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영조실록》 71권, 영조 26년(1750년) 6월 19일 기록에는
좌참찬 권적(權 )이 상서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에는 고 징사(徵士) 유형원(柳馨遠)이 지은 《반계수록(磻溪隨錄)》이
뛰어난 경국책(經國策)이라면서 이를 펴내 조정과 민간에 반포하기를 청하고 있습니다.
《반계수록》은 조선 후기의 학자 반계 유형원이 1670(현종 11년)년에 완성한
국가 제도 개혁안으로 붕당 정치와 임진왜란ㆍ병자호란으로 무너진
조선의 국가 체제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치기 위해
전라도 부안 우반동에 은거하며 19년 동안 집필한 책입니다.
▲ 징사 유형원의 《반계수록(磻溪隨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반계수록》에는 토지 제도 개혁으로
모든 토지를 국가 소유로 바꾸고 신분과 관직에 따라 차등을 두되,
모든 농민에게 일정 면적의 토지를 나누어 주어 자영농을 육성하고자 했습니다.
또 토지를 받은 농민에게 세금과 군역을 공평하게 부과하여
국가 재정과 국방력을 동시에 강화하려 했지요.
그리고 암기 위주의 과거 제도가 인재를 제대로 뽑지 못한다고 보아 이를 폐지하고
나라가 세운 학교(향학, 태학)에서 공부한 학생 가운데
도덕성과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추천받아 관직에 임용하는 공거제를 제안하고,
세습 노비 제도의 모순을 지적하고 이를 점진적으로 폐지하고자 했습니다.
유형원은 《반계수록》을 통해 현실의 모순을 해결하려는 중농주의 실학의 체계를 정립했는데
저술 직후에는 파격적인 내용 탓에 채택되지 못했으나,
100년 뒤인 영조와 정조 때에 이르러 그 값어치를 인정받아 나라에서 공식으로 펴냈습니다.
다만, 《반계수록》은 신분 차등 자체를 부정하지는 못하여
사대부와 농민의 계급적 구분을 유지한 상태의 반쪽 개혁안이었다고 비판받기도 하지만,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개혁안임이 분명합니다.