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 1위 『3층 서기실의 암호』
태영호의 『3층 서기실의 암호』가 현재 베스트셀러 1위에 올라와 있다.
책 내용이 궁금하여 한 권을 구입했다.
머리말과 프롤로그 및 책 목차 부분을 올려본다.
머리말
한국에 와서 대외 활동을 시작한 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북한의 실상을 알렸다. 정부 고위 관료부터 국회의원, 정당인, 기업인, 언론인, 종교인, 북한 전문가, 대학생까지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상대적으로 통일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은 대부분 이런 것을 물었다.
‘북한은 어떤 사회입니까?’
‘통일은 어떻게 이룰 수 있습니까?’
나는 내가 아는 전부를 최선을 다해 쏟아냈다. 그들의 반응은 대체로 비슷했다.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어 충격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내 나름대로 통일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느꼈다. 시간과 체력이 허락하는 대로 여기저기 다녔다. 행사나 모임이 5,6건씩 잡힌 날도 꽤 있었다.
그런데 내가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질문을 한 사람이 있었다. 재단법인 통일과 나눔 안병훈 이사장이었다. 그는 나에게 물었다.
“태 공사님께서 통일을 위해 일하고 계신데 우리 재단과 제가 무엇을 도와드리는 것이 좋겠습니까.”
인상적이었다. 내가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묻고 싶은 것을 묻고 나의 답변을 듣는 것으로 끝이었다. 그중에는 대기업 회장이나 사장도 꽤 있었지만 안병훈 이사장처럼 도와주겠다고 나선 사람은 없었다. 그에게 나는 이렇게 대답했던 것 같다.
“남북한의 현실을 서로에게 정확히 알리는 일을 한다면 통일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런 일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러자 안 이사장은 북한의 실체를 낱낱이 드러낼 수 있는 책을 써보라고 권유했다. 나는 선뜻 동의할 수 없었다. 자서전이든 회고록이든 책을 쓴다는 것이 당시 내게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내 나이 아직 50대 중반에 불과했고 무슨 거창한 업적을 이룬 것도 아니었다. 망설이는 나에게 안 이사장은 몇 번씩이나 용기를 주었다. 북한에서 겪었던 일을 알려주는 것 자체가 통일을 앞당기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했다.
그의 설득에 겨우 용기를 낸 결과가 자서전에 가까운 이 책이다. 많은 사람들이 충격적으로 받아들인 ‘새로운 사실’, 곧 ‘평양 심장부’의 실상과 허상을 드러내는 데 중점을 두긴 했지만 이 책을 통해 내가 기대하는 또 다른 바람이 있다. 내 삶에 녹아 있는 북한의 시대상, 사회상, 생활상과 그 변천사를 한국 사회라는 스크린에 투영하고 싶었다. 북한 사회라는 거울로 보면 한국인 스스로는 알기 힘든 한국의 위상이 비춰진다.
대한민국은 자유와 인권, 그리고 민주주의와 번영을 세계에 자랑할 만한 자격이 있는 나라다. 노예 상태에 빠져 있는 북한 주민을 해방시키고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을 주도해야 할 책임이 한국에 있다. 하지만 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한국인이 많은 것 같다. 이 책은 또한 그런 안타까움의 소산이기도 하다.
나는 원래 이 책을 3월초에 내려고 했었다. 그런데 3월부터 남북관계는 급격한 해빙무드에 들어섰고 정상회담으로 이어졌다.
나의 책이 정상회담 성사에 찬물이라도 끼얹을 수 있을 것 같아 정상회담 뒤로 출간을 미루기로 했다.
남북 정상회담 당일 나는 하루 종일 TV 앞에 앉아 숨을 죽이고 그 과정을 지켜보았다.
이번 정상회담은 대한민국의 국력과 자유민주주의가 가져온 성과라고 볼 수 있다. 북한의 진정성이 관건인데 곧 열리게 될 북미회담까지 지켜보면 김정은의 진정성 여부가 판단될 것이다.
하지만 일각에서 김정은을 평화의 천사, 정상적인 인간으로 묘사하면서 대한민국의 국력이 가져온 회담 성과를 김정은의 과감한 결단과 용단으로 돌리는 것은 마음이 아팠다. 북한 주민들은 하루 빨리 노예 상태에서 해방될 날만을 고대하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김정은을 평화의 사도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분단된 현실에서 북한의 통수권자와 대화도 하고 악수도 해야 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김정은을 ‘천사’나 ‘평화의 사도’로 묘사하는 것은 북한 주민이야 어떻게 살든 한국이 알바는 아니라는 말로 들렸다. 악마가 아닌 사람을 악마로 묘사하는 것도 잘못된 일이지만 악마를 천사로 묘사하는 것도 역시 잘못되었다고 본다.
북한 체제에 대한 증오는 책에서 최대한 누그러뜨리려고 했지만 크게 성공한 것 같지는 않다. 등장인물의 실명과 언행을 드러내는 데도 많은 고민을 해야 했다. 끝내 실명을 밝히지 못한 경우도 상당하다. 북에 있는 동료들이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지만 혹시 놓친 대목이 없을까 걱정이 된다.
내이름을 건 첫 책이다. --- 후략 ---
2018년 5월
태영호
프롤로그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북한을 탈출해 한국으로 가겠다는 결심을 굳히고 난 뒤, 안해(아내)는 제빵과 관련된 책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서울에 가서 빵 가게를 열면 먹고살 수는 있을 것이라는 순진한 생각에서였다. 탈북은 현실적인 문제였다. 자유를 얻는 동시에 생계에 대한 책임이 뒤따른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다. 대학에 보낼 두 아들을 보면 한숨까지 나왔다.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의 한 구석에서 나는 동료들 몰래 인터넷을 뒤졌다. 탈북자에 대한 한국 정부의 지원은 1인당 정착금 700만 원, 주거지원금 1,300만 원이 다였다. 결코 적은 돈은 아니었지만 그 이후는 북한식 표현으로 ‘자력갱생’을 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특별한 대출 규정도 없었다.
한국 정부가 나에게 일자리를 줄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았다. 어떻게든 아내와 두 아들을 키우며 살아가야 했다. 이도저도 안 되면 아내와 둘이서 세탁소나 편의점을 차리기로 했다. 어떤 나라도 이민 1세대는 2등 공민으로 분류된다. 우리가 2등 공민이 된들 어떤가. 2세대인 내 자식에게 자유가 주어지고 잘 살 수 있는 길이 열리는데 그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한국 땅에 첫 발을 디디는 순간, 머리가 하예 졌다. 꿈속을 걷는 듯했다. 내 발이 내 발 같지 않았다. 마중 나온 국정원 요원들도 내게 아무 말도 건네지 않았다. 긴장한 탓인 듯했다. 필요한 수속을 거쳐 차에 올랐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산과 들은 북한과 똑 같았다. 좀 더 일찍 왔어야 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빨리 숙소에 들어가 한잠 푹 자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러나 잠을 설쳤다. 지금도 더러 북한 체포조에 쫓기는 꿈을 꾸곤 하지만 한국에 도착한 처음 며칠 동안은 계속 그런 악몽을 꿨다. 밤새 체포조에 쫓기다가 겨우 눈을 떴을 때 비로소 한국에 왔다는 현실감을 되찾았다. 병실에 걸린 태극기를 보며 안도감을 느꼈다는 탈북 JSA 북한 병사의 심정을 나는 안다.
매일같이 악몽에 시달리며 2016년 여름부터 12월 말까지 국정원 조사를 받았다. 한 국정원 요원은 제빵과 관련된 책이 왜 그렇게 많으냐는 질문을 했다. 먹고살기 위해서라고 답했더니 그 요원은 서울에 넘쳐나는 게 빵집인데 어설프게 했다간 생계를 유지하기 힘들 것이라고 했다. 이런 조사를 받으면서도 내 머릿속에서 한 번도 떠나지 않은 생각이 있었다. 이제는 정말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다행히도, 또한 고맙게도 한국 정부는 내게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이라는 과분한 직책을 주었다. 감히 말을 꺼내지는 못했지만 탈북을 결심하던 무렵부터 꿈꿔왔던, 통일을 위해 나의 마지막 힘까지 보탤 수 있는 자리다. 나는 더 이상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하지 않는다.
한국에 올 때 나의 큰아이가 만 스물여섯이었다. 30여 년 전 꼭 그 나이였던 나는 ‘사회주의 조국’에 대한 확신과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북한 외무성의 ‘붉은 전사’로 일하게 되면서다. 북한에서 태어난 이의 숙명이라고 생각해 주시면 좋겠다.
지금은 그때와 달라진 게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새로운 조국과, 통일 한국이라는 벅찬 과업이 생겼다. 새로운 조국의 과업이 시간을 거슬러 내게 되돌려준 선물이 아닐 수 없다. 이제 나의 길은 오직 하나, 통일이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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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강창훈 작성시간 18.05.26 만촌! 관심을 갖고도 아직 읽어 보지는 못했는데 독서광장에 소개해주어 감사합니다.
책의 목차만 보아도 흥미(?)만점입니다.
한국의 종북, 친북좌파들은 물론 일반국민들이 북한을 제대로 아는데 큰 기여를 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문재인정권의 태영호공사를 가만 두지 않을 것 같은 현상이 벌써 두드러지고 있네요.
재2의 황장엽같은 처지로 몰릴 것같아 걱정입니다.
김정은을 무슨 '통큰 지도자'니, '평화의 사도'쯤으로 묘사하고 있는 현실이 가슴아프다고 책은쓰고 있네요.
만촌,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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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만촌 전석락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8.05.26 우보!
책 내용이 정말 흥미진진하답니다.
그 내용들을 어떻게 요약할 수 없어 머리말과 목차 등만 올렸지요.
책 표지 한 부분에는 아래와 같이 써 놓았네요..
" 북한은 나라 전체가 오직 김정은 가문만을 위해 존재하는 노예사회다.
노예 상태인 북한 주민들을 더 이상 내버려 둘 수 없다.
이제 노예해방의 싸움은 시작되어야 한다.
노예들이 촛불을 들 그날도 머지않았다. -본문 중에서-"
요즈음 우보의 글을 보면서 어느 책 제목 같이 '늙어갈 용기'를 가지게 되었지요.
우보! 정말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