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 백, 귀, 신, 영, 정혼, 귀신, 신명의 정명
혼(魂), 백(魄), 귀(鬼)
귀신을 언급함에 약방의 감초와 같이 자주 등장하는 것이 바로 혼(魂), 백(魄), 귀(鬼)의 개념이다. 민간의 귀신관을 보면 사람이 죽으면 정신이 세 가지로 분열한다고 믿었다. 즉, 죽음과 동시에 정신은 혼과 백과 귀로 갈라져, 혼은 하늘로 올라가고 백(넋)은 땅으로 돌아가고 귀는 공중에 떠돈다는 것이다. 여기서 귀가 일반적인 사람들이 모시는 신이라 하여 ‘귀신’이라 칭하는 것이다. 이것은 천(天)과 혼, 지(地)와 백, 인(人)과 귀를 대비한 것으로, 아마도 천지인 삼위일체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조선 말기의 대도인으로 추앙 받았던 증산 선생은 제자가 사후의 일을 물은 데 대하여 “사람에게는 혼과 넋(백)이 있어 혼은 하늘에 올라가 신이 되어 제사를 받다가 4대가 지나면 영(靈)도 되고 혹 선(仙)도 되며, 넋은 땅으로 돌아가서 4대가 지나면 귀(鬼)가 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것은 정신이 죽음과 동시에 혼과 백의 두 가지로 갈라진다는 것으로 음양적 관점에서 파악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혼은 무엇이고, 백은 무엇이고, 귀는 무엇이란 말인가?
혼백은 모두 정(精)과 기(氣)가 합해 정신을 구성하는 요소이다. 혼은 양기가 정(精)과 어우러져 화생된 것으로 그 성질이 밝고 가벼우며 청정한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정신의 지적 반응을 도와 인간이 진보,발전적 방향으로 나아가게 한다. 그러나 백은 음기가 정(精)과 어우러져 화생된 것으로, 무겁고 탁하고 칙칙한 성질이 왕성하여 인간을 퇴화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한다. 그래서 백이 발달한 사람일수록 본능적이고 생물적이어서 정신보다는 육체적 환락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렇게 정신을 구성하는 정기(精氣)에는 혼과 백으로 나뉘어 있는데, 죽음과 동시에 정(精)의 이탈로 인해 혼과 백도 갈라지게 된다. 이 때 혼은 가볍고 밝은 성질이 있어 영계에 쉽게 진입할 수 있지만, 백은 무겁고 탁한 기운이어서 시체가 놓인 자리에 그대로 머무르게 된다. 다시 말해, 백은 형계(形界)의 물질도 아니며 그렇다고 완전한 영계의 기운이라고도 볼 수 없는, 실로 어중간한 상태라 할 수 있다. 백을 육기(六氣)에 빗대어 철학적으로 표현한다면 ‘술공(戌空)의 위(位)’라 할 수 있다.
여하튼, 이렇게 죽음과 동시에 정신은 혼백으로 갈리게 되며, 이 때 신으로 반응하는 것은 백이 아닌 혼이다. 혼은 정(精)이 이탈되어 정(情)적인 반응이 활성되기 때문에 정혼(情魂)이라 부르며, 이 정혼(情魂)이 곧 우리가 말하는 일반적인 신인 것이다. 그리고 정혼(情魂)은 또한 영적 수준의 차이에 따라 백(魄)적 성향이 남아 있는데, 백성(魄性)이 많아 칙칙하고 탁한 신을 귀신이라 하고, 백성(魄性)이 불급(不及)하여 가볍고 밝은 신을 ‘신명(神明)’이라 한다. 귀신은 백이 묻힌 곳에서 자주 출몰하고 아집의 골이 깊고 원한이 남아 인간사에 많은 관여를 하려 한다. 그리고 신명은 그 중 일부가 인간사에 참여하려 하고 대부분은 영적 진화의 흐름을 타기 위해 저승에서 대기하거나 곧바로 윤회하기도 한다.
민간에 알려진 대로 백이 4대가 지나서 귀가 되는 것도 아니며, 혼이 신이 되고 4대가 지나 영(靈)이나 선(仙)이 된다는 것도 신계(神界)를 직시한 말이 못된다. 여기서 4대라는 개념을 ‘시간이 흐르면서’라는 뜻으로 폭넓게 해석해야 한다. 백이 귀가 된다는 것도 사실과 다르다. 정혼 중에 백의 성질이 농후(濃厚)한 신을 일컬어 귀 또는 귀신이라 칭하는 것이다. 또한, 여기서의 ‘영(靈)’이란 ‘선(仙)’과 같이 차원 높은 신을 지칭하는 개념이 아니다. 영(靈)이란 원시령체(태초와 태시에 생긴 최초의 神을 말한다)에서 상제신(上帝神)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자율반응체를 지칭하는 것으로, 신과 같은 포괄적인 개념이다. 영에는 자연령과 인간령으로 구분되고, 특히 인간령으로 존재할 때를 ‘정신’, 죽었을 때는 ‘신’이라 하는 것이다.
요컨대, 신에는 귀신과 신명, 그리고 선신(仙神)으로 나눌 수 있으며, 귀신과 신명을 정혼(情魂)이라 하고, 선신을 도통신, 천신, 보살신······등으로 영적 차원에 따라 다양하게 호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