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지금 이 순간에도 집착하지 않고 머무르지 말라”
2023.09.18
제57화 몸이 아픈 이유
총무원장 진우스님.
본문
일체불유(一切不留)
무가기억(無可記憶)
모든 것에 머물지 않으니
기억할 만한 것이 없다.
강설
지금 ‘좋다 나쁘다, 옳다 그르다’ 라고 하는
고락(苦樂) 시비(是非)의 분별된 마음은 바로 저장되어 있던 기억이 나타난 것이다.
이를 업(業)이라 하고 업식(業識),
또는 업장(業障)이라 하며 장애라고도 한다.
몸이 아픈 것도 몸이 아픈 것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먹고 싶고 자고 싶은 것,
그리고 모든 오욕락(五慾樂-수면욕, 식욕, 재산욕, 성욕, 명예욕)은
머리와 몸의 세포 하나하나에 저장되고,
기억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탐욕과 성냄, 생각의 탐진치(貪嗔痴) 삼독심(三毒心) 역시,
온몸과 마음에 업식(業識)으로 저장된 기억의 산물이다.
나도 모르게 나타나는 것을 무의식(無意識) 또는 잠재의식(潛在意識)이라 한다.
따라서 마음과 같이 의지대로 되지 않는 것은 기억된 본능이 강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먹지 말아야지’ 하는 의지와 미치게 먹고 싶은 욕망 사이에서 갈등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번 신심명 구절은 오히려 반대로 해석하는 편이 훨씬 이해가 쉬울 수도 있겠다.
‘기억하는 것이 없어야 집착에도 머물지 않는다’ 라고.
그러나 업장(業障)이란 당장 없앨 수 없는 것이다.
저장된 업식(業識) 즉, 기억에 따라 좋고 싫으며,
옳고 그른 고락시비(苦樂是非)의 분별된 마음에 머물지 말아야
업식(業識) 또는 업장(業障), 인과(因果)의 기억을 바꿀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좋다’ 라고 하는 업(業)의 기억도 놓고 ‘나쁘다’ 라고 하는 업(業)의 기억도 놓아야 한다.
기분이 ‘좋다’ 라고 하는 업의 기억도 놓고, 기분이 ‘나쁘다’ 라고 하는 업의 기억도 놓아야 한다.
결국에는 기억할 만한 것이 없게 되면서
나고 죽는 생사(生死) 업의 기억조차도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만약 어떤 이로부터 욕을 얻어먹은 일에 대해 기억을 하고 있다면,
지금도 어떤 이가 나에게 욕을 하는 것에 집착하여 기분이 매우 나빠질 것이다.
기분이 나쁘다고 하는 과거의 기억이 그대로 업(業)으로 저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나에게 기분이 좋고 나쁜 고락(苦樂)의 분별심이 없다면,
어떤 이가 설사 나에게 욕을 한다고 하더라도 기분이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저 ‘욕을 한다’ 라고만 인지할 뿐이니 과거에 기분이 나쁜 기억조차도 생겨나지 않게 되므로
‘욕을 했다’ 라는 사실만 인지하게 된다.
모든 것에 집착하여 마음이 머물지 않으려면 나에게 저장되어 있는 업(業)의 기억을 없애야 한다.
이는 육근(六根)에 의한 육식(六識)의 습(習)을 중도(中道)의 마음으로 바꾸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순간순간 깨어 있어야 하는데 어떤 일을 대하더라도,
탐진치(貪嗔痴) 삼독심(三毒心)이 일어나는 마음을 잘 살펴서 막아야 한다.
동시에 인과(因果)를 생각하는 습(習)을 길러야 한다.
상대 또는 사물을 대할 때마다,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걱정 근심의 감정을 그때그때 놓고 또 놓아야 한다.
말과 생각 행동 등 삼업(三業)의 하나하나에 삼독심(三毒心)을 일으키지 않도록 하고
인과(因果)를 생각해야 한다.
이와같은 습관을 기르고자 한다면 정진을 통해 끊임없이 행해야 한다.
그래야 의식을 하지 않아도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이 저절로 분별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으며 머무르지 않게 될 것이다.
‘자식이 잘 되야지’,
‘사업이 잘 되야지’,
‘꼭 시험에 붙어야지’,
‘시험에 붙어야 탄탄대로 성공하지’
등에 대해 미리 걱정을 하게 되면, 노력을 한층 더 하게 되는 계기는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설사 성공을 했다 하더라도 성공에 대한 기쁨과 행복 등에 의한
인과(因果)의 과보(果報)가 생기게 된다.
그러므로 미리 걱정하지 않고 마음을 비우며
‘인과 인연에 따라 되겠지’
하고 무심한 상태에서 분별심 없는 마음으로 대한다면
더욱 능률이 올라서 훨씬 쉽게 성공할 수도 있겠다.
혹여 시험에 붙지 않는다 하더라도 고락(苦樂)에 대해 인과를 믿는 마음만 출중하다면
시험에 붙든 붙지 않든 그것은 겉모양에 불과할 뿐
실제로 성패와 상관없이 실망도 걱정도 없을 것이다.
되면 되는대로 인과(因果)가 생겨서 고락(苦樂)과 시비(是非)가 생기게 되고,
안되면 안되는 대로 인과가 생겨 고락 시비의 과보를 받을 것이다.
따라서 어떤 일에 대해서도 애초에 바라는 마음, 원하는 마음에 집착하지 않고 머물지않는다면,
고락과 시비가 사라지게 되고,
과거의 기억도 미래의 망상도 사라지게 되어 지금 이 순간 편안한 마음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기억하고 싶지 않으면 지금 이 순간에도 집착하지 않고 머무르지 않으며,
고락과 시비에 대해 시시비비 의심하지 않고 고민하지 말아야 한다.
기도와 참선, 보시와 정진은 나의 분별심을 멈추게 하는 가장 훌륭한 방법이다.
송(頌)
지금 머물지 않으면
과거의 기억이 필요치 않고
고락시비(苦樂是非) 업장(業障)의
기억을 없애면
현재 일어나는 일 들에도 초연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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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화 운을 좋게 하려면
본문
허명자조(虛明自照) 불노심력(不勞心力)
텅 비고 밝아 저절로 비추니
애써 마음을 힘들게 하지 않는다.
강설
삽화 = 김계윤 작가.
이 구절은 말을 하거나 생각을 하거나 행동을 할 때,
즉,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에 있어서 단 한 점도 힘들지 않고 편안한 상태를 말한다.
그러나 이는 보통의 사람들로서는 이루기 힘든 내용이다.
일반적으로는 말을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하면 잡념을 멈출까, 어떤 행동을 해야 가장 기분이 좋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잘 보일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할 때가 많다.
물론, 분별심(分別心) 때문이다.
말을 할 때도 상대에 따라 고운 말을 해 줌으로써 내 스스로 기분이 좋아지는 경우가 있다.
반대로 험한 말을 하여 상대를 기분 나쁘게 해야
내가 속이 시원해지면서 기분이 좋아지는 경우도 있기 마련이다.
생각도 마찬가지다.
좋은 생각을 하면서 기분이 좋아지는 경우도 있지만,
걱정 근심 때문에 스스로 기분이 나빠지는 경우도 있다.
몸을 움직여 행동하는 것 또한 그렇다.
기분이 좋을 때는 움직임도 경쾌하고 부드러우나,
기분이 나쁠 때는 거친 행동과 함께 상대에게 물리적인 타격을 가할 때도 있다.
모두가 고락(苦樂)의 감정과 기분 때문이다.
따라서 보통의 사람에게는 즐거움, 기쁨, 행복한 감정의 좋은 기분과,
괴로움, 슬픔, 불행한 감정의 나쁜 기분을 함께 가지고 있다.
이를 통틀어 고락(苦樂)의 업(業)이라 한다.
좋은 기분의 감정이 10이라면, 나쁜 기분의 감정 역시 10이 된다.
이를 인과(因果)의 법칙이라하고 업(業)이라 한다.
어떤 이가 좋은 기분의 감정이 100을 가졌다면,
나쁜 기분의 감정 역시 100이 된다.
어떤 이가 좋은 기분의 감정이 1000을 가졌다면,
나쁜 기분의 감정 역시 1000이 된다.
살아가는데 어느 때는 1의 기쁨도 있고 10의 행복도 있으며, 20의 즐거운 기분도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때에 따라 1의 슬픔도 있고, 10의 불행도 있으며, 20의 괴로운 기분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감정의 기분은, 말로서, 생각으로서, 행동으로서 나타나게 된다.
시절인연(時節因緣)에 따라 기분이 좋은 일이 생기기도 하고,
때가 되면 기분이 나쁜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고락(苦樂)의 업(業)이 현실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좋은 일이 생기니까 기분이 좋아지고,
나쁜 일이 생기니까 기분이 나빠지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은 자신의 기분 좋은 업이 큰 만큼 기분 나쁜 업도 큼으로,
이러한 좋고 나쁜 고락(苦樂)의 업(業)에 따라
좋은 일도 생기기도 하고 나쁜 일도 생기기도 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자신의 고락(苦樂)의 업(業)은 그대로 놔둔 채 일이 잘되기 만을 바라는 것은,
손이 가려운데 발을 긁는 것과 같다.
또 자신의 몸은 그대로 놔두고 본인의 그림자를 잡으려 하는 것과 같이,
매우 어리석은 짓이 아닐 수 없다.
그리하여 좋고 나쁜 분별심으로 인해 고락(苦樂)의 업(業)이 쌓여서 좋고 나쁜 일이 반복된다.
따라서 고락(苦樂)의 업(業)을 끊고 중도(中道)의 마음이 되어야
좋고 나쁨과 생사(生死)와 생멸(生滅)이 사라지게 된다.
이를 허명자조(虛明自照-텅 비고 밝아 저절로 비추니)라고 한다.
따라서 고락(苦樂) 분별(分別)의 업(業)을 멸(滅)해야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이 청정하게 되어
불노심력(不勞心力-애써 마음을 힘들게 하지 않는다)이 되는 것이다.
고락(苦樂)의 업(業)을 멸하려면 매사에 있어서 좋고 나쁜 분별심(分別心)을 갖지 말아야 한다.
말을 할 때와 생각을 할 때, 일체의 행동에 있어서 좋고 나쁜 감정을 드러내지 말고,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그래서 기도와 참선, 보시와 정진은 필수(必須) 불가결(不可缺)한 것이다.
송(頌)
좋은 감정이 10이면 싫은 감정도 10이다.
좋은 감정이 0이면 싫은 감정도 0이다.
이 둘의 고락의 업에 의해
좋은 일과 나쁜 일이생기니
이 두 가지 업 가운데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불교신문 3786호/2023년9월19일자]
총무원장 진우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