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한바퀴 197-통일전망대(고성)
6월6일 현충일에 정종헌, 홍진후랑 고성(高城)에 있는 통일전망대에 갔습니다. 통일전망대에 가려면 출입신고서를 핸드폰으로 등록하고 등록마치고 소정의 연수(동영상)을 보고 차를 타고 통일전망대에 갔습니다.
차를 파킹하고 보니 통일전망대가 보입니다. 건물을DMZ의 D자 형태로 만들었습니다.
평화통일을 기원하는 비(碑)
민족의 웅비(雄飛).
'웅비'는 "힘차고 씩씩하게 날듯이 뻗어 나감"을 뜻하는 단어입니 다.
한자 표기: 雄飛 (수컷 ,)
핵심 의미: 웅장하고 힘있는 기세로 크게 도약하거나 발전하는 모습을 비 유할 때 주로 사용됩니다.
기업이나 국가, 개인의 성장과 발전을 응원할 때 "세계로 웅비하는 000"과 같은 표현으로 자주 쓰입니
다.
풍산개 한쌍이 있습니다.
풍산개는 북한의 함경남도 풍산군(현재 김형권군) 일대의 개마고원 등 고산지대 에서 유래한 한국의 전통 사냥견입니다. 용맹함, 뛰어난 충성심, 그리고 추위와 질병에 강한 체질이 특징이며, 과거호랑이 사냥개로 불렸을 만큼 강인한 투지를 자랑합니다.
주요 특징
외형: 20~30kg 무게의 중형견으로, 촘촘한 흰색 또는 황백색의 이중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작고 끗끗한 삼각형 귀와 등 위로 말려 올라간 꼬리가 특징입니다.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금강산로 481에 위치한 고성 통일전망대는 대한민국 최북단에서 금강산과 동해안의 절경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안보 관광지입니 다.
멀리 북한의 땅, 해금강이 마지막 부위입니다
동(東)으로는 고성 서(西)로는 파주로 군사분계선 DMZ( Demillitarized Zone) 비무장지대이 1953년7월27일 설정됐습니다.
파란은 남쪽입니다. 현내면, 수동면과 일부 고성면이 DMZ입니다.
멀리 해금강입니다.
멀리 금강산이 보입니다.
고성군은 남북 교류와 평화 통일의 진전에 있어 중요한 길목입니다. 이산가족 상봉과 금강산 관광의 중추적 교두보인 한편, 앞으로 철도와 도로가 놓여 북한과 유럽까지잇는 중요한 관문이 될전망입니다.
앞날이 더욱 창창하고, 기대됩니다. 앞서고성은 통일전망대, DMZ박물관 같은 안보와 민족 평화를 상징하는 랜드마크도 다수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중 아픈 민족의 역사와 다가올 평화시대를 동시에 전망할수 있는 곳, 북녁 땅을 잡힐 듯 가까운 거리에서 조망할수있는 통일전망대입니다.
300년전 금강산을 찾은 우암 송시열 선생은 한시로 감상을 남겼습니다.
전망대에 올라 금강산을 마주하자, 비로소 우암 선생의 찬사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운무가 하늘과 땅의 경계를 지우며 금강산에 깔려 있었고, 지평선은 동해안과 하늘을 가르며 반듯이 그어져 있었다. 모든 것이 경이였으며, 신비그자체였습니다. 정적인 DMZ 풍경 속에 철새와 파도만이 국경을 넘나들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던지는 우렁찬 울음은 평화의 함성처럼 가슴 깊이 꽂혀 들어왔습니다. 내 생애에 언젠간 저 먼발치 금강산에 다다를 날이 다가오기를 고대합니다.
우암 송시열(宋時烈)은 조선 중기의 대학자로, 그의 정치적 유배와 낙향 시기 에 금강산을 직접 유람하며 느낀 감상을 한시(漢詩)남겼습니다. 또한 그가 예찬했던 충북 옥천의 '부소담악'은 풍경이 마치 금강산을 닮았다 하여 '소금강'으로 불리웠습니다.
철책선 넘어 낯선 북쪽 고성
고성군 신봉리의 아침풍경
그곳 주민의 초급중학교때 사진
큰딸 결혼식때 사진
이산의 아픔과 그리움
군대에 간 첫째 아들 사진
아버지와 어머니 사진
DMZ박물앞에 세워진 DMZ의 상이 그릇들로 만드러졌습니다.
북 고성군과 남 고성군
비극적인 625전쟁의 산물이자 지난 70여년간 한반도와 한민족에게 분단과 이산의 고통을 주어왔던 DMZ 그곳은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자연사 공원이자, 우리의 오래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읽을수 있는 한국사의 유적지이기도 합니다.
이 DMZ가 이제는 소통과 화해의 땅으로 평화와 희망의 땅으로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관광객들이 소망을 종이에다 적어서 여기다 매달았습니다.
저도 적었습니다.
"평화통일이 되고 한국 정치판이 간첩들이 장악되었는데 이들을 몰아내어 앞으로 간첩들이 나라를 좌지우지 못하게하여 달라"
우암 송시열의 금강산 시
송시열이 53세 무렵, 정치적 실각 후낙 향하여 울분을 달래기 위해 금강산에 올 랐을 때 지은 작품입니다. 눈 덮인 금강 산의 웅장함과 신비로움을 노래했습니
다.
금강산(金剛山)
山與雲俱白 (산여운구백) 산과 구름이 모두 희어
雲山不辯容 (운산불변용) 구름인지 산인지 그 모습을 분간할 수 없네
明朝雲散盡 (명조운산진) 이튼날 아침 구름이 활짝 걷히니
峭立碧芙蓉(초립벽부용) 우뚝 솟은 푸른 연꽃(봉우 리)만 남아있네
금강산은 4개의 고유한 별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봄 (금강산 -金剛山): 새싹이 돌고 온 산에 꽃이 만발하여 마치 금강석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고 아름답다 는 듯
*여름 (봉래산 -蓬萊山): 녹음이 우거 지고 흰 구름과 안개가 신비롭게 감돌 아 신선이 사는 산 같다는 의미
*가을 (풍악산 -楓嶽山): 오색단풍 1만 2천 봉우리를 붉게 물들여 마츠 악기를 연주하듯 화려하다는 뜻
*겨울(개골산 - 皆骨山): 나무잎이 모두 떨어져 기암괴석의 뼈대만 앙상하 게 드러난 모습에서 유래
시선 압도할 만큼 웅장하게 선 통일미륵불과 성모마리아의 모습이 단연 눈에 들어와습니다. 통일미륵불의 크기는 무려 13.6m나 될 만큼 거대했습니다. 북쪽을 바라보고선이 불상은 양손바닥을 펼쳐 보이고 있었습니다.
부처의 수인(手印)하나인 시무외인이었습니다. 시무외인은 중생들 마음속 . 두려움과 근심을 막아준다는 부처가 취하는 손동작입니다. 수많은 수인 중 유독 시무외인을 취한 부처가 이곳에 자리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DMZ에 앞으로 총성 없는 평화, 한반도의 무궁한 화합이 도래하길 바라는 염원은 아니었을까. 통일전망대가 앞으로 금강산전망대( 통일전망대)로 불리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것은 동독의 통일의 벽을 가지고 와 이곳에 통일의 염원을 담기위해 전시됐습니다.
38선과 군사 분계선
DMZ박물관은 암울했던 분단의 역사를 올바로 알리고, 냉전과 갈등의 아픔을 평화와 화합의 미래로 승화시켜 나가는 통일의 이야기를 새롭게 쓰는 한편, DMZ의 유산을 후손들에게 물려주고자 건립하여 지난 2009년 8월14일 개관되었 습니다.
DMZ을 소개합니다.
DMZ의 역사와 군사, 문화, 생태 등 모든것을 찾아 한자리에 모아 정리하고 전시하였습니다만 통일이 되어 북쪽지역을 포함한 DMZ의 모든것들이 마저 채워져야 비로소 완성이 되는 진행중인 박물관입니다
축복받지 못한 DMZ.
통일이 되는 그날까지 모든분들이 DMZ의 모든것들이 DMZ의 모든것들을 역사적 기록물로 보존하는데 함께하길 기대합니다
DMZ는 세계인의 유산입니다.
대한민국 정부수립당시 사진.
종북 정치인(간첩)들과 전라도 일부인들은 정부수립 날짜도 틀리게 말하고 있습니다.
평양 남북연합회의때 김일성
625당시 시체를 보며 가족을 찾고있는 유가족
정전협정서
영문에 김일성 과 William과 Mark등 사인이 있습니다
당시 한국을 배제된 정전협정
정전협정을 1950년12월부터 과정이 있었습니다.
1953년7월까지 협상했습니다
정전협정 신문보도
외국잡지와 신문에도 정전협정을 실렸습니다
625전쟁 보도사진
종군기자 타자기
625당시 사용됐던 태극기
지금 종북 간첩세력들은 태극기를 거부합니다.
미군포로 편지
당시 철모
당시 탄피들
치열했던 전투
남방한계선 비인가출입금지
출입자들의 준수사항
모자와 탄피들
M1소총탄피
우리때 군대에서 M1을 사용했는데
한국전쟁 전사자 유품
편지
중공군이 쓰던 그릇
대한 청년단 완장
만년필
수통. 수통컵
제1 갈보리 사단에서 38선경계선 표시
당시 밥솥
대북심리전으로 방송 운용지침서
방송 원고집
삐라
사방거리는 625때 생겨난 거리
대머리
당시 지뢰로 다리가 없는 상의군사들이 많았습니다
지뢰 종류
독일도 분단과 통일을 소개
트라반트 차는 동독에서 사용한 국민차인데 차체(car body)가 프라스틱으로 만들었습니다
독일의 분단
금강산을 그리다
금강산 소개
당시 금강산 화첩
조선시대 금강산 노정기(여행기)
금강산 개발합의서
금강산을 1998년 정주영회장이 1,001마리 이끌고 금강산 관광의 씨앗이 됐습니다
빚 깊음과 보은: 1
932년 정주영 회장 은 고향 강원도 통천군에서 소를 팔아 마련한 70원을 들고 가출하여 현대그 룹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1001마리는 고향과 부모님에 대한 보은이자, 66년 만에 자신의 성공 밑거름이 된 '소 한 마리'의 가치를 천 배 이상으로 돌려준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7.4남북공동 성명으로 남북통일 논의시작
1972년7월4일
남북 강원도 합의서
개성공단
이 꽃모양 종이에 염원을 적어 달았습니다
심리전
심리전을 매우 중요시 했습니다
국군 패전 병에게 고한다는 북한측 해방지구 경비사령부
심리전단
중공군들을 위한 중국어 삐라
북한 화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