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복(喪服)
장례식에서 검은 옷을 입는 이유는?
우리나라의 풍습 대부분이 중국의 영향을 많이받아 음양오행에 따라 유교사상이 몸에 베어 붉은 색이 양(陽)이면 검은 색은 음(陰)이다. 따라서 장례식에 갈 때는 대부분 검정색 옷을 많이 입으며. 음(陰)으로 가는 죽은 이의 혼을 달래기 위해서 양(陽)의 색깔을 될 수 있는 한 피하고 음(陰)의 색인 검정색을 주로 입게 되었다고 봐야한다. 따라서 붉은색 등 화려한 색은 되도록이면 피하는 게 좋다.
그리고 유가족들이 흰색 삼베옷을 입는 이유는 우리나라가 백의민족이니 유교사상이니하여 히들 으레 짐작하기를 그리 하는데,원시적 신앙에 의해 그 광명의 상징인 흰 빛을 숭상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입관이 끝나고 영좌를 마련한 다음 상제(喪制)와 복인(服人)은 성복을 한다.
성복이란 정식으로 상복을 입는다는 뜻이고, 상복은 따로 준비하지 않고 한복일 때에는 백색이나 흑색 복장으로 하고 양복일 때에는 흑색 양복에 무늬 없는 흰 와이셔츠를 입고 넥타이와 양말, 구두도 흑색으로 하는게 무난하다. 여자는 흰색 치마저고리를 입고 흰버선과 고무신을 신고 집안의 생활양식에 따라 검은색 양장을 하기도 한다. 이 때는 양말과 구두도 검정색으로 통일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부득이한 경우에는 평상복을 입을 수도 있다.
복인은 검정색 헝겊이나 삼베로 만든 완장이나 상장을 착용하고. 상복을 입는 기간은 장사를 지내는 날까지로 하고, 상장은 탈상 때까지 달아야 하며 굴건제복(屈巾祭服)의 착용은 가정의례에 관한 법률에서 일절 금하고 있으며 성복이 끝나면 성복제라하여 정식으로 제사를 지내게 된다. 성복제 이전에는 조석으로 전을 올리지만 성복제 이후에는 전을 올리지 않고 상식만을 올린다.
유래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세계사를 통하여 보면원래 상복색은 검정색이 아니었다. 예를 들면, 고대 이집트시대 상을 당했을 때 입는 옷은 노란색, 그리고 고대 로마에서는 어두운 파란색이었다, 14~15세기에는 검정, 녹색, 진한 파랑 등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검정이 상복 색으로 정착한 것은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영향이라고 하는 설이 있으며. 여왕은, 1861년에 남편이 죽었을 때에 검정 상복으로 장례식에 참가해서 그 뒤 그 자신이 죽었을 때까지 검정 옷을 계속 입었다고 전한다.
검정이라고 하는 색은 '죽음'이나 '절망'을 의미함과 동시에, '영원'과 '신비'를 상징하고 엄숙하고도 경건한 느낌을 준다. 또한 검정은 '고귀', '위엄'의 상징으로써, 경축 장소에서도 가끔 사용되고 있고 예를들어 밤파티에 초대받았을적 입는옷의 색갈도 주로 검정색 이였다. 따라서 검정색은 완전히 상반된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고 보여진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상장이나 리본 또는 예복의 색이 검정위주로 쓰이기 시작한지는 그리 먼 옛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가정의례준칙이 공표한 무렵부터 유럽풍으로 흐르다 보니까 자연스레 검정색을 많이 사용하게 된게 아닌가 여겨진다.
가정의례준칙은 그문제점을 보완하여 건전가정의례준칙 영이 공표된 후 곧 폐지되었다
우리나라 제사문화에 대한 기원은 삼국 시대 이전의 역사기록은 별 다른 기록이 남아있지 않고, 삼국시대에 들어서야 자신의 조상을 제사지내는 의례로 발전하기 시작한 것이다. 왕가에서부터 먼저 시작된 삼국시대의 제사의례는 중국문물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할 수 있는데 제사문화가 화려하게 꽃피었던 시기는 조선시대로 고려 말에 이르러 성리학의 도입과 더불어 《주자가례》에 따라 가묘를 설치하려는 운동이 사대부 사이에서 활발해지면서부터 조상에 대한 제사가 관습으로 정착되어 갔다.
상복의 변천사
조선말기 이후 우리의 제사 관념에 큰 변화가 나타나게 된 것은 기독교가 도입되면서였다. 특히 일제 침략으로 조선 왕조가 무너지고 왕조를 지탱하였던 양반 계층이 몰락하자 양반 중심의 예법이 동시에 붕괴되고, 유교식 제사 또한 그 사회적 존재가치와 의미를 많이 상실하게 된 것이다. 현대식제례는 대부분 유교 예법에 근거를 두고 있기는 하나 많이 간소화되었고 특히 1973년에 반포 시행된 가정의례준칙은 건전 가정의례의 정착및 지원에 관한 법률제5조 4항의 규정에 의하여 건전 가정의레준칙의 내용과 그보급및 실천에 관한 사항을 규정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되어 있으나,전통 예법의 모습을 크게 변질시켜 많은 문제를 낳게 되었다. 1696년 가정의례준칙이 제정되면서 기제사는 조부모까지로 정했다가 1999년 규제개혁철폐에 의하여 가정의례준칙은 폐지되고, 건전가정의례준칙을 새로 제정되는등 변화를 가져왔었다,따라서. 제례는 기제사와 명절 차례로 구분되고, 봉사는 제주로부터 2대조까지로 하고, 성묘는 제수를 마련하지 않거나 간소하게 한다고 공표되었다.
위에 열거한 내용과 같이 개선되고 간소화 되었다고 하나 지금도 일부 지방에서는 전통상복을 고집하고 있는곳이 더러있다.
전통상복에 대해 몇가지 더 소개 하고자 한다.
전통 상복과 복제도
부모상을 당하면 결혼한 아들은 굴건 두건 수질 상복 요질 교대(絞帶)마헤(麻鞋)굴건제복(屈巾祭服)을,미혼자는 수질에 중단(中單)을 입었다,
종부(宗婦)는 대수장군(大袖長裙)을 입은 위에 요질과 교대를 띠고 흰족두리를 쓰고 엄신을 신었다,그러나 근래에 와서는 남자의 경우는 흰 도포나 두루마기에 굴건을 쓰고 여자의 경우 흰 치마 저고리에 수질을 두르는 정도로 간소화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