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6. 20. 05;30
밤새도록 내리던 비는 지금도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세찬비가 두드리는 창가에 서서 다시
잠이나 청할까 나갈까 망설이다가 숲
속을 향한다.
빗소리 참 요란하다.
사람의 소리가 들리지 않은 숲 속엔
오롯이 빗소리가 지배한다.
우산을 쉴 새 없이 두드리는 소리는
북 치는 소리요,
나뭇잎에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는
세차게 쏟아지는 어느 폭포수의 소리
처럼 내 귓전을 장악해 나간다.
6월의 숲 속은 유난히 생기가 짙다.
한껏 짙어진 녹음은 하늘을 가릴 만큼
무성해졌고,
그 안에서 늦잠의 유혹에서 벗어나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내쉬는 사이에
내 몸과 마음은 응어리를 남기지 않고
서서히 풀어진다.
오늘도 목표는 없다.
비 오는 숲 속을 느리게 걸으며 무엇이
내 눈에 보일까, 무슨 생각을 하며
걸어야 할까.
아무런 생각도 없이 걷는다면 무념무상
(無念無想)의 경지에 이를 수 있을까.
저 담장 의자에 머무르던 지박령(地縛
靈)은 어디에 가서 비를 피할까.
가끔 내 눈치를 보며 나타나던 너구리
는 굴속에서 잠을 청하고 있을까.
아니면 배가 고파 숲 속에서 헤맬까.
상념(想念)은 끝없이 이어지고,
숲 속의 풍경은 끊임없이 나에게 다가
왔다가 등뒤로 사라진다.
바위와 나무가 빼곡한 숲의 틈으로
파고드는 빗방울이 선명하게 다가오고,
바람소리는 배경음악처럼 이어진다.
어느 순간 내 마음은 조용히 가라앉았고,
산길에서 만난 '도깨비 가지'가 비를
흠뻑 맞아가며 몸을 부르르 떤다.
< 도깨비 가지 >
나는 비 오는 날이 좋다.
잔잔하게 들리는 빗소리보다는 오늘
같이 세차게 내리는 빗소리가 더 좋다.
마음의 찌꺼기를 씻어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거대한 전나무 둥치에서 자라는
작은 생명을 바라본다.
자유롭다.
몸도 자유롭고 내 머릿속의 상념도
자유롭다.
바짓가랑이를 타고 내려온 빗물로
우화 속 양말이 점점 젖어간다.
우산을 쓴 부부가 내 앞으로 걸어온다.
그들의 붉은 우산과 노란 우산은 녹색의
숲 속에서 수채화를 완성시켜 나간다.
산길을 오르고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나
자신에게 집중하게 된다.
빗방울이 내 팔뚝에 닿는 감각이 또렷해
지고 생각도 단순해진다.
산모퉁이를 돌자 앞서가는 사람이
보인다.
나는 여기서 잘해야 한다는 부담도,
빨리 걸어야 하는 부담도 없고,
앞서가는 사람을 따라잡아야 할 이유도
조급함도 없기에 천천히 따라간다.
몸이 움직이면 마음도 건강해진다.
그저 오늘의 내 컨디션에 맞춰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걸음을 걸으며 마음의
속도를 늦추기만 하면 된다.
나는 오늘 비 내리는 숲 속을 걸으며
작은 명상을 통해 비로소 알았다.
내가 산행을, 숲 속을 사랑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 시간만큼은 누구도 아닌 가장
자연스러운 나 자신으로 돌아와 온전한
자유를 누리기 때문이라는 걸 말이다.
07;00
글 쓰는 것도 이젠 중독인 모양이다.
오늘도 느림의 미학으로 무엇이든 써야
직성(直星)이 풀리겠다.
'느림'은 결코 게으름이나 어리석음이
아니다.
또한 크게 의미를 부여할 필요도 없다.
이승에서 살아가는 동안 나 자신을
위하고 나 자신을 잃지 않으려 천천히
생각하고 걸어가는 것일 뿐이다.
산에서 내려와 물감을 마음속에 풀어
나만의 수채화(水彩畵)를 그려가며
생각나는 대로 느낀 대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다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2026. 6. 20. 비 오는 날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