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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속의 연꽃

친구보다 친지

작성자현문[아리야(Ariya)]|작성시간26.06.15|조회수2 목록 댓글 0

친구보다 친지

 

 

어떤 이가 글을 썼다.

그는

“내가 차 마시자고 하면 지금 이순간도 백명은 나올 것이다.

내가 술 마시자고 하면 부르고 싶은 대로 다 불러 낼 수 있다.

골프를 치자고 하면 일주일 내내 스케줄을 잡을 수 있다.”

라고 써 놓았다.

전 종교전문기자의 자신만만한 페이스북 글이다.

 

내가 보자고 하면 몇 명이나 나올까?

몇 명 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나는 영향력 없는 사람이다.

 

그 기자는 사람 만나는 것이 일이다.

명사를 만나서 인터뷰하는 것이다.

그의 유튜브에 가면 수많은 명사와의 대담이 있다.

주로 종교인에 대한 것이다.

 

사람이 재산이라고 한다.

사람을 많이 아는 것은 무형의 재산이나 다름 없다.

자신의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공을 들였을까?

 

오늘날 유튜브는 수익모델이나 다름없다.

구독자와 조회수로 결정된다.

여기에 좋아요 추천이 더하면 더욱더 큰 이익을 얻는다.

그래서 유튜버는 끊임 없이

“구독”, “좋아요”, “알림설정”을 외친다.

 

전직 기자는 사람 만나는 것이 일이다.

그러다 보니 만나자고 하면 다 나온다는 것이다.

이는

“내가 인터뷰 요청하면 나오지 않을 사람이 없다.”

라는 말과 같다.

사람 만나는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나의 경우는 사람 만나는 것이 피곤하다.

의미 없는 대화가 피곤한 것이다.

그럼에도 직업상 사람들을 만나야 할 사람이 있다.

전직 기자를 말한다.

 

전직 기자는 사람 만나는 것이 일이다.

사람 만나는 것이 직업인 것이다.

명사를 만나서 인터뷰를 하면 수익이 날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전직 기자에게 있어서 사람 만나는 일은 일석이조의 삶이 된다.

누이 좋고 매부 좋듯이,

사람을 만나서 좋고 수익이 나서 좋은 것이다.

 

사람은 비교하면 열등에 빠진다.

남과 비교했을 때 부족하다고 느낀다면 ‘열등적 자만’에 빠질 것이다.

이는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이익이 없는 것이 있다.

시기와 질투를 말한다.

주식투자자 찰리 멍거에 따르면,

욕망이나 성냄은 나쁜 것이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 자기만족은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시기와 질투는 도무지 이익 되는 것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시기와 질투는 이익은 하나도 없고 오로지 괴로움만 있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사람 사귀는 것과 무관한 길을 걸어온 것이다.

엔지니어출신으로서 기계 앞에서만 일만 해 왔다.

사람 사귀는 것과는 담 쌓아 온 것이다.

그러다 보니 학교친구나 친지들 밖에 모른다.

 

나에게는 친구가 별로 없다.

대학친구만 있다.

그것도 같은 학번, 같은 학과 친구만 있다.

중고교 친구는 없다.

공동학군의 학교를 다닌 이유도 클 것이다.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서는 졸업하면 끝인 것 같다.

당연히 초등학교 친구도 없다.

 

사회친구도 친구이다.

어느 때 계기가 되어서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사무실에서 글만 쓰다가 불교의 재가단체에 가입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2015년의 일이니 11년 되었다.

 

요즘은 거의 두문불출하며 살고 있다.

포천 변두리 왕방산 아래 아파트 일층에서 살고 있다.

조용해서 좋다.

대도시에서는 차량 소음에 시달렸다.

아파트의 편리함과 전원주택의 고요가 함께 있는 곳이다.

 

스마트폰에 주소록이 있다.

주소록에는 천명가량 되는 이름이 있다.

개인사업 21년 하면서 알게 된 사람들의 전화번호가 대부분이다.

사회에서 인연 맺은 사람들 이름도 있다.

이 많은 사람들 가운데 내가 보자고 하면 몇 명이나 나올까?

 

주소록에 있는 사람들은 친구가 아니다.

아는 사람, 지인일 뿐이다.

대부분 이해관계 때문에 만났다.

업무로 인해 만났기 때문에 업무가 없으면 더 이상 볼 일 없다.

그럼에도 주소록에는 남아 있다.

 

주소록에는 가족도 있고 친지도 있다.

특히 친지는 세월이 흐를수록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소원하게 된다.

장례식이나 결혼식과 같은 행사가 있지 않는 한 만날 일 없다.

사촌도 그렇다.

 

모바일청첩장을 돌리고 있다.

칠월 초순의 행사를 앞두고 친구들, 법우들, 친지들에게 카톡을 보내고 있다.

과연 몇 명이나 올 수 있을까?

 

인원을 파악해야 한다.

몇 명이나 올 수 있는지 파악되어야 하는 것이다.

나의 경우 고작 서른 다섯 명 밖에 되지 않는다.

내 쪽에 해당되는 친구, 법우, 친지를 말한다.

이 숫자를 채울 수 있을까?

 

흔히 현직 프리미엄을 말한다.

현직에 있으면 눈도장찍기 위해서 오는 것을 말한다.

장례식장이나 결혼식장에서 볼 수 있다.

현직을 떠나면 어떻게 될까?

썰렁할 것이다.

 

오랜 세월 자영업자로 살았다.

2005년 이후 21년째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일인사업자이다.

지금도 일인사업자로 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현직프리미엄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

 

오랜만에 사촌누이에게 카톡을 보냈다.

그때가 언제였던가?

아마 코로나 이전이었을 것이다.

결혼식장과 장례식장에서 보았다.

염치 불구하고 카톡을 보냈다.

 

사촌은 가까운 사이이다.

유전자의 사분의 일을 공유한다.

그래서인지 사촌은 닮은 구석이 있는 것 같다.

 

사촌누이에게서 답신이 왔다.

짤막한 문자 하나로 기쁜 마음이 되었다.

이렇게 해서 소통하게 되었다.

 

모바일청첩장을 돌리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왜 친지들을 장례식장에서만 만나야 하는지에 대한 것이다.

이왕이면 기쁜 날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자 오랫동안 단절되었던 사촌들에게 문자를 보내게 되었다.

 

살아오면서 수많은 사람들과 인연 맺었다.

옛인연도 있고 새인연도 있다.

전직 기자가 말한 것처럼 자신이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올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친구라 하여 반드시 또래 나이의 사람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뜻만 맞는다면 열살 아래도 친구가 될 수 있다.

심지어 일곱살 아이도 친구가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오랜 인연을 만나면 반갑다.

특히 친지를 만나면 반갑다.

사람만이 친구는 아니다.

친구 가운데에는 경전도 있다.

경전을 친구삼아 보낸다.

전직 기자처럼 누군가를 불러서 차를 마시거나 술을 마실 친구는 없다.

골프는 쳐 본적이 없어서 골프친구도 없다.

혼자 있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혼자 있을 때 무엇을 해야 할까?

TV나 유튜브에 빠져 있기 쉽다.

 

매일 아침 산책 나간다.

왕방산 입구 산책로 따라 산행하는 것이다.

오가는 사람들을 보면 스마트폰에서 소리가 난다.

노래 소리나 유튜브에서 나는 소리이다.

 

사람들은 한시도 가만 있지 않는다.

TV나 유튜브를 본다.

이런 삶은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삶이다.

누구나 이렇게 살 수 있다.

누구나 감각을 즐기며 살 수 있다.

 

TV나 유튜브도 친구가 될 수 있다.

홀로 된 노인은 TV보는 것이 낙일 것이다.

유튜브 보는 사람이라면 특정 유튜버에 가스라이팅 된 삶을 살기 쉽다.

 

TV 보지 않은 지 오래 되었다.

유튜브는 보기와 끊기를 반복하고 있다.

유튜브에 빠지면 가스라이팅되기 쉽다.

이럴 때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삶이 요청된다.

 

어떻게 해야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삶을 살 수 있을까?

글쓰기 하면 된다.

여기에 수행까지 하면 금상첨화가 된다.

 

글쓰기는 힘든 것이다.

수행은 더욱더 힘든 것이다.

이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삶이기 때문이다.

 

글쓰기와 수행을 하면 친구가 없어도 된다.

굳이 친구를 불러 내서 차를 마시거나 술을 마시거나 골프를 치지 않아도 된다.

 

사람을 거의 만나지 않는다.

그 대신 경전이 친구가 되었다.

친구를 만나 수다 떠는 것보다 경전에 실려 있는 문구 하나가 더 낫다.

새기고 싶은 문구가 있으면 글로 남긴다.

 

명상을 하면 친구가 없어도 된다.

마음을 내부로 돌리면 된다.

자기자신과 대화할 수 있다.

자기자신을 친구로 삼는 것이다.

 

친구를 만나면 시간이 잘 간다.

수다를 떨기도 하고 술을 마시기도 하고 놀이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남는 것이 없다.

감각을 즐기고 났을 때 허무한 것이다.

 

나는 친구가 없다.

알고 지내는 사람은 있지만 절친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필요할 때 도움을 주는 친구를 필요로 한다.

 

오랜만에 친구들에게 연락을 했다.

친지들에게도 알렸다.

특히 오랜 세월 만나지 못했던 사촌 누이에게서 답신이 왔을 때 한 핏줄임을 알게 되었다.

 

이럴 때 경전의 한 구절이 생각났다.

 

“오랜 세월 타향을

헤매던 나그네가

무사히 돌아왔을 때

친척들이나 친구들이 귀환을 반기듯

공덕들을 쌓고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갈 때

공덕들이 친지들처럼

사랑스럽게 그를 반긴다.”(Dhp 219~220)

 

 

타지에 갔던 나그네가 귀향하면 가족과 친지들이 반길 것이다.

설령 가족과 친지와의 관계가 좋지 않다고 하더라도 끊을 수는 없다.

 

왜 그런가?

같은 핏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맛지마니까야

‘업에 대한 작은 분석경’(M135)에서는 업에 대하여

“업을 친지로 하는 자(kammabandhu)”

라고 했다.

 

경전에서는 업이 친지와 같다고 했다.

업이 친구와 같다는 문구는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본다면 친구보다 친지가 더 낫다.

그렇다면 업이 왜 친지와 같을까?

 

이에 대한 주석을 보면

“신체적, 언어적, 정신적 행위에 의해 생겨나는 업은

인과적 생성원리에 따라 윤회하는 동안 수반된다.

형제, 친척, 친지들은 모였다가 흩어지지만 업은

기나긴 생사여로의 윤회를 함께 하는 진정한 동반자로서

친지이므로 선업을 닦아야 한다.”(KPTS본 각주)

라고 설명되어 있다.

 

친구보다 친지이다.

친구가 아무리 많아도 친지보다 못하다.

아무리 오래 된 친구도 유년시절부터 함께 한 친지보다 더 가까울 수 없다.

 

오랜만에 사촌누이와 카톡을 했다.

요즘은 전화로 통화하는 것보다 문자를 주고 받는 것이 더 자유롭다.

자애로운 몇 마디 문자에 고무되었다.

마치 타향을 헤매던 나그네의 귀향을 반기듯 했다.

확실히 친구보다 친지가 더 낫다.

 

 

2026-06-12

담마다사 이병욱

[출처] 친구보다 친지|작성자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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