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독서광장

서양 철학사 입문 (2) 자연철학, 밀레토스 학파

작성자만촌 전석락|작성시간18.03.13|조회수519 목록 댓글 3

제1부 고대 철학


1. 자연철학


기원전 6세기경 에게 해의 남단의 항구도시 밀레토스에 바람, 해, 비, 계절 등의 자연현상을 신이 아니라 물리적 법칙이나 자연원리의 근원이 되는 요소들을 통해 이해하고자 했다. 이들을 밀레토스 학파라고 칭한다.


          

  

                                        고대철학의 발상지 밀레토스(Miletus)

             오늘날 이곳은 터키에 속한 지역으로 고대문명의 흔적만 남아 있다.


1) 철학자의 아버지 탈레스


밀레토스 학파를 연 탈레스(BC624경~BC545경)를 보통 최초의 철학자로 부른다. 그는 그림자를 통해 피라미드의 높이를 알아낼 정도로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사고방식에 앞서 있었다.


                                 


탈레스는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고 생각했으며, 당시 철학자들은 사물의 본질 혹은 존재의 근원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답함으로써, 철학의 ‘제1원리’를 획득하고자 했다. 최고의 원리란, 그 원리 하나로 하위에 속한 모든 문제가 저절로 풀리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면서도 본질을 품고 있다. 예를 들어 계절은 변하지만 시간의 흐름이라는 법칙은 불변하고 확실하다. 상황에 따라 존재 방식은 변하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는 대표적 사물을 찾게 되고, 그것이 바로 물이었던 것이다. 물은 액체 상태지만 얼면 고체가 되고 끓이면 기체가 된다. 물은 형태는 변해도 속성은 변하지 않는다.

‘만물은 유전 한다’고 말한 헤라클레이토스(BC540?~480?)는 ‘만물은 불’이라고 했다. 탈레스와 마찬가지로 일원론이다. 엠페도클레스(BC490?~430?)는 ‘만물은 물, 불, 흙, 공기 등 4원소로 되어 있다’고 했다. 다원론이다.
 
일원론은 이원론으로, 이원론은 다시 다원론으로 나아가다 보니 처음의 질문, 즉 세상의 근원적 원리가 무엇인가에 대한 합리적인 발견은 오리무중이 된다. 결국 본질은 ‘모든 것이 변화 한다’는 명제로 귀착되고 이른바 자연철학은 막다른 골목길에 이르렀다. 그리스에서 자연철학이 마감된 건 그게 무슨 쓸모가 있느냐는 회의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어떻게 살아갈 것이냐 이었다.


2) “모든 것은 흐를 뿐이다” - 헤라클레이토스


밀레토스의 철학자들이 만물의 근본 물질을 찾으려 했다면 헤라클레이토스(BC540경~BC480경)는 만물의 변화 그 자체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만물은 계속 변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그 변화 원리를 나타내고자 한 것을 로고스(logos)라고 명명했다. ‘말하다’라는 어원을 가진 로고스는 성서에서 최초의 말씀이 있어 세상이 이루어지듯, 원리가 있어 그것이 세상을 생성하고 움직이는 것을 나타내는 개념이다.
로고스의 탄생은 이후 플라톤과 중세철학에서 이어받으며 서양철학의 가장 중요한 개념 중 하나로 자리 잡게 된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가 남긴 또 하나의 업적은 변증법이다. “건강을 좋은 것으로 만드는 것은 병이며, 배부름을 달콤하게 만드는 것은 배고픔이고, 휴식을 달콤하게 만드는 것은 피곤함이다”와 같은 말들과 같이 생성과 변화는 바로 이런 만물이 서로 다투며 조화를 이루며 변증법적으로 변화하는 것을 보여 주는 것으로, 이러한 대립물의 모순과 변화는 헤겔의 변증법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3) “자연으로 향하는 열쇠는 수학이다” - 피타고라스


피타고라스(B.C. 582경~BC 497경)는 특히 수학에 뛰어나, 그의 생각을 통해서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이론’이라는 말의 의미가 만들어졌다. 이론이란 눈과 머릿속으로 본(생각) 것을 수(數)로, 즉 언어로 바꾼 것이다. 피타고라스는 물질세계의 모든 운동이 수학적으로 표현된다고 생각한 최초의 사상가이다. 그는 ‘철학’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했으며, ‘우주’라는 말도 처음 사용했다고 한다. 피타고라스 이후 철학하기는 수학적 계산과 더불어 학문의 큰 강으로 흘러들어 간다. 그래서 위대한 철학자는 위대한 수학자이기도 하다.
의사이기도 한 피타고라스는 자신의 생각을 따르는 사람과 함께 남부 이탈리아의 지금의 크로토네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피타고라스학파’를 형성하였다. 이들 학파는 세계 만물의 근원은 숫자의 조화로운 만남에 의한 것이라고 믿는다.


4) “모든 것은 하나다.” -파르메니데스


만물의 생성과 변화는 존재할 수 없다고 하면서 헤라클레이토스에 반대한 사람이 엘레아학파의 대부 파르메니데스(BC515경~BC445경)다. 만약 그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오늘날 서양의 철학과 동양의 철학이 크게 다르지 않았을 수도 있을 정도로 파르메니데스는 서양철학을 서양철학답게 하는 첫 주춧돌을 세운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고대철학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그를 뽑는 것도 이러한 이유다.


그는 헤라클레이토스가 말한 생성과 변화가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존재하는 것’이 있다고 할 때, 이 존재하는 것이 만약에 헤라클레이토스가 말한 것처럼 생성된 것이라면, 이 존재는 무(無)에서 나와야 한다. 즉 아무것도 없는 무의 상태에서 존재가 나와야 하는데, 이 무에서 무엇인가가 나올 수 있다면 이 무는 ‘무엇인가를 내포하고 있던 무’라는 것이다. 결국 무는 무가 아닌 것이 되므로, 소멸 또한 같은 논리로 불가능하게 된다.

그렇다면 존재와 존재 사이에 무가 없다고 가정해 보자. 이것도 같은 결과를 초래한다. 존재와 존재 사이에 아무것도 없으니, 존재는 하나의 덩어리가 된다. 이것이 바로 파르메니데스가 말하는 그 유명한 ‘파르메니데스의 일자(一子)론’이다. 그의 저서《하나와 여러 개》의 내용 중 고대 그리스어로 ‘호토스 에스틴(hotos estin)이라는 말이 이 나온다. 즉 ’존재는 하나다‘라는 뜻이다. 즉 ‘이 세상은  단 하나다. 그렇기 때문에 별들의 움직임과 인간의 인생과 하루살이의 일생은 다 같은 법칙을 통해서 작동 한다’고 주장하였다.

나누어지지도 분리되지도 않는 오직 하나의 덩어리. 이 일자의 탄생은 철학사에 너무나도 큰 의미를 제공한다. 우리가 생성과 소멸, 변화와 운동을 파악하는 세계는 감각의 세계일뿐이고, 오직 이성으로만 파악되는 로고스의 세계가 현실 세계와 분리됨으로써 서양철학만의 특징이 더욱 선명해지게 된다.
헤라클레이토스의 변화와 운동, 그리고 파르메니데스의 일자 같은 불변의 존재, 이 둘을 조화시켜 설명해내기 위한 노력이 이후 유물론자뿐 아니라 서양철학의 거장이라 할 수 있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주 과제였기 때문이다. 파르메니데스를 계기로 서양철학은 동양철학과 달리 가장 본질적인 이론인 자연을 신비스럽게 생각하지 않고 이해할 수 있다고 믿기 시작했다.


5) 유물론을 1차적으로 완성시킨 데모크리토스


고대철학에 있어 헤라클레이토스와 파르메니데스 두 사람의 논쟁을 가장 조화롭게 화해시키면서, 오늘날 과학과도 매우 유사하게 설명해낸 철학자는 기계론적 유물론을 선보인 데모크리토스(BC460경~BC370경)였다.
그는 파르메니데스의 생성과 소멸을 하지 않는 불변의 존재를 수용하고 그 존재를 원자라고 못 박았다. 그러나 그는 이 원자를 하나가 아니라 무수히 많은 다수로 상정하고, 형태·크기·위치 등을 지닌 구체적 물체로 생각했으며, 운동도 한다고 정의했다. 우리가 보고 있는 물체들을 파르메니데스의 일자에서 허상으로 떨어져 나온 환상이 아니라, 미세한 존재들의 덩어리들이 다양하게 뭉쳐진 것이 된다. 바로 이런 점들이 데모크리토스를 기계론적 유물론의 창시자이며, 고대 유물론 철학의 완성자라고 하는 이유다. 또한 언어적 무에서 공간적 무로의 전환은 마치 관념적인 무가 유물론적인 무로 설명되는 듯한데, 이는 철학사의 영원한 대립인 관념론과 유물론의 대립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것이기도 하다. 데모크리토스는 웃는 철학자다. 그는 사람에게 가장 좋은 것은 가능한 한 가장 유쾌하게, 가능한 한 가장 괴롭지 않게 삶을 이끌어 가는 것이라고 했다. 우는 헤라클레이토스와 웃는 데모크리토스는 서로 대립되는 인간상을 대변한다.


6)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 - 프로타고라스


모든 것의 가치나 의미를 ‘내가 어떻게 보느냐?’ 하는 것에 달려 있다고 보는 ‘제 눈에 안경’ 식의 철학적 태도를 ‘상대주의’라고 한다. 프로타고라스(BC 485경~BC414경) “사람은 모든 것의 척도이다. 사람만이 있는 것에 대해 있다고 할 수 있고, 없는 것에 대해 없다고 할 수 있는 척도다”라고 말한다. 프로타고라스 이전의 철학자는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의 성질에 대해서 알려고 했지, 인간의 본성에 대하여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페르시아 전쟁이 끝난 뒤, 아테네가 지중해 지역의 학문 중심지가 되면서 사정은 달라진다. 아테네 시민은 경제적으로 부유해지고 정치적인  활동이 다양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을 좀 더 우아하고 논리적으로 표현할 필요를 느끼게 된다. 그래서 아테네 사람들은 말하는 기술과 교양을 돈을 내고 배우려 했고, 이러한 기술을 가르친 사람을 ‘소피스트’라고 한다. 프로타고라스는 대표적 소피스트이다.
어원적으로 보면 소피스트는 지혜를 가르치는 사람이라는 긍정적인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부정적으로 쓰이는 이유는 소피스트의 지식이나 논리적 표현이 오로지 상대방을 설득하고 속이려는 목적으로 되면서, 그들의 대화가 말꼬리를 붙잡고 펼치는 끝없는 말싸움으로 번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을 비꼬아서 본래의 의미마저 왜곡시키는 소피스트를 귀족주의자 플라톤은 ‘궤변가’라고 비판하고, 자신의 스승 소크라테스의 적으로 생각했다. 원래 소피스트라는 말은 ‘현자’라는 뜻이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강창훈 | 작성시간 18.03.13 만촌 덕에 나의 무식을 새삼 깨닫게 되니 부끄럽지만 퍽 다행이라 생각 합니다.
    철학사의 깔끔한 정리는 새봄의 선물인듯 합니다.
    열심히 읽겠습니다.
  • 작성자만촌 전석락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8.03.14 우보! 과찬의 말씀에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누군가 "삶에 대한 자기성찰이 깔려 있지 않으면 어떤 발명도, 제도도 괴물이 된다" 라고
    한 말이 기억납니다. 그러나 80 고개가 내일모렌데 이제야 인문학에서 길을 찾겠다는
    자신을 생각하면 부질없는 짓 같기도 하여 부끄러움이 앞서내요.
  • 작성자감나무그늘 | 작성시간 18.05.01 철학 처음부터 골치 아프네,
    하지만 관통해야지.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