들은 이미 그 지역의 토속적 미신과 천주교의 신앙이 혼합되어 일종의 민간신앙으로 변질되어 있음을 봅니다. 여기에서부터 조상 제사에 대한 의례 논쟁이 시작됩니다. 숱한 갑론을박 끝에 약 100년이 흘러 1715년 클레멘스 2세는 공자에 대한 제사와 조상 숭배를 금한다는 칙령이 발표해버리지요.

이 영향이 1784년 이승훈의 세례로부터 시작되는 조선천주교회에도 파급됩니다. 윤유일이 북경 구베아 주교에게 조상 제사와 신주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 질문했을 때 주교는 교황청의 칙서를 들어 제사를 금하지요.

이 때문에 1791년 전라도 진산 양반이던 윤지충은 어머니 권씨의 사망 후 장례는 정중히 지냈으나, 신주와 제사를 모시지 않음으로서 첫 번째 박해인 진산사건이 발생하고 그로 인해 윤지충과 그의 외사촌 형인 권상연은 첫 번째 순교자가 됩니다.

“나무 조각에 불과한 신주는 공경할 수 없으며 사람의 혼이 물질에 붙어 있을 수는 더더욱 없는 것이다. 그리고 물질적인 제사 음식을 영혼이 먹을 수도 없으며 잠든 이에게 음식을 바치는 것은 하나의 허례에 불과하다.”는, 그 당시 조선의 사고방식으로서는 엄청난 충격을 끼친 이 사건을 계기로 천주교는 無君無父의 종교요 인륜을 저버린 금수禽獸와도 같은 역도로 내몰려 무려 만 명이 넘는 이들이 순교를 당합니다.

그렇게 숱한 이들이 죽고 난 다음 무심한 세월은 또 흐릅니다. 너무 많은 이들이 조상 제사 문제로 박해를 당하자 교회 차원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좀 더 토착화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조상에 대한 제사를 우상숭배로 보기보다는 문화적 풍속으로 이해하고 동양의 고유한 질서인 효와 충을 신앙적 차원으로 다시금 해석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지요.

그 뒷배경에는 1930년대 히틀러와 뭇솔리니와 동맹을 맺은 일본이 자신들의 황도신민皇道臣民의 정신을 앙양하기 위해 한국인에게 신사참배를 강요하고 천황을 섬길 것을 요구했는데 이에 걸림이 되는 조상제사의 문제를 일괄적으로 처리해줄 것에 대해 압력을 행사한 정치적 요구도 한 몫 했지만, 어쨌든 교황 12세는 1939년 ‘중국 의식에 관한 훈령’을 통해 조상 제사에 대한 관용적 입장으로 태도를 바꾸게 됩니다.

자, 어느 시대에는 조상 제사 문제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또 어느 시대에는 그것 때문에 조상 제사뿐만 아니라 침략국의 황제와 왜놈 귀신까지도 섬기는 시대를 살아야 했습니다. 무엇이 진리일까요?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제사의 정신입니다. 제사는 살아서의 효를 죽어서도 잇는 것을 말합니다. 죽어서의 효는 세상을 떠나가신 그분들께서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시며 그분들의 삶과 사랑을 지금 살아 있는 그 자손들이 본을 받고 이어가는데에 있습니다. 이것이 제사의 정신이고, 신앙의 바탕입니다.

조금 신학적으로 표현하자면, <기억과 재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기억, 그분의 살과 피를 받아모시는 이들은 예수께서 행하셨던 것을 기억하고, 우리를 위하여 베풀어주신 좋은 일들을 나도 따라 살려고 실천하는 사람들, 곧 재현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를 아버지 학교에 적용시켜 보면 그렇습니다. 우리는 아버지 학교를 통하여 많은 것들을 받았고 체험했습니다. 무상으로 주어진 은총이었습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자녀들과 소통하는 법, 아내와 함께 아이들의 공동 양육자로서의 책무와 기쁨을 터득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만 낳았다고 아버지 어머니가 아니라, 아이들을 통하여 남자가 아버지가 되어가고, 여자가 어머니가 되어가야 함을 몸으로 익히게 되었음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다시금 아버지 학교를 열려고 하는 것은 우리의 기억을 다시금 재현시키려는 행위입니다. 기억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체험을 다시 일으키는 것이지요. 그래서 누구 한 사람에게라도 나의 이 기억의 내용을 전달하고 그를 통하여 다시금 아버지 학교에서의 은총이 재현되기를 희망하는 것입니다.

신앙은 그런 차원에서 본다면 끊임없는 반복과 순환의 과정이라 하겠습니다. 좋은 것을 받은 이들이 그 좋은 것들을 나눕니다. 나누기 위해 많은 애를 씁니다. 나의 돈과 나의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면 갈수록, 그것은 하나로 그치지 않습니다. 서른 배 예순 배 백 배의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순교자 기념일 복음의 핵심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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